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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자(追跡者)-39
크리스는 조심스럽게 대답하였다. 내게 엘리자벳은 옥빌의 엘리자벳 밖에는 없었다. 걱정스러웠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단 말인가? 아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다면 크리스가 전화를 받을 수 없다. 그녀가 직접 전화하였다면?
“너 어떻게 나에게 말할 거야?”
“어제 전화가 왔어요. 아빠가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고 했어요.”
“그래. 엘리자가 폭행 당했던 날 알려주었지. 그런데 무슨 일이 생겼어?”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러나 꼭 아빠를 만나야 한다고 했어요. 지금이라도 당장.”
“뭐? 지금이라도 당장?”
“예. 지금이라도 당장.”
“알았다. 전화번호는 받았겠지?”
“예. 조심해서 내려오십시오. 토론토에 도착하면 다시 전화해 주세요. 가까운 곳에 기다렸다가
전화와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 드릴게요.”
“그래. 고맙다.”
뭔가 중요한 사실이 있음을 느꼈지만 막연하였다. 엘리자벳이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있다는 말인가? 아마 그럴 가능성이 클 것 같았다. 엘리자벳은 너무 나이 들었고 아들과 딸이 있지만 이미 출가하여 멀리 떨어져 살고 있잖은가. 엘리자벳이 뭔가 알고 있다고 칼림교나 레드 플라워가 오해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추궁하였다는 의미인가? 도대체 정리가 되지 않았다. 단지 바로 옆집에 산다고 하여 노인에게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결론은 이렇게 생각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메모라(Marmora)에서 전화하기에는 느낌이 좋지 않았다. 우측으로 빠지면 홈 메이드 햄버거
레스토랑이 있고 홈 메이드 커피도 마실 수 있다. 나는 이 홈메이드 햄버거 레스토랑을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두 대의 컨테이너를 실은 차량이 앞에서 가고 뒤에는 목재를 가득 실은 트럭이 쫓아 오고 있었다. 이 좋은 엄폐물들과 이별하여 빠지기는 싫었다. 곧 헤브락(Havelock)을 지나 언덕을 오르는 추월선이 나오자 나는 좌측길로 빠져 두 대의 컨테이너를 추월했다. 이 고개를 넘으면 작은 호수를 가로지르는 노우드(Norwood)의 다리가 나오고 조금 더 가면 피러보러 카운티(County of Peterborough)가 나온다. 나는 노우드에서 우회전하여 작은 주유소 뒷 주차장에 토러스를 세웠다. 그리고 출입구 좌측 벽에 붙어있는 공중전화로갔다. 벨이 8 번이나 울려서야 연결이 되었다.
“당신이 곧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하였습니까?”
누군가 도청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엘리자벳의 이름을 부를 수가 없었다.
“아. 그래요. 할 말이 있어요.”
그녀는 힘들게 말하고 있었다.
“누가 이 전화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이해하지요?”
“으응. 누가… 옆에는 아무도 없는데…”
엘리자벳은 어리둥절해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알턱이 없을 것이다.
“언제 출타 할 겁니까?”
말이 없었다. 헷갈리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어떻게 이해를 시켜야 하나 걱정스러웠다.
“그곳에 가서 날 찾아 전화했던 번호로 다시 전화해 주시겠습니까?”
“아. 으음. 알았어요. 그럼 시간 날 때 다시 만나요.”
“Please make a sense.”
나는 전화를 끊었다. 엘리자벳이 스마트해 지길바랐다. 이건 제임스 본드 놀이가 아니란 걸 알기를 바랐다. 이제는 내가 헷갈리고 있었다. 이해를 하고 그렇게 말한 것일까? 아니면, 무슨 뜻일까? 중요한 일로 나를 찾았다면, 그만큼 긴장해 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끊고 지체없이 크리스에게 다시 전화를 하였다.
