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눅17:11~19)
여러분 신앙인은 감사의 생활을 봐서 세 종류로 분류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는 불신앙의 사람이요,둘째는 좋은 일이 생길 때만 감사하는 얄팍한 신앙의 사람이요. 셋째는 좋은 일이 생기나 나쁜 일이 생기나 전천후 감사의 사람인데 가장 큰 믿음의 사람입니다. 가장 깊은 은혜의 사람은 괴로우나 즐거우나 성공할 때나 실패할 때나 부요할 때나 가난할 때나 언제든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전천후 범사에 감사이지요. 그래서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입니다.
여러분 ! 우리가 한 해를 돌이켜 볼 때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받았습니까?. 때로는 손해를 보기도 하고, 때로는 속상해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고, 때로는 산다는 것이 너무 힘들어 살아갈 용기마저 잃어버린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계산해 보면, 고난을 이길 믿음도 주셨고, 썩어지지 않을 산 소망도 주셨고, 아침에 일어나 인사할 수 있는 가족들을 주셨고, 일할 수 있는 건강과 일터를 주셨고, 나아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데 사마리아와 갈릴리 접경 사이로 지나가시고 계셨습니다. 그러다가 한 마을로 들어가셨는데 나병환자(문둥병자) 10명이 예수님을 향해 소리를 지릅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그들이 왜 그렇게 주님을 향해 소리를 지른 것일까요? 거기에는 나름대로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바가 있었기에 그리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나환자기 때문에 사람들 사는 동네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 병도 치료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나병은 하늘이 내린 병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족과도 떨어져 살아야 하고 어딜 가도 반겨주는 사람이 없는 질병이 나병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라는 분은 모든 병자를 고쳐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가보자 하고 찾아온 것입니다. 소망을 가지고 용기를 내어 예수님을 찾았어요. 그리고 만났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주님이 그들은 찾아가셨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사건 땜에 11절 보면“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직접 가는 길 말고 일부러 돌아가신 길을 보면, 이 열 명의 나병 환자 때문에 예수님은 위대한 사명을 가지고 가신 예수님이 예루살렘 가시는 길을 곧바로 안가시고 돌아서 가시는 것입니다. 이 열 명의 나환자를 만나기 위하여 예수님은 돌아가신 것이지요. 여기에 은혜의 은혜됨이 있지요.
열 명의 나병환자가 찾아나서는 순간 예수님은 일부러 돌아서 찾아가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와 주시기 않았으면 우리는 여기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돌아서 우리를 찾아오시지 않았다면 여기 이 자리에 없을 사람 많아요.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어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신 것입니다.14절.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 레14;2, 제사장에게 검증 받기 위한 절차) 말씀을 듣고 가더니 가다가 고침 받았어요. 예수님 말씀대로, 가서 제사장에게 보이기도 전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열명 모두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 명을 제외하고 아홉 명은 가버리고 없었어요. 17절하 “아홉은 어디 있느냐?” 예수님의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15-16절 보니까요 ‘그중에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이 자기가 병 나은 것(헬, 이아오마이- 회복하다,치료하다) 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께로 돌아와 엎드려 주님께 감사(’유카리스톤‘)를 했습니다. (엎드려-상대에 대한 극도의 존경) 그리고 성경은 이 사람을 가리켜 “그는 사마리아인이라” 고 꼭 집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냐면 나머지는 유대인이었거든요 사실 유대인들이 벌레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여긴 사마리아 사람은 돌아왔던 것입니다. 너무나도 감사한 것이지요.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치 아니한 패역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방인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수께 나옴으로 결국 유대인에 앞서 구언에 참여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문제는 왜 다른 사람도 다 나았는데 왜 한사람만 주님께 돌아와 감사를 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변명과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이들의 이런 태도를 보면 결국 아홉 명은 은혜에 멀어지는 사람이라는 것은 스스로 입증한 것이지요.
