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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을 삭제하지 마세요!!
(아래 선 아래에 글을 올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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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youtu.be/1tkBHyyWSt0
2부) 네오 파시즘과 우생학 배후에 앵글로 아메리칸 금융 Cabal / 파시스트 vs 국민주권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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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youtu.be/PIZBuFTbIGI
우크라이나 전황(5/15)- 러시아 폭격후 우크라이나 도시 방사능 수치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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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5.9천회 14시간 전
출처: https://youtu.be/TAAc1AbiMHI
바그너와 군부의 알력, 큰일 난 것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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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9.9천회 10시간 전
미국의 WP가 소위 누출된 펜타곤 비밀문건을 팔아 흥미로운 소설을 썼습니다. 러시아 국방부와 불화를 빚고 있는 바그너 그룹의 예프게니 프리고진이 우크라이나 정보국과 내통해 러시아군 위치정보를 넘기려 했다는 내용입니다.
출처: https://youtu.be/QeTUYPQcJFY
서부 우크라이나 방사능 피폭에 패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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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8,056회 2023. 5. 15.
우크라이나 서부 흐멜니츠키를 강타한 공습으로 키예프 당국이 패닉에 빠졌습니다. 거대한 규모의 탄약고와 포탄등이 한꺼번에 박살나면서 엄청난 불기둥과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우크라이나측은 적이 탄약고에 공습을 가하는 바람에 물류창고와 군 막사등이 파괴됐다고 밝히고 있지만 현지주민들은 패닉에 빠졌습니다.주택가로부터는 좀 거리가 있지만 폭발의 충격파도 대단했고 무엇보다 열화우라늄탄이 모두 터지는 바람에 상당지역이 오염됐습니다. 방사능 감마선이 공기중에 유출됐는데 피폭지역이 서부 우크라이나 거의 전체입니다. 흐멜니츠키 뿐 아니라 쩨르노필, 르보프등 광활한 지역이 오염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방사능은 먼거리에서도 로봇으로 측정되고 있습니다. 원래 방사능 검측은 흐멜니츠키의 네테쉰 원자력 발전소 부근에서만 행해졌는데 이번 폭발이 있은 직후 여러지역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서쪽으로 불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로봇을 동원해 방사능 검측을 하면서도 쉬쉬하고 있다고 슬라뱐그라드 채널은 전하고 있습니다. 슬라뱐그라드 채널은 정치분석가 유리 콧을 인용해 현지상황을 전했습니다. 서부 우크라이나에서는 흐멜니츠키뿐 아니라 로보프, 쩨르노필에서도 주민들이 패닉에 빠져 짐을 싸서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일대에는 천지사방에 군부대와 군수창고, 수리고가 있는데 특히 흐멜니츠키의 창고에는 열화우라늄탄으로 가득했다는 사실을 주민들이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폭발직후 감마 방사선 수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공기중에 떠다니는 감마선을 흡입할 경우 당장 부작용이 나타나지는 않지만 서서히 세월을 두고 피폭자는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립니다. 피폭지역이 상당하지만 서구 매체와 키예프 당국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열화우라늄 포탄은 대부분 영국제 전차 챌린저 2의 전차포탄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비인도적이라는 비난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영국의 정크미디어들은 보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영국은 자기네 나라에서 전쟁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습니다. 러시아로서는 열화우라늄 포탄이 우크라이나 내륙으로 운송되기 전에 파괴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부 우크라이나가 방사능으로 오염이 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르보프등을 노리는 폴란드의 사기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출처: https://youtu.be/IzmHsabPLdw
벨 통신 205, 러시아 병사 기본급 400만원 // 러시아 공군의 치욕 // 우크라 서부 전역 방사능 오염(영국제 우라늄 탄 원인)
구독자 7.86천명
조회수 1천회 1시간 전
멤버십에 가입하시면 조금 더 많은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 @russiaschool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간밤에 러시아에서 키예프에 대공습을 하였네요. 최소 10발의 커다란 굉음이 울렸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역은 오늘중에 나올것으로 생각됩니다. 오늘은 어제 저녁 tv에서 방영
출처: https://youtu.be/XJFRnZH59Bw
유럽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한 젤렌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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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7.4천회 17시간 전
젤렌스키가 독일 아헨으로 이동해 사를마뉴 상을 수상했습니다. 독일어로 Karlspreis라고 하는 이 상은 서로마제국 샤를마뉴황제의 이름을 딴 상인데 명목상으로는 유럽의 평화와 번영에 공로가 있는 사람이 받게 돼 있습니다.
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230516010600504?section=nk/news/all
"북한 열병식 준비 동향"…7월 '전승절'에 무력과시 나서나
송고시간2023-05-16 06:57
북한 미림비행장 북쪽 훈련장 공터의 차량 모습
(서울=연합뉴스) 북한 평양 미림비행장 북쪽의 훈련장을 미국 민간 위성사진 서비스업체 '플래닛 랩스'가 지난 14일 촬영한 위성사진. 붉은 사각형 안에 차량으로 보이는 물체들이 있다. 2023.5.16 [VOA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북한이 열병식을 준비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동향이 위성에 포착됐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16일 보도했다.
VOA에 따르면 지난 14∼15일 미국 민간 위성사진 서비스업체 '플래닛 랩스' 등의 자료를 확인한 결과 평양 미림비행장 북쪽 공터에 차량 50∼100대가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장소는 북한이 열병식 훈련을 앞두고 차량을 주차하는 곳이기에 열병식 훈련 개시로 해석할 수 있다고 VOA는 전했다.
다만 아직 빈 자리가 많고 병력이나 기타 장비는 식별되지 않았다. 과거 북한은 열병식 준비 초기에 훈련장 주변에서 일부 움직임을 보이다가 점차 동원 인원과 장비 규모를 늘리는 식으로 준비를 진행했다.
앞으로 북한이 열병식을 개최할 수 있는 주요 계기로는 올해 70주년이 되는 6·25전쟁 정전 기념일인 7월 27일이 꼽힌다.
북한은 전쟁 승리를 주장하며 이날을 '전승절'이라 부르며, 1993년 40주년과 2013년 60주년 때도 열병식을 진행한 바 있다.
북한 정권 수립 75주년인 9월 9일도 열병식 개최일이 될 수 있지만, 통상 열병식 준비 동향은 개최 두 달쯤 전에 포착된다는 점에서 일단 7월 27일 개최에 무게가 실린다.
북한의 최근 열병식은 지난 2월 8일 인민군 창건일 '건군절' 75주년을 기념해 열렸고 당시 최신형 고체 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등이 공개됐다.
jk@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3/05/16 06:57 송고
터키 결선. 벌써 밑밥 까는 미국
14일 대선에서 과반을 넘은 후보가 없어서 오늘 28일 2차 결선 투표를 하게 됐다.
이에 영미와 서구는 부정 선거를 주장하면서 그들의 주특기인 컬러 혁명을 위한
밑밥 깔기에 나섰다.
이를 빌미로 자신들이 후원하는 친미 야권 후보자인 클르츠다로을루가
2차전에서 패배할 시에 부정 선거를 주장하며 정권 전복에 나서려고
추진 중인 모습이다.
미국은 2016년 에르도안에 대한 쿠데타를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이후 친미 야권 후보를 지원하며 타국의 선거에 대놓고 개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미국이 트럼프 정부 시절엔 러시아의 선거 개입 등을 비난하는
내로남불의 개그를 보여주기도 했다.
아무튼 정상적으론 에르도안이 28일 대선에서 승리할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이 이빨을 까는 중이기에 때문에 에르도안이 확실한 승리를 하지 못한다면
곧바로 미국이 부정 선거 등을 주장하면서 컬러 혁명에 나설 가능성이 아주 아주 높다.
이는 미국의 종특이기 때문에 필연적일 수도 있다.
미 정부 부채 한도 협상
무려 31조 달러에 달하는 부채를 지닌 미 정부의 부채 한도 증액을 둔 협상이 진행 중이다.
현지 시간 16일 바이든과 매카시 공화 하원 의장이 만나 협상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옐런 재무는 연일 채무불이행시 미 경제에 막대한 충격을 줄 수 있다면서
공화당을 압박하고 있다.
아무튼 그러나 결국 협상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봤을 때 바이든 정부와 공화 의회 간의
이러한 협상 과정은 정치쇼일 수도 있다.
다만 이것이 정치쇼라고 해도 그냥 쉽게 협상이 마무리되긴 어려울 수 있다.
어쨌든 공화 하원은 대내외적인 정치 명분을 위해선 바이든 정부로부터 긴축 예산의
약속을 얻어내야 하며, 바이든 정부는 일부 긴축을 합의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과 관련한 예산의 삭감은 피해야만 하는 입장이다.
전쟁을 계속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의제이기에.
문제는 군비 축소를 피하면서 이러한 합의에 나서기 위해서 예산 감축이 가능한 부분은
실제 복지나 사회 안전망 지원과 같은 부분 이외엔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과도한 복지비 지출 등에 반대하는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공화 하원 의장인
매카시가 보여주기도 아주 괜찮은 부분이다.
문제는 이러한 부분의 감축은 바이든 지지 세력에겐 반대로 반발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바이든에겐 이러한 딜에 합의해줄 수밖에 없었다는 명분이 필요해진다.
이것이 지금 바이든과 매카시가 협상을 벌이는 이유인 것이다.
즉 서로 간에 정치적 명분을 얻을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찾고 있는 것인 셈이다.
이를 위해서 옐런이 경고하는 벼랑 끝 전술이 쇼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즉 결국은 합의되겠지만 쉽게 쉽게 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서로 간에 서로 좋은 명분을 얻기 위해서 힘든 협상을 했다는 쇼는
대중에게 보여줘야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만일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이러한 방향으로 가지 않고,
결국 디폴트 사태가 나오고 바이든이 수정헌법 14조를 사용하는 상황이 나온다면
이는 현재 미 정치가 이젠 더 이상 화해조차도 불가능한 상황으로 분열됐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경우는 미 연방의 해체가 그리 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당장 1-2년 안에 해체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트럼프가 리턴하고 그와 딥 스테이트와 싸움이 전면전으로 흐른다면
우린 그러한 상황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합의에 실패하면서 디폴트와 셧다운 사태까지 가는 일도 나올 순 있다.
하지만 결국 합의는 될 것으로 전망한다.
개인적으론 사실 쉽게 합의되긴 어렵다고 본다.
대중에게 보여지는 선전 효과도 아주 크기 때문에 이를 쇼적으로 충분히 이용하려고
할 수 있기에.