“곧 엘리자벳이 전화 할테니 서로 이름을 부르지 말고. 내가 전화할 수 있는 친구네나 커피점 같은 곳으로 가서 다시 너에게 전화해서 직접 받을 수 있는 그 번호를 알려 달라고 해라. 정확히 30 분 후 다시 전화하겠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I got it. Dad”
주유소를 천천히 나오며 주변을 살폈다. 특별히 관심을 가질 차는 아직 없었다. 계속 없기를 바라며, 토러스를 하이웨이 7 에 올린 후 다시 서쪽을 향해 천천히 달렸다. 백미러에는특별히 관심있게 볼 차량은 없었다. 초겨울이지만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서 쓸쓸해 보여야 할 도로 주변도 편안한 안도감을 주었다. 이미 낙엽은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들만 남았지만, 올해의 요즈음은 전혀 외로움 같은 것들을 느껴보질 못했다. 처해진 환경은 이렇게 사람의 심사마저도 냉정하게 만들었다. 우드뷰(woodview)의 싸인이 보이자 곧 우측으로 차 머리를 돌려서 7 번을 벗어났다.
“크리스! 알려줄 수 있어?”
“예. 정확하게 받았어요. 엘리자벳은 10 분 거리인 친구 집에 지금 있어요.”
“수고했다. 우린 1 시간 후 지난번 그곳에서 만나자. 오케이?”
“Yes. I got it. No problemand see ya.”
나는 그 자리에서 다시 루니(CD1) 5 개를넣었다. 벨이 3 번 울리자 전화가 연결되었다.
28.
“엘리자벳? 제임스입니다. 혹시 누가 통화하는 것을 들을까 하여 불편하게 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제임스. 맞아요? 잘하셨어요. 내가 집을 비웠을 적에 누군가 내 집을 온통 다 뒤졌더군요.”
역시 예상이 맞았다. 그렇다면 도청장치를 해 두었음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잘하였다.
“저를 만나 하실 말씀이 있다 하였는데, 지금 말씀 하실 수 있습니까? 저는 피터보로에서 토론토로 가는 중입니다.”
그녀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1 분은 지금 무척 길었다. 그녀는 1 분이나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기다렸다. 더 이상도 기다릴 수 있었다.
“제임스! 에드먼드의 집 뒤 정원에 있는 작은 집에 대해서 알아요?”
“예. 압니다. 제가 며칠 그곳에서 지냈습니다.”
시간이 충분치 않았는데, 엉뚱한 곳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초조하기 시작하는 마음을 다시
가다듬었다.
“박인혜. 제니에 대해서 할 말은 없어요?”
내가 드디어 참지 못하고 먼저 물었다.
“Hold on and wait. Where is my born county and
country? Make a sense.”
그래. 스마트이다. 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엘리자벳이 스마트해지고 있었다. 이건 잘하는
것이다.
“Perth, England.”
우린 이 절박한 시간에 전혀 불만이 없는 퀴즈놀이를 하고 있었다.
“Bingo! You are my James. Okay.”
반가운 듯 반기는 그녀의 음성이 부드러워졌다. 긴장이 풀리고 정상으로 돌아왔음을 음색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소곤거렸다. 나는 더욱 수화기에 집중하였다.
“제임스. 꼭 만나서 말해주고 싶은데, 다행히 당신이 지금 토론토로 오고 있다니 전화로 말해도
될 것 같아.”
“그래요. 지금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어떤 것에 대해서인가요?”
“제니는 행방불명이 되기 전에 나에게 한 말이 있어.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말해줘야 할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지금까지 불가능했어. 그냥 가슴에 묻고 죽어야 하는구나 체념했었는데, 지금이 그때인 것같아. 그리고 제임스 당신을 믿을 수 있을 것 같고... 내 생각이 맞았어. 제임스?”
“제니 박. 박 제니에게 관한 것이라면 엘리자벳. 지금 당신 생각이 맞습니다. 박인혜는 저에게도
전혀 남이 아닙니다. 제 할머니의 조카입니다. 나는 그녀를 찾고 있습니다.”
나는 마지막 말에 힘을 주었다.
“That’s for sure.”
“제니는 아기를 지켜보는 곳에 있겠다고 말했어. 나는 제니가 지하 바닥에 스스로 들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나는 이 집을 떠나지 못했고 그렇게 살아온 것이 후회는 되지 않아. 당신을 만나려고 한 것 같아. 제임스. 꼭 제니를 찾아주게.”
