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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길잡이★ 유럽 배낭여행(http://cafe.daum.net/bpguide) 유럽! 가슴 설레는 곳으로 함께 떠나보아요~^^
안녕하세요. 사람사랑입니다.
앞에 올린 글에 이어서 계속해서 터키 동부여행기를 올립니다. 전체 여행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여행기간 : 2009년 10월 26일(월) ~ 31일(토) (5박6일) - 여행장소 : 디야르바크르 - 마르딘- 미디야트 - 하싼케이프 - 마르딘 - 크즐테페 - 제이란프나 - 비란쉐히르 - 싼르우르파 - 하란 - 싼르우르파 - 아드야만 - 씨베렉 - 디야르바크르 (이 순서는 차를 타고 이동한 순서입니다. 도중에 그냥 경유하거나 밥만 먹고 지나간 곳도 있습니다.) - 동행인 : 한국인 4명과 터키인(쿠르드족) 2명 - 이동수단 : 셀축-디야르바크르 구간은 저가항공사인 썬익스프레스 이용, 디야르바크르에서 차를 빌려 나머지 지역 이동 - 경비 : 왕복 항공료(167TL/1인)를 제외하고 260TL/1인의 회비로 모든 것 해결(사실 터키인 2명은 현지 코디 자격으로 회비를 안 냈습니다. 그러니까 4명의 한국인이 6명의 경비를 충당한 셈이군요.)
셋째 날
어제 우여곡절 끝에 터키 현지인 집에서 짐을 풀려다 '경찰의 집'에서 묵어서 그런지 샤워도 제대로 하고 화장실서 볼일도 제대로 보고 아침부터 컨디션이 아주 좋다. 터키에는 '경찰의 집'이나 '선생님의 집' 등 특정 공무원을 위한 복지시설이 제법 잘 되어 있는 편이다. 물론 간접적으로라도 관계자에 한해서 이용가능하다. 우리를 여기로 인도했던 터키 아저씨는 경찰과 아무런 상관은 없지만 이 동네 유지인지라 전화 몇 통 하더니 우리를 묵을 수 있게 해줬다.
아침까지 잘 챙겨먹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는데 우리의 친구 메흐멧은 벌써부터 우리 숙소 앞에 차를 대기시켜 놓고 대기 중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어제까지 함께 있던 매형과 아버지는 보이질 않는다. 어찌된 영문이지 물어보니 사정이 기구하다.
어젯밤... 아는 지인의 집에서 숙소를 마련해주겠다고 했던 메흐멧의 아버지... 이 지역에 아는 사람들이 많이 산다고 해서 그렇게 하자고 얘기했던 건데... 한국인, 터키인을 합쳐 남자 넷, 여자 넷이나 되는 많은 일행을 재워줄 수 있는 집이 있을 리 만무하다. 결국 남자들과 여자들이 각기 다른 집에서 묵기로 했는데... 아내의 얘기를 들어보니 마침 여자들이 묵으러 갔던 집이 심하게 후졌던 모양이다.(물론 남자들이 묵으러 갔던 곳도 달동네 판자촌 수준이었지만...) 아랍국가에서 건너 온 쿠르드족 가족인데 방 두 칸에 아이들이 10명, 그리고 할머니까지 계시더란다. 화장실은 밖에 있고 화장실 안에는 물도 안 나오고... 여자들로서는 참기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하룻밤 뜬 눈으로 새울 각오까지 하고 있었단다. 그런데 화장실을 다녀 온 제흐라 하늠이 도저히 이 집에서 잘 수 없다며 어제 하루 가이드를 해 준 이 동네 유지 아저씨한테 전화를 했다. 결국 그 집에서 나와 '경찰의 집'이라는 숙소에서 묵기는 했는데... 문제는 여자 넷과 나만 여기서 묵고 메흐멧과 그의 매형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처음 갔던 남자 숙소에서 묵기로 한데 있었다. 메흐멧과 그의 매형이 우리를 숙소까지 바래다 주고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뭐라고 한 모양이다. 그래도 먼 곳에서 귀한 손님들이 왔는데 이렇게 누추한 곳에 잠자리를 마련하면 어떻하냐고... 메흐멧 아버지 한 성깔하시게 생기셨는데... 이빨은 다 빠졌어도 호랑이는 호랑이인가보다. 자기한테 그런 소리 할 거면 너네도 밖에서 자라고 했단다. 결국 메흐멧과 매형 메흐멧은 차 안에서 노숙을 해야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아버지와 그의 매형은 다시 디야르바크르로 돌아갔단다. 우리한테 전화를 했으면 당연히 '경찰의 집'에서 함께 잤을텐데... 이들에게는 이런 곳의 숙박비가 적은 돈이 아니라서 부담스러워 했던 모양이다. 샤워까지 하고 아침까지 잘 챙겨 먹고 나온 우리와 대조적으로 메흐멧의 얼굴은 너무 초췌했다. 마음이 좀 아렸다. 세상에 나라간, 사람간 빈부의 차이, 삶의 수준의 차이에 대해 한 번 더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미안한 마음을 뒤로 하고 다시 여행은 시작된다.