출처: http://www.jajusibo.com/62532
튀르키예서 여당이 총선 승리‥에르도안도 결선투표서 이길까
예측을 벗어난 '에르도안 지지'
박명훈 기자 | 기사입력 2023/05/15 [21:11]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지정학적 요충지인 튀르키예를 보여주는 지도와 튀르키예 국기. | |
지난 14일(현지 시각) 대선이 치러진 튀르키예에서 현직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득표율이 아슬아슬하게 절반을 밑돌면서 오는 28일 열릴 결선투표에서 승부가 갈리게 됐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튀르키예 여론조사 기관은 야권 단일후보인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 대표가 에르도안 대통령에 5% 이상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잇달아 내놨다. 서방 주요 언론도 이 결과를 비중 있게 보도하며 에르도안 대통령의 패배를 예상했다. 에르도안 정권의 장기 집권, 대지진 대응, 경제난에 지친 튀르키예의 민심이 야당을 선택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15일 득표 결과를 발표한 튀르키예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49.4%를 득표한 에르도안 대통령이 44.96%에 그친 클르츠다로을루 후보에 4.4%포인트 격차로 앞섰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존 관측과 정반대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번 대선은 튀르키예 전체 유권자 6,400만 명 가운데 88%가 투표소를 찾을 만큼 관심이 뜨거웠다. 잘 알려지지 않은 군소 후보들을 제외하면 사실상 에르도안 대통령과 야권 단일후보인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 대표 간 1 대 1 맞대결이었다. ‘미국이냐 아니냐’, 튀르키예의 방향을 결정지을 선거라는 점에서도 이번 대선은 주목을 받았다. 탈미·자주 노선을 추구하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러시아제 지대공 미사일 S-400을 구매하는 등 러시아와 긴밀히 협력했고,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에 반대하며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구상에 어깃장을 놓았다. 반면 에르도안 대통령에 맞선 클르츠다로을루 후보는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각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대미·서방 정책을 비정상이라고 낙인찍은 셈이다. 튀르키예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지정학적 요충지다. 만약 클르츠다로을루 후보가 에르도안 대통령을 이긴다면 튀르키예를 둘러싼 구도가 크게 바뀌게 된다는 점에서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됐다. 일단 1차 대선 투표 결과만 보면 에르도안 대통령이 승기를 잡은 모양새다. 대선과 함께 치러진 총선에서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소속 정당이 야당을 압도하며 승리했다. 총선에서는 개표율 94%를 기준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여당인 정의개발당(AKP)이 단독으로 과반을 확보했다. 여당 AKP의 득표율은 49.6%로 전체 의석수에서 과반인 324석을 확보했다. 반면 클르츠다로을루 후보를 앞세운 야당 CHP의 득표율은 35%로 211석에 그쳤다. 총선 결과가 이렇게 나오자 ‘에르도안 패배’를 예측했던 서방 언론은 오는 28일 결선투표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승리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기존 분석이 빗나갔음을 인정했다. 영국의 로이터통신은 “이번 투표에서 에르도안의 집권 연립여당이 의회 과반수를 차지하면서 결선투표에서 잠재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됐다”라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동맹으로 꼽히는 에르도안의 승리는 러시아 크렘린궁을 환호하게 만들고 바이든 행정부와 유럽·중동 지도자들을 불안하게 만들 것”이라고 짚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서구 국가들은 튀르키예 국내 정치에 개입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에르도안 대통령이 패배하면 바이든 행정부와 유럽 지도자 모두 기뻐할 것”이라고 했다. 오는 28일 치러질 튀르키예의 대선 결선투표까지 대략 2주가 남았다. 또다시 펼쳐질 에르도안 대통령과 클르츠다로을루 후보의 맞대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지 이목이 쏠린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출처: http://www.jajusibo.com/62537
[아침햇살247] 모든 것은 전쟁을 향하고 있다 ①
문경환 기자 | 기사입력 2023/05/16 [08:16]
최근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여기저기서 전쟁을 준비하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1. 전쟁의 징후들 1) 전쟁 준비를 다그친 정상회담들 지난 4월 한미정상회담과 3월, 5월에 열린 한일정상회담의 내용은 명백히 전쟁을 겨냥하고 있다. 그리고 곧 열릴 한·미·일 정상회담도 마찬가지의 성격일 것이다. 이들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아래 삼각동맹)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삼각동맹은 북·중·러를 겨냥한 동아시아판 나토라 할 수 있다. 삼각동맹이 완성되면 한·미·일 연합사령부를 만들어 미군이 지휘하고 일본이 공군, 해군을 제공하며 한국은 가장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육군을 제공하는 식이다. 삼각동맹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일본이 평화헌법에 따라 방어만 하는 제약, 이른바 전수방위원칙에서 벗어나 공격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해 일본이 채택한 새 국가안보 전략이 바로 공격 능력을 갖춘다는 선언이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일본이 공격 능력을 실제 사용하기에 부담이 크다. 지금 일본은 ‘적 기지 공격’ 선언과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과거사 문제 등의 이유로 주변국과 국제 사회의 규탄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일본에 면죄부를 주면서 일본의 부담을 낮추려 노력하고 있다. 북한의 ‘위협’을 핑계 삼아 일본의 군사력이 필요하다면서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용인했으며,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시설을 ‘시찰’하여 명분을 실어주려고 하며, 과거사 문제에 관해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100년 전 일을 가지고 일본이 무릎 꿇어야 한다는 인식은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못을 박았다. 둘째, 한미동맹, 미일동맹이 있는 조건에서 한일 군사동맹이 추가로 필요하다. 한·미·일이 연합군을 형성하려면 한일 군사동맹이 필수다. 현재 있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에 추가로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악사)을 체결해 무기를 공유하고, 한일연합훈련도 하며,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서 자유롭게 작전을 펼 수도 있어야 한다. 이번 두 차례 한일정상회담에서 윤 대통령은 한일 관계가 ‘자유, 인권, 법치’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에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협력해야 할 파트너라고 강조하여 한일 군사동맹에 한 발 나아가기 위한 분위기를 띄웠다. 또 ‘세계 평화’를 위해 국제 사회에서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강조하여 대만 문제에 개입할 명분도 쌓았다. 특히 북한 미사일을 핑계로 한일 공조와 한·미·일 3자 협의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의 실시간 공유를 위한 협력을 이어가기로 했다. 기시다 총리 역시 “미일동맹, 한미동맹의 억지력과 대처력을 한층 강화하고, 한일 그리고 한·미·일 3개국 사이에서도 안보 협력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하였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자신의 군사적 부담을 줄이면서도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오래전부터 삼각동맹을 추진해 왔다. 특히 윤석열 정권 들어 삼각동맹 움직임은 매우 활기를 띠고 있다. 미국은 삼각동맹이 일정 수준에 오르면 동아시아에서 전쟁을 개시할 수 있다. 미국은 윤석열 정권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한미정상회담을 이용하였다.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윤 대통령을 안심시켜 전쟁에 과감히 나서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로 한국을 지켜준다는 확장억제를 다시 강조하면서 이번에 특별히 핵협의그룹까지 추가로 만들어 주었다. 국힘당 국방위원회 간사인 신원식 의원은 “미국이 가진 가장 귀한 수단인 핵까지 대한민국과 공유하겠다는 것은 미국이 뉴욕의 안전을 위해 서울을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가장 확실한 메시지”라며 “만약 핵 공유체제가 대한민국을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에 있는 미국의 다른 동맹국과 우방국까지 확대된다면 중국에 끔찍한 악몽의 연속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핵협의그룹에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핵잠수함 같은 전략무기를 정기적으로 투입하기로 해서 전술핵 배치와 비슷한 느낌까지 들게 하였다. 이제 윤석열 정권은 미국을 믿고 과감한 행동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유럽을 지키는 나토가 동아시아에 자꾸 기웃거리는 모습도 의문이다. 4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나토가 2024년 도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한다고 전했다. 일본, 한국, 호주, 뉴질랜드가 나토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파트너 국가로 되어있기 때문에 도쿄 연락사무소는 이들 4개국의 거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나토는 지난해 6월 새 전략개념에서 러시아와 중국을 ‘위협’과 ‘도전’으로 규정하고 공동 대응을 결정했기에 나토의 동아시아 진출은 러시아, 중국과 맞설 한·미·일 삼각동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나토 국가의 군대가 한·미·일과 연합훈련을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2022년 9월 일본과 독일이 전투기 연합훈련을 진행하고 앞으로도 군사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2차 대전 전범국끼리 연합훈련을 해서 우려를 낳기도 했다. 또 지난 3월 한미연합 해병대 훈련인 쌍룡훈련에 영국 해병대 코만도 부대가 합류하기도 했다. 2) 전쟁을 대비한 실전 훈련들 최근 한·미·일은 실전을 방불케 하는 각종 훈련을 쉴 새 없이 강도 높게 진행하고 있다. 3월에 있었던 한미연합훈련 ‘자유의 방패’ 이후에 있었던 훈련들과 실시할 예정인 훈련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 한미연합훈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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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일연합훈련 4월 13~14일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화성포-18형 발사에 대응해 이틀 연속 미일연합공군훈련을 진행했다. 여기에는 미군의 B-52 전략폭격기 2대를 비롯해 F-35 전투기 4대 등 각종 전투기와 공중급유기 등이 동원되었다. 또한 B-52의 경우 한반도에도 들어와 한국 공군 전투기와 함께 연합훈련을 하기도 했다. ■ 한·미·일 연합훈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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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무기 증강에 열을 올리는 미국 윤석열 정권이 2022년 5월부터 2023년 4월 4일까지 취임 후 단 1년도 되지 않은 기간에 18조 6,725억 원어치 해외 무기를 구매했다. 모두 미국 무기였다. 이는 문재인 정부 임기 5년 동안 해외 무기 구입에 지출한 약 2조 5천억 원보다 7배 이상 많은 금액이다. 윤석열 정권 임기 5년 내내 이 규모를 유지한다면 문재인 정부보다 무려 37배나 많은 돈을 들여 미국 무기를 구입하게 된다. (「윤석열 정부, 1년 만에 ‘미국 무기’만 18조원 구매...문재인 정부 5년의 7배」, 시사저널, 2023.5.12.) 윤석열 정권이 사들이는 무기는 북한을 공격할 주력 전투기인 F-35A, 북한 주요 거점을 타격할 GPS 유도폭탄, 북한의 미사일을 요격할 패트리엇 미사일과 이지스 구축함에 탑재할 장거리 함대공 미사일(SM-6급) 등이다. 이처럼 많은 무기를 한꺼번에 사들이는 것은 전쟁 준비의 명백한 징후다. 일본도 군국주의화에 힘을 쏟고 있다. 2022년부터 2027년까지 무려 440조 원의 방위비를 투입해 방위비를 2배로 늘릴 계획이다. 이 돈으로 장거리 순항미사일 1천 개,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6세대 스텔스 전투기 개발, 세계 최대 2만 톤급 이지스함 2척 건조 등을 계획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 인터뷰에서 일본의 군사력 증강 계획을 자랑하기도 했다. 타임은 기사 제목을 「기시다 총리는 수십 년에 걸친 평화주의를 포기하고 일본을 진정한 군사대국으로 만들려고 한다」라고 뽑고 내용에서는 “기시다 총리는 방위비 증액을 통해 일본을 세계 3위 경제 대국에 걸맞은 군사적 영향력을 가진 나라로 만들려 한다”라고 하였다. 너무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일본 외무성이 기사 제목 수정을 요구할 정도였다. | |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 5월 9일 공개한 타임 표지. [출처: 타임] | |
미국은 대만을 무장하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3월 1일 바이든 행정부는 대만에 F-16 전투기용 미사일 수백 개를 포함한 6억 1,900만 달러 규모의 무기 수출을 승인했다. 바이든 정부의 대만을 대상으로 한 무기 수출 승인으로는 7번째라고 한다. 또 3월 10일에는 미 의회에 대만 민주주의 방어 대여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무기 대여법이 발효되면 미국이 대만에 무기나 보급품을 보내는 행정절차가 간소해져 더 빨리 보낼 수 있게 된다. 5월 6일 자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이 비상 권한을 발동해 대만에 5억 달러 상당의 무기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원래 미국 정부가 다른 나라에 무기를 지원하려면 의회 승인이 필요한데 대통령 비상 권한을 발동하면 이런 절차가 필요 없다. 대만을 시급히 무장해야 하는 사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계속)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출처: https://muzika37.tistory.com/273
<23-5-16 윤석열 정권이 한국을 파시즘적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을 막으려면…>
국내정치 2023. 5. 16. 10:05
한국정치가 묘하게 흘러간다. 묘하다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다. 현재 한국정치의 특징을 몇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 정치가 대통령 중심으로 흘러간다. 두번째, 여당인 국민의힘이 보이지 않는다. 세번째,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당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네번째, 윤석열 정권이 노조에 대해 유례없이 강력한 대응을 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정당정치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김기현이 당대표로 선출된 이후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최근의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각종 의혹제기는 더불어민주당을 위한 노이즈마케팅과 같은 양상을 띠고 있다. 정치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욕먹는 것이 아니라 잊혀지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 국민의힘이 그런 모습아닌가 한다.
