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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골프 영웅은 잭 니클로스(Jack Nicklaus)이다. 그는 내가 골프에 대해 알기 훨씬 전에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골퍼가 되었다. 골프의 세계에서 유명인사는 잭 니클로스 이전에도 여러 명이 있었다. 그 중에는 진 사라젠도 있었고, 월터 헤이건도 있었으며, 해리 바든도 있었고 벤 호건도 있었다. 모두들 "위대한" 골퍼이다.
4대 메이저 대회의 하나인 매스터스 토너먼트의 창시자 바비 죤스는 "구성(球聖)"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았다. 그를 골프 역사상 촤고의 골퍼로 꼽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바비 죤스의 경기 모습을 보지 못햇으며, 그가 싹쓸이 했던 당시의 4대 메이져대회-- U.S.Open, U.S.Amateur, British Open, British Amateur--가 어떤 정도 수준에서 어떤 정도의 경쟁 상태로 진행되었었는지를 알지 못하므로, 감히 나는 그를 "구성'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면서, 만일 이 세상에 "구성"이 있다면 내가 아는 한 그것은 당연히 잭 니클로스여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2.
잭 니클로스는 골프를 대중관람 스포츠로 업그레이드 시킨 "골프의 왕(King Of Golf)" 아놀드 파머보다 10년 후배이다. 당시 아놀드 파머는 이 세상의 어떤 스포츠 영웅들보다도 더 큰 인기를 한 몸에 모으며 그의 추종자인 "아놀드의 군대(Arnie's Army)"를 대동하고 미국 프로 골프 투어를 휩쓸며 돌아다녔던 위인이다. 잭 니클로스는 바로 그 '골프의 왕'에 대한 강력한 라이발로서 프로 무대에 등장했다. 그는 이미 "구성" 바비 죤스가 우승했던 U.S.Amateur와 British Amateur를 모두 제패한 뒤 프로로 전향한 새파랗게 젊은 골퍼였다. 그는 곧 '왕"을 제압하고 '황제"로 즉위했다. 그의 시대는 오래 지속되었다.
골프의 역사에서도 영웅의 권세는 10년이 한계였다. 그리하여 잭 니클로스 또한 황제가 된 지 10년 만에 젊은 탐 왓슨의 도전에 직면할 수 밖예 없었다. 그러나, 니클로스는 선배 '왕 ' 아놀드 파머에 비해 끈질기고도 강력하게 후배의 도전에 맞섰다. 따라서 니클로스와 왓슨의 경쟁은 이후 10년 동안 많은 골프 애호가들에게 흥미와 감격과 교훈을 주며 치열하게 지속되었다.
3.
니클로스와 왓슨의 싸움은 서서히 왓슨의 승리 쪽으로 기울어 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서히"였고 '박빙'이었다. 한 번도 왓슨은 완벽한 승리를 할 수 없었고, 니클로스는 완패를 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젊고 늙은 체력의 차이였지 단 한 번도 실력에서 차이가 난 적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골퍼 왓슨의 황제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깊어 갔고 동시에 황제 니클로스의 '세 황제'에 대한 신뢰와 우정 또한 깊어 갔다.
1982년 U.S.Open에서 두 황제는 페블 비취의 17번 쇼트 홀에서 승패의 갈림길을 맞았다. 니클로스는 이미 경기를 끝내고 왓슨의 경기를 티비로 지켜보는 중이었다. 왓슨의 티셧은 그린 옆의 깊은 러프로 들어갔고, 그 결과 왓슨이 파, 보기, 혹은 더블 보기를 하면 어쩌면 니클로스의 우승, 아니면 두 사람의 플레이 오프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왓슨은 볼을 꺼내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그 볼을 홀에 집어넣고 환호하는 갤러리 앞에서 골프채를 높이 들고 원을 그리며 춤을 추었다. 그리고 새 황제의 정식 칭호를 받았다.