“왜 이제서야 그 말을 하십니까. 엘리자벳?”
나는 흥분되고 엉뚱한 추적으로 보낸 시간들이 안타까워 큰 소리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나도 나에게는 예상치 못한, 엉겁결에 일어난 사건들과 상황이라서 감을 잡질 못했고, 무엇
때문에 이러한 사건이 제니의 집에서 일어난 것인지 알지를 못했어. 더욱이 누구를 믿어야 할지를 몰랐고. 내가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아기 마미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봤을 때, 너무 놀랐어. 나는그 아이가 제니의 아이라고 짐작하였기 때문이야. 그러나 당신도 나중에 그러겠지만, 나이가 들면 쓸데없이 신중해지는 거야. 내가 이런 이야기들을 밝혀야 할 적당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고, 제니와 관계있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야. 제임스. 자네가 제니와 인척관계가 있다니까 당신을 이제는 믿고 말하는 거야. 나도 마음 놓고 죽고 싶어. 제임스. 내 말 알겠나?”
“왜, 정원의 작은 집에 대해서는 물었습니까?”
“Oh. Come on. James! Don’t push me so. Take it easy. Okay?”
“Oh. Come on Elizabeth, me too. I have no time. Please hurry up.”
“나는 제니가 정원의 집 지하실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 기억나.”
“출입구에 대한 말은 없었어요? 나도 당신의 말을 듣고 난 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것은
당신과 나 둘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됐습니다. 이제 잊어버리십시오. 그리고 가능하면
그곳에 며칠 계실 수 있습니까? 혹시 제니의 집에 대하여 물었던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까?”
“케롤 경사가 가끔 찾아와 안부를 묻고 물어봤어. 참 고맙더군. 그래. 이제 나도 됐네. 토론토에
도착하여 때가 오면 나에게도 다시 전화해 주겠나? 나는 이곳에 며칠 머무를 수 있네. 나도 친구도 그렇게 있길 바라네.”
“케롤 경사가? 그럼 케롤 경사도 제니의 정원 집에 대하여 알고 있습니까?”
“물론 아니지. 내가 말하지 않았으니까. 아무도 믿을 수 없었거든.”
사소할 수가 있겠지만, 나에게는 내가짐작하고 있었던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해주는 정보였다. 결코, 가벼이 노인네의 기억이라 치부할 수는 없었다. 우려와는 달리 스마트하였다. 좋은 관계의 형성은 때가 되면 이렇게 멋진 결실을 줄 수도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하였다.
전화를 끊고 나는 주변을 살폈다. 별다른 것은 없어보였다. 나는 지체없이 토러스에 올라 피터보로를 향했다. 이제는 질주였다. 운 좋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오버 스피드 티켓을 발급받지 않았으니 그것을 기대하여야 했다. 에슴션(Assumption)을 지나자 백미러에 메독에서 보았던 검정색 메르세데스가 다시 나타났다. 두사람이 타고 있었다. 흔한 메르세데스지만, 뒤따라오는 차는 옅은 썬팅을 하였다. 대부분 썬팅을 하지 않은데 이 차는 썬팅을 하고 있었다.
간격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피터보로 시내로 들어가는 길과 하이웨이 7 이 외곽을 지나가는 삼거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몇 번 속력을 줄였다 다시 속력을 내었다 하는 확인에 대한 시도를 하고 또 앞선 차를 추월해 봤지만, 여전히 내 뒤에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피터보로를 관통하는 하이웨이 115 를 타고 속력을 내었다. 금방 130km/hour 로 가속이 붙었다. 속도가 높아지자 나는 일 차선으로 토러스를 붙였다.
그들이 멀리서 1 차선을 타는 것을 보고 두 대의 탱크로리를 추월한 후 3 차선으로 바꾸어
윌콕스 로드로 빠졌다. 그리고 곧 35 번 국도를 타고 북으로 달렸다. 이곳 또한 내가 놀던 곳이었다. 이곳에서 북으로 50 분 거리에 있는 밥케이젼(Bobcaygeon) 에 사는 친구를 위하여 낚시를 위하여 혹은 방랑을 위하여 숱하게 하이웨이 7 과 7A 그리고 35 번도로를 다녔었다.