비록 비난을 받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훨씬 더 가능성이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앞으로 얼마정도 있으면 이재명과 그 일당들도 더불어민주당을 내려놓게 될 것으로 보인다. 조금 더 가면 더불어민주당내에서 심각한 갈등이 생길것이며 어떤 방식으로든 이재명과 그 일당들은 더불어민주당에서 물러나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내부에서 해결을 하지 못하면 검찰이 달려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떤 상황이든 국회가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인민의 지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윤석열이 국정을 자기 마음대로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은 국회가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지지율이 사상 최저를 기록하고 있지만 윤석열이 자기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필자는 지금의 한국 정치가 파시즘적 현상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윤석열 정권은 히틀러가 독일에서 집권하고 권력을 강화해 나가는 과정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당시 히틀러도 지지율이 그리 높지 못했다. 히틀러는 제국의회 방화사건을 빌미로 의회 기능을 완전하게 마비시키고 수권법을 발동해서 권력을 강화했다. 지금의 한국을 나찌 독일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러나 적어도 상황이 비슷하다는 점에 충분하게 경계할 필요가 있다.
파시즘을 한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권력의 강력한 중앙집권화, 의회기능 즉 정당기능의 마비, 노동운동에 대한 가혹한 탄압과 무력화, 전쟁으로 몰아가는 분위기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한국은 파시즘적 상황으로 상당부분 진입하고 있는 것 같다. 대통령의 권력은 견제받지 않고 있으며, 국회는 스스로 자중지란을 일으켜 무력화되었다.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은 무력화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범위를 넘어가고 있다. 현재 한국 노동운동의 무력화는 윤석열 정권의 탄압과 함께 스스로 초래한 측면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전쟁분위기가 고조되는 것이다. 윤석열은 정권을 잡자마자 북한과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하는 상황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또한 대만문제와 관련하여 중국과의 군사적 충돌도 불사한다는 분위기다. 윤석열의 이런 경향은 자신의 저조한 지지율을 유지하기 위해 수구적 강경파의 지지라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중국과 북한을 상대로 한 군사적인 긴장 분위기조성까지 이어지면 윤석열 정권은 전형적인 파시즘 정권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이 파시즘적 상황으로 몰고가기전에 이를 막아야 한다. 이를 막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정당정치를 회복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중략
출처: http://www.tongil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558
[특집] 미국식 민주주의, 가장 위험한 종교: 2부 - 고무도장 의회
통일시대는 미국 바로알기 특집의 일환으로 미국식 민주주의의 독단과 독선을 폭로한 운쯔 지의 연재 기사를 번역게재합니다.
저자: 래리 로마노프(Larry Romanoff). 그의 글은 32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그의 기사는 30개국 이상의 150개 이상의 외국어 뉴스 및 정치 웹사이트와 100개 이상의 영어 플랫폼에 게시되었다. 그는 상하이 푸단 대학의 초빙교수로 재직하며, EMBA 상급반에서 국제문제에 대한 사례연구를 발표해 왔다. 현재 중국과 서양에 관한 10권의 책을 쓰고 있다. 그는 신시아 맥키니의 새 문집 '중국이 재채기를 할 때(When China Sneezes)‘의 작가 중 한 명이다.
역자: 이승규. 통일시대연구원 연구위원.
미국식 민주주의, 가장 위험한 종교: 2부 - 고무도장 의회
서방언론은 종종 중국의 의회를 "고무도장*" 의회라고 쓰고 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며, 나는 아래에서 그것을 다룰 것이지만, 만약 우리가 진짜 고무도장 의회의 진정한 예를 원한다면, 나의 고국인 캐나다가 훨씬 더 가까울 수 있다.
*고무도장(rubber stamp)은 정치적 은유로서 상당한 법적 힘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상의 힘은 거의 없는 사람이나 기관을 의미한다.
캐나다에서는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의 대표가 자동으로 총리가 된다. 그런 다음 그는 재무, 외무, 보건 등의 장관들을 포함해 내각을 선택하고, 어떤 기관이 법안을 제안하고 통과시킬지 결정한다. 이 임명들은 전적으로 한 사람에 의해 한 사람의 선택에 따라 수행되며 각료들은 자유롭게 임명되고 해임된다. 총리가 자신의 내각에 사람들을 임명하는 것은 그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을 임명할 뿐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 총리는 다양성과 갈등이 아니라 준수와 순응을 추구하고 있다. 모두 같은 대본을 읽고 있어야 한다.
총리가 현 정부의 '정신'인 성격과 풍토를 결정하는데, 이는 각료 인선에 반영된다. 총리의 승인 없이는 어떤 입법도 의회에서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총리의 명시적인 허가 없이, 입법적이든 아니든, 어떤 주제도 내각 내에서 논의되도록 제기되지 않을 것이다. 원치 않는 주제를 도입하려는 모든 각료는 봉쇄되거나 해임될 것이다. 저스틴 트뤼도의 아버지 피에르 트뤼도가 캐나다 총리였을 때, 그의 제안에 감히 의문을 제기하거나 반박하는 순진한 하급 각료들을 다루는 그의 전통적인 방법은, 주의 깊게 경청한 다음 "누군가 하고 싶은 어리석은 말이 또 있나?"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보통 한 번이면 충분했다. - 각료들은 자기 분수를 알고 있다. 내각 내에서 새로운 입법이나 정부구상이 논의되면 세부 사항에 대한 이견과 공개토론이 있을 수 있지만 최종형태는 총리의 뜻을 반영한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사실, 현실에서는, 그것은 그의 외부 인사들과 그의 선거운동에 돈을 낸 사람들의 바람을 반영할 것이지만, 우리는 지금 거기까지 갈 필요는 없다.
법률의 초안이 결정되면, 토론을 위해 의회에 제출되는데, 초안은, 실제로, 그 법률이 통과될 것이라고 이미 선언된 것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가식에 대한 단순한 겸손이다. 야당은 그들이 하는 것처럼 제한 속에서 토론할 수 있지만 여당이 과반수를 득표하기 때문에 그 법안은 항상 통과될 것이다. 현실 정치세계에서 국회토론은 엉터리다. 여당 의원들은 항상 찬성토론을 하는 반면, 야당 의원들은 항상 반대토론을 한다. 야당의 유일한 의도는 아마도 정부를 당황하게 만들고 다음 선거에서 가치 있을 수 있는 정치적 점수를 얻는 것이다. 모든 학생들이 배우는 것처럼 야당의 표면적인 목적은 정부를 긴장시키고, 정직하게 대안을 제시하여 결함이나 위험을 조명하는 것이지만, 정치체제는 이보다 오히려 더 퉁명스럽고 악랄하다. 모든 (서방의) 민주주의에서 정부의 정치는 상당히 더러운 일이며, 초등 교과서에 제시되듯이 고상한 마음과 사심 없는 제도는 전혀 아니다.
새로운 법안이 투표에 부쳐질 때, 여당 의원들은 항상 찬성표를 던진다.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자기 정부의 법안에 반대표를 던지는 것은 당에서 쫓겨나고 정치경력의 종말을 의미할 것이다. 그것은 사실상 전례가 없다. 물론, 모든 야당 의원들은 그 법안에 반대표를 던지지만, 그들이 소수이기 때문에, 이것은 중요하지 않고 그 법안들은 항상 통과된다. 서방 민주주의에서 국회의원은 총리가 승인한 가장 사소한 문제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투표"할 수 없으며, 이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실제로, 뉴스 미디어는 정부 지도자가 때때로 당원들에게 시키는 대로가 아니라 원하는 대로 투표할 수 있는 "자유"를 줄 때 호들갑을 떨면서 훌륭한 일이라고 칭찬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것은 항상 이념과는 상관없는 아주 사소한 문제들일 뿐이다.
사실, 민주정치의 현실 세계에서, 야당은 유용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단지 시간과 돈을 엄청나게 낭비할 뿐이다. 야당은 집권 정부의 궤도에 영향을 미칠 힘이 없다. 야당은 여당의 어떤 입법이나 행동에 전혀 영향을 미치거나 막을 수 없다. 야당은 완전히 무능하고 무력하다. 실제에 있어 야당 의원들은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4년 후 다음 선거를 준비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여당이 원내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하고 군소정당 중 한 곳과 연정을 맺을 수밖에 없는 상황도 다르지 않다. 어느 정도 주고받기는 하겠지만, 연정 합의서에는 소수당이 모든 의회투표에서 정부를 지지할 것이며, 따라서 과반수를 유지할 것이라고 명시될 것이다. 연립정당의 이념적 지향으로 인해 특정 법안의 의회 상정을 막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 빼고는 모든 것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이것은 "고무도장" 의회 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의 민주주의 체제 또한 4년 1인 독재체제로 만들어버린다. 이러한 상황은 적어도 캐나다에서, 그리고 우리가 아는 한 모든 (자본주의) 민주주의 체제-서방이든 아니든-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미국은 구조가 달라 예외지만 여러 면에서 비슷한 결과를 낳고 있다.
이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 유일한 장면은 때때로 발생하듯이 약하고 무능한 총리, 그리고 내각과 의회 구성원 대다수가 지도자에 대한 신뢰를 잃고 변화를 강요할 때이다. 그러나 그 변화 이후, 상황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간다. 즉, 1인 독재정권과 그의 고무도장 의회로 돌아간다.
요약하자면, 캐나다와 같은 서방의 "민주주의"에서, 당수인 수상은 그의 내각을 100% 통제하고, 내각은 하원에 제출된 모든 투표문제를 100% 통제한다. 총리는 또한 당원 투표를 100% 통제할 수 있으며, 이는 전체 당원이 총리의 희망과 결정에 따라 '고무도장'을 찍어야 하며,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치적으로 제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당신의 '팀'에 투표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단이자 자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생활에서, 실제로, 1인 독재체제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실, "겉치레"에 불과한 "고무도장" 의회를 가지고 있는 것은 중국이 아니라 캐나다와 같은 서방국가이며, 그 의회의 성격은 "권위주의적 독재"이다.
