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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gall.dcinside.com/singlebungle1472/1213401
현재 불가리아의 상황은 녹록치 못하다. 냉전 종식 이후에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 나라는 중국보다 못 산다. 출산율이 하락하고 젊은이들이 나라를 떠나면서 인구는 30년만에 900만명에서 680여만명으로 감소했다. 그야말로 동유럽 빈국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정치적 혼란도 뒤따라왔다. 불가리아는 지난 3년간 국회의원 선거만 5번 치뤘는데, 얼마 전에 연립 정부가 붕괴되면서 올해 6월 또다시 국회의원 선거를 하게 되었다. 정상적인 민주주의가 돌아간다고 보기에 힘든 상황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 대해 해외에서 잘 안 알려진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불가리아의 숨은 지배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바로 경호원, 정확히는 사설경비원들의 이야기다.
불가리아의 사설경비 사업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다. 오늘날 불가리아의 민간 경비원 숫자는 무려 13만명에 달하는데, 이 수치는 각각 2만 9천명의 경찰과 3만 7천명의 군인들을 합친 것의 두배에 달한다.
비교하자면 불가리아보다 인구가 7.5배 많은 대한민국의 민간경비원 숫자는 19만명이다.
사설경비 사업의 경제적 가치도 어마어마하다.
대부분이 국가의 추계를 벗어난 '비공식 분야'에 속하는 이 사업은 불가리아 전체 GDP의 21%를 차지한다고 추산된다.
비교하자면 한국에서 삼성의 GDP 대비 매출 비율은 14%, GDP 차지 비중은 5.7%다. 불가리아 기업의 75%가 경비업체를 고용하고 있으며, 민간인의 10% 역시나 이들의 고객이다.
어째서 사설경비 산업이 이렇게 잘나가게 된 것일까? 근본적으로 냉전 종식 이후의 사회 혼란 때문이다.
불가리아는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체제 전환에 어려움을 겪었다.
민영화 바람과 함께 경제 불황이 찾아오면서 정부는 경찰과 군인들의 숫자를 급격하게 감축했고, 운동 선수들에 대한 각종 지원도 백지화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각종 의료와 복지 서비스 혜택도 왕창 축소되었다.
남아있던 경찰들과 관리들은 부패해졌고 소도둑들과 범죄 조직들이 활개쳤다.
경제와 복지, 치안이 모두 박살나게 된 것이다. 국가의 행정력이 전반적으로 심각하게 퇴화했고, 범죄율은 급격하게 치솟았다.
국가 행정력의 쇠퇴는 범죄의 상승 뿐만 아니라 지하 경제를 활성화시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금을 피하며 사업을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분쟁이 일어날 경우 공권력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유사시 분쟁 해결을 위해 정부가 아닌 다른 주체의 도움이 필요해졌다.
설상가상으로, 불가리아의 사법 체계의 구조적 문제도 한 몫 했다.
불가리아의 사법부는 부패했을 뿐만 아니라 시스템이 너무 비효율적이어서 국민들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로 생겨난 수요는 공급을 창출했다.
공산주의 정권의 종식으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경찰들과 군인들, 전직 운동선수들이사설경비업 판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공산정권 시절의 인맥을 활용하여 사람을 모으고 계약을 따냈다.
수천개의 신생 경호 업체들이 창설되어 항만과 상점, 관공서와 유명인을 지키기 시작했다. 국가적 치안의 붕괴를 민간 기업들이 방지한 것이다. 이 업체들은 때때로 현직 경찰들보다 뛰어난 수사력과 행동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설경비업자들은 더 나아가 기본적인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주로 독거 노령층을 대상으로 간단한 청소와 정서적 지원을 맡는다. 그 밖에도 경우에 따라 생필품 배달이나 문화생활 지원, 일부 행정 업무 담당 등 여러가지 일을 수행하고 있다.
불가리아 정부도 이들의 존재를 환영하고 있다. 정부는 자체적인 행정력을 강화하기보단 이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지방 정부와 지역 사회가 민간 경비업체를 고용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다.
정부는 여러 가구들이 함께 돈을 모아 사설경비원을 고용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지원 중이다. 특히 행정력이 미약한 지방 소도시와 농촌에서 이들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이런 외곽 지역에서 사설경비업체들은 경찰력의 공백을 대신하고 있는데, 이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모두가 눈감고 넘어가는 부분이다.
이렇게만 보면 불가리아의 치안 민영화는 나름대로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오늘날 불가리아의 민간 경비 사업은 부작용과 어두운 면이 더 많은 사업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는 경비업체들의 직원 홀대가 있겠다.
민간 경비원은 생각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불안정한 직군이다.
불가리아에 존재하는 수천개의 사설경비업체들 중 영세 업체들은 종종 최저임금 이하의 급여를 준다.
또한 이 사설경비원들은 그들이 내거는 가치와는 달리 범죄와 연루된 경우가 많다. 이들은 보호비 갈취와 매춘 사업, 마약 밀수와 인신매매, 심지어 청부살인에 뛰어들기도 한다. 때로는 고용주들의 지시에 따라, 때로는 자체적으로 말이다.