Lake Port Perry 는 그곳에 있었다. 포트페리는 동북으로 60km 이상이고 남북으로 폭이 평균 4km 정도 넓이의 호수이다. 10 분쯤 달려 다시 35 번에서 우측으로 벗어나 포트페리로 가는 하이웨이 7A 에 올랐다. 그들은 피터보로를 지나 남쪽에 있는 커비(Kirby)에서 나갔다 다시 돌아와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와서 7A 로 들어서야 한다. 적어도 20 분 이상은 걸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메르세데스를 타고 있었다. 포트페리(Port Perry)가 멀지 않은 곳에서 그들은 나를 따라 잡았다. 포트페리에서 서쪽으로 나가는 길은 세 곳이다. 계속 하이웨이 7A 를 타고 가다가 다시 하이웨이 7 로 갈아타는 길. 다른 하나는 서쪽 출구를 나서며 동쪽으로 좌회전하여 2 번을 타고윗삐(Whitby)로 가서 하이웨이 401 을 탈 수가 있고나머지는 21 번과 40 번 국도를 번갈아 타며 서쪽으로달려 영 스트릿을 만나는 길이다.
일단 호숫가에 겨울 채비로 얏트와 보트가 빽빽이 정박해 있는 사이로 난 길을 따라 포트페리 호수를 건너 서쪽 출입구의 좌측에 있는 피쉬앤칲(Fish & chips) 레스토랑 주차장에 들어가 멈췄다. 나는 백미러로 그들의 차량이 지나가는 것을 보자 곧 나와 3 대 건너 메르세데스를 두고 내가 그들의 뒤를 쫓았다. 그들은 3 개의 출구가 있는 서쪽 메인 인터섹션에서 멈추었다가 하이웨이 7 을 타는 것을 보고 나는 21 번을 탔다. 그들은 다운타운의 거리는 잘 알 수가 있었겠지만, 외곽의 이쪽은 아니었다. 이쪽은 내가 놀았던 곳이었다. 그들과 내가 다른 점이었다.
토러스는 특별하게 튀는 차는 아니었다. 말리부와 같은 다크 그린 색은 유별나지 않았다. 여러 대의 비슷한 차량들이 하이웨이 7 을 타고 동서쪽 마캄(Markham city)과 영스트릿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그들은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잘 못 찍었음이 틀림없었다. 크리스와의 만남은 10 여 분간 지체할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나를 잘 못 알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예상보다 20 분이나 늦게 힐 크레스트 몰에 도착하여 1번 크리스를 만났다. 그는 걱정하고 있었다.
나를 보자 안심한 듯 반가워하며 내 어깨를 툭 쳤다. 앞으로도 여러 번 이럴 텐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에게서 휴대폰과 현금과 그리고 애마인 말리부를 받았다. 토러스는 크리스가 아비스 토론토에 돌려 줄 것이다. 나는 다시 하이웨이 7 을 타고 서쪽으로 달려가서 동북으로 가로지르고 있는 트라팔가 로드에 다다랐다. 완전히 메르세데스와 갈라졌다. 믿어도 좋았다. 이제 급히 가야 할 곳이 있었다. 남쪽으로.
그전에 제일 먼저 보이는 팀 하튼 커피점에 들러 커피를 주문했다. 미디움 트리플 트리플로. 우선 머리에 가득한 정보와 생각의 정리를 할 필요가 있었다. 캐나다의 밤사이 나는 러시아의 움스크를 다녀왔다. 피로가 몰려오기도 하였지만, 궤적을 정리하여야 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 지구행성에 심각한 변화를 야기할 수도 있는 엄청난 비밀이 어디엔가 숨겨져 있었다. 게놈스키는 마지막 살아 남은 자 이었다. 그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많은 중요한 사실들을 말해 주었다.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찼다. 듀발리에 홀스에서 박인혜 그리고 사르지에 홀스를 거쳐 나타난 아기마미와 조경순의 살해. 그녀를 살해한 두 조직으로 용의 되고 있는 칼림교와 레드플라워. 그들 또한 러시아의 움스크와 연관되어 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제임스입니다. 릭 경감님, 어디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