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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진행중인 미국 미술 300년을 보고왔다.
수치에 민감한 사람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300년이라는 숫자는 왠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도대체 300년은 어디에 근거해서 나온 것일까.
미국이 독입 선언을 발표한때가 1776년(국제적인 인정을 받은것은 1780년대) 240년이 채 되지 않은 국가이다.
물론 독립 선언전 영국 식민지 시대까지 포함하면1600년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가겠지만 그 시기는 미국인들도
자신들의 독립국가 역사에 종속 시키지 않는 범위내의 역사니까.
본 리뷰는 회화부분에 대해서만 적어가도록 한다.
공예나 조각들은 솔직히 그리 아는것도 관심도 없기에.
미국회화에 대해 알려면 벤쟈민 웨스트라는 작가에 대해 먼저 알아보아야 한다.
펜실베이니아 출생인 그는 20대때부터 이탈리아에 거주하며 이탈리아 신고전주의 거장들의 작품들을 연구했다.
Benjamin West, The Treaty of Penn with the Indians, 1771–72, Pennsylvania Academy of the Fine Arts (전시작품 아님)
벤쟈민 웨스트는1738.10.10 ~ 1820.3.11
최초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미국화가이지만 생의 대부분을 영국에서 보냈고 영국 국왕 조지3세의 총애를 받으며 조슈아 레이놀즈의 뒤를 이어 영국 왕립 미술아카데미의 부회장으로 중용되었고 영국에서 사망한다. 태생은 미국이지만 대부분의 작업은 영국에서 이루어 졌다. 역사화에 능했으며 그림에서 나타나듯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작업하며 후기에는 낭만주의 색채를 더하기도 했다. 전통적인 신고전주의 양식과의 차이점은 전체적인 구도나 구성은 신고전주의 양식이지만 인물들의 복식등은 현실적인 표현을 했다는 점이다.
그가 초기 미국 신고전주의에 영향을 미친것은 그의 작업뿐만 아니라 여러명의 미국화가들을 교육시킨것 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제자들이 바로 이번 미국 미술 300년을 장식하는 화가- 찰스 윈스 필등이며 그외 존 트럼블(John Trumbull), 길버트 스튜어트(Gilbert Stuart)등이있다..
찰스 윌슨 필 Charles Willson Peale (전시작품) Self-Portrait with Angelica by Charles Willson Peale
(전시작 아님)
벤쟈민 웨스트의 제자인 찰스 윈스 필의 작품은 스승인 웨스트의 화풍을 따르긴 했지만 솔직히 기량적인 면에서는 스승의
그것에 한참 이르지 못하는 듯한 인상이 강하다. 이탈리아에서 오랜 기간 숙련기를 가졌었던 그의 스승에 비해 여러면에서 부족할 수 밖에 없겠지만 이번에 전시된 많은 부분의 미국 미술 초기 작품들이 이러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신생국가의 역사에서 볼수 있듯 미국의 미술 활동 역시 초기 역사 기록화나 초상화 중심으로 구성되어진다.
특히 독립전쟁과 인디언과의 수많은 분쟁의 역사를 처음부터 안고 가야 했었던 미국에서
이러한 기록화의 중요성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분야이다.
기록화는 전쟁 또는 분쟁에서의 승리를 기록하여 그 과정과 결과를 정당화하는 동시에
민중들을 단결하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자 후대에게 남길 자료였다.
John Trumbull, The Death of General Montgomery in the Attack on Quebec, December 31, 1775, 1786, Yale University Art Gallery
역시 웨스트의 제자중 한명인 존 트럼블은 이러한 역사화의 가장 모범적인 예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위의 그림은 존 트럼블의 독립전쟁 역사화 연작중 하나인 <퀘벡 전투에서의 몽고메리 장군의 전사>라는 작품인데
그는 스승인 웨스트의 신고전주의적 기본을 충실히 지켜가며 장엄하고 우아한 장면을 연출해내는데 성공했다.
역시 기록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작품이라고 할 수있다.
Distant View of Niagara Falls 1830 Thomas Cole (전시작 아님)
미국 화단에서 최초로 탄생된 화파인 허드슨 리버(1825-1975) 파는 어쩌면 미국적 환경이 만들어낸
독특한 화파라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의 바르비죵파 (1820-30) 역시 풍경화 작업을 많이 했지만
이 두 화판의 작업관이나 예술관은 확연히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Hudson River School 이 미국의 광할한 대자연의 웅대함과 장엄함을
강한 명암 대비법을 이용해 이상적이고 아름답게 표현했다면
Ecole de Barbizon은 작가들의 사실주의에 대한 강박으로 인한 현장작업 주의가 주제라고 할수 있으며 50년 이상 지속된 허드슨 리버파와는 달리 결속력이 없는 느슨한 작가들의 연합이었다고 할수 있다.
허드슨 리버 파의 선두 주자는 토마스 콜이다.
그들의 작업은 자신들이 몸담고 살고 있는 조국에 대한 경외와 자부심의 다른 표현이고 이상화된 표현을 통해
낭만적 사실주의라는 양식을 만들어 냈다.
Frederic Edwin Church, Niagara Falls, 1857,(전시작 아님)
Sanford Robinson Gifford October in the Catskills (1880) (전시작)
57세에 말라리아로 사망하기까지 평생 700점이나 되는 작품을 남긴 로빈스 기포드의 작품은 이번 전시작중 개인적으로
인상이 깊은 작품중 하나였다. 그의 독특한 원근법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푸마토(sfumato 연기처럼~)의 어원에 더 가까운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는데 이러한 작업 방식을 Air Painting이라고 부른다는 설명이 있었다.-처음 들어보는 용어.