그보다 앞선 1977년 브리티쉬 오픈. 두 황제의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싸움이 스콧트랜드의 턴베리에서 벌어졌다. (나는 훗날 이 이야기를 듣고 그 때의 경기를 보기 위해 비디오 테잎을 사서 수도 없이 여러 번 보고 또 보고 했다.)
그 해의 브리티쉬 오픈 3,4 라운드는 니클로스와 왓슨 두 황제의 대결이었을 뿐, 다른 어느 골퍼도 그 두 사람의 스코어에 한 순간도 가까이 가지 못했다. 대회가 끝난 뒤 휴버트 그린이 한 말이 이를 간단히 대변한다. 그는 대회 토털 1언더를 치고 3위를 했다. 그만큼 어려운 코스였다. 그는 말했다. "사실 이 대회는 내가 우승이오. 니클로스와 왓슨, 저 두 사람은 (스코어를 보니) 어디 다른 코스에 가서들 친 게 틀림 없소." 그 두 황제는 3위보다 10점 이상을 잘 쳤던 것이다.
4.
3라운드에서 두 사람은 똑같이 65타 를 치며 공동 선두로 나섰다. 마지막 날도 그들의 동점 행진은 홀마다 지속됐다. 15번 쇼트 홀을 향해 걸어가며 탐 왓슨이 잭 니클로스에게 말했다.
"This is what it's all about."
니클로스가 대답했다.
"You bet it is."
왓슨이 롱 펏을 넣어 버디를 하며 한 점을 앞섰다. 그런 채로 마지막 72번 홀에 들어갔다. 왓슨의 티 셧은 정확했다. 니클로스는 조금 흔들렸다. 왓슨의 두 번째 셧은 정확하게 그린에 올라가 홀컵에 가까이 붙었다. 니클로스의 두 번째 셧은 가까스로 그린에 올라가 롱 펏을 남겼다. 니클로스가 만일 어렵사리 버디를 한다고 해도 왓슨이 숏 퍼트를 집어 넣을 것은 확실하므로 왓슨의 우승은 명약관화하다. 만일 니클로스가 롱펏을 넣고 왓슨이 숏펏을 놓쳐야만 두 사람은 동점이 되어 플레이오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인데, 대회 내내 잘 친 왓슨이 그런 숏 펏을 놓칠 리는 만무하다. 확률적으로 이미 게임은 끝난 것이었다.
니클로스는 확률도 산술도 모르는 사람처럼, 아니면 승패를 초월한 사람처럼, 열심히 그린을 서베이했다. 그리고는 그 롱 펏을 성공시켰다. 그리고는 팔장을 끼고 왓슨의 숏 펏을 지켜보았다. 왓슨은 간단한 탶 인으로 홀 아웃해 버디를 기록하고 니클로스를 마침내 한 타 차이로 제압했다. 황제와 새 황제는 그린 위에서 굳게 악수하며 황제 교대식을 거행했다.
그 이후로 왓슨의 우승은 줄줄이 계속되었고 니클로스의 우승은 겨우 3년 간 간간이 나타나다가 마침내 그가 40살 불혹이 되었을 때 막을 내리게 되었다. 나이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5.
황제는 이제 산을 넘어갔다.(went over the hill.) 그는 우승 없는 지루한 투어 생활을 무려 6년이나 계속했다. 모두들 그를 잊어 버린 듯했다. 그러나 그러나 그가 46세이던 1986년 매스터스 대회가 운명적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회 세째 날이 끝났을 때 기라성 같은 젊은 골퍼들이 9언더를 치고 있었다. 그 중에는 절정기의 세베 바예스테로스도 있었고, 한창 배가 고픈 "그레이트 화이트 샤크" 그렉 노만도 있었다. 니클로스는 고작 2언더의 그저 그런 성적으로 마지막 라운드에 들어갔고, 그러고도 7번 홀까지 지루한 파만 계속하고 있었다. 갤러리도 카메라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8번, 9번, 10번 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으며 단숨에 5언더로 솟아올랐다. 갑자기 카메라가 바빠졌다. 그러나 그가 11번 홀에서 보기를 범해 다시 선두와 5타 차로 미그러지자 그의 돌연한 용솟음은 일과성으로 끝나는 듯햇고, 카메라는 다시 그에게서 떠나갔다.
