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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사람을 잘못 만나면 고생한다
필자가 대한건축사협회 자문변호사로 활동한 지도 벌써 12년이 되었다.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많은 건축사를 만났다. 건축주나 사업시행자, 시공업자를 잘못 만나 고생을 하는 건축사도 있었다. 역시 사람을 잘 만나야 고생을 하지 않는다. 악한 사람, 경우가 없는 사람, 정신이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 엄청난 마음 고생을 하고 재산을 손해보고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법적 분쟁이 일어나 법원이나 검찰청을 다녀야 하면 마음 고생이 보통 심한 것이 아니다. 잠을 자지 못하고 전전긍긍한다. 법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진실을 제대로 밝혀주지 못하는 때도 많다.
상대가 있기 때문에 쉽게 이길 수 있는 사건도 많지 않다. 상대방도 변호사를 선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건도 만만치 않다. 더 큰 문제는 일단 법으로 가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짧아야 6개월, 길게 가면 2년 또는 3년씩 간다. 소송의 지연 때문에 당사자들은 완전히 지치게 된다.
그래서 웬만한 사건에서는 끝에 가서 모두 후회한다. 차라리 이럴 것 같았으면 그냥 포기를 하든지, 합의를 하고 말 것을... 이런 탄식을 하면서 사법에 대한 불신을 하게 된다.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필자는 그동안 건축사들이 법적 분쟁에 휘말려들어 고생하는 것을 많이 보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건축사가 알아두어야 할 법에 관한 지식을 설명하는 기회를 갖기를 원했다. 그러던 중 다행이 ‘건축사’잡지에서 글을 쓸 수 있는 란을 할애해 주었다. 그래서 ① 건축사 보수를 확실하게 받는 방법 ② 설계감리를 잘못했을 때 어떤 책임을 지는가? ③ 건축저작권도 확실하게 보호되어야 한다 ④ 건축사윤리의 중요성과 위반에 대한 책임 ⑤ 건축사가 수사대상이 되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등의 제목으로 순차로 연재를 해왔다.
이런 글들이 과연 얼마만큼 도움이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늘 걱정되는 것은 아무리 쉽게 쓰려고 해도, 법이란 원래 법률용어를 어려운 한자말로 만들어 놓은 것이어서 비법률가가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법률가가 설계도면을 봐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건축사 입장에서 설계감리계약을 부득이 해제하려고 할 때 생기는 문제점을 설명하고자 한다.
Ⅱ. 먼저 설계감리계약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강조해도 일반인들은 계약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계약사회로 바뀐 지 오래 되었는데도 아직도 중요한 거래를 주먹구구식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사기도 당하고, 법적 분쟁이 많다. 일년에 사기사건이 20만건이 넘게 접수가 되는 것을 보면 얼마나 허술한 사회시스템인지 알 수 있다.
결혼을 예로 들어본다. 결혼은 계약의 일종이다. 법률상 혼인은 민법 중 가족법의 규정이 적용되는 계약(Contract)이다. 재산상 계약이 아닌 신분상 계약(契約)일 뿐이다.
일단 결혼하면 그 이후에는 가족법에서 정하고 있는 혼인계약에 관한 규정이 고스란히 적용된다. 부부 사이의 권리의무관계, 부모자녀 사이의 관계, 정조의무, 부양의무 등이 모두 가족법에 규정되어 있다.
결혼한 이상 부부는 혼인계약에 따라 자신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혼인계약상의 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이혼사유가 된다. 이혼은 혼인계약의 해제 및 소멸을 뜻한다. 부부공동체는 경제적 측면에서 부부공동사업체로 인정이 된다. 따라서 이혼하면 동업관계가 청산되는 것과 같이 재산분할을 통해 동업자인 부부 두 사람에게 자산과 부채가 나누어진다. 동업에 참여하지 않고 있었던 자녀들에게는 비록 성년이라도 부부의 재산은 분할되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그 어떤 계약보다 중요한 혼인계약을 체결할 때 신랑과 신부는 아무런 준비 없이, 법에 대한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채, 결혼식장에서 주례선생의 짧은 훈시말씀을 듣고 모든 것을 끝낸다. 구두로 혼인계약을 하고 신혼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혼인신고를 한다.
