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코리아컵, 2000 시드니올림픽 본선, 2000아시안컵, 2001 컨페더레이션스컵
△A매치 데뷔= 1999년 6월12일 멕시코전
△A매치 첫 득점= 2000년 7월28일 대 중국전
△A매치 경력(2002.4.12일 현재)= 48경기 출장, 3득점.
`올림픽대표팀 부동의 윙백에서 히딩크사단의 만능 미드필더까지.'
지난 99년 6월 코리아컵때 처음 태극마크를 단 이후 3년 동안 낙오없이 대표팀을 지켜온 축구국가대표팀의 `꾀돌이' 이영표(25.안양LG)는 한일월드컵을 발판삼아 더 큰 무대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올림픽팀에서 함께 뛰며 한국축구 미래의 주역으로 꼽혔던 여러 스타들의 거품이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이영표 만큼은 대표팀에서 조금도 흔들림 없는 입지를 지켜왔다.
이영표는 대표팀 내 체력측정때면 이천수(울산), 박지성(교토) 등과 선두를 다투는 `강철체력'에 100m를 11초대에 주파하는 스피드, 국내 정상급 드리블 실력을 두루 갖춘 미드필드의 재간꾼. 그 중에서도 특유의 `헛다리 집기'묘기로 상대 수비수를 제치는 드리블 실력은 종종 교착상태의 경기에 생기를 불어 넣는 동시에 관중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그만의 트레이드 마크다.
대학입학을 앞두고 무릎을 크게 다쳤던 탓에 청소년대표 경력이 전혀 없는 이영표는 건국대 4학년이던 지난 99년 4월 뒤늦게 올림픽대표로 발탁된 뒤 2개월만인 6월 코리아컵에서 국가대표로 승격됐고 이듬해인 2000년에는 대표팀에서 확실한 입지를 굳힌다.
이영표는 그해 5월 올림픽팀과 유고대표팀과의 평가전 1차전에서 골키퍼마저 손을 쓰지 못한 상대의 슈팅을 두차례 막아내며 `제2의 골키퍼'라는 별명과 함께 주목을 받았고 그해 7월 한중전에서는 A매치 데뷔골로 기록된 결승골을 성공시키는 등 `화려한 날들'을 보냈다.
올림픽 대표 시절 특유의 재치있는 돌파를 앞세워 왼쪽 윙백으로 활약했던 이영표는 히딩크 사단에서 김남일, 박지성 등과 더불어 공수조율의 핵인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로 정착한다.
지난해 말까지 플레이메이커 없는 미드필더 운영을 고집했던 히딩크체제 아래 이영표는 본업이던 윙백 대신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하며 상대 공격의 일차저지선을 맡는 한편 활발한 움직임으로 공격을 지원, 붙박이 주전으로 자리를 굳혔다.
탄탄대로를 걷는 듯 했던 이영표에게도 잠깐의 위기는 있었다.
발목부상으로 9월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에 나서지 못하는 등 잠시 주춤하는 동안 같은 포지션의 김남일이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확실한 주전으로 떠올라 대표발탁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주전자리를 위협받았던 것. 하지만 이영표는 올초 북중미골드컵에서 활발하게 측면 및 중앙공격에 가담하는 미드필드의 `프리맨' 역할을 충실히 소화함으로써 수비에 치중하는 김남일과 조화를 이뤄 내 히딩크 감독의 신임을 재확인한다.
더욱이 이영표는 지난달 27일 터키전에서 상대가 예상했던 전형과 다르게 나오자 오랜만에 자신의 `고향'인 왼쪽 윙백으로 위치를 옮긴 가운데 제 몫을 해냄으로써 치열한 베스트일레븐 경쟁에서 생존력을 끌어올렸다.
다만 이영표가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좀 더 큰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기 위해서는 약점으로 꼽히는 킥력과 센터링능력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영표는 "드리블로 상대를 돌파할때면 쾌감을 느낀다"며 "그런데 그 쾌감 때문인지 상대를 제치고 나면 갑자기 집중력을 상실해서 센터링 실수를 하는게 문제"라며 멋쩍게 웃는다.
이영표는 "먼훗날 2002년을 뒤돌아 봤을때 아쉬움 보다는 `그때 참 멋있었지'라고 회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뒤 어릴때부터 꿈이던 이탈리아 무대로 진출하고 싶다"고 포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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