중국 의회
다음은 런던의 선데이 타임스에 실린 2010년 기사에서 발췌한 것이다.
“대표들이 인민대회당의 화려한 회의실에 모이면, 그들은 이날의 뜨거운 이슈(주택, 인플레이션 또는 일자리 기회)에 대한 격렬한 토론에 참여하려는 의지를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고무도장'과 '겉치레'라는 진부한 말로 묘사되는 것은 괜한 일이 아니다.”
여러분은 거의 이것이 농담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지만, 선데이 타임스는 계속해서 중국 의회가 '논의할 의향이 거의 없다'고 보여준 '이날의 뜨거운 이슈' 중 일부에 대해 독자에게 말했다.: "한 여성이 모든 개인 인터넷 카페를 금지하자는 제안서를 제출했다. 휴대전화 벨소리로 애국가를 금지하자는 주장과 남편이 아내에게 집안일에 대해 월급을 지급하도록 요구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제안도 있었다." 이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할까? 중국 의회가 이러한 뜨거운 이슈를 "집중적으로 논의"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 해야 하는가?
서방인들은 각 의회에서 일어나는 거만하고, 분방하며, 종종 유치한 태도의 토론에 익숙하다. 호주와 한국에서, 선출직 위원들이 종종 주먹다짐을 하거나, 책과 가구를 서로에게 던지기 때문에, 말 그대로 '세게 때리는 토론'이다. 다른 서방의회들도 별로 나아 보이지 않았다. 미국에서 한 상원의원은 야당 의원을 "닭똥 도둑놈"이라고 지칭했다. 아마도 그의 발언은 "오늘의 핫 이슈" 중 하나로 선정되었을 것이다. 서방인들은 이상하게도 이것을 정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해 다양한 그리고 공허한 변명을 한다. 그러나 국가의 가장 고위 지도자들과 관리들이 그러한 감정적으로 유치한 행동에 관여하는 것에는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중국 의회에 이런 종류의 미성숙한 어리석음이 없다는 이유로 중국 의회를 유명무실한 것으로 깔보는 것은 어리석음이 없으면 권력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서방의 의회야말로 진정한 권력이 있는 곳이라는 암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거의 1억 명의 당원이 있는 개방적인 실력주의에 의해 관리되고 있으며, 그중 전국인민대표대회가 그 연장선에 있다.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존재하지도 않는 공산주의 독재자를 위한 고무도장이 아니다. 중국 의회는 매년 베이징에서 열리며, 중국의 14억 인구를 대표하는 거의 3,000명의 대의원과 자문위원들의 회의가 열린다. 중요한 문제들이 다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중국의 시스템은 서방 국가들과 단지 다를 뿐이며, 그 차이는 거의 틀림없이 훨씬 우월하다. 다시 말해서, 중국은 미국과 대부분의 서방과 매우 다르게 다원적인 사회이다. 중국인들은 누구 못지않게 토론하고 논쟁하지만, 그 목표는 국가 전체의 장기적인 최선의 이익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합의이다.
이것은 서방인들이 이해하기 쉬워야 하지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중국과 서방의 주요 차이점은 중국에는 오직 한 정당만 있고, 모든 사람들이 같은 팀에 있으며, 전 국민을 위한 최고의 장기적 해결책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는 다음 선거에서 주도권을 쥐는 것이 구성원의 주요 관심사인 두세 개의 '팀'이 없다. 따라서 중국 정부 관리들은 이념을 놓고 경쟁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해결책을 찾는 '정부관리 공무원'이다. 그러한 큰 의회 집단이 사회적 스펙트럼의 구석구석에서의 관점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중국의 국회의원들은 국가의 부흥에 관한 한 완전히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룹 내 사람들은 가능한 모든 종류의 의견이나 입장을 반영한다.
이는 고위경영진과 이사회 구성원들이 처음에는 회사의 미래에 대해 광범위하게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지만, 그들의 임무는 이러한 모든 입장을 일관된 미래 경로로 통합하는 것과 같다. 반대되는 관점이 모두 만장일치로 완화되고 수용될 때까지 장기적이고 심지어 열띤 토론이 있을 수 있지만, 모든 것을 통해, 모두가 "같은 팀"에 속해 있으며 회사 전체에 가장 수용가능한 결과를 찾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모든 (자본주의) "민주주의"는 우리는 국가의 이익이나 국민의 복지가 아니라 다음 선거에서 승리하고 권력을 쥐는 것이 주된 관심사인 두 개 이상의 정당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국가의 통치는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이 "우리 팀"의 승리인 일종의 팀 스포츠로 축소된다.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어떤 기업도 파산으로 치닫게 된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며, 정부에게 있어서도 이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빠진 결점 중 하나이다.
하지만 다른 것이 더 있다. 중국의 문화는 서방의 문화와는 다르다. 중국 국회의원들이 새로운 입법과 새로운 5개년 계획을 논의하고 있을 때, 그들은 "TV에 얼굴을 비칠 수 있는 한순간"을 만들거나 다른 것을 희생하여 표를 얻기 위해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 서방 정부를 두고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주장이다. 이 아시아 국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오프라인에서 많은 토론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고, 토론은 모든 이슈의 측면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이며, 공감대가 형성되기 전까지 많은 그룹의 많은 사람들에 의해 미리 행해진다는 점을 알 것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러한 논의 중 많은 부분이 치열하고, 어쩌면 열띤 토론일 수도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적으로 미국, 캐나다, 서방과는 달리, 중국인들은 세계가 볼 수 있도록 그들의 더러운 식탁보를 히스테리하게 늘어놓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 가족 간의 언쟁은 그들이 속한 집 안에서 이루어지며, 통일된 얼굴이 외국인 이웃들에게 제시된다. 중국은 그것에 대해 비난받을 수 없다. 오히려,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서방 정치시스템에서 진행되는 애들 같은 자세와 다툼 없이 어른들이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오직 한 정당의 존재에 의해 도움을 받는다. 갈등을 일으키기 위해 고안된 이념적인 '팀'이 없기 때문에, 구성원들은 그저 본론으로 들어간다. 아무도 여분의 정당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서방의 징고이스트*들은 다른 언어로 생각할 수 없다. 그들에게는 여러 정당이 난립하는 다당제가 본질적으로 신의 뜻이다.
*징고이즘(jingoism)은 공격적인 외교정책을 만들어 내는 극단적이고 맹목적이며 배타적인 애국주의 혹은 민족주의를 말한다. 자신의 집단(국가, 민족)을 다른 집단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며 특히 자신의 집단적 이해를 위해 다른 집단들에 대해 실제적 위협을 가하거나 위협적 행위를 보이는 것 등을 일컫는다.
중국 의회의 주요 회의는 보통 최종합의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 문제들이 중국 의회에 상정될 때쯤, 모든 사람들이 같은 입장이 될 때까지 모든 사람들이 모든 대안을 모색하고 부적절하거나 실행불가능한 것들을 제거하면서 모든 규모의 가변적인 혼합그룹에서 몇 달 동안 논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모두 평가와 토론에 참여했고, 이미 원하는 합의를 이루었다. 그때 반대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이미 너무 늦었다. 그런 다음 그들은 단순히 그들이 이미 내린 결정을 확인하기 위해 공식적인 투표를 한다. 이것이 그 제안들이 최종적으로 투표되는 지점에 도달하는 방법이며, 그 제안들이 보통 압도적인 승인을 받는 이유이다. 때때로 매우 확고한 신념의 몇몇 특이자가 타협을 거부하여 제안에 반대표를 던지기도 하지만, 이 사람들은 대개 방해꾼이고 매우 훌륭한 "팀 행위자"가 아니며, 아마도 정부 세계에서 오래 있지 못할 것이다. 중국의 정치과정이 권력도 없고 발언권도 없는 사람들의 "고무도장" 승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솔직하지 못하다. 그리고 서방 민주주의 자체가 그들이 비난하는 것(겉치레 고무도장 의회)과 가장 비슷하기 때문에 아주 위선적이다.
중국의 체제에도 '야당'이 있지만 이 기구는 서방 정부와 크게 두 가지 차이가 있다. 또한, 그것은 현명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세 가지 주요한 차이를 만든다. 첫째, '반대'하는 기능이 아니라 협의하는 기능이다. 이 기관은 정부의 방향과 정책뿐만 아니라 대안을 구상하고 권고안을 제시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정부는 법에 따라 이러한 모든 협의를 고려하고 대응해야 한다. 둘째, 이 반대집단(야당)은 서방시스템에서처럼 소외된 '패배자'가 아니라 최고 통치 직책에 발탁되지 않은 매우 유능한 사람들의 2차 그룹이다. 셋째, 이 보조적 그룹(야당)은 모든 전문적인 능력을 전혀 잃어버리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의 국가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출처: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313024002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압록강 서북쪽 ‘철령’은 요동… 일제때 함경남도 안변이라 우겼다
입력 :2018-03-12 17:48ㅣ 수정 : 2018-03-12 17:53
<10> 한국사 줄기 바꾼 ‘철령의 위치’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자국사가 암기과목이 된 유일한 국가일 것이다. 국정·검인정을 막론하고 교과서에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가 많으니 따지지 말고 외우는 것이 점수 잘 맞는 유일
한 방법이 됐다. 철령의 위치도 그중 하나다. 고려 우왕 14년(1388) 명나라에서 철령위(鐵嶺衛)를 설치한 것은 한국사의 줄기를 바꿔 놓았다. 이에 반발한 우왕과 최영이 요동정벌군을 북상시켰는데,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해 조선을 개창했기 때문이다.
▲ ①
고려, 조선 및 중국 사료들이 말하는 고려의 북방강역. 지금의 요령성 진상둔진이 옛 철령이고, 흑룡강성 영안현이 공험진이다. 이케우치 히로시가 함경남도로 끌어내린 북방 강역을 100년째 추종하는 것이 이 나라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조선 개창의 계기가 된 철령위에 대해서 현재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고려 후기 명나라가 안변(安邊), 곧 철령 이북의 땅에 설치하고자 했던 직할지”라고 설명하고 있고 국정·검인정 교과서도 이를 따르고 있다. 명나라가 철령위를 설치한 곳이 함경남도 안변이란 것이다. 철령위를 설치한 곳은 동쪽인 함경남도 안변인데, 정작 고려군사는 왜 동쪽이 아니라 북쪽인 요동으로 향했을까? 앞뒤가 안 맞으니 따지지 말고 외우는 수밖에 없다.
●철령 두고 다투는 주원장과 고려 우왕
철령은 명나라의 정사인 ‘명사’(明史)에 다수 나온다. ‘명사’ ‘조선열전’은 철령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보다 앞서 원나라 말기에 요심(遼瀋:요양과 심양)에서 병란(兵亂)이 일어나자 백성들이 난을 피해 고려로 이사했다. 황제(명 태조 주원장)가 고려의 말을 사는 기회에 수색령을 내리자 요심 백성 300여호가 돌아왔다.”(‘명사’ ‘조선열전’)
원나라 말기 요령성 일대에서 병란이 일어나자 백성들이 고려로 이주하면서 철령의 귀속 문제가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시작부터 요령성에서 발생한 이야기지 함경남도에서 발생한 이야기가 아니다. 명 태조 주원장은 홍무(洪武) 20년(1387) 12월 우왕에게 국서를 보내 이렇게 통보했다.