그러나 니클로스는 멈추지 않았다. 한번 어쩌다 우승 가시권에 들어간 뒤로 그는 돌연 옛날 황제의 위용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버디를 잡으며 5언더로 복귀한 다음 롱홀에 들어섰다. 두번 째 샷을 그린에 올려놓고 나서 그가 취한 행동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는 그린 위에 있는 자신의 볼을 향해 가기 전에 먼저 리더보드를 자세히 읽어보는 것이엇다. 리더들은 여전히 9언더에 머물고 있었다. 은퇴한 황제, 백전노장의 노회한 금곰("Golden Bear") 잭 니클로스는 바로 이 순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명확히 판단해 내고 있는 중이었다. 만일 여기서 이글을 잡는다면 7언더가 되면서 선두와 2타차로 간격을 좁힌 채 마지막 3홀을 맞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도 우승은 희망이 있다.
니클로스는 롱 펏을 성공하며 이글로써 단숨에 7언더로 뛰어오른다. 그 소식은 매스터스 대회가 열린 오거스타 내셔널의 모든 페어웨이와 그린으로 순식간에 전해진다. 그,리고 앞서 가던 9언더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니클로스의 도전에 치를 떨기 시작한다. 그들은 차례로 허물어진다. 모두 마음의 동요 때문이다. 세베 바예스테로스는 어프로치 샷을 물에 빠뜨리고 고개를 떨군다. 그의 우승이 날아갔다. 소심한 탐 카이트는 마지막 홀의 퍼트를 짧게 치며 우승의 꿈을 접는다. 니클로스는 16번 쇼트 홀에서 거의 홀인원을 할 뻔 했고 17번 홀에서는 러프에서 온 그린시켜 연속 버디를 잡았으며 마지막 홀에서는 티셧이 벙커에 빠졌으나 어프로치 샷을 온 그린 시키고 롱 펏을 홀컵 12센티 앞까지 굴려 보내는 위력을 발휘한 끝에 대회를 토털 9언더로 끝낸다.
같은 9언더의 코 리더는 이제 그렉 노만 뿐이다. 그렉 노먼은 생각한다. 자신은 니클로스의 까마득한 후배이며 그를 누구보다도 존경하고 있다. 그가 옛날 호주에서 처음으로 대선배 니클로스와 힌 조가 되어 플레이를 하게 되었을 때, 그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의 첫 티셧은 하늘 높이 떴다가 티잉 그라운드 바로 앞에 떨어졌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장성했고 어엿한 프로 골퍼로 미국 피지에이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우승에 목말랐고, 더구나 메이져인 매스터스의 우승은 그의 꿈 중의 꿈이었다. 그는 마지막 홀 어프로치 셧을 하려고 페어웨이에 서서 생각했다. 이제 내 아니언 샷이 날아가 홀컵에 붙으면, 나는 생애 첫 메이져 타이틀로서 매스터스의 챔피온이 될 것이다. 아, 꿈에 그리던 매스터스의 우승. 게다가 내 골프의 영웅 잭 니클로스를 준우승으로 모시고서!!
그의 가슴은 뛰었고, 온 몸이 굳어 왔으며 다리마저 떨렸다. 그는 흥분 상태에서 온 힘을 다해 샷을 날렸다. 그의 어프로치 샷은 큰 슬라이스를 내며 갤러리가 운집한 스탠드 위에 떨어졌다. 그렉은 보기를 했고 잭 니클로스는 6년 만의 우승을 감격스럽게 맛보았다. 그것도 다른 대회가 아닌 매스터스에서!