오늘은 당초의 계획과 다르게 일정에 없는 제이란프나르라는 곳에서 숙박을 하게 된다고 한다. 제흐라 하늠의 아는 지인이 이곳에 숙소를 잡아놓고 우리를 기다린다고 했다. 지도를 보니 한참을 돌아가는 것 같은데... 내가 가지고 있는 지도에는 제이란프나르에서 하란을 가려면 시리아 국경을 넘어야 한다고 표시가 되어있다. 이런... 여권도 안 가지고 국제학생증 하나 달랑 가지고 왔는데... 일단 자동차 시동을 걸어본다. 오늘부터는 내가 직접 운전을 해야 한다. 메흐멧의 아버지와 매형이 돌아가고 운절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 도대체 우리친구 메흐멧은 운전면허도 안 따고 뭘 한거야!!! 운전대도 파워핸들이 아니고... 군대 있을 적에 몰던 군용 지프를 모는 기분이다. 어찌됐건 사고는 내지 말아야 한다. 이 동네 분위기로 봐서 이 차가 종합보험을 가입했을 지조차 의심스럽다...
우선, 마르딘 근처에 있는 수도원을 하나 더 보고 마르딘을 빠져나가기로 한다.
마르딘 근처에 있는 수도원. 아쉽게도 이름이 잘 생각나질 않는다.
아침일찍 수도원을 찾는 것은 참으로 유쾌한 일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맑은 날 아침이면 신선한 공기와 함께 그곳의 영성이 함께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수도원 하루 방문했다고 성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영혼을 드라이클리닝 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입장료는 성인 3TL, 학생 2TL이란다. 다행이 아내와 내가 국제학생증이 있어 2TL 할인 받았다. 메흐멧은 밖에서 차이 마시면서 담배 한 대 피고 있겠단다. 이런 것에 재미없어 하는 척 하지만... 입장료 내는 곳은 다 안 들어가려고 하는 녀석의 속내가 빤하다. 이럴 때마다 얼마 가지지도 못했지만 이들보다는 나은 형편에 살고 있다는 것이 괜히 미안하기까지 하다.
수도원 예배실 입구 위에는 야곱의 성화가 걸려있다.
이곳도 역시 시리아 정교회의 수도원이다. 시리아 정교회는 로마 카톨릭이 동방정교회와 갈라진 후, 그 안에서 그리스 정교회 등과 나뉘어진 한 분파인 듯하다. 시리아를 가보지는 못했지만 시리아에 어떤 교회에 가면 아직도 예수님이 살던 당시 서민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아람어(아람어는 아랍어와는 다르다. 예수님 당시는 바빌로니아의 영향을 받아 고대 히브리어가 약간 변형된 형태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아람어라고 한다.)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수도원의 건물과 성화에 터키어도, 아랍어도, 시리아어도 아닌 신기한 문자가 쓰여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수도원의 안뜰. 이곳도 현재까지 수도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2층 복도를 통해 발코니로 나가는 중.