이 단계에서 두 사람 사이에 혼인계약은 성립한 것이고, 혼인신고를 함으로써 곧 바로 효력을 발생하게 된다. 그 순간 부부는 법에 규정되어 혼인계약의 실질적인 내용이 되는 정조의무, 동거의무, 부양의무, 자녀양육의무 등 많은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도대체 부부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법에 규정되어 있는지, 혼인계약의 의미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그냥 혼인신고를 하여 법률상 부부가 된 다음 즉각적으로 결혼생활에 들어간다.
결국 혼인계약을 구두로만 하고 부부로서의 의무를 각자 알아서 지켜야 하는 이상한 현상이 발생한다. 그래서 결혼생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파탄이 나며, 심지어는 이혼으로 끝이 난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문서로 작성된 계약서는 매우 무서운 구속력을 가진다. 예를 들어 어떤 재벌 회장이 필자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100억원을 증여하겠다는 각서를 한 장 써주면 그 종이 한 장 가지고 그 회장의 재산을 강제집행하여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대학교 재산에 백억대의 재산을 기부하기로 계약서를 쓰고 재산을 넘기지 않자 대학교와 기부약속자 사이에 기부금을 내라는 소송이 벌어졌다. 대법원까지 간 소송에서 결국 기부자가 패소한 사례도 있다. 기부증서 한 장에 도장을 찍었기 때문에 결국 백억대가 넘는 재산을 강제로 넘겨주게 된 것이다.
재산상 이해관계가 있는 계약서를 작성할 때에는 정말 그 내용을 꼼꼼히 읽어보고 따져본 다음 서명날인하여야 한다. 대충 읽어보고 나중에 생길 문제를 전혀 고려치 않으면 큰코를 다치게 된다.
대법원은 이러한 재산이나 권리에 관한 어떤 처분을 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처분문서는 진정성립이 인정되면 그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절대적으로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놓은 바 있다. 문서의 진정성림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문서가 작성되는 과정에서 별 문제가 없고, 그 문서에 서명날인한 사람이 서명날인 자체는 제대로 했다고 인정되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 단계로 문서에 기재된 내용에 대해 당사자가 합의하지 않았다든가, 그 내용을 모르고 서명날인했다고 하는 주장은 법에서 잘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취지이다.
Ⅲ. 설계감리계약을 체결할 때 꼼꼼히 따져야 한다
설계감리계약도 마찬가지다. 계약서에 상세하게 당사자의 권리와 의무가 규정되어 있다. 계약의 이행방법도 구체적으로 명기되어 있다. 당사자는 이러한 계약의 효력을 존중해야 한다. 계약의 문언을 잘 읽어 오해하지 않도록 하고, 계약서에서 요구하고 있는 자신의 의무사항을 철저하게 이행하여야 한다.
건축사에게 설계감리계약은 나침반, 항해도와 같은 역할을 한다. 계약서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계약이 종료될 때까지 늘 계약서의 내용을 숙지해야 한다.
건축사는 의뢰인과 설계계약, 감리계약을 체결한다. 의뢰인(Client)은 전문직업인과 거래를 할 때 상당히 긴장하지만 대부분은 전문가를 믿고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많다. 병원이나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약정서에 도장을 찍거나 사인을 할 때 그냥 읽어보지도 않고 사인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나중에 이런 계약서나 약정서의 효력이 종종 다투어지는 것이다. 계약서에 따라 자신의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게 된다. 건축물에 대한 설계를 하고, 설계도서를 작성하여 교부하여야 한다. 이것이 가장 주된 계약상의 의무다.
의뢰인은 이에 대한 대가로 설계비를 지급하여야 한다. 건축사가 고심 끝에 작성한 설계도서를 기초로 건축주는 행정청으로부터 건축허가를 받고, 시공자는 이러한 설계도서에 따라 건축행위를 하게 된다.
시공자는 오직 설계도서에 기재된 내용대로 시공하여야 한다. 설계를 변경해야 할 필요성이 있으면, 설계자에게 설계변경을 요청하고, 행정청으로부터 설계변경허가를 받은 다음 시공을 계속해야 한다.
건축사가 설계도서를 작성하면서 실수를 해서 제대로 공사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든가, 구조계산을 잘못해서 건축물의 안전에 이상이 생긴 경우, 설계도서 작성기한을 어긴 경우, 사용승인을 받지 못하게 된 경우 등에는 건축사의 고의나 과실이 있었는지 여부를 따져 책임을 추궁 당하게 된다.
감리계약도 마찬가지다. 계약서 기재 내용과 법령의 규정이 종합적으로 적용되어 감리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의 감리를 해야 하는지가 결정된다. 그리고 그러한 계약상의 감리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어 책임을 지게 된다.