이로써 니클로스는 브리티시 오픈 3승, 유에스 오픈 4승, 피지에이 챔피온쉽 5승, 매스터스 6승으로, 역대 최다 메이져 대회 우승자로서의 자신의 기록을 다시 경신했고, "구성" 바비 죤스의 기준으로 보자면 옛날 아마츄어 때의 브리티시 아마츄어와 유에스 아마츄어를 합쳐 통산 메이져 20승의 위업을 달성하게 된 것이다. 나이 46세에!
시합이 끝나고 다른 골퍼들은 이미 모두 집으로 돌아갔으나 그렉 노만은 락카에서 니클로스를 기다렸다. 단 둘이 있는 데서 자신의 우상 니클로스의 6년만의 우승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날 밤 그렉 노만은 혼자 바닷가에 나가 앉아 통곡을 했다. 그는 무엇에 가장 마음이 아팠을까. 잡를 뻔 했던 우승을 놓친 것? 아니었다. 마지막의 어프로치 셧을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했던 것을 통탄했던 것이다. 무엇이 그의 정신을 빼앗아 갔던 것일까. 메이져인 매스터스의 첫 우승? 아니었다. 나는 확신한다. 그는 잭 니클로스를 이길 수 있게 되었다는 데에 감격했고 흥분했던 것이다. "형님, 참 잘 치셨어요. 그런데 제가 이겨서 죄송합니다." "아닐세, 그렉. 노장은 사라지는 것이지. 이제 자네가 새 황제일세." 그렉 노만은 그런 대화를 마음속에 그렸기 때문에 정신을 빼앗겼던 것이다.
6.
노장의 매스터스 우승은 많은 '늙은" 골퍼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맨날 젊은 이들한테 밀리기만 하며 옛날의 명성 뒤에 숨어서 계면적은 투어 생활을 하고 있던 늙은 골퍼들이 나도 한 번 해 보자며 달려들어 한 동안 좋은 성적을 내게 만들었던 것이다.
늙은 골퍼는 4일간의 터프한 경쟁을 이겨낼 힘이 딱 2% 부족하다는 것이 내가 오랫동안 투어를 관찰한 결과 결론으로 얻어진 사실이다. 큰 대회일수록 막바지로 가면서 스트레스가 대단한 무게로 온 몸을 짓누르게 되는데, 그런 상태에서 특별히 위기에 몰린 샷이 나오거나 승패를 가를 크리티칼한 순간에 부딪쳣을 때, 나이 든 골퍼의 오랜 경험보다는 젊은이의 활성적인 운동신경이 더 좋은 샷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나이 든 골퍼가 겪는 체력의 한계 위에 스트레스가 겹치면 그로 인한 피로는 상상하기 싫은 정도로 무겁게 그를 덮쳐 온다.
반면에 일단 희망을 갖게 되면 그것이 곧 전에 없던 용기와 새로운 힘을 가져다 준다. 한 노장 골퍼의 우승으로 인해 그 동안 뒷전에 물러나 있던 나이 든 골퍼들이 대거 전면으로 나서는 모습은 보기에 매우 감격스럽다. 그리고 그 감격은 골프 바깥의 인생살이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이 든 사람들, 힘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늙은 골퍼들의 우승은 큰 힘이 된다. 1997년 말 아이엠에프를 겪으며 온 국민이 좌절에 빠졌다가 유에스 위민스 오픈에서의 박세리의 우승에서 갑자가 활력을 얻었던 것처럼.
7.
이제야 드디어 2009년 브리티쉬 오픈에서의 탐 왓슨의 활약에 대해 되짚어 볼 차례가 왔다. 탐 왓슨은 그의 친애하는 선배 황제 잭 니클로스와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골퍼이다.