“철령 북쪽과 동서의 땅은 예부터 (원나라) 개원로(開元路)에 속해 있었으니 (명나라) 요동에서 다스리게 하고, 철령 남쪽은 예부터 고려에 속해 있었으니 본국(고려)에서 다스리라. 서로 국경을 확정해서 침범하지 말라.”(‘명사’ ‘조선열전’)
주원장이 철령의 동서북쪽은 명나라 땅이고, 남쪽은 고려 땅이라고 통보하자 우왕은 요동정벌군을 북상시키는 한편 재위 14년(1388) 4월 표문을 보내 “철령 땅은 실로 우리 조상 대대로 지켜왔으니 예전처럼 고려 땅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주원장은 “고려는 예전에 압록강(鴨綠江)을 경계로 삼았는데 지금은 철령이라고 꾸미니 거짓임이 분명하다”면서 불화의 단서를 만들지 말라고 받아쳤다. 압록강이 고려 경계라는 주원장의 말은 압록강 서북쪽이 명나라 땅이라는 주장이지 함경남도가 자국령이라는 주장이 아니다. 두 임금은 압록강 서북쪽을 가지고 다투는 것이지 함경남도는 관심 사항 자체가 아니다.
주원장은 철령을 개원로(開元路) 소속이라고 말했는데, 개원로는 원나라가 요동지역을 다스리기 위해 설치했던 관청이다. 그 치소(治所·다스리는 관청)를 중국에서는 지금의 길림(吉林)성 장춘(長春)시 북쪽 농안(農安)현으로 보고 있다.
주원장이 고려 국경선을 압록강이라고 주장하는 배경은 고려 고종 45년(1258)의 사건에 있다. 이해 고려의 반역자 조휘(趙暉)·탁청(卓靑) 등이 화주(和州) 이북의 땅을 들어서 항복하자 원나라는 여기에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설치하고 자국령으로 삼았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자국사가 암기과목이 된 유일한 국가일 것이다. 국정·검인정을 막론하고 교과서에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가 많으니 따지지 말고 외우는 것이 점수 잘 맞는 유일한 방법이 됐다. 철령의 위치도 그중 하나다. 고려 우왕 14년(1388) 명나라에서 철령위(鐵嶺衛)를 설치한 것은 한국사의 줄기를 바꿔 놓았다. 이에 반발한 우왕과 최영이 요동정벌군을 북상시켰는데,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해 조선을 개창했기 때문이다.
99년 후인 공민왕 5년(1356) 5월 공민왕은 이 땅을 되찾기 위해 평리(評理) 인당(印)을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로 삼아 “압강(鴨江:압록강) 서쪽 8참(站)을 공격”하게 하고, 밀직부사(密直副使) 유인우(柳仁雨)를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로 삼아 두만강을 건너게 했다. 이 구강수복전쟁으로 고려는 압록강~두만강 북쪽의 옛 강역을 수복했는데, 명 태조 주원장이 압록강 서북쪽에 철령위를 설치하자 우왕이 반발한 것이다.
▲ ②
검인정(왼쪽), 국정(오른쪽)교과서의 철령. 공민왕이 되찾은 강역을 함경도 중심으로 표기하고 있다. 공민왕이 되찾은 강역은 압록강~두만강 북쪽의 옛 영토였다.
●중국 사료가 말하는 철령의 위치
‘명사’ ‘지리지’에 따르면 철령위는 둘이 있다. 하나는 주원장이 홍무 21년(1388) 옛 철령성에 설치했던 ①철령위다. 또 하나는 고려의 반발에 밀려 홍무 26년(1393) 북쪽의 옛 은주(銀州)로 이전한 ②철령위다. ①·② 두 철령의 위치를 정확하게 특정할 수 있다. ‘명사’ ‘지리지’는 철령의 위치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철령 서쪽에는 요하(遼河)가 있고 남쪽에 범하(汎河)가 있다. 또 남쪽에 소청하(小河)가 있는데, 모두 요하로 흘러들어간다.”
철령이 함경남도 안변이면 그 서쪽이 랴오닝성 요하일 수는 없다. 또한 근처의 모든 강이 요하로 흘러갈 수도 없다. ‘명사’ ‘지리지’는 또 ①철령위에 대해서 “봉집현(奉集縣)이 있는데, 즉 옛 철령성으로서 고려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홍무 초에 현을 설치했다가 곧 폐지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고려와 경계를 접했다는 봉집현이 명나라에서 ①철령위를 설치했다가 고려의 반발 때문에 폐지한 철령이라는 설명이다. 봉집현의 위치는 ‘요사’(遼史) ‘지리지’에 나온다. 거란족이 세운 요(遼:916~1125)나라 ‘집주(集州)·회중군(懷衆軍)’에 봉집현이 있었는데, 원래는 발해가 설치한 현이라는 것이다. 중국학계는 ①철령위가 있던 봉집현을 현재 심양(瀋陽) 동남쪽 55㎞ 진상둔진(陳相屯鎭) 산하 봉집보(奉集堡)로 보고 있다. 요령성 본계(本溪)시 조금 북쪽인데, 이 일대는 원래 철광(鐵鑛)으로 유명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철령(鐵嶺)이란 이름으로 불린 것이다. 중국 학계에서도 요령성 진상둔진이라는 철령위를 한국 학계는 함경남도 안변이라고 우긴다.
‘요사’ ‘지리지’는 또 봉집현이 속해 있던 집주·회중군은 “한나라 때는 요동군 험독현(險瀆縣)에 속해 있었다”고 말한다. 요령성 진상둔진이 위만 조선의 도읍지 자리에 세운 한나라 요동군 험독현 자리라는 기록인데, 한국 학계는 위만조선의 도읍지를 지금의 평양이라고 우긴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명나라는 요령성 진상둔진에 ①철령위를 설치했다가 고려에서 강하게 반발하자 홍무 26년(1393) 심양 북쪽의 고 은주(銀州)로 이전하고 ②철령위를 설치했다. ②철령위는 현재 심양 북부에 있는 철령(鐵嶺)시 은주구(銀州區)다. ①철령위나 ②철령위나 모두 요령성 내에 있었다.
●후세 교육까지 망치는 식민사관
여진족이 세운 금(金·1115~1234)나라의 정사인 ‘금사’(金史) ‘지리지’는 “봉집현은 본래 발해의 옛 현이다. 혼하(渾河)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혼하는 심양과 본계 사이를 흐르는 강이다. 중국 사료들은 주원장이 1388년 설치했던 ①철령위는 심양 남쪽 진상둔진이고, 1393년 이전한 ②철령위는 심양 북쪽 철령시 은주구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케우치 히로시는 1918년 ‘조선 우왕 때의 철령 문제’에서 함경남도 안변을 철령이라고 우겼다. 안변 남쪽에 철령(鐵嶺)이라는 고개가 있는 것에 착안한 대사기극인데, 이를 조선총독부의 이나바 이와기치, 조선사편수회 간사이자 경성제대 교수인 쓰에마쓰 야스카즈가 뒤를 따랐다. 그리고 “일본인 스승님들 말씀은 영원히 오류가 없다”라는 한국 역사학자들이 100년째 추종 중이다.
나아가 이 사기극을 국정·검인정 교과서에 실어서 미래 세대들의 정신세계까지 갉아먹고 있는 중이다. 선조들의 피 서린 강토와 역사를 팔아먹고, 나라의 미래까지 팔아먹고 있건만 이를 바로잡아야 할 책임 있는 당국자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인 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다.
출처: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320024001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이성계 때 고려 강역도 계승…‘철령~공험진’까지 엄연한 조선 땅
입력 :2018-03-19 17:34ㅣ 수정 : 2018-03-19 17:45
<11> 조선 북방강역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 살펴보니
세종 압록강~두만강 확장은 가짜
4군6진 설치 일부 신도시 세운 것
현 국정·검인정교과서 ‘기재 오류’
▲ 온성군 수항루, 6진 중의 하나인 종성읍성의 장대로 뇌천각으로도 불렸다.
국정·검인정을 막론하고 현행 국사 교과서가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조작한 역사, 즉 ‘가짜 역사’를 추종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조선의 북방강역도 마찬가지다. 현행 교과서는 모두 세종 때 최윤덕과 김종서가 4군 6진을 개척해서 조선의 북방강역이 압록강~두만강까지 확장되었다고 쓰고 있다. 세종 전까지 조선의 국경선은 압록강~두만강까지도 아니었다는 뜻이다.
박근혜 정권 때 만든 중학교 국정교과서는 “세종 때 최윤덕과 김종서에게 4군6진을 설치하게 하고 충청·전라·경상도의 주민을 이주시켜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영토를 개척하였다”라고 쓰고 있다. 현행 검인정교과서도 다르지 않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삼화출판사)는 “세종 때에는 4군과 6진을 설치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오늘날과 같은 국경선을 확정하였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출판사만이 아니라 모든 검인정 교과서가 마찬가지다. 교과서 편찬 기준이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 세종실록 21년 3월 6일자 “본국(조선) 강역은 공험진부터 철령까지”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조선 북방강역이 심양 남쪽 철령부터 두만강 북쪽 공험진까지라는 내용이 실록에 계속 나오는 대로 현행 국정, 검인정 교과서는 모두 이케우치가 조작한 설을 추종해서 선조들의 강역을 축소시키고 있다.
조선의 북방강역에 대한 1차 사료는 ‘조선왕조실록’이다. 실록은 조선의 북방강역에 대해 어떻게 서술하고 있을까. ‘태조실록’은 태조 4년(1395) 12월 14일자에서 “의주(義州)에서 여연(閭延)에 이르기까지의 연강(沿江) 천 리에 고을을 설치하고 수령을 두어서 압록강을 경계로 삼았다.…공주(孔州)에서 북쪽으로 갑산(甲山)에 이르기까지 읍(邑)을 설치하고 진(鎭)을 두어…두만강을 경계로 삼았다”라고 쓰고 있다. 태조 이성계 때 이미 압록강~두만강 연안에 읍과 진을 두어 다스렸다는 뜻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세종 때 압록강~두만강까지 국경을 확장했다는 현재의 교과서 내용에 대해 ‘가짜 역사’라고 수없이 말하고 있다.
세종 때 최윤덕이 개척한 4군의 끝이 여연(閭延)이고 김종서가 확장한 6진의 끝이 경원(鏡源)이다. 그러니 현행 교과서의 논리대로라면 최윤덕, 김종서의 북방 개척 이전까지 여연과 경원은 조선의 강역이 아니어야 한다. 그런데 앞서 인용한 ‘태조실록’ 4년 12월조는 여연이 이미 태조 이성계 때 조선 강역이었다고 쓰고 있고 같은 ‘태조실록’ 재위 7년(1398) 2월 3일자도 ‘경원부는 부사(府使) 1명을 두고 영사(令史) 10명, 사령 20명 등을 둔다’고 기록하고 있다. 경원은 태조 이성계 때부터 이미 부사를 파견해 다스리던 조선 강역이었다. ‘태조실록’ 7년(1398) 2월 16일자는 동북면도선무사 정도전이 경원부에 성을 쌓았다고 기록하는 등 태조 때 이미 조선 강역이라고 거듭 말하고 있다.
