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돼면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가을 국화논쟁을 보면서 올려봅니다.
작가 서정주(1915~ )
전북고창에서 태어났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벽'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같은 해에 김광균, 김달진, 김동리 등과 동인지 '시인부락'을 주재하면서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시작했다.
1938년 첫 번째 '화사집'을 발간, 악마적이며 원색적인 시풍으로 문단의 비상한 관심을 끌어 '한국의 보들레르'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해방 후 두 번째 시집 '귀촉도'를 발간, 이시기부터 그의 경향은 초기의 악마주의적인 생리에서 벗어나
동양적인 사상으로 접근하여 심화된 정서와 세련된 시풍으로 민족적 정조와 그 선율을 읊었다. '신라초'
이후부터는 불교 사상을 기조로 한 신라의 설화를 제재로 본격적인 진리의 세계인 영원주의의의 이념과
선적인 정서를 부활시켰으며, 유치환과 더불어 '생명파' 시인으로 불리어졌다.
그의 사상적 기조는 영원주의, 영생주의이며, 문화사조상의 배경은 주정적 낭만주의, 예술관은 심미주의적
입장이다.
'신라초' 이후에 더욱 진경을 보인 작품 50여편을 모아 시집 '동천'을 발간, 신라와 불교의 세계를 한층 더
심화시켰다. 그를 종합적으로 대표하는 작품 '국화옆에서'는 한국 시사를 장식하는 걸작으로 평가되며
지금까지 널리 애송되고 있다.시론의 분야에서도 활동하여 '시창작교실' '시문학개론' '한국의 현대시'
등의 저작이 있다. 1972년 서정주 문학전집 전 5권이 발간되었고 세계기행시집 '서으로가는 달처럼'이 있다.
국화 옆에서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필라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아래사진은 2004년도 사진
아래부터
2005년도 국화축제
산 언덕에 국화가 보인다.
미당 문학관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정주 묘지
서정주 묘지
산 전체가 국화
지금 고창은 미당의 국화 잔치로 활짝?
전북지부 등, 대대적인 미당 기념사업에 반대 운동 준비 중
민족문제연구소
대표적 친일작가인 미당 서정주를 미화하고 기념하기 위해 최근 설립된 사단법인 <고창국화축제전회>
(www.고창국화축제.com)는 11월 3일 미당시문학관에서 국화축제 개막식을 갖는 한편 중앙일보사가
매년 시상하는 <미당 시문학상> 시상식도 처음으로 이 곳 고창에서 갖기로 함에 따라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를 비롯해 전북도내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해 만든 <친일청산 전북시민연대> 등이 이를 규탄하기
위한 집회를 3일 오전 미당시문학관 앞에서 열 예정이다.
사단법인 <고창국화축제전회>(대표 정원환 고창군의회 의원)가 주관하는 고창국화축제는 10월 29일부터
11월 26일까지 약 한 달 간 미당시문학관과 문학관 맞은편 서정주 묘역에 조성된 국화꽃밭 등에서
진행되는 그야말로 미당을 기념하고 추앙하기 위한 대대적인 행사로 꾸며져 있는데 미당 시문학상
시상식 당일에는 삼성 노블카운티 오케스트라와 장사익씨 등의 공연을 비롯해 중고등학생들의 백일장
대회도 열릴 예정이다.
미당 기념사업 반대운동을 몇 년째 주도하고 있는 최재흔 전북지부장은 이에 대해 "미당문학관측은
몇 년 전 전북지부와 합의로 미당의 친 문학관에 상설 전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당의 대한 미화
작업을 중단하지 않고 오히려 유래 없는 대규모 기념사업을 진행함으로써 동학혁명의 고장인 이 곳 고창의
이미지를 왜곡시키고 있다"며 강력한 규탄 집회를 진행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우리 민중들이
걸어 온 애석한 역사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소리꾼 장사익씨 마저 이 행사에
참석해 축가를 부른다니 그동안 반대운동을 해 온 입장에서 허망하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2005-11-01 오전 1:36: ⓒ 민족문제연구소
지난해의 국화축제를 지켜보며 가슴을 쥐어 뜯어가며 통곡했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수많은 일제에 의한 피해가족과, 역사와 정의를 걱정하는 깨어난 분들이었습니다.