잭 니클로스는 별명이 '골든 베어'이지만 그 별명은 단지 그의 생김새에서 온 것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가 프로로 막 입문했을 때 그의 몸집이 매우 뚱뚱했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카락은 금색이었다. 그는 나중에 다이어트를 해서 살을 뺐기 때문에 더 이상 '베어'가 아니게 되었지만 이미 붙여진 '골든 베어'라는 별명이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고 또 친근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에 그대로 썼으며, 나중에는 스포츠 웨어의 상표로가지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골프 스타일은 '곰'이 아니라 '사자'라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그의 금빛 머리카락은 사자의 갈기에 해당하며, 그의 툭 불거진 눈은 사자의 눈모양을 그대로 닮은 것이 아니라 다른 동물을 잡아먹을 때의 사자의 눈빛깔을 닮았다. 그는 함께 경쟁하는 다른 골퍼들을 하나씩 무참히 잡아먹어가며 마침내 혼자 남아 우승 트로피를 번쩍 치켜드는 약육강식 타잎의 골퍼이다.
거기 비해서 탐 왓슨은 매우 인간적이고 신사적이며 고뇌가 있는 골퍼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는 스탠포드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는데, 그 심리학을 스포츠에 도입하고 활용하는 데에는 별로 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 그가 만일 심리학의 지식을 활용하며 골프의 경쟁에 임했다면 아마 그 또한 니클로스처럼 사자형의 무서운 골퍼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졸업과 동시에, 또는 프로 골퍼로서 입문함과 동시에 심리학을 깡그리 잊어버렸을 듯 싶다. 그는 일찌기 말했다. 자신의 골프는 오로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며 필드에서 함께 경쟁하는 다른 골퍼들과의 싸움은 아니라고. 그는 오로지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골프를 하고 싶고, 따라서 만일 자신이 결과적으로 남들보다 더 잘쳤으면 우승도 하는 것일 뿐이며, 남들을 제압함으로써 우승에 이르게 되는 골프는 자신의 골프가 아니라고 했다.
나는 이것을 인간적 골프, 또는 도를 닦는 골프라고 생각하며, 그런 점에서 니클로스처럼 약한 동물들을 잡아먹는 백수의 왕 사자의 골프와는 확연히 종류가 다른 것으로 구분한다. 나는 그가 전성기 때에 어느 대회의 막바지에 한 홀에서 4퍼트를 하는 일까지 본 적이 있었는데, 그 결과로 준우승에 머물었지만, 그는 단지 자기 자신이 퍼트를 실패했던 것에 대한 후회만 했을 뿐 잃어버린 우승 트로피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듯 했다. 나는 그 점이 사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는 골프"의 관점에서 하는 이야기일 뿐이며, 나 자신의 골프에서는 왓슨의 지론이 오히려 내 성격에도 맞고 결과적인 골프의 스코어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8.
사실 이번 브리티쉬 오픈에 탐 왓슨은 제대로 경쟁을 해 보려고 참가한 것이 아니었다. 친선번외경기처럼 가벼운 기분으로 참가하여 대회를 빛내주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악명 높은 스코트랜드의 링크스 코스 턴베리에서 벌어지는 터프한 브리티쉬 오픈에 제대로 언더파를 치는 골퍼가 없더라는 것이 예기치 않게도 노인 골퍼 탐 왓슨의 화려한 재등장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어 버렸다.
탐 왓슨은 잘 알고 있었다. 32년 전 바로 이 자리(턴베리)에서 자신이 니클로스와 우승을 다투던 때는 그의 나이 불과 27세였다. 뿐 아니라 자신에게 아깝게 1타 차이로 져 준우승을 한 니클로스도 그 당시 고작 37세에 불과했었다. 이제 자신은 석달 후면 환갑이었다.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잘 쳐도 우승은 못한다. 그는 우승 같은 것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앗다. 그의 목표는 "파 플레이" 였다. 그는 옛날 32년 전 우승의 추억을 돌아보며 점잖게 파 플레이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의 목표가 빗나갔다. 마음을 비웠기 때문에 샷이 보통 때보다 더 잘되었다. 마침내 첫 라운드가 끝났을 때 그는 뉴스의 초점에 섰고, 그것이 은근히 그의 투혼에 불을 질렀다. 젊은 골퍼들을 이기려는 욕심은 없었다. 단지 첫 라운드처럼 자신의 마음에 드는 플레이를 반복하고 싶은 것이 그의 내심의 목표였다. 페어웨이 안착, 그린 적중, 그리고 정상적인 퍼팅. 그것이면 족햇다. 그의 플레이는 그가 마음먹은 만큼의 성과를 내며 세번째 라운드까지 지속되었다.
