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서기와 새치기
나이가 칠십이 넘은 우리 세대는 줄서기에 익숙한 세대이다. 50년 6.25동란이 끝난 후 정부에서 밀가루 등 배급 물품을 나누어 줄 때 줄서기는 필수이었지요. 군대에서 사관후보생일 때 선착순으로 달려가 줄도 서보았고, 또 대오를 맞추어 행군도 해보았다. 최근 페이스 북에서 누가 조선시대의 평민과 양반이 평준화가 된 것이 줄서기 때문이었다고 쓴 글까지 보았다.
그런데 줄은 정말 잘 서야 한다. 1987년 국제 신장학회에 참석하려고 런던에 갔었을 때의 일. 대한항공을 타고 취리히 공항에서 브리티시 에어로 비행기를 바꾸어 타야 하였다. 잠시 동안이라도 일단 입국을 하였다가 다시 출국 수속을 밟아야 하였는데. 그 며칠 전 일본의 적군파가 이 공항을 습격하여 수 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직후이었다. 짧은 줄에 서고 보니까 내 앞자리의 아랍계인 들은 한 사람 한 사람씩을 두터운 명부를 보며 일일이 사진을 대조해보고 확인하느라 엄청 늦어지고 다른 줄은 이미 끝나 나가버렸다. 얻은 교훈은 ‘줄은 긴 줄에 서라.’
2002년 유럽신장학회가 니스에서 열렸을 때. 겨우 잡은 숙소인 깐의 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귀국하러 이른 새벽 도착한 니스 공항에서도 마찬가지. 좀 짧은 줄에 섰더니 체크 인 카운터의 잠을 제대로 못잔 탓인지 눈이 퉁퉁 부은 여직원이 짐을 부쳤다. 암스테르담을 경유하여 서울에 도착을 하니 내 짐이 오질 않았다. 니스공항에 연락을 하니까 행선지 짐표가 떨어져 나간 가방하나가 수하물 찾는 곳에서 빙빙 돌고 있다는 것. 가방의 크기, 색깔과 모양을 말하니 바로 내 짐이었다. 행선지 짐표를 정확하게 맞추어 붙여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 다른 짐에 붙어 버린 것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새치기를 하는 수도, 당하는 수도 있기 마련이나 나를 포함한 대개의 사람들은 주로 당하는 편. 그런데 새치기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상습범이 아닐까? 아무 줄만 서면 새치기, 심지어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타는데도 새치기하는 놈을 보면 “급하면 계단으로 올라가세요.“라고 점잔하게 한마디 해준다. 그래도 번호표 발부라는 자동 시스템이 도입되고, 귀성표사려고 야단법석을 떨던 것도 인터넷 예약 시스템으로 이런 시비가 줄어들어 다행이다.
군대에 훈련을 마치고 신병으로 자대 배치를 받은 내 친구. 식당에서 식판을 들고 배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새치기하는 고참병한테 주먹을 한 대 날렸다. 불려가서 상관 구타란 죄목으로 영창을 가게 되었는데. 때마침 특전사 창설부대 모집공고가 났다. 군대생활을 해본 사람을 알겠지만 창설부대가 고달픈 건 모두가 아는 사실. 지원자가 없었으나 이 친구가 첫 번으로 지원하여 영창 생활을 면하게 되었다.
십년도 더 전에 2월 여행 상품이 덕유산 설천봉 눈 구경과 논산 딸기 체험이었다. 운전도 하기 싫은 차 신청을 하였다. 먼저 곤도라를 타고 설천봉에 내려 사방에 내린 눈구경을 푸지게 하고 난 뒤 휴게소에서 따끈한 차 한 잔까지 마시고 내려왔는데. 길게 늘어선 남자 화장실 줄 꽁무니에 노인네가, 사실 지금 나보다는 젊었겠지만, 소변이 급한지 쩔쩔 매고 있었다. 옆을 보니까 노인 부부, 그 아래대 부부, 그리고 그 아래대 손자까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어쩔 줄을 몰라 하기에.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가족에게 다가가 모두들 다 듣도록 큰 소리로 줄의 맨 앞쪽에 가서 양해를 구하고 보시라고 하였더니 쉽게 해결하고 고마워한다. 뭘 나도 조금만 있으면 저렇게 될 터인데. 내리 3대가 나한테 ‘선생님, 고맙습니다. 처가 옆구리를 쿡 지르며 “당신 오늘 참 잘 했어요." 비록 새치기는 시켰지만 만약 내가 급해서 앞줄로 가서 먼저 일 좀 보겠습니다. 하였으면 뭐라고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을 터.
산행을 하다보면 피하기도 힘든 길에서 새치기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길이 넓을 때는 산행속도가 빠른 사람들에게 옆으로 붙어서 뒤 팀을 먼저 보내어 줄 수도 있으나 좁거나 도봉산 포대능선 같은 쇠줄을 잡고 갈 때는 도리 없이 순서대로 가는 수밖에 없다. 한번은 이른 봄 불광동에서 올라 족두리봉 산행을 하고 내려오는 길바닥은 향이 나빠 아직 얼음이 녹지 않아 미끄러워 조심조심 내려오고 있는데. 젊은 애들이 휙 하고 새치기를 하고 먼저 내려가더니 우리들이 보는데서 미끄러지며 서로 잡고 나가떨어진다. 속으로 고소해하며 자업자득이니 모른척하고 가야지요.
이십 여 년 전 만하여도 우리 중, 고등 등산모임은 해마다 1월 1일 북한산 백운대에서 일출을 보고 간단한 시산제를 지내어 왔다. 일출 시간이 아침 7시 40분경이라 적어도 5시 이전에 출발하여야 일출 전 백운대 정상에 올라갈 수 있다. 까딱하다가는 오르는 중간에서 일출을 보기도 하니까. 올라가서 춥고 바람 부는 그 곳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다 일출을 보며 새해 소원을 빌고, 다 같이 애국가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고 하산한다. 누구나 빨리 하산을 하고 싶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쇠줄을 잡고 순서를 기다리며 내려온다.
어느 정초. 그 때 젊은 한 가족이 일출 후 산정에서 얼어붙어 있는 바위를 가로질러 미끄러져 내려오고 있었다. 어차피 내려와서 하산하기 위해서는 다시 정식 등산로로 합류를 하여야 하는 법. 이때 내가 “죽을 때도 새치기 하세요”하고 큰 소리로 외쳐 대니 모두들 깔깔대며 웃고 우리의 위세에 눌러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 만 불그락 풀그락하며 줄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만약 사고라도 나면 그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사람들까지 부딪쳐 다칠 수도 있는 상황. 또 사고가 발생하면 정초부터 험한 꼴을 보아야 하고, 어쩌면 우리 일행이 맡아야 할 사고 뒤처리는 얼마나 힘이 들며, 그 복잡한 등산로가 한동안 무지하게 정체가 일어나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그렇게 시간이 급하면 집에서 느긋하게 TV로 전국각지의 일출을 볼 수도 있는데. 하여튼 그 가족들은 정초부터 기분 나쁜 소리를 들어 그 해의 소원을 빌은 것은 무효가 되고 아마도 그 해는 1년 내내 운이 안 좋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