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 강가로 나가
날이 밝아온 시월 끝자락 화요일이다. 이슥해져 갈 가을의 서정을 느껴보려 근교 강가 풍경을 탐방할 셈으로 길을 나섰다. 올가을은 늦더위가 물러가지 않아 단풍이 물드는 속도도 예년보다 늦은 감이다. 지난 주말 초등 친구들과 속리산 법주사로 다녀온 소풍에서 단풍은 아직 완연하지 않았더랬다. 상강 절기가 지났는데도 위도가 여기보다 높은 그곳도 서리가 내리지 않은 듯했다.
이른 아침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 소답동에서 내렸다. 창원역을 출발해 오는 1번 마을버스를 탔더니 근교 일터로 나가는 직장인들이 늘어 도계동 만남의 광장에서 탄 승객은 서서 가야 했다. 자연학교 학생인 내가 자리를 비켜줘야 할 판인데 선뜻 용기 내어 일어나지 못했다. 용잠삼거리를 지난 동읍에서는 가술로 가는 학생이 타 차가 비좁아진 느낌이었다.
주남저수지를 비켜 대산 일반산업단지에 이르자 승객은 거의 내려 남은 몇 학생이 가술에서 내리자 한 아낙과 나만 남았다. 제1 수산교를 앞두고 정원이 잘 꾸며진 요양원 근처 정류소에서 내렸다. 한림으로 뚫은 신설도로에서 강둑으로 건너가 둑길을 따라 대산 문화체육공원으로 향했다. 25호 국도가 강심을 가로지른 수산대교 교각을 지나자 유장히 흐르는 강물과 버드나무가 보였다.
둔치에는 대산 플라워랜드가 나왔다. 꽃밭에는 인부들이 잡초를 뽑고 검불을 치우는 일과를 수행했다. 지나간 여름에도 뙤약볕 아래서 김을 매고 물을 주느라 땀을 흘렸다. 그분들의 노고에 외진 강가에 아름다운 꽃밭이 조성되어 발품 팔아 찾아오는 이들이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강 건너편 밀양 초동면 반월 습지 생태공원에 조성해둔 봄가을 꽃길과는 분위기가 다른 꽃밭이었다.
꽃밭에는 핑크뮬리가 제 색깔을 띠었고 키를 낮게 키운 코스모스가 화사하게 피어 가을의 운치를 살려주었다. 장미가 늦은 봄을 아름답게 장식했다면 늦가을은 국화꽃이 대표 주자였다. 마산 해양공원에서 개막된 국화 축제도 꽃이 덜 핀 상태라고 했는데 대산 파크랜드에 키운 옥국도 이제 봉오리를 맺어 개화가 늦었다. 올여름 폭염에 뒤따른 가을 늦더위가 국화 개화를 더디게 했다.
플라워랜드와 인접한 파크골프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골퍼들이 운집해 잔디밭을 누볐다. 자전거길에서 펜스 너머 공을 몰아가는 골퍼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 여성과 한 조를 이룬 사내는 여러 군데 다녀봐도 이곳만큼 잘 꾸며진 골프장 못 봤다고 했다. 내가 속한 문학 동인회에서 펴낸 회지 한 회원 시에 ‘자식 놈과 골프공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기억에 남아 있다.
기존 파크골프장으로도 아주 넓은데 앞으로 더 확장 시키려는 부지에도 몇몇 동호인들이 공을 몰아 다녔다. 자전거길이 휘어진 모롱이를 돌자 북부리 언덕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팽나무가 바라보였다. 둑길로 오르지 않고 둔치에 뚫린 길을 따라 물억새꽃의 열병을 받으며 유등으로 향했다. 강가는 청청한 대나무가 숲을 이루었고 삼랑진으로 흘러가는 강물의 물줄기 일부가 보였다.
유등이 가까워진 곳에서 둑으로 올랐다. 유청마을에서 유등 종점은 가까워 연이어졌다. 유유청청을 줄여 유청이라는 지명을 붙였다는 곳으로 죽동천이 낙동강에 합류했고 유등에서는 주천강이 샛강이 되어 커다란 배수장이 있다. 유청에서 들판을 따라 걸으니 비닐하우스에는 한겨울부터 따낼 토마토는 노랗게 핀 꽃이 보였다. 역시 겨울에 풋고추를 딸 청양고추도 싱그럽게 자랐다.
들녘에는 벼를 수확하는 콤바인이 굴러가고, 추수를 끝낸 논에는 볏짚이 가지런히 눕혀져 있거나 공룡알처럼 커다란 덩이로 감겨 있었다. 빈 논은 그냥 두지 않고 곧 땅을 갈아엎어 비닐하우스를 세워 당근 농사를 지을 테다. 논두렁에는 봄에 떨어진 씨앗에서 절로 싹을 틔운 냉이가 웃자라 파릇했다. 언제 틈을 내서 뿌리를 제외한 잎줄기만 잘라 모으면 찬으로 삼아도 좋을 듯했다. 24.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