▲ 태종실록 4년 5월 19일자, “공험진부터 조선 강역이다”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태종과 영락제의 국경조약
더 중요한 것은 조선의 북방 경계가 압록강~두만강도 아니라는 점이다. 태조 이성계는 재위 1년(1392) 7월 28일 즉위 조서에서 “국호는 그전대로 고려라 하고 의장(儀章)과 법제(法制)는 한결같이 고려의 고사(故事)에 의거한다”고 말했다. 고려의 의장과 법제를 계승했다는 말은 고려의 강역도 계승했다는 뜻이다. 태조 이성계를 비롯해서 정종·태종·세종 등은 모두 고려의 북방 강역이 현재의 요령(遼寧)성 심양(瀋陽) 남쪽 철령(鐵嶺)과 흑룡강(黑龍江)성 목단강(牧丹江)시 남쪽 공험진까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특히 태종은 이 국경선을 명나라 영락제로부터 다시 확인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태종은 재위 4년(1404) 5월 19일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 김첨(金瞻)과 왕가인(王可仁)을 명나라 수도 남경에 보내 두 나라 사이의 공식적인 국경선 획정을 다시 요구했다.
“밝게 살피건대(照得), 본국의 동북 지방은 공험진부터 공주(孔州)·길주(吉州)·단주(端州)·영주(英州)·웅주(雄州)·함주(咸州) 등의 주(州)인데, 모두 본국의 땅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태종은 명나라 영락제에게 공험진 남쪽 땅에 대해서 설명했다. 고려 고종 45년(1258) 12월 고려의 반역자 조휘와 탁청 등이 압록강 북쪽~두만강 북쪽 땅을 들어 원나라에 항복하자 원나라에서 그곳에 쌍성총관부를 설치했지만 공민왕이 재위 5년(1356) “공험진 이남을 본국(本國·고려)에 다시 소속시키고 관리를 정하여 다스렸다”는 것이다. 이후 명나라가 심양 남쪽 지금의 진상둔진(陳相屯鎭)에 철령위를 설치하려 하자 고려 우왕이 재위 14년(1388) 밀직제학 박의중(朴宜中)을 명 태조 주원장에게 보내 “공험진 이북은 요동에 다시 속하게 하고 공험진부터 철령까지는 본국(고려)에 다시 속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명 태조 주원장이 “철령 때문에 왕국(고려)에서 말이 있다”면서 철령~공험진까지를 그대로 고려 강역으로 인정했다는 설명이었다. 태종은 김첨에게 압록강 북쪽 철령과 두만강 북쪽 공험진이 본국(本國·고려 및 조선) 강역이라는 시말을 자세히 적은 국서와 지도까지 첨부해서 영락제에게 보냈다.
●여진족들의 귀속권
문제는 압록강 북쪽~두만강 북쪽에 사는 여진족들의 귀속 문제였다. 여진족들이 세운 금(金)나라가 원나라에 붕괴된 이후 국가가 없었으므로 명나라에서 여진족들도 사는 이 지역을 자국령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이 지역에는 삼산(參散) 천호(千戶) 이역리불화(李亦里不花) 등 여진족 10처 인원(十處人員)이 살고 있었다. 처(處)란 여진족들로 구성된 집단 거주지역을 뜻한다. 이역리불화는 이화영(李和英)이란 조선 이름도 갖고 있었는데 조선 개국 1등 공신이자 이성계의 의형제였던 이지란(李之蘭)의 아들이었다. 태종은 이 여진족들은 조선에서 벼슬도 하고 부역도 바치는 조선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삼산 천호 이역리불화 등 10처 인원은 비록 여진 인민의 핏줄이지만 본국 땅에 와서 산 연대가 오래고…또 본국 인민과 서로 혼인하여 자손을 낳아서 부역(賦役)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그곳에 살고 있는 여진의 남은 인민들을 전처럼 본국(本國·조선)에서 관할하게 하시면 일국이 크게 다행입니다.”
국서와 지도를 가지고 명나라에 갔던 김첨이 돌아온 것은 다섯 달 정도 후인 태종 4년(1404) 10월 1일이었다. 김첨은 영락제의 칙서를 받아 돌아왔다.
“상주(上奏)하여 말한 삼산 천호 이역리불화 등 10처 인원을 살펴보고 청하는 것을 윤허한다. 그래서 칙유한다.”
삼산 천호 이역리불화 등 10처 인원이 사는 요동땅이 조선 강역임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이로써 조선과 명나라의 국경선도 철령과 공험진이라는 사실이 영락제에 의해 재차 확인되었다. 태종은 조선과 명의 국경선이 심양 남쪽 철령부터 두만강 북쪽 공험진까지로 확정된 사실을 크게 기뻐하고 계품사 김첨에게 전지(田地) 15결을 하사했다.
세종도 마찬가지였다. 세종은 재위 8년(1426) 4월 근정전에서 회시(會試)에 응시하는 유생들에게 내린 책문(策問·논술형 과거)에서 “공험진 이남은 나라의 강역이니 마땅히 군민을 두어서 강역을 지켜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서 서술하라고 명령했다. 세종 때에야 조선의 국경선이 압록강~두만강까지 확장되었다는 현행 국정·검인정교과서로 배운 학생들이라면 100% 낙방했을 것이다. ‘세종실록’ 21년(1439) 3월 6일자에 명 태조 주원장이 “공험진 이남 철령까지는 본국(조선)에 소속된다”고 했다고 기록한 것처럼 조선의 국경은 압록강 북쪽 철령부터 두만강 북쪽 700리 공험진까지였다. 최윤덕, 김종서 등은 조선 강역 내에 일부 신도시를 세운 것이지 강역을 확장한 것이 아니다. 아직도 이케우치 히로시가 조작한 고려, 조선의 북방강역을 교과서로 가르치는 나라, 역사학자가 아니라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도 크게 부끄러워하고 분노해야 할 일이다. 국사편찬위원회와 교육부 등 당국자들의 책임은 말할 것도 없다.
출처: https://m.kgnews.co.kr/mobile/article.html?no=645999
[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두 개의 철령
2021.05.17 06:00:00 16면
고려강역 이야기③
▲ 중국과 한국 사료로 보는 고려강역지도. 지금의 요녕성 심양 남쪽부터 흑룡강성 목단강시 조금 아래부터는 고려, 조선의 북방강역이었다. (사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제공)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의 대 사기극
한국사에서 철령(鐵嶺)은 두 개가 있다. 하나는 함경남도 안변에 있는 철령으로서 광해군 때 인목대비 폐모에 반대하던 이항복이 북청(北靑)으로서 유배가면서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고신원루를 비삼아 띄워다가/님계신 구중심처에 뿌려본들 어떠리”라고 읊었던 그 철령이다. 다른 하나는 지금의 중국 요녕성 심양 남쪽의 진상둔진 봉집보(奉集堡)에 있는 철령이다. 고려 우왕 14년(1388) 명나라에서 봉집보에 철령위를 설치하려 하자 우왕과 최영이 이 땅은 선조 대대로 물려받은 고려강역이라면서 요동정벌군을 북상시켰던 곳이다. 함경도 철령은 ‘쇠로 만든 관문’이라는 뜻의 철관(鐵關)으로 불렸을만큼 험준한 요새였다. 조선에서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회양도호부(淮陽都護府)조에 함경도 철령에 대해 “(철령은)회양도호부의 북쪽 39리에 있는데, 석성(石城)의 남은 터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목은 이색의 아버지였던 이곡(李穀:1298~1351)은 “철령은 우리나라 동쪽에 있는 요해지(要害地)인데 이른바 한 사람이 관문에서 막으면 일만 사람이 덤벼도 열지 못한다. 그래서 철령 동쪽의 강릉(江陵) 여러 고을을 관동(關東)이라 한다.”고 말했다. 이 함경도 철령은 명나라가 철령위를 세우려던 곳과 전혀 관계가 없는 곳이다. 그런데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 이마니시 류(今西龍) 같은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은 만주에도 철령이 있고 함경도에도 철령이 있는 것을 이용해 만주 철령을 함경도 철령으로 바꿔치기 하는 사기극을 구상하고 실천했다. 명나라에서 철령위를 설치하려던 철령이 만주 철령이 아니라 함경도 철령이라고 우겼던 것이다. 철령에 대해서 조금만 공부하면 초등학생도 사기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이 사기극을 아직도 한국 사학계를 장악한 강단사학자들이 추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현재 사용하는 검정 교과서는 명나라에서 설치하려던 철령위를 함경도에 있는 것으로 서술해서 국민들을 속이고, 미래 우리 사회의 주역인 중·고교생들에게 씻지 못할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중국 백도백과가 말하는 철령위의 위치
명나라가 철령위를 설치하려던 철령이 요녕성에 있었다는 사실은 다름 아닌 중국측 자료들이 말해주고 있다. 먼저 세계최대의 온라인 백과사전이라고 선전하는 중국의 《백도백과(百度百科)》는 철령의 역사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명나라 때 은주(銀州)에 철령위를 설치했다가 명 홍무(洪武) 26년(1393)에 철령위를 심양과 개원(開原) 사이에 있던 옛 은주 땅으로 이주했다. (철령위의) 남부 강역은 요동도지휘사 철령위에 소속되었고, 서부는 요하의 부여위(扶餘衛)와 겹쳐서 속해 있었고, 북부는 삼만위(三萬衛)에 속했는데, 겸하여 한왕(韓王) 주송(朱松)을 철령, 개원에 봉했다.”
명 시조 주원장의 홍무(洪武) 21년은 곧 고려 우왕 14년인 서기 1388년인데, 이때 은주(銀州)라는 곳에 철령위를 설치했다가 고려에서 요동정벌군을 북상시키는 등 강력 반발하자 1393년에 심양과 개원 사이에 있던 옛 은주 땅으로 이주했다는 내용이다. 은주(銀州)라는 곳이 어디인지만 찾으면 철령위의 위치를 쉽게 알 수 있다. 《백도백과》는 “당 현종 개원 원년(713) 발해 대씨(大氏)가 이 지역을 차지해서 부주(富州)로 삼았다”고 말하고 있다. 나중에 명나라에서 철령위를 설치하는 지역은 대진(大震:발해)에서 부주로 삼았다는 것이다. 《백도백과》는 “거란 신책(新冊) 2년(917)에 요(遼) 태조가 이 땅에서 은를 제련했기 때문에 부주(富州)를 은주로 바꾸었는데, 요나라 때는 강역의 대부분이 동경도(東京道) 요양부(遼陽府)에 속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 태조가 부주(富州)에서 은을 제련했기 때문에 은주(銀州)라고 바꾸었다는 것이다. 이는 모두 지금의 요녕성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에 대해서 적고 있는 것으로 함경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심양 남쪽부터는 고려땅이라는 《명사》 〈지리지〉
철령위에 대해서 가장 정확한 사서는 명나라의 정사인 《명사(明史)》일 것이다. 《명사》 〈지리지〉는 ‘철령위’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철령위는 홍무 21년(1388) 3월 옛 철령성에 설치했다. 홍무 26년(1393) 4월 옛 은주(嚚州)땅으로 이전했는데, 곧 지금 다스리는 치소다. 철령은 서쪽으로 요하(遼河)가 있고 남쪽으로 범하(汎河)가 있고, 또 남쪽으로 소청하(小淸河)가 있는데 모두 흘려서 요하로 들어간다.(《명사》 〈지리지〉 철령위)」
《명사》 〈지리지〉은 철령위 서쪽에 요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요하는 요녕성을 가로지르는 강이다. 함경도 안변 서쪽에는 요하고 범하고를 막론하고 강 자체가 없다. 철령 서쪽에 요하가 있다는 구절 하나만으로도 철령위는 함경도 안변이 아니라 요하가 흐르는 요녕성에 설치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철령) 남쪽에 의로성(懿路城)이 있는데, 홍무 29년(1396) 이곳에 의로천호소(懿路千戶所)를 설치했다. 또 범하성(范河城)이 철령위 남쪽에 있는데, 범하성(汎河城)이라고도 부른다. 정통(正統) 4년(1439) 이곳에 범하천호소(汎河千戶所)를 설치했다. 동남쪽에 봉집현(奉集縣)이 있는데, 곧 옛 철령으로서 고려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홍무 초년에 봉집현을 설치했다가 곧 폐지했다(《명사》 〈지리지〉 철령위)」
《명사》 〈지리지〉에서 말하는 주요 내용은 셋이다. ①철령위 서쪽에 요하가 흐른다. ②봉집현이라는 곳이 주원장이 홍무 21년(1388) 원래 철령위를 설치했던 곳인데, 고려에서 반발하자 1393년 지금의 철령시 은주구로 옮겼다. ③봉집현이 고려와 경계를 접하고 있는 곳이다. 곧 고려와 국경을 이루고 있던 곳이 봉집현이다. 따라서 이 봉집현이 어디인지를 찾으면 명나라에서 설치했던 철령위를 정확하게 찾을 수 있다.