마지막 라운드에 들어가기 전에 그는 말했다. ""글쎄. 내일 결과가 어떨지야 알 수 없다. 나는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는지는 알고 있다." 그러나 첫홀 티잉 그라운드에 서서부터 그는 고민에 빠졌다. "내친 걸음에 우승까지 노려볼까. 그러나 그러다가 나쁜 플레이가 나오면 안되겠지. 이제 와서 우승을 쫓는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그저 조용히 내 플레이를 해야겠어. 그러다 보면 혹시 우승를 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이미 수많은 우승으로 부자가 되어 있었으므로 우승 상금은 목표가 아니었다. 우승의 횟수도 별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의 나이 59.7세라는 것이 브리티쉬 오픈 우승으로 연결될 때 일어날 어마어마한 센세이션. 그것이 마음을 끌어 당겼다. 그는 약간 혼란된 마음으로 마지막 라운드의 게임에 들어갔다.
필드에는 늙은 탐 왓슨과 달리 메이져 대회 우승에 목이 마른 이리들이 들끓고 있었다. 그들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처음부터 저돌적으로 스코트랜드 링크스에 달려들었다. 누구는 성공햇고 누구는 실패했지만 성공은 지속적이지 못했고 실패는 쉽게 반복되었다. 다만, 탐 왓슨처럼 절제를 한 골퍼들만이 끈질기게 살아 남았다.
1타 차이의 리더로서 마지막 홀의 티샷을 끝내고 페어웨이로 걸어내려가며 탐 왓슨은 처음으로 승리를 예감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린을 향한 어프로치 샷과 두 번의 퍼트 뿐이었다. 그것은 자신이 있었다. 그는 깃발을 향해 샷을 날렸다. 볼은 똑바로 날아서 홀컵을 향해 굴러 갔다. 홀 컵은 그린 뒷쪽에 있었고 거기서부터는 내리막의 경사가 시작되었다. 볼은 홀컵을 스치고 경사를 타고 굴러 내려가 그린과 프린지(에쥐)에 걸쳐서 섰다. 나쁜 샷은 아니었다. 홀까지 거리도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경사를 다시 거슬러 올라가는 강한 퍼팅을 해야한다는 위험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위험이란 코스의 도처에 있는 것이고, 왓슨 정도의 도사 골퍼들에게는 큰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린에 올라서며 왓슨은 처음으로 갤러리의 환호에 답했다. 그 때까지 참아온 답례였다. 그는 이제 우승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갤러리도 모두가 그와 동감이었다. 갤러리는 이미 왓슨의 신기록에 열광하고 있었다. 왓슨 또한 거기에 공감했다. 다만 아직 홀아웃을 한 것이 아니므로 표정을 관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라이브로 중계를 보고 있던 나 또한 누구보다도 왓슨의 우승을 염원했다., 그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의 나이에서의 우승이 가져올 수많은 늙은 골퍼들-프로이든 아마츄어이든-에 대한 무한한 용기고취를 고대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나는 왓슨의 볼이 놓인 자리가 가진 위험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볼은 프린지에 거의 걸쳐 있다시피 했다. 통상적으로 프린지에 걸친 볼은 퍼터를 가지고 온그린때처럼 치되 테이크백 때 풀에 걸리지 않도록 뒤를 약간만 들어주면 된다. 만일 그것이 내리막 경사였다면 그냥 그렇게 치면 결과는 거의 같게 된다. 그러나 이제 그의 볼이 굴러가야 할 자리는 거리는 짧으면서도 급격한 경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자리에서 테이크 백 할 때 퍼터를 들어주게 되면 볼은 약하게 굴러가게 되어 급격한 경사를 이기지 못하고 자칫하면 도로 굴러내려오게 된다. 볼이 다시 굴러내려온다는 것은 바로 그 순간 우승을 놓치게 된다는 뜻이다. 아마츄어들은 흔히 그런 실수를 한다.