또한 미당의 친일행적을 안타까워하는 많은 관람객들로부터 비아냥도 받았습니다.
고창군이 어떤 고을입니까?
모양성이 말해주듯 義롭고 애족심이 충일하며 인륜을 중시하는 양반의 고을이 아닙니까?
하물며 소득을 빙자하여 친일행위자를 숭배하는 행위를 독려해서야 되겠습니까?
지난해,
태평양유족회에서 현 국화축제 제전회장과 면담하여 우려감을 전달하고 항의하니
"사업적인 아이디어이고 미당과는 무관하게 추진될것이다"라는 답변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였습니까?
미당의 묘소 주변에 국화밭을 조성하고, 끝내는 관람객들이 미당묘소앞으로 유인되어
참배하도록 프로그램이 진행되지 않았습니까?
올해에는 더 노골적입니다.
그야말로 미당의 문학적 업적(?)과는 전혀 무관하게 여겨지는 국화축제전회장이
미당 재단 이사장으로 추대되고, 정치적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축제의 순수성보다는 복막과 야욕의 냄새가 느껴집니다.
국화가 일본 황실의 꽃이라지만
져물어가는 가을에 보고 느끼는 국화꽃의 그윽한 향을 결코 싫어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만추지절의 정서를 자극하여 감동을 얻으려면 국화꽃만이 가질수 있는
감성에 호소되어 추억되어지도록 순수하게 추진되어야할것입니다.
또한 미당재단에서 강변하는 미당의 문학적 공마져 해치는 행사가 되고 있음을
주최측은 알아야 할것입니다.
국화축제를 친일행적이 확연히 드러나 비판되어지는 미당의 추념과 연계를 하므로써
그의 대표적인 詩 '국화 옆에서'가 일본 황실을 위해 쓴 詩 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고, 그의 친일행적을 인지하는 많은 래방객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할것입니다.
몰랐던 사람들도 나중에 알고나면 낯뜨거워지고 지우고 싶어질것입니다.
지금 열리고 있는 마산의 '가고파 국화축제'는 5회째 성황을 이루고 있습니다.
국악과 무용이 하모니를 이뤄가며 그야말로 예술행사로 자리매김해가는듯 보입니다.
모든 시민들이 부담없이 참여하고 어울리는 축제로 이어지려면 비정치적이어야하고,
시민의 정서에 공감과 감동을 줘야한다는것을 입증해준다 할것입니다.
어찌되었든
고창의 국화축제는 첫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행사이므로 취소되어져야 할것이며
강행이 되더라도 태평양유족회를 비롯한 민족문제연구소등 여러 시민단체와
애족군민들로부터 지탄과 냉소와 방해(데모)속에 치뤄질것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만,
지금 추진되어지고 있는 '국화축제'에 고창군 또는 군수님이 협력하거나 후원한다면
씻을수없는 오명과 혹독한 비판에 직면할것입니다.
축제 추진위에 다시 한번 묻고 싶습니다.
지금껏 후유증과 恨을 품고 8순을 맞으신 고창 위안부 할머니의 울부짖음을 잘 알면서도
미당의 묘소를 참배하도록하고 그를 기념하는 국화축제를 강행해야하는지요?
부안면 장군봉에 있는 '오열사 충혼탑'에 고개숙여본적은 있는지요?
야스쿠니신사에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뻔뻔스럽게 참배하는 사태를 지켜보면서
분개하지도 않으십니까?
부디 군민의 소득증대라는 미명을 도용하여
고창의 정체성을 흐리게하고, 자존심을 상하게하며, 후손에 부끄러운 행위를
중단해주시기 바랍니다.
2005.10.25. 태평양 유족회
(이 글은 태평양유족회 임원회의에서 숙의되어져 공개하여 올린 내용입니다)
국화논쟁????
가는길 : 선운산 IC ---- 선운사 --- 미당문학관
첫댓글 시와 꽃은 아름다운데 어쩌다 그런 상황에까지 참으로 안타까워져요 매사가 늘 동전 앞과뒤처럼 아이러니예요 정말 세월 참으로 빠르지요 그래도 아직 근 두달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좋은일이 함께할 수 있었음 바래요 늘 좋은 나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