Ⅳ. 설계감리계약에 있어서 건축사의 법적 지위는 무엇인가?
설계계약은 설계도서의 완성이라는 건축사가 부담하는 의무를 전제로 도급인인 건축주가 그에 대한 보수를 지급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도급계약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건축도급계약과 마찬가지로 설계계약에서는 도급인과 수급인이 있다. 설계도서를 작성하여 교부하는 용역업무를 건축주가 도급인의 입장에서 건축사에게 맡기는 것이다. 건축사는 수급인의 입장에서 책임지고 약정된 내용대로 설계라는 용역을 제공하는 것이다.
건축사가 제공하는 용역의 내용은 다른 위임계약이나 도급계약에서 정하는 것과 다르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건축물에 대한 설계를 하여 그 결과물인 설계도서를 작성하여 교부하는 것이다. 단순히 일만 하면 되는 근로계약과 다르고, 일의 완성이라는 목적이 설정되어 있지 않은 위임계약과 다르다.
감리계약은 설계계약과는 약간 다르다. 감리계약은 도급계약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대법원은 도급계약이 아닌 준위임계약이라고 보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도급계약보다는 위임계약에 가까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즉, 감리계약은 감리대상이 된 공사의 완성 여부, 진척 정도와는 독립된 별도의 용역을 제공하는 것을 본질적 내용으로 하는 위임계약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감리계약을 위임계약으로 볼 때 수임인인 건축사는 위임인인 건축주로부터 위탁받은 사무를 처리할 의무를 진다. 이 경우 건축사는 위임의 본지(本旨)에 따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써 위임사무를 처리하여야 한다.
도급과 달리 위임에 있어서는 일의 완성이 아니라, 그냥 맡겨진 사무를 처리하면 된다. 사무를 처리함에 있어서 대충하거나 불성실하게 해서는 안 되고, 위임의 본지에 따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를 다 하면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 결과가 반드시 일을 완성한 것도 아니고, 위임인의 목적이나 의도에 부합하는 성과가 나지 않아도 일을 맡은 수임인은 자신이 할 도리만 다했으면 법적 책임은 없다.
Ⅴ. 설계감리계약은 해제가 가능한가?
얼마 전에 어떤 건축사를 만났다. 그는 공장에 대한 설계감리를 맡았는데, 어렵게 공장신축허가를 받았고, 설계도서를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법적으로 문제가 있어 다시 설계변경을 해야 하는데, 설계변경허가가 쉽게 날 것 같지 않고, 건축주는 무조건 받아내라고 난리를 치고 있다고 한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지금 단계에서 손을 떼고 싶은데 좋은 방법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내용을 들어보니 토지경계측량을 했을 때, 실제 경계선과 지적도 상의 경계선이 불일치한 것이고, 인접토지소유자가 이미 토지에 대한 시효취득을 한 상태라서 결과적으로 건축허가를 받을 때 잘못했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현재 상태에서 설계감리계약을 해제하고 손을 때고 싶다는 취지였다. 무척 답답한 상황이었다.
건축사도 사람이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일단 계약을 딸 욕심에 계약은 했는데, 막상 작업을 하다 보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의뢰인이 법과 규정에 맞지 않는 건축허가나 설계변경을 해달라고 무리하게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설계나 감리업무를 수행할 사무소 사정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처음에 예상을 잘못해서 설계도서의 완성이 상당한 기간 지연될 것이 우려되는 경우도 있다. 계약 체결 후 직원이 그만 두거나 건축사 자신이 건강이 나빠져서 제대로 계약을 이행하기 어려운 사정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법을 모르기 때문에 전전긍긍하면서 시간만 보내는 건축사가 있다. 어떻게 해야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인지 연구를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계약의 취소와 해제, 해지 등의 제도에 대해 알아야 한다.
설계계약은 체결할 때 적법하고 공정하여야 하며, 당사자가 진정한 의사표시를 함으로써 서로 합의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계약 체결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하면, 그 계약은 취소될 수 있다.
설계계약이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에는 아예 무효로 간주된다. 효력이 애당초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법의 정신은 아파트신축을 하는데 어떤 사람이 이른바 알박기를 하여 시행사로부터 거액을 뜯어내는 토지매매계약에 있어서 무효로 판정하는데서 나타난다.
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의 중요한 부분에 대해 중대한 착오가 있었던 경우에는 사후에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그런데 설계계약이 체결된 이후에 이를 건축사가 무효 또는 취소할 수 있는 사유가 있다고 주장하고 그를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건축사가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설계계약의 해제 또는 해지가 중요한 법적 사유다.