그러나 프로라면, 더구나 탐 왓슨 정도의 최고 수준의 원로 골퍼라면 그 쯤은 훤히 알고 있다. 핵심은 알고 있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낼 것인가이다. 실제로 해결책은 단 하나이다. 알맞게 치는 것 뿐이다. 악하고 짧으면 안되지만 동시에 강하고 길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오직 알맞게 쳐서 홀컵에 볼이 들어갈까 말까 할 정도로 붙어야만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는 프로 골퍼가 아니므로 많은 갤러리 앞에서 볼을 쳐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그런 절대절명의 순간에 내 정신상태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오직 친한 사람들과 편하게 칠 때와 같은 정상적 정신상태에서의 해결책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는 그가 다른 사람 아닌 탐 왓슨이므로 그런 역사적이고도 흥분된 상태에서도 마치 나의 평온한 때와 마찬가지의 냉정한 퍼팅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면서도 공연히 어딘가 불안했다. 아무래도 그가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방법은 오직 이것 하나 뿐이다. 그린의 경사와 브레익은 이미 잘 서베이했다고 하자. 남은 것은 샷인데, 그 샷은 매우 트릭키하므로 절대로 빨리 실행해서는 안된다. 반드시 충분한 프랙티스와 모의 퍼팅, 그리고 그 때마다의 결과에 대한 상상과 그것을 휘드백한 새로운 스트로크의 설계, 그리고 또 다시 프랙티스와 모의 퍼팅,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상상과 휘드백. 이것을 적어도 세번 또는 네번 정도 반복하면서 머릿속에서 오차를 줄이고 줄여 마침내 홀컵에 볼이 들어가거나 적어도 볼 두 세개 안팎의 거리에서 설 것으로 확신이 든 다음에야 스트록을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일상적인 라운드도 아닌 브리티쉬 오픈의 우승퍼팅에서라면. 더구나 환갑 직전의 할아버지 골퍼라면!!!
나는 실황중계를 보다가 벌떡 일어서며 "안돼! 치지 마!""라고 소리쳤다. 왓슨이 단 한 번의 프랙티스 뒤에 바로 볼에 어드레스를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 눈에는 그가 홀컵의 왼쪽 이십센티 쯤을 겨냥한 듯 보였는데 적어도 절반은 더 홀에 가깝게 퍼팅 라인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왓슨은 스트롴를 해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것이 날아갔다. 볼은 홀컵 옆을 지나 계속 경사를 거슬러 올라갔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그 순간 왓슨 자신 또한 우승을 놓칠 것으로 확신했으리라고 느낀다. 그것은 본능적인 느낌이다. "아, 이런! 이렇게 엉망으로 치다니! " 바로 이런 자책과 함께 스스로 "망했구나!"라고 탄식하게 되며, 이로 인해 다음 번 퍼팅마저 연속해서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으로 모두 끝났다. 그 뒤의 플레이오프 내용을 보면 바로 내가 지적한 단 한 번의 잘못이 그 뒤에 얼마나 탐 왓슨을 괴롭히고 망가뜨렸는지 확실하게 드러날 것이다.
나는 안다. 플레이오프에 들어갓을 때, 아니, 18번 홀의 프린지에서의 퍼팅 때 이미 늙은 탐 왓슨의 기력이 완전히 빠졌었고 따라서 플레이오프를 정상적으로 치뤄낼 형편이 아니었음을.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는 18번 홀의 제3타를 신중히 했어야만 했다는 것이다. 플레이오프에 가는 일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는 것을 자신도 미리부터 알고 있었으므로.
9.
