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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빛에 반응하는 지도자 (막3-57)
2024년 9월 10일 (화요일)
찬양 :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본문 : 막11:27-33절
☞ https://youtu.be/oTZz2SrnYFk?si=2aGbLG4NfiKLhlrp
어제 작은교회 심방을 했다. 작은교회 심방은 한 사역자들의 부르심에 대한 열정과 은사를 보게 되는 소중한 자리가 되곤 한다. 이제 은퇴의 자리들을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고민하시는 두 분의 소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행복했다. 주님 시작케 하신 뜻대로 끝까지 인도될 수 있도록 건강함으로 마무리하며 주님의 뜻 온전히 이루게 하소서.
오늘은 중보기도 세미나 두 번째 시간이 있고, 성경 맥잡기 강의와 스페이스라 젊은 세대 사역자들이 모여 10월 15일에 시작하는 왓이프 개척학교를 준비하고 예플루언서 팀들이 모여 하번기 모임을 계속한다. 주님 인도하소서.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성전 정화 사건은 성전을 거룩함의 장소로 회복시키기 위해 예수님이 행하신 상징적이고 중요한 사건이다. 이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성전의 거룩함을 상업적 이익으로 훼손한 것에 대한 예수님의 강력한 경고였다.
그러기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그리고 당시 예루살렘에서 살던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쫓아내신 사건은 아마도 큰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예수님을 향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특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그저 한 가지 질문을 한다. 28절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분명 예수님의 행동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가지고 있던 권위에 대한 엄청난 도전이었다. 당시 성전은 유대교 지도자들, 특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있어 그들의 종교적 권위와 권력을 상징하는 중요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해 예수님을 향해 그 어떤 조치도 없이 <무슨 권위로,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고 묻고 있다.
예수님은 아무런 무력적 힘이 없었고, 배후에 그 어떤 로마 권력의 비호를 받지 않았음에도 이들은 엄청난 손해와 권위의 손상에도 이런 질문밖에 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그들도 알고 느끼던 진리였기 때문이다.
무력의 힘은 공포와 굴복을 만들지만, 그러나 진리의 힘은 그 강력한 권위와 제도와 이권을 무력화시키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진리이신 주님의 이런 행동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능력이기에 이렇게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강한 것 같은 권력과 무력은 사람들의 반응에 약하다. 예수님의 행동에 예루살렘에 있던 많은 사람이 따랐기에 이들은 섣불리 행동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지금 질문을 통해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사람들의 인기를 빼앗으려고 교묘한 질문을 만든 것이다.
만약 예수님께서 자신의 권위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대답한다면, 그들은 그를 신성모독으로 몰아갈 빌미로 이용할 것이었다. 만약 예수님이 단순히 인간적인 권위를 주장했다면, 그들은 그의 권위를 부정하고 대중 앞에서 그를 무너뜨리려 했을 것이다.
분명 그들도 예수님의 행동이 담긴 진리의 역동성을 느꼈을 것인데 이들은 어찌하지 못하는 하늘 권위에 순복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켜내기 위해 이런 교묘한 논리를 가지고 함정을 판 것이다.
참 인간이란 존재의 연약함을 다시금 깊이 묵상한다.
이런 인간들의 얄팍한 논리에 대해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신다. 30절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
예수님은 인간의 얄팍함을 간파하시며 그들이 가장 힘들어 가는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통해 얄팍한 세상 지혜를 사정없이 뚫어버린다.
당대 사람들이 분명 세례요한을 하늘로부터 온 선지자로 알고 있는 상황에서 하늘로부터라 하면 왜 믿지 않느냐는 질책을 받을 것이요,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대중들로부터 외면당할까 두려워 고민 끝에 이렇게 대답한다. 33절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그들은 스스로 영적 지도자로서의 무지함을 자백하고 있다. 마치 오늘날 중요한 사실에 대해 불리하면 <기억나지 않는다. 모른다> 하듯이 말이다. 지도자의 자리는 책임을 지는 자린데 당대 사회의 그 중요한 사실을 모른다고 말하는 이런 영적 지도자의 무책임을 오늘 아침 묵상하게 된다.
이 본문에서 예수님의 지혜로움을 나타내고 있지만 오늘 아침 내게는 영적 지도자로 부름받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무능과 무책임을 묵상하게 된다.
나는 과연 어떤 지도자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가?
이 시대와 사회와 구체적인 내게 맡겨주신 자리에서 나는 그 모든 일에 책임감 있게, 지혜롭게 감당하고 있는 것일까?
라마나욧선교회, 목회사관학교, 스페이스알 젊은 세대 사역, 웨이브리즈플랫폼 이 모든 사역이 진리의 바탕위에 서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가? 혹시 예수님께서 채찍을 들고 쫓아 버리실 것은 없는가?
혹은 주님을 향해 무책임하게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라고 넘어가고 있는 모습은 없는가? 오늘 아침 내 모습에는 <내가 알지 못합니다>라는 이 말이 울림을 가지고 들려진다. 무책임한 모습으로 세밀하게 주님의 뜻을 따라 섬기지 못하는 모습은 없는지 ~ 특히 웨이브리즈플랫폼을 향해 이런 태도가 있었음을 자백하며 회개한다. 주님 ~
영적 지도자는 진리 앞에서 모른다는 무책임한 태도를 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권위와 사명에 책임감 있게 응답해야 한다. 진리의 빛 앞에서 겸손히 회개하고, 주님이 맡기신 사역에 충실하게 응답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 진리 앞에서 회개하지 않는 지도자는 결국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를 잃게 된다. 언제나 진리의 빛 앞에 서서 우리의 약점을 겸손히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하고, 주어진 상황의 유불리를 넘어 책임을 지는 지도자가 되자.
주님, 오늘도 귀한 말씀을 통해 이 종에게 있어야 할 자리를 알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이 일하심으로 나의 삶의 약점이 드러날 때 겸손히 그 진리의 비춤에 반응하며 회개하고 진리의 자리로 나갈 용기있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아울러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그 무엇에든지 <모른다>하지 않고 책임질 줄 아는 지도자로 서게 하소서. 오늘도 진행하는 중보기도 세미나를 통해 오직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중보기도 제목>
웨이브리즈: 플랫폼이 새로운 도약을 이루며 주님 뜻 이루게 하소서.
목회사관학교: 진짜 목사가 세워지는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재정적 필요: 100명의 새로운 후원자와 3억의 출자금이 공급되게 하소서.
박정제 목사와 팀원들: 성령을 충만하게 하소서.
스페이스 알 사역: 젊은 세대 사역자를 일으키게 하소서.
틴케이스 공간: 젊은 세대를 세우는 공간으로 소중히 쓰임 받게 하소서.
작은교회 부흥: 2024년 작은교회 부흥을 이루는 해가 되게 하소서.
충주 라마나욧: 세워지는 과정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