Ⅵ. 계약해제의 의미는 무엇인가?
아파트를 팔았는데, 산 사람이 잔금을 약정기한에 주지 않는다. 이런 경우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상당한 기한을 최고한 다음 그때까지 잔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물론 해제를 하지 않고 계속 기다렸다가 잔금을 받고 등기를 넘겨줄 수도 있다. 그것은 매도인의 자유다.
법은 매도인이 잔금미지급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제하여 효력을 상실시킬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놓았다. 이렇게 매매계약이 매도인의 해제의사표시에 의해 강제로 효력을 상실하게 되면, 계약을 효력을 상실하고 당사자는 계약체결 이전의 상태로 원상회복을 해놓아야 한다.
매도인은 더 이상 아파트를 넘겨줄 의무가 없다. 아파트에 대해 소유권이전등기를 하거나 아파트를 매수인에게 점유이전해 줄 의무가 없어진다. 매도인이 받은 매매대금도 모두 매수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다만, 계약서 상에 계약금을 위약금의 명목으로 몰취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으면 계약금은 돌려줄 필요가 없다. 중도금은 원칙적으로 모두 매수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이것이 계약이 해제되었을 때 발생하는 원상회복의무의 내용이다.
이것과 별도로 매도인은 계약이 해제됨에 따라 발생하는 손해배상을 매수인에게 청구할 수 있다. 부동산중개수수료나 기타 특별히 발생한 비용이 있으면 이를 근거로 매수인에게 계약해제에 따른 손해배상으로 청구할 수 있고, 이미 받은 중도금에서 상계처리하면 된다.
이와 같이 계약이 체결된 후 당사자 한쪽이 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는 다른 계약 당사자는 그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계약 체결 후 이행지체 또는 이행불능의 상태가 되면 이를 이유로 계약을 더 이상 존속시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여 반대 당사자가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계약을 파기하는 것이 바로 계약해제제도이다.
지금 설명하면서도 법률 용어가 너무 어려운 한자말로 되어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법률전문가가 아니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하는 수 없다. 법률가가 건축논문을 읽으면 매우 난해하게 느껴지는 것과 같다. 법에서 사용하는 전문용어는 하나씩 그 뜻을 풀어서 이해하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설계계약이나 감리계약에 있어서도 이러한 계약의 해제와 해지는 명백하게 인정된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 건축사가 해제할 수 있는지 그 요건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러한 해제의 효과는 어떠한지 살펴보아야 한다.
다만, 여기에서는 건축주와 같은 의뢰인이 설계감리계약을 해제하는 경우는 제외하고 오직 건축사의 입장에서만 검토한다. 물론 건축주도 당연히 해제사유가 있으면 설계감리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다.
Ⅶ. 건축사가 일방적으로 해제할 수 있는 사유는 무엇인가?
설계계약의 경우를 보자. 설계계약을 체결했는데, 건축주가 설계비를 지급하지 않거나, 지급할 능력이 없어진 때에는 건축사는 즉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일반 표준계약서에는 건축사가 설계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는 특별한 경우를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설계계약에서 법정해제권 이외에 별도로 약정해제권을 부여한 것이다. 특별해제권은 건축주가 동의하여 설계계약서가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인정되는 것이다. 건축사가 건축주를 상대로 설계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제하여 효력을 소멸시킬 수 있는 사유를 보면 다음과 같다.
① 건축주가 건축사의 업무를 방해하거나 그 대가의 지불을 지연시키는 경우다. 건축주가 약정한 보수를 제때에 지급하지 않으면 일정한 기간을 주고 이행을 최고(催告)한 다음 그래도 불이행하면 그때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② 건축주가 계약 당시 제시한 설계요구조건을 현저하게 변경하여 건축사의 업무수행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명백할 때다. 여기에서는 ‘현저하게 변경’하여야 한다는 매우 추상적인 기준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건축사의 업무수행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하여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두 가지 요건을 충족시키기는 쉽지 않다.