▲ 중국에서 지금의 심양시 남쪽 진상둔진 탑산각 아래의 옛 철령성 자리에 세워놓은 봉집보 표지석.(사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제공)
◆심양 남쪽부터 고려의 강역
중국의 《역사사전(歷史詞典)》은 봉집현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당(唐)나라 발해국에서 집주(集州)를 다스리기 위해서 설치했다. 치소(治所:다스리는 곳)는 지금의 요녕성 심양시 동남쪽 봉집보(奉集堡)이다. 금(金)나라에서는 귀덕주(貴德州)에 소속시켰는데, 원(元)나라에서 폐지시켰다. 명나라 홍무 초에 다시 설치했다가 얼마 후 폐지시켰다.”
당나라 발해국에서 설치했다는 것은 동북공정에 따라서 발해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우기는 것에 불과하다. 봉집현은 대진(발해)에서 설치한 집주를 다스리던 곳인데, 진상둔진(陳相屯鎭) 탑산각(塔山脚) 아래에 있는 곳이다. 현재 중국의 여러 사전들은 《명사》 〈지리지〉에 나와 있는 내용, 즉 봉집현 남쪽부터는 고려 강역이었다는 사실은 슬그머니 빼 놓고 ‘당나라 소속의 발해국…’ 운운하는 것이다.
필자는 몇 년 전 심양 남쪽의 봉집현 자리를 어렵게 찾아간 적이 있다. 처음에는 찾지 못해서 헤매다가 두 번째 답사 때 겨우 찾은 지역이다. 중국 심양시에서 비록 수풀 속에 숨겨두었지만 봉집현 자리에 표지석을 세워놓은 것을 보고 놀란 기억이 새롭다. 중국학자들은 물론 당국도 심양 남쪽 봉집현이 옛 철령위 자리이고 이곳부터는 고려 강역이라는 사실을 알고 표지석까지 세워놓았다. 한국은 아직도 조선총독부 역사학을 추종하는 강단사학자들이 역사학계를 장악하고는 함경도 안변이 철령위라고 우기고 있다. 요녕성과 함경도를 구분 못하는 것은 물론 강원도 삼척과 경상북도 영덕·포항도 구분할 줄 모르는 강단사학자들이 왜곡한 《한국사교과서》를 지금도 사용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나라는 나라다운 나라가 될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 이덕일 (사)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이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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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공민왕이 수복한 땅이 함경도라고?
2021.05.24 06:00:00 16면
고려강역 이야기④
▲ 이른바 국사학계의 태두라는 이병도가 [국사대관]에서 그린 고려강역도, 함경남도도 차지하지 못했다고 그리고 있다.(사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제공)
◆학교에서 가르치는 거짓의 역사
현재 중·고교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는 검정 한국사 교과서는 공민왕이 재위 5년(1356) 수복한 영토가 함경남도 지역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공민왕은 고려의 자주성을 강화하기 위해 몽골식 풍습을 폐지하고 관제를 복구하였다. 또한,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의 땅을 수복하였고, 원·명의 정세 변화를 틈타 요동지방을 공격하였다(고등학교 한국사, 교학사, 60쪽)”
교학사 한국사교과서는 지도에서 원나라 쌍성총관부가 지금의 함경도 영흥에 있었다고 그려놓고 있다. 교학사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권의 국정교과서를 폐지한 후 현 정권의 검정을 통과한 모든 한국사교과서가 같다. 공민왕이 수복한 옛 강역이 원나라 쌍성총관부인데, 그곳이 지금의 함경남도라는 것이다. 공민왕의 옛 강역수복전쟁은 재위 5년(1356) 5월 벌어졌는데 이에 대해 《고려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평리 인당(印璫), 동지밀직사사 강중경(姜仲卿)을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로 삼고, 사윤 신순(辛珣)·유홍(兪洪), 전 대호군 최영(崔瑩), 전 부정(副正) 최부개(崔夫介)를 서북면병마부사(副使)로 삼아 압록강 서쪽의 8참(站)을 공격하게 하였다(《고려사》 〈공민왕 세가 5년 5월〉)”
공민왕이 서북면병마사 인당·강중경과 부사 최영 등에게 공격하게 한 지역은 “압록강 서쪽 8참”이라는 것이다. 즉 고려군의 출발점이 압록강이었고, 수복할 지역은 압록강 서쪽 8개참이었다는 것이다. 고려군은 압록강을 건너 북상했는데 현재 한국사교과서는 동쪽으로 갔다고 호도하고 있다. 삼척을 강원도라고 쓴 역사학자들이 이번에는 북쪽과 동쪽도 구분하지 못하고 교과서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날 전쟁에 나선 고려군은 두 부대였다. 다른 한 부대에 대해 《고려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또 밀직부사 유인우(柳仁雨)를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로 삼고, 전 대호군 공천보(貢天甫), 전 종부령 김원봉(金元鳳)을 동북면병마부사(副使)로 삼아 쌍성(雙城) 등지를 수복하게 하였다(《고려사》 〈공민왕 세가 5년 5월〉)”
한 군사는 압록강 서쪽 8개참을 공격했고, 또 한 군사는 원나라에서 설치한 쌍성총관부를 공격했다는 것이다. 원나라 쌍성총관부는 화주(和州)에 있었는데, 그 위치에 대해 한국사교과서는 모두 함경남도 영흥이라고 말하고 있다.
▲ 공민왕이 수복한 쌍성총관부가 함경도라는 교학사교과서, 모든 검정교과서가 같다.(사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제공)
◆두만강 북쪽에 있던 원나라 쌍성총관부
원나라는 고종 45년(1258) 고려의 두 민족반역자 조휘와 탁청이 두만강 북쪽 땅을 들어 바치자 이 지역에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설치했다. 이에 대해서 《고려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용진현(龍津縣) 사람 조휘(趙暉)와 정주(定州) 사람 탁청(卓靑)이 화주(和州) 이북 지방을 들어서 몽골에 붙었다. 몽골이 화주에 쌍성총관부를 설치하고 조휘를 쌍성총관부의 총관(摠管)으로, 탁청을 천호(千戶)로 삼았다(《고려사》 〈고종 45년 12월〉)”
조휘와 탁청이 고종 45년(1258) 화주 북쪽의 땅을 몽골에 바치자 몽골이 이 지역에 쌍성총관부를 설치하고, 조휘를 총관, 탁청을 쌍성총관부 천호로 삼았다는 것이다. 공민왕이 북강수복전쟁에 나선 것은 바로 이 땅을 되찾기 위한 것이었다. 공민왕은 쌍성총관부 설치 만 98년 후인 재위 5년(1356) 인당·강중경은 압록강을 건너게 하고, 유인우는 두만강을 건너 옛 땅을 되찾게 한 것이다. 동북면병마사 유인우가 되찾으려던 땅을 두만강 북쪽에 있던 고려의 옛 동계(東界)지역이었다. 《고려사》 〈지리지〉는 동계에 대해서 “비록 연혁과 명칭은 같지 않지만 고려 초로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공험 이남에서 삼척 이북을 통틀어 동계라고 일컫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공험은 윤관이 예종 3년(1108) 2월 여진족을 구축하고 비석을 세워 경계로 삼은 공험진 선춘령을 말하는데, 두만강 북쪽 700리 지점에 있다. 두만강 북쪽 700리 지점부터 강원도 삼척까지가 고려의 동계였다. 이중 두만강 북쪽 땅을 고종 45년(1258)조휘·탁청이 원나라에게 바치면서 98년 동안 원나라가 차지했던 것을 공민왕이 되찾은 것이었다. 이 쌍성이 함경남도 영흥이라고 한국사교과서는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원나라 정사인 《원사(元史)》는 달리 말하고 있다.
▲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국립고궁박물관) 공민왕은 압록강~두만강 이북의 옛 고려강역을 회복한 중흥군주다.(사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제공)
◆요동에 있었다는 쌍성과 화주
쌍성이 직접 언급된 사료는 《원사(元史)》 〈식화지(食貨志)〉다 여기에 금은(金銀) 등의 세금을 걷는 과세(課歲) 항목이 있는데, 금을 세금으로 바치는 지역 중에 요동의 쌍성이 있다.
“처음 금을 과세하는 것은 (원나라) 세조 때 일어났다. 익도(益都:산동성 청주)는 지원(至元) 5년(1268) 종강(從剛)과 고흥종(高興宗)에게 명해서 호적에서 빠진 민호 4천으로 등주(登州) 서하현(棲霞縣)에서 도금하게 했다. 지원 15년(1278)에는 또 도금호(淘金戶:금을 도금하는 호) 2천 첨군(簽軍)을 익도와 치래(淄萊) 등의 로(路:원나라 행정단위)에 붙이고 예전에 의거해서 도금하게 해서 그 세금을 태부감(太府監)에 수송해 납부하게 했다. 요양(遼陽)에는 지원 10년(1273), 이덕인(李德仁)의 청을 들어서 용산현(龍山縣) 호벽골[胡碧峪]에서 채금하게 했는데, 매해 금 3량을 납부하게 했다. 13년(1276)에는 요동의 쌍성 및 화주 등처에서도 금을 캐게 했다(《원사》 〈식화지〉 2 세과(歲課))”
원나라의 정사인 《원사》 〈식화지〉에 “요동의 쌍성 및 화주 등처에서도 금을 캐게 했다[遼東雙城及和州等處採焉]”고 기록하고 있다. 쌍성이 함경도가 아니라 요동에 있다는 것이다. 화주는 쌍성총관부를 다스리는 관서가 있던 곳이다. 공민왕은 두만강 북쪽에 원나라가 설치한 쌍성총관부가 원래 고려땅이기 때문에 재위 5년(1356) 인당·강중경에게는 압록강 북쪽의 옛 고려 강역을 수복하게 하고, 유인우에게는 두만강 북쪽의 옛 고려 강역을 수복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 이마니시 류(今西龍) 같은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고려는 반도도 차지하지 못했다면서 요동에 있던 쌍성을 함경남도 영흥으로 옮겨놓은 것인데, “우리는 뇌가 없으므로 무조건 일본인 스승님들의 말씀을 따른다”는 신조를 가진 한국의 강단사학자들이 지금까지 한국사교과서를 거짓말로 써놓고 학생들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사료가 말하는 고려 북방강역
명나라에서 설치한 철령위를 남한 강단사학자들은 함경도 안변이라고 우기지만 명나라 정사인
《명사》 〈오행지(五行志)〉만 봐도 이는 거짓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명사》 〈오행지〉는 명나라에서 발생한 큰 화재에 대해서 적고 있는데, 철령위에서 발생한 큰 불도 적고 있다. “홍치(弘治) 16년(1503) 3월 경오(庚午)에 요동 철령위에 북두성같은 불이 떨어졌다. 병자일에 불이 일어나서 방옥(房屋) 2500여 칸을 태웠고, 죽은 자가 100여인이었다.”