터키어를 잘 하는 한국분들과 그리고 터키인들과 함께 여행을 하다보면 이런 유적지에 왔을 때, 반드시 터키어 가이드를 받게 된다. 대부분 영어 가이드가 있기는 하지만 그나마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나 한 명뿐이다. 그래서 가이드가 열심히 설명할 때 난 혼자 뒤에 남아 사진을 찍으며 구경을 한다. 하지만 내 아내는 열심히 못 알아듣는 내용을 다른 분들에게 질문하면서 결국 내용을 다 듣고 만다. 그래서인지 안타깝게도 내가 갔던 이 수도원의 이름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T.T
지나가다 우연히 방문이 열려 있길래 한 컷 찍었다. 이 작은 방에 네 명이 함께 사용하는 모양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뒤쫓아 가다가 우연히 열린 기숙사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수도사들이 어떻게 생활하는 지 여실히 보여주는 듯 옷장도 책상도 없이 그저 한 몸 뉘어서 잘 수 있는 작은 침대뿐이다.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가끔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면서 살아가는 개신교의 목사님들을 보면 다소 탐욕스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종교마다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비교를 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아무래도 무소유의 이미지가 강한 가톨릭이나 불교의 성직자들이 훨씬 경건해 보이는 것이 왜일까?
수도원 발코니에서 바라 본 동쪽. 작은 산이 시야를 가린다.
수도원 발코니에서 바라 본 남쪽. 멀리 보이는 땅이 시리아 땅이다.
안내자의 말에 따르면 여기서 시리아 땅까지 10km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은 낮이라 좀 흐릿하지만 밤이 되면 불빛 때문에 시리아 마을이 잘 보인단다.
수도원 발코니에서 바라 본 서쪽. 서쪽 역시 작은 산이 시야를 가린다.
수도원 구경을 잘 마치고 우리는 다시 마르딘 시내를 거쳐 크즐테페로 향했다. 원래 크즐테페는 예정에 없던 곳인데 어제 우리를 안내해주셨던 아저씨 중 한 분이 이곳에 가게가 있다고 꼭 들렀다 가라고 하신다. 마르딘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지만 이곳만 해도 벌써 머리에 두건을 쓴 남자들이 많이 보이는 것이 이곳이 시리아 국경에서 가까운 마을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압둘라 아저씨네 가게에 들어가자 역시나 차이가 나온다. 터키 사람들은 어디를 가던 차이를 마시기 때문에 하루에 열 잔도 더 마시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차이잔은 우리나라 요구르트병만큰 작다. 어차피 하루종일 마셔야 하니까 작은 잔으로 마시는 모양이다. 물론 약안 큰 차이잔도 있다. 그건 차이 곱배기라고 해야 하나...ㅋㅋ
처음 터키에 와서 차이를 마셨을 때 느낌은 영국에서 마시던 '얼 그레이드' 티와 비슷했다. 얼 그레이드 티 역시 프리미엄 홍차의 한 종류였던 듯하다. 터키에서 어디서나 마실 수 있는 차이가 이렇게 프리미엄 홍차의 맛을 내는 것은 차를 끓이는 방식에 있는 듯하다. 티백을 물에 담궈서 우려내는 것이 아니라 차이잎을 중탕으로 우려내서 각자의 취향에 따라 물과 섞어 마시는 식이다. 터키사람들은 이 차이를 무척 진하게 마시고 대신 설탕을 많이 넣어서 마신다. 난 설탕 대신 묽게 타서 마시는 편인데 그렇게 하면 영락없이 얼 그레드 티의 맛이 난다.
암튼... 압둘라 아저씨 끝까지 점심을 먹고 가라고 하는 걸 사양하고 나온다. 어제 점심도 저녁도, 심지어 숙박비까지 이 분들이 계산을 하신터라 더 이상 신세지기도 미안하다. 하지만 아저씨는 연거푸 우리를 만나고 알게 돼서 너무 좋다고 하신다. 쿠르드족 뿐만 아니라 이슬람 문화 밑바탕에 깔린 손님접대의 마음이 느껴진다. 우리나라도 아직 시골에 가면 이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으려나... 개인적으로 내년 여름에는 스쿠터를 타고 전국일주를 계획하고 있는 터라 우리네 시골인심도 이와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제이란프나르의 한 식당. 시골이라고 가격이 그리 싼 편은 아니지만 음식이 제법 맛있다.