③ 건축주사 건축사의 승낙 없이 계약상의 권리 또는 의무를 양도한 경우다. 설계계약상의 설계도서에 관한 협의권한이나 설계도서사용권 등을 임의로 양도한 경우를 말한다. 또는 보수대금지급의무를 제3자에게 임의로 인수시킨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④ 건축주가 건축사의 업무수행상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지 아니하여 건축사의 업무수행이 곤란하게 된 경우다. 실제로는 이런 경우는 거의 상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⑤ 건축사의 사망 실종 질병 기타 사유로 계약이행이 불가능한 경우다. 기타 사유라 함은 그야말로 계약이행이 불가능하게 만든 제반 사유를 말한다. 어떠한 경우이든 계약이행이 불가능하게 된 이상 건축사는 설계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다만, 그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설계계약은 도급계약에 해당하므로 민법상 특별한 해제사유의 적용을 받게 된다. 즉 수급인인 건축사가 일을 완성하기 전에는 도급인인 건축주는 손해를 배상하고 설계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이는 민법 673조의 규정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경우 건축주가 계약을 해제하는 이유는 묻지 않는다. 그러나 일을 완성한 때에는 아직 인도를 하지 않았더라도 해제는 인정되지 않는다.
도급에서 수급인이 부담하는 목적물의 인도의무는 목적물을 완성하여야 할 의무에 종속된 것에 지나지 않고, 또 이 경우에는 도급인에게 해제를 인정할 실익도 없기 때문이다. 손해배상의 범위는 이미 지출한 비용과 일을 완성하였더라면 얻었을 이익이 포함된다. 도급인이 파산한 때에도 수급인에게는 해제권이 부여된다.
Ⅷ. 설계계약해제를 하는 방법은 어떠한가?
건축사가 어떠한 해제사유가 발생하였다고 판단하여 계약해제를 하려고 할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쉽게 설명하면 일단 자신이 해제하려고하는 이유를 쓰고, 그에 대한 증거자료를 첨부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 때문에 설계계약을 해제할 것이니 그에 대한 정리를 어떤 방법으로 하자는 취지를 써서 내용증명방식으로 건축주 등 상대방에게 우편으로 송달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계약해제는 건축주의 일방적인 의사표시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설계계약의 체결이 일방적인 의사표시에 의해서는 불가능하고, 반드시 건축주와 건축사 두 사람의 합치된 의사표시에 의해 성립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해제에는 상대방의 동의가 필요없다. 상대방의 동의(同意)를 받아서 하는 설계계약의 해제는 물론 가능하나 이것은 합의해제라고 하는 이른바 해제계약에 의해 하는 것이다.
계약 또는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당사자의 일방이나 쌍방이 해지 또는 해제의 권리가 있는 때에는 그 해지 또는 해제는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 한다. 이러한 의사표시는 철회하지 못한다.
계약해제 사유가 발생하였더라도 이러한 해제권을 행사할 것인지 여부는 해제권자의 자유의사에 맡긴다. 따라서 채권자는 계약을 해제하지 않고 자신의 의무를 부담하면서 채무자에게 채무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
해제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써 한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도달한 때로부터 그 효력이 생긴다. 해제의 의사표시에는 조건이나 기한을 붙이지 못한다.
Ⅸ. 계약이 해제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
그러면 계약해제의 효과는 무엇인가? 계약을 해제한 때에는 각 당사자는 그 상대방에 대하여 원상회복의의무가 있다. 당사자 서로의 원상회복의무에는 동시이행의 항변권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며 계약의 해제는 손해배상의 청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계약의 해제는 계약관계를 해소하여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상태로 복귀시키는 데 있다. 따라서 계약을 해제하면 계약은 그 효력을 상실하고 그에 따라 채권채무도 소멸하는 결과, 아직 이행하지 않은 채무는 이행할 필요가 없게 되고, 이미 이행한 채무는 계약체결전의 상태로 회복시켜야 한다.
계약을 해제하면 계약은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한다. 당사자는 계약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되며, 이행하지 않은 채무는 이행할 필요가 없고, 이미 이행된 급부는 서로 원상회복하여야 한다.
Ⅹ. 맺는 말
살다 보면 참 골치 아픈 일을 많이 당하게 된다. 특히 건축사 사무실을 운영하다 보면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직원이 속을 썩이거나, 의뢰인이 경우가 없거나, 행정청에서 공무원들이 너무 엄격하게 법집행을 하여 힘이 들 때가 많다.
그래도 참고 견뎌야 한다. 사회생활에 있어서 법은 매우 귀찮은 존재이지만, 막상 문제가 생기면 법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의 재산과 권리를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건축사로서의 권익을 보호받기 위해서는 힘이 들어도 법에 대한 지식을 쌓고 평소에 업무를 수행할 때 꼼꼼히 따져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때그때 필요한 자료도 만들어 놓아야 한다. 이것이 지혜로운 방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