《명사》는 ‘요동 철령위’라고 써서 철령위가 요동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철령위가 요동에 있었다는 사실은 조선시대 학자들도 잘 알고 있었다. 조선의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사를 이끌고 왔던 이여송(李如松)에 대해서 “요동(遼東) 철령위(鐵嶺衛) 사람이다”라고 말했고 명나라 장수 조여매(趙如梅)에 대해서도 “호는 초암(肖菴)인데 요동 철령위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철령위가 요동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국은 물론 중국의 사료가 말하는 고려 북방 강역은 심양 남쪽의 철령부터 두만강 북쪽 700리의 공험진까지였다. 한국과 중국의 모든 사료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광복 75년이 넘은 지금도 한국사교과서는 고려 강역이 함경남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호도하고 있다. 사료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광복 75년이 넘도록 득세하고 있는 곳이 한국 역사학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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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고려 강역은 한반도의 2/3인가?
2021.05.03 06:00:00 16면
고려 강역 이야기①
▲ 2014년 검정 교과서의 북방강역, 두만강 북쪽 700리 지점까지였던 고려국경이 함경남도 남쪽으로 그려져 있다.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의 역사왜곡을 추종하는 것이다.(사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제공)
◆국사교과서와 김종서
필자는 중·고교 시절 국사교과서에서 고려의 강역을 묘사한 지도를 보고 “고려는 참 볼품없는 나라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고려는 한반도의 2/3밖에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나라로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도로 국한된 “무궁화 삼천리”에서 동북쪽 천리 정도를 싹둑 잘린 2천리 국가가 고려였다. 또한 국사교과서에는 세종이 “김종서와 최윤덕을 보내 4군6진을 개척해서 조선의 강역을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넓혔다”는 내용이 나왔다. 이는 현재 대부분의 국민들이 갖고 있는 역사상식이다. 그러다가 김종서에 대한 책을 쓰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세종이 김종서에게 내린 명령 중에 이상한 내용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세종실록》은 세종이 김종서에게 이렇게 지시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동북방 땅은 공험진(公嶮鎭)으로 경계를 삼았다는 말이 전해 온 지가 오래다. 그러나 정확하게 어느 곳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본국(本國)의 땅을 상고하여 보면 본진(本鎭:공험진)이 장백산(長白山:장백산) 북쪽 기슭에 있다고 하나, 역시 허실(虛實)을 알지 못한다(《세종실록》 21년(1439) 8월 6일)”
우리나라의 동북방 경계가 공험진이라는 말이 전해진지 오래라는 것이다. 그 곳이 어딘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백두산 북쪽 기슭이라고 들었다는 것이다. 백두산 북쪽 기슭도 우리나라의 북방 강역이라는 뜻이다. 중·고교 국사교과서에 나오는 고려강역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였다.
▲ 북관유적도첩 척경입도비. 고려의 윤관 장군이 두만강 북쪽 700리 공험진 선춘령에 고려지경이라는 비석을 세우는 그림으로 조선시대에 그린 것이다. (사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제공)
◆윤관이 세운 비석
세종은 아주 치밀한 성격의 임금이었다. 전지 하나를 내려도 자신이 먼저 공부를 한 다음에 내렸다. 강역문제에 관해 지시할 때는 이 문제를 먼저 깊게 공부하고 관점을 세운 후 명령을 내렸다. 세종의 지시는 계속된다.
“《고려사》에 이르기를, ‘윤관(尹瓘)이 공험진에 비석을 세워 경계를 삼았다.’고 하였다. 지금 들으니 선춘점(先春岾)에 윤관이 세운 비가 있다 하는데, 본진(本鎭:공험진)이 선춘점의 어느 쪽에 있는가. 그 비문을 사람을 시켜 찾아볼 수 있겠는가. 그 비가 지금은 어떠한가? 만일 길이 험해서 사람을 시키기가 쉽지 않다면 폐단 없이 탐지할 방법을 경이 깊게 생각하여 아뢰라(《세종실록》 21년(1439) 8월 6일)”
세종이 《고려사》를 직접 보고 연구해 보니 윤관이 ‘공험진에 비석을 세워 경계를 삼았다’라는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모든 국사를 만기친람(萬機親覽)하는 바쁜 세종이 《고려사》를 직접 보고 김종서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고려는 북방 강역을 양계(兩界)로 나누었는데, 양계란 북계(北界)와 동계(東界)를 뜻한다. 세종은 《고려사》 〈지리지〉에서 윤관이 직접 비석을 세웠다는 내용을 보고 김종서에게 명령을 내린 것이다. 《고려사》 〈지리지〉는 동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종 2년(1107) 평장사(平章事) 윤관이 원수(元帥)가 되어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오연총(吳延寵)을 부원수로 삼아 병사를 거느리고 여진을 쳐서 쫓아내고 9성(城)을 두었는데, 공험진 선춘령(先春嶺)에 비석을 세워 경계로 삼았다(《고려사》 〈지리지〉 동계)”
공험진 선춘령에 이곳까지 고려의 강역이라는 비석을 세웠다는 것이다. 윤관은 예종 2년(1107) 고려군이 되찾은 강역에 함주(咸州)·복주(福州)·영주(英州)·길주(吉州)·웅주(雄州)·통태진(通泰鎭)·진양진(眞陽鎭)·숭녕진(崇寧鎭)·공험진(公嶮鎭) 등의 9성을 설치하고, 공험진성 선춘령에 ‘고려의 강역이다’라는 뜻의 「고려지경(高麗之境)」이라는 비석을 세웠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세종은 김종서에게 사람을 시켜서 공험진 선춘령에 가서 이 비석을 찾아보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공험진은 두만강 북쪽 688리
공험진 선춘령이 어디일까? 한국 역사학계의 통설을 써 놓은 《민족문화백과사전》은 고려의 동계(東界)에 대해서 “대체로 함경도 이남으로부터 강원도 삼척 이북의 지역이 해당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고려 동계의 북쪽 끝인 공험진 선춘령이 함경도 이남에 있다는 것이다. 남한 강단사학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자주 펼친다고 필자가 여러 차례 말했는데, 이 부분도 마찬가지다. 《민족문화백과사전》은 공험진에 대해서 동계와는 다른 소리를 하고 있다. 《민족문화백과사전》은 공험진에 대해서 “예종 때 윤관(尹瓘) 등이 동북여진을 축출하고 개척한 지역에 쌓은 9성 가운데 하나이다.”라면서 그 형성 및 변천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공험진에는 내·외방어소(內外防禦所)가 있었는데, 내방어소는 경원도호부(慶源都護府) 자리에, 외방어소는 두만강 북쪽 700리에 있는 공험진에 두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구절에서 주목되는 것은 ‘두만강 북쪽 700리에 있는 공험진’이라는 말이다. 공험진이 함경도 이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두만강 북쪽 700리 지점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두만강의 경원도호부에서 북쪽 공험진까지 정확하게 688리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조선의 학자들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은 공험진이 두만강 북쪽 700리에 있다고 말해왔다.
《민족문화백과사전》은 ‘두만강 북쪽 700리’라는 사실을 마지못해 써줬지만 이를 인정할 수는 없었다. 남한 강단사학이 지금껏 추종하는 조선총독부 역사관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심 끝에 만든 논리가 내방어소(內防禦所)와 외방어소(外防禦所)라는 개념이다. 고려에서 경원도호부에 내방어소를 두고, 공험진에 외방어소를 두었던 것처럼 말해서 공험진을 고려 강역에서 제외하려고 하는 것이다. 《세종실록》 〈지리지 함길도 길주목〉조에는 “(예종) 3년 무자(1107) 2월에 또 공험진에 성을 쌓고 이택(李澤)을 함주 대도독부사(咸州大都督府使)로 삼아서, 비로소 영주(英州)·복주(福州)·웅주(雄州)·길주(吉州)의 4주(州)와 공험진(公險鎭)에 방어사(防禦使)를 두었다.”라고 했지 외방어소 같은 말은 나오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세종실록》 〈지리지 함길도 길주목 경원도호부〉조에도 “고려의 대장 윤관이 호인(胡人)을 몰아내고 공험진 방어사(公險鎭防禦使)를 두었다.”라고 나오지 내방어소 따위도 나오지도 않는다. 무슨 수를 쓰든지 고려 북방 강역이 두만강 북쪽 700리 공험진이라는 사실을 왜곡하고 축소하기 위해서 설치하지도 않은 내방어소, 외방어소를 설치한 것처럼 우기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반도사관 추종하는 국사교과서
《민족문화백과사전》은 두만강 북쪽 700리의 공험진 선춘령을 지우기 위해서 온갖 꼼수를 나열한다. 먼저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을 끌어들인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윤관의 9성 개척 범위에 대해 두만강 북쪽 700리까지 진출한 것이 아니라, 길주 이남에 한정된다는 길주이남설과 함흥평야에 한정된다는 함흥평야설을 제기하였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윤관이 개척한 9성이 길주 이남에 한정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두만강 북쪽 700리 공험진설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을 끌어들였지만 그 속내는 이런 논리를 제시하면서 근거로 삼은 참고문헌에 있다. 참고문헌 중에 일본인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의 「윤관정략지역고(尹瓘征略地域考:1920)」과 일본 만주철도에서 편찬한 『만선지리역사(滿鮮地理歷史:1937)』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반도사관에 따라서 고려의 강역을 반도로 축소한 것을 추종하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버젓이 있었던 역사강역마저도 지우는 명색의 학자들이 아직까지도 국사 교과서를 집필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첫댓글 이제 우크라이나가 필패할 수밖에 없다.
방사능으로 많이 죽어나가야 해답이 나올 것이다.
앵글로개새들이 방사능으로 우크라이나를 불모지화 하려고 한 것에 대하여
국제사회에 업드려서 용서를 빌고 패권국에서 나가야 된다.
침략자로 공인을 받을 만큼 전쟁지역에서 팔불출질을 한다.
이제 망해도 될 만큼 영화를 누렸으니 사라지는 게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