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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장애물 용서 넘어가기 (막3-56)
2024년 9월 9일 (월요일)
찬양 :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본문 : 막11:20-26절
☞ https://youtu.be/1hMZ-mvr6Dw?si=yyReZJZC1J5pH2Xw
오늘은 웨이브리즈 플랫폼 심층 인터뷰가 선교회에서 진행된다. 또 금주간 본격적인 콘텐츠 제작을 위해 인간극장을 제작한 팀들을 수요일에 만나기로 했다. 모든 일정에 필요한 것들이 주님의 선한 손의 인도하심이 있기를 기도한다.
나는 오늘 작은교회 심방을 계속한다. 너무 소중한 사역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셨지만, 건강이 따라주지 못해 앞으로 어찌해야 좋을지 고민하시는 사역자를 심방한다. 진실로 주님의 지혜가 필요하다. 주님 모든 만남에 주님의 뜻만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주님의 치료와 위로와 소망이 있게 하소서.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서 무성했던 무화과나무가 하루 만에 말라버림을 보고 베드로가 놀라 고백하는 장면과 그에 대답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나온다. 21절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여기 랍비란 말은 히브리적 관점에서 보면 <나의 선생님 혹은 나의 위대한 자여>란 의미라 한다. 예수님 당시 랍비는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여 그들에게 가르침을 전수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랍비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을 율법 교사로 인정하는 동시에 그 가르침을 받는 제자로서의 자신을 확인하는 의미다.
지금 베드로는 놀라운 현실을 만나며 단순한 존칭을 뛰어넘어 예수님을 영적 권위와 가르침에 대한 깊은 존경과 신뢰를 담아 부르고 있다.
이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대답하신다. 22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강조하고 있다. 주어진 상황을 뛰어넘어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라고 말이다.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가 내 뜻보다 더 소중함을 믿고 살아내야 한다. 아멘. 아멘.
그런데 예수님은 이 믿음을 기도와 연결시키고 더 나아가 용서와 연결시켜 말씀하신다. 23-25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린 사건에 놀란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신 후 믿음의 선포와 기도가 동일하다고 말씀하신다. 무화과나무를 향해 선포하신 예수님은 그대로 될 것을 믿었기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그러니 제자들의 삶에 그렇게 선포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신 것이다. 아멘.
그런데 예수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마지막 용서로 연결하신다. 기도에서 믿음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결과가 유효하려면 마음속에 다른 사람에 대한 원한을 없애고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신다.
<믿음과 기도와 용서>가 하나로 연결된 것이라고 하신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기도한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는다. 그런데 이 믿음에 장애물이 생길 때가 있다고 하신다. 바로 <혐의가 있거든>이란 말이다.
이것은 헬라어로 κατά (katá)라는 단어로 <반대하여, 대항하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누구가에 대해 마음속에 쌓인 감정, 원한 불만들이 영적 장애물이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여기서 기도할 때 누구에 대해서든지 마음속에 남아 있는 원한이나 분노, 불만이 있으면 먼저 그 사람을 용서하라고 가르치신다.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온전하게 나아갈 수 없고, 우리의 기도 또한 진정성을 잃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내게 무엇인가를 이루는 수단이 아니라, 나와 연결된 곳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하나님의 통치가 일어나는 것이기에 그것은 반드시 용서라는 통로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하신 것이다. 용서 없이 하나님앞으로 온전하게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나와의 믿음은 곧 이 땅에서 나와 누군가와의 용서라는 통로를 통해 확인된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 이 말씀이 큰 울림과 도전을 준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아니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오늘도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의 꿈을 품고 기도하는 사람이다. 나도 말씀으로 베드로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했기에 하나님을 신뢰한다. 그래서 기도한다.
여기까지는 어렵지 않게 나아간다. 그런데 이 믿음이 용서라는 자리에서 멈출 때가 많음을 돌아본다. 오늘 내가 용서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오늘 내 마음을 막아서서 대항하게 하는 사람은 누굴까? 내가 불만을 가진 사람은 누굴까?
내가 천사가 아니기에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자녀를 향해서도 불만이 있고, 함께하는 이들에게도 불만이 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일이 이런 불만을 가진 이들, 더 나아가 원망을 하게 되는 사람들, 더 나아가 원수처럼 여기는 이들을 용서하는 일이란 사실을 깊이 묵상한다.
사실 내가 죄인이고, 내가 용서받은 자이기에 용서를 실천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너무 당연한 일임에도 이상하게 불만과 미움의 대상들이 쌓여질 때 용서를 미루고 아니 그냥 무시해 버릴 때가 많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기에 이 아침 용서를 선포한다.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심처럼 불만을 마르게 하실 하나님을 찬양한다.
삶이란 자리에 서로가 다르기에 늘 다름이 틀림처럼 여겨지고, 서로가 상대의 내면을 알 수 없기에 자기 기준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어 오해가 일상이 되는 것이 우리 삶이다.
그런데 그런 일상이 우리 삶에 불만과 원망과 원한으로 쌓여 대항한다는 것은 믿음의 삶에 장애물이 생긴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다. 내게도 이런 장애물이 있음을 발견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겸손히 오늘도 나의 장애물들을 향해 용서를 선포하며 나아간다.
주님, 이 하루 내 소중한 하나님의 역사를 향해 나아가는데 대항하여 일어나는 용서되지 않는 불만과 갈등과 아픔들을 향해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용서를 선포합니다. 무화과나무를 말라지게 하신 주님의 능력이 오늘도 우리의 기도에 나타나 이 모든 불만과 갈등과 미움들이 말라지게 하심을 찬양합니다. 이런 장애물들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막히지 않게 하사 오늘도 주님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이루는 삶이 되게 하소서.
<중보기도 제목>
웨이브리즈: 플랫폼이 새로운 도약을 이루며 주님 뜻 이루게 하소서.
목회사관학교: 진짜 목사가 세워지는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재정적 필요: 100명의 새로운 후원자와 3억의 출자금이 공급되게 하소서.
박정제 목사와 팀원들: 성령을 충만하게 하소서.
스페이스 알 사역: 젊은 세대 사역자를 일으키게 하소서.
틴케이스 공간: 젊은 세대를 세우는 공간으로 소중히 쓰임 받게 하소서.
작은교회 부흥: 2024년 작은교회 부흥을 이루는 해가 되게 하소서.
충주 라마나욧: 세워지는 과정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