결국 은혜를 아는 자라야만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9절에 보면 사마리아여인에게는 말씀하십니다 “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즉 구원받았다고 선언하십니다.(열두 해 혈루증여인에게도, 송경 바디매오에게도).이는 육체적인 구원이 반드시 영원의 구원연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도 구원의 은혜를 모르면 감사가 안 나오고 불평이 나옵니다. 은혜를 모르면 감사가 없습니다. 여러분! 이 아홉 명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돌아보면 내가 잘나서 예수 믿게 된 것 아닙니다. 내 잘나서 부르심 입을 만 해서 부르심을 입은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주의 은혜가 아니면 나의 나됨이 있을 수 없어요. 마틴루터 ‘빨래를 짜봐라 물이 나올 것이다. 성경을 짜봐라 피가 나올 것이다’ 구약을 짜봐라 제물의 피가 나오고 신약을 짜봐라 예수의 피가 나올 것이다’ 그랬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찬식을 합니다. 예수님이 내 대신 피흘려 죽으신 대속의 희생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피를 보지 못하면 영적인 장님이라고 합니다. 죄인인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받은 자인 것을 잊는 순간 우리는 영적인 장님이요 신앙이 병든 것이고 교만해져서 살아가면서 진정한 감사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아홉 명이 주님께 돌아와 감사치 못한 이유가 뭘까요?누구나 다 변명거리가 있을 수 있지요. 치료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우선은 제사장에게 가서 완치 판정을 받는 것이 우선이고 그리고 가족에게 가서 이 기쁨을 전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감사하자는 그들은 우선순위가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오늘에 대한 감사가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내일로 미루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홉 명 중 상당수는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감사하죠. 왜 감사한 마음이 없겠습니까? 제 가슴에는 주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가득합니다. 마음이 중요한 것 아닌가요?” 아홉 명 모두 마음속에는 감사했을 것입니다. 이런 기적을 체험하고도 감사가 없다면 사람이 아니죠? 천벌처럼 여기던 나병에서 해방되었으니 감사가 넘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감사가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마음으로도 하지만 행동화할 때 인정을 받습니다. 본문의 사마리아인은 행동으로 감사를 실천했습니다. 16절.“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성도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그리고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다른 아홉 명과 다른 점입니다.
왜 감사는 때를 놓치면 안 되는 것일까? 여기에 아주 중요한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감사의 때를 놓치면 받은 은혜를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시간이 지나면 다 잊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망각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수없이 많은 은혜를 누리고 살면서도 시간이 흐르면 그 은혜를 다 잊습니다. 우리가 사람에게 받은 은혜는 잊어도 안 되겠지만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는 더더욱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시편 50편 22절에 이하 아주 무서운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나님을 잊으면 하나님이 찢어버리신답니다. 그러나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구원을 보이신다고 하십니다. 그러기에 감사의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2. 감사의 때를 놓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릴 기회를 잃게 됩니다.
그 사마리아 사람 한사람이 감사했을 때 주님이 하신 말씀이 뭡니까? 17~18“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
은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오직 이방인 사마리아인 이었지요 그래서 그는 그 은혜를 생각하고 주님 앞에 나온 것입니다. 그는 영육이 구원받은 증거를 가진 것입니다.
이 이방인 한 사람이 감사를 드렸을 때 주님은 그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드리는 감사는 단순한 감사가 아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행복하길 원하신가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많은 것을 가졌어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진정한 행복이 없다’ 고 했습니다. 여러분이여!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5:18) 저는 요즘 다니엘 기도회에 나와서 간증하는 것을 보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결같이 그들이 어떤 상황과 환경가운데에서도 감사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보다 더 큰 믿음의 증거는 없습니다. 어떤 환경 조건 속에서도 감사가 있다면 우리는 그 믿음으로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감사하는 삶은 신앙의 본질이며 하나님의 뜻이며 풍성한 삶의 비결입니다.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저 천국에 들어갈 때 천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열쇠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는 이미 이 천국의 패스워드가 입력되어 있습니다. 그 패스워드는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내 죄가 모두 용서받았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을 가지면 언제라도 들어갈 수 있는 천국열쇠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도 천국열쇠가 필요합니다. 이 천국의 열쇠는 사용할 수도 있고,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그러면 이 땅에서 천국의 비밀을 누릴 수 있는 패스워드는 무엇일까요? 바로 ‘감사와 찬송’입니다. 시100:4에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살아가는 패스워드는 바로 ‘감사와 찬송’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와 찬송은 하늘의 문을 여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감사는 행복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똑같이 예수님을 믿어도 감사와 찬송의 창문이 열린 자는 하늘의 은혜와 기쁨을 맛보며 삽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하늘의 은혜와 기쁨을 누리며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