왓슨의 눈물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카메라가 잔인하게도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했을 때, 왓슨은 속으로 크게 울고 있었다. 그러나 카메라는 그의 눈물을 잡아내지 못했다. 왓슨이 오직 속으로만 눈물을 떨궜기 때문이다. 속으로 떨어지는 눈눌이 몇 방울인지까지 셀 수 있을 만큼 또렷하게 왓슨은 눈을 껌뻑거렸다. 그 때 나도 함께 눈물을 삼켰다.
나는 안다. 그가 왜 눈물을 흘렸는지. 메이져 우승을 놓쳐서? 다 잡았던 우승을? 그 우승이 가져왔을 역사적 기록을 달성치 못한 아쉬움에서?
아니다. 왓슨이 어떤 사람인가? 그는 우승보다 자신의 골프를 중요하게 생각해 온 사람이다. 그는 프린지에서의 성급했던 퍼팅을 후회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성급함이 다름 아닌 우승에의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며, 평생 닦아온 골프의 도를 아직도 완성하지 못한 자기자신의 나약함에서 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이제까지 품어 왔던 탐 왓슨에 대한 마음을 바꾸게 되었다. 사자형이 아닌 인간형의 골퍼 탐 왓슨, 그의 골퍼로서의 인간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를 존경하지는 않을지라도, 그를 나의 골프 영웅으로 삼지는 않을지라도, 나는 이제 그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이번에 기여코 우승을 차지해서 이 세상의 나이 든 골퍼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듬뿍 가져다 주었으면 했던 기대를 채워주는 데에는 못미쳤다고 하더라도, 나 개인에게는 그토록 인간적이고 사랑스런 노장 골퍼를 재발견하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그것을 보상하고도 남을 중대한 사건인 것이다. 사실 역설적으로는 그가 우승을 못했기 때문에 이 번 그의 활약이 더욱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길이길이 새겨지면서 더욱 진정한 용기와 희망을 가져다줄 것이다.
10. (사족: 황제들)
옛 황제의 활약에 그의 선배 황제 잭 니클로스가 큰 감명을 받았다.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후배 탐 왓슨을 격려하면서 자신의 늙음과 흘러간 권좌를 되돌아보았다. 한 때는 세상을 지배했으나 이제는 골퍼로서 활약할 기력이 거의 없어졌다. 골퍼의 인생도 다른 모든 인생과 마찬가지로 결국은 덧없이 흘러간다. 영광은 어느 새 지나가고 마침내 추억과 동정과 나약함과... 그런 것들이 인생의 72번 홀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골프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황제이든, 무명 프로이든, 주말 골퍼이든. 그런 점에서 이번 브리티쉬 오픈에서 자신의 미스 샷을 겸손과 반성으로 가슴에 새기지 않고 갤러리 앞에서 흉하게 흥분을 드러내며 자멸해버린 오늘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모습은 바라보기에 매우 딱했고 마음이 아팠다. 골프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며,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어야 하며, 과학이 아니라 철학이고 수도여야 한다. 황제의 미스 샷이 시대와 인류의 비극은 아니라는 것을 젊은 황제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아마 지금쯤은 그것을 깨달았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도 탐 왓슨의 눈물어린 플레이를 보았을 것이므로.
첫댓글 골프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감명깊게 읽었고, 장편의 글을 읽으면서 자상한 관찰력, 표현력 그리고 지식에 감탄하며 내용에 공감도 하네. 취미생활에 관한 글이 좀체로 없는 우리 웹페이지에 글을 올려주어서 감사하여 한마디 거드는 것이니 앞으로도 기회있을 때 마다 주저치 말기를 부탁드리겠네. 이런 저런 생활 속의 이야기를 스스럼 없이 나누는 마로니에 친구들의 대화의 장이 되기를 바라며...
그러고 보니 우리 홈페이지가 좀 더 다양한 내용으로 꾸며져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드는군. 다들 스스럼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자주 써주면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 워낙들 과묵(?)해서 그런 모양일세. 뉴욕에서도 이렇게 종종 글을 올려 주는데 말일세. 격려를 해 주어서 고맙게 생각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