심지어 불가리아의 마피아들도 이들과 깊숙히 엮여있다.
마피아들은 자신들의 불법 사업을 사설경비업과 같은 합법 사업을 통해 위장하고 세탁하는 것을 즐긴다. 여러 사설경비업체들은 사실상 마피아 2중대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불가리아에서는 범죄로부터 의뢰인을 지킨다는 자들이 오히려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는 우스운 상황이 자주 보인다.
공식 범죄율은 상당히 낮은 편이지만, 상술한 것과 같이 기록되지 않는 조직범죄는 만연하다.
사설경비업체들과 이들의 탈을 쓴 범죄 집단들은 점점 나라를 통째로 잠식하고 있다.
상술했듯이 민간경비원들은 이미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이 맡아야 마땅한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불가리아 정부는 분명 법적으로 사설 경비원들이 활동할 수 있는 분야를 강력하게 제한하고 있으나, 이런 규제는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 행정을 집행할 사람도 없고 지역 주민들도 민간경비원들의 존재와 활동을 암묵적으로 넘어간다.
국가 안보와 관련된 분야조차 이들에게 상당 부분 민영화 되었다.
주요 발전소와 항만, 심지어 군사 기지까지 이들의 관할이었다. 값이야 싸지만 전문성이 부족하기에 리스크가 컸다. 군사 시설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사보타주가 수차례 일어나자,불가리아는 뒤늦게 사설경비업체들의 군사시설 관리를 막았다.
그러나 아직도 해당 관행이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는 증언이 넘쳐난다.
이런 행태는 전부 정치권력과의 유착 덕분에 가능한 일들이다. 사설경비업은 마피아들이 유력 정치인들과 기업인들 같은 불가리아의 엘리트 층에 접근하기에 최적의 방안이기도 하다. 경호원만큼 그들과 가까이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다. 국가의 정치경제적 권력과 암흑가의 권력이 가장 밀접하게 교류할 수 있는 창구가 바로 사설경비업이다.
정치인들은 자신들과 엮여있는 사설경비업자들을 위해 새로운 보안 계약을 따내거나 경쟁 업체들의 계약 입찰을 방해한다. 또한 사설경비업체들이 저지르는 범죄들을 덮어주며 그들을 사법부로부터 보호한다.
업자들은 그 댓가로 정치인들에게 경호를 제공하는건 물론 사업 수익의 일부를 정치인들의 뒷주머니에 찔러넣어준다. 일부 사설경비업체들은 아예 자신들과 협력하는 정치인을 지지하라고 기업체와 주민들을 대상으로 협박을 시전하며 재선을 도운다.
심지어 반대파를 청부살인까지 할 때도 있다.
이런 부적절하고 위법한 관계는 기업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은 때때로 역으로 자신들을 고용한 영세 기업들을 협박해서 돈을 갈취한다.
운이 좋은 사설경비업체들은 자신들을 고용한 기업의 지분을 얻거나 내부 정보를 얻으며 때로는 고용 기업이 담당하는 사업에 진출해 협력하기도 한다.
국가권력은 이런 사태를 해결하는데 무관심하다.
수천개의 민간 경비 업체를 규제하고 감독해야 하는 내무부는 해당 부서에 고작 7명의 직원을 배정해놓았다.
경찰들 역시나 사설경비원들을 사실상 방치한다. 업계에 경찰 선배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기도 하고, 본인들도 언제 민간 경비업체에 취직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현재 불가리아의 재계, 입법부, 행정부, 경찰, 군대, 지방정부, 갱단과 마피아는 모두 사설경비업체라는 끈끈하고 더러운 실로 얽히고설켜있다. 민간경비업의 가죽 아래에서 이들 간의 경계가 희미해졌고, 결국 나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범죄 왕국으로 재탄생했다.
이러한 부패상의 살아있는 화신이 바로 보이코 보리소프 전 총리다. 장교학교에서 군복무를 한 그는 이후 경찰로 근무하다가 1990년 은퇴, 바로 사설경비업 회사를 차렸다. 10년간 경호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그는 이후 내무부 장관과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의 시장까지 하더니 2009년 끝내 총리 자리까지 올랐다. 보리소프가 가는 곳마다 사설경비업체들의 권한이 늘어났고 부패는 심해졌다.
나라 전체가 사설경비업체들을 매개체로 온갖 부패에 잠식되어 허덕이고 있는 상황이니 불가리아 국민들도 당연히 분노할 수 밖에 없다. 2021년, 보리소프는 마침내 반-부패 중점 정당에 의해 쫓겨났다. 그러나 현재 불가리아의 정치판이 아수라장이 되면서 개혁과 부패척결의 목소리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사설경비원들에게 나라가 통채로 잡아먹힌 불가리아. 이 나라의 국민들이 부패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란 당분간 불가능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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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설 군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