12시 반. 마르딘보다 더 시골인 제이란프나르로 왔다. 원래 이곳은 우리의 계획에는 없었던 곳인데 제흐라 하늠의 아는 지인이 이곳에서 우리를 위해 숙소를 잡아놨다고 한다. 이 지역에는 국영농장이 있는데 자그만치 200제곱킬로미터나 된다고 한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규모이지만 직접 확인해 볼 방도가 없어 나중에 구글어스로 직접 확인해보기로 하고 일단 믿기로 했다. 이 넓은 농장에 각종 동물들을 사육하고 또 종류별 과실목과 농작물을 재배한다고 한다.
식당의 가게 이름. 가게 이름 위에 작은 원이 있고 그 안에 동물 그림이 있는데 영양이다.
이 국영농장에서 사육하는 동물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양이다. 이 지역의 이름인 제이란프나르에서 '제이란'은 '영양'(羚羊, antelopes)을 의미하며 '프나르'는 '우물'을 말한다. 이 지역에 옛부터 영양이 많았기 때문인데 오랫동안 보호를 하지 않아서 많이 줄어들었던 것을 국영농장이 생긴 이후로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지명에 '우물'이라는 뜻이 들어가는 것은 이 지역이 다른 곳에 비해 우물을 파기 좋은 조건에 있기 때문에 옛부터 우물로 많았다고 한다. 지금도 다른 지역이 100m를 뚫어야 우물이 나오는 반면 이 지역은 평균 70m만 파도 지하수가 나온단다. 국영농장 안에도 자그만치 1500개의 우물이 있다고 한다.
맛난 점심을 먹고 차이를 즐기는 시간.
얼굴을 흐릿하게 처리했지만 맞은 편 왼쪽에서 두 번째 않아 있는 사람이 싸이트 베이(Mr.에 해당하는 터키어)이다. 이곳에서 우리를 안내해 줄 사람인데 국영농장에서 근무하면서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저녁에 날 지역 신문사에 데리고 갔는데 우리나라 시골 인쇄소보다도 작은 규모였지만 나름 지역사회에 중요한 소식통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저녁을 먹기 전 지역 신문사 사장님과 함께 한 차이집에 갔다. 그런데 이 차이집 마당에서 불과 100m 앞에 시리아 마을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제이란프나르는 시리아와 국경을 인접한 마을인데 기찻길을 사이에 두고 시리아와 터키가 갈라진다고 한다. 내가 농담삼아 지금 시리아로 넘어가도 되냐고 묻자 정해진 통로 외에는 전부 철책이 쳐있다고 한다. 자세히 보니 어두컴컴한 철길 넘어로 철책이 쳐 있고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싸이트 베이의 말에 의하면, 아직도 이 동네에는 시리아쪽 마을에 친척들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명절이 되면 간단한 신분확인으로 서로의 동네를 오갈 수 있다고 한다. 나같은 여행자는 시리아에 한 번 들어가려면 30달러가 넘는 비자피를 내야 하는데 아무래도 친인척간의 왕래는 사정을 봐주는 모양이다. 철책부대에서 군복무를 한 나에게 이렇게 가까운 철책의 모습은 이색적이었다. 우리라나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고 북으로는 비무장지대라는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철책이 쳐있다 보니 이렇게 인접국가와 간단한 철책을 사이에 두고 있는 모습은 여간 낯설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도 통일은 제차하더라도 이렇게 가까이 서로를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철책이 단조롭고 친인척간에 자유로운 왕래를 하는 날이라도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솔직히 이날은 사진을 많이 못 찍었다. 이번 여행에서 내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로 했는데 깜빡하고 그만 충전기를 집에 놓고 온 것이다. 다행이 다른 분이 카메라를 하나 더 가지고 오셔서 내일부터는 그걸로 사진을 찍기로 했다. 카메라로 국영농장의 풍경을 다 담지는 못했지만 아름다운 사진들을 올릴 수 없어 아쉽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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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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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촣은글...사진...잘..감상합니다...무소유의 신앙인..그것이 참 구도자의 길이지요...우리나라는..반대로 변해잇지요...그들을 그곳에 보내서 재교육 시켜야겠지요..다시 태어나도록...다시..될지 모르지요...???건강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