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1786~1856)의 제주도(대정)유배 시 주변인물과과 시대상황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광해군 시절 영창대군을 죽인자를 처벌하라는 상소를 올렸다가 제주 대정에 유배 온 동계 정온이 다녀간 후,
200여년 후인 1840년에 추사가 이 지역으로 유배온다. 그는 오현으로 모시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추사가 건의하여 이 곳(현재 보성초등학교 입구)에 '동계유허비'를 세웠다.
정조1년(1778년) 제주여인 홍윤애와의 진한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인 조정철(1751~1831)이 1779년 제주에
유배 와서 27년간의 유배를 마치고 1805년 돌아간다. 그는 후에 복권되어 제주목사로 부임하기도 했으며
형조판서까지 지냈다.
(아래 사진은 유수암리에 있는 홍윤애 묘)
정조19년(1795년) 거상 김만덕(1739~1812)이 굶주린 백성을 규휼했으며 정조을 알현하고 금강산을 구경하고
돌아온다. 추사는 1840년 그를 기리기 위해 '은광연세'(恩光衍世/은혜의 빛이 온 세상에 번진다)라는 글을
편액하여 올린다.
1802년 정난주(1773~1838)가 1831년 제주(대정)에 유배 와서 37년간 생활하다 1838년 생을 마감한다.
정난주가 죽고 나서 2년 후 1840년 추사가 제주 대정에 유배 와서 9년간의 제주유배생활을 마치고 1848년 돌아간다.
정난주가 유배 와서 100년 후인 1901년 이재수(1877~1901)가 천주교인과의 충돌사건인 '이재수의 난'이 대정에서
발생한다. 정난주가 살고 지내던 대정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더욱 아이러니하다.
추사관 입구인근에는 이재수 등 난을 이끌던 장두 3인을 기리는 삼의사비가 세워져 있다.
정난주가 생을 마감하고 나서 100년이 지난 후 1948년 제주도에서는 4.3사건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4.3사건을 일으킨 반란군의 초대사령관 김달삼(1925~?)은 본명이 이승진이고, 이승진은 추사 김정희가 기거하던
집 주인 강도순의 고손녀 사위이다. 김달삼은 강도순의 증손자이며 박헌영의 선전부장을 역임한 장인 강문석이
쓰던 가명을 사위인 이승진이 이어받았다고 한다.
진압군 초대 연대장 *김익렬 중령과 반란군 초대 사령관 김달삼과의 평화회담도 대정 보성초등학교에서 이루어졌다.
* 김익렬 연대장은 후에 예비역 중장으로 예편하였으며, 제주인의 무고한 학살을 막기 위해 노력한 한국판 쉰들라라는
평과 함께 4.3평화공원 의인관에 모셔진 인물인데, 필자가 모셨던 CEO이자, 나의 결혼시 주례선생님이기도 하다
<관련상세자료>
* 조정철과 홍윤애 : http://baboin79jejutour.tistory.com/207
* 김만덕 : http://baboin79jejutour.tistory.com/32
* 정난주 : http://baboin79jejutour.tistory.com/145
* 추사유배지와 추사관 : http://baboin79jejutour.tistory.com/165
* 이재수와 삼의사비 : http://baboin79jejutour.tistory.com/163
* 제주도 4.3사건 : http://baboin79jejutour.tistory.com/62
첫댓글 내 컴퓨터에는 사진이 안보이는데!!!
나만 그런가요????????????????????
게시글 군데 군데 고유명사가 오자가 가끔 보입니다("추유배지와 추사관"에는 추사가 축사로 표기된데가 많습니다)
좋은 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이제 정상적으로 사진이 뜨네!!!!!!!!!
대단한 작품입니다...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