다른 자료에는 루미니즘(Luminism)이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허드슨 리버 파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Mary Stevenson Cassatt, (전시작 아님) Edgar Degas
- Woman with a Pearl Necklace in a Loge - The Singer with the Glove, 1878, , Cambridge, Massachusetts
메리 카사트는 평소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다.
그녀가 에드가 드가의 애제자 또는 연인이라는 구구한 소문들이 많지만
이번전시에서 그녀의 그림을 접한것은 커다란 기쁨이였다. 드가적 구도와 터치 또는 조명방식을 사용했다고 해서
그녀의 작품을 처음부터 폄하하는 시선으로 감상하는 태도는 수정되어야 한다.
The Reader (1877), Crystal Bridges Museum of American Art (전시작 아님)
Lilacs in a Window, 1880 (전시작 아님)
Self-portrait by Mary Cassatt, c. 1878, gouache on paper, 23⅝ × 16 3/16 in.,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전시작 아님)
(전시작) 1880
Childe Hassam은 메리 카사트와 함께 20세기 초 미국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미국 인상주의 작가의 거장이다.
차일드 하삼 비 내리는 자정 1890년대 후반(전시작)
The Avenue in the Rain, oil on canvas, 1917. The White House
그의 1917년 작품 <비내리는 거리>가 백악관 오바마 집무실에 걸려 있는것으로도 그의 위상이 확인된다.
공식적인 소장처가 백악관이다.
Childe Hassam The Water Garden 1909
미국 회화를 엄격하게 분류하면 제1차 세계대전까지는 세계적인 미술계에서 변방국이었다고 할 수 있다.
초기 회화는 일부 부유한 농장주나 정치가들을 중심으로 유럽회화를 수입하거나 유럽에서 수학한 미국출신 화가들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 북부의 급속한 산업발달과 남부 농장주들과의 충돌로 인한 정치적 충돌인 노예해방운동시기까지 이어졌다. 북부의 승리로 인해 각종 기록화와 역사화의 수요가 팽창함으로서 미국 미술은 일시적인 부흥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본격적인 미국 미술의 활황기는 1차 세계대전 직전 뉴욕에서 개최된 미국 최초의 국제 미술제인 The International Exhibition of Modern Art 라는 전시회 이후 부터라고 할수 있다. 우리가 아모리쇼 - The Armory Show - 라고 알고있는 국제 현대 미술전은 미국측 작품 1천여점과 유럽작품 500여점이 전시되었다.
유럽의 19세기 후반 작가들의 작품과 당시 유럽에서도 전위적인 최신 작품들(인상주의 화가들과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1780~1867),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1798~1863), 모로Gustave Moreau(1826~1898), 쿠르베Gustave Courbet(1819~1877) 등을 위해 전시홀 하나가 마련되었고, 르동Odilon Redon(1840~1916), 퓌뷔 드 샤반느Pierre Puvis de Chavannes(1824~1898)의 작품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였으나, 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 브라크Georges Braque(1892~1963), 레제Fernand Léger(1881~1955), 드랭André Derain(1880~1954), 블라맹크Maurice de Vlamink(1876~1958),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1866~1944), 뒤샹Marcel Duchamp(1887~1968),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1876~1957), 뒤샹)은 많은 미국 작가들과 일반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으며 아모리쇼를 통해 미국 미술은 새로운 길로 들어서게 된다.
아모리쇼가 개최된것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원인을 들수 있지만
그중 사진작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영향이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이전부터 꾸준히 유럽의 최신 작품들을
그의 화랑 291 Gallery 과 책자를 통해 소개 하고 있었다.
아모리쇼를 통해 미국 작가들이 유럽의 최신 경향을 접하고 이에 영향 받은 젊은 작가들이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며
세계무대의 중심에 가까워 지는 계기를 만들어 냈다면 제 2차 세계대전은 결정적으로 미국(특히 뉴욕)을 세계 미술현장의 중심지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이주해온 많은 유대계 작가들을 선두로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세계 각국의 작가들뿐만 아니라 러시아에서 활동 하던 많은 작가들도 뉴욕으로 집결하는 현상이 이어졌다.
인류 역사상 가장 공포스럽고 불운했던 시기에 뉴욕은 뜻하지 않게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예술적 축복을 받았다고 할수 있다.
이후 현재까지 미국은 예술의 성지로 남아 파리, 런던과 함께 세계 미술시장의 중요한 거점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Georgia O'Keeffe Alfred Stieglitz in 1902 by Gertrude Käsebier
위에 언급한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부인이 이번 미국 미술 300년에 참가한 오키프이다.
오키프와 스티글리츠는 단순한 부부관계일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던 예술적 동지로서 더욱 유명하다.
스티글리츠는 오키프의 350점에 이르는 사진을 통해 다양한 작업을 했었고 오키프는 스트글리츠의 화랑에서 전시를 하고
지원을 받았다.
40대 중반 스티글리츠 사후 뉴멕시코에 정착한 그녀는 그곳의 맑고 황량하며 건조한 환경에서 그녀의 본격적인 작업을
하게되며 이시기에 작업했던 작품중 하나가 이번에 전시된 작품이다.
Georgia O'Keeffe, Ram's Head White Hollyhock and Little Hills, 1935, The Brooklyn Museum (전시작 아님)
(전시작품)
그녀의 작품들은 대형화가 많은데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사이즈가 아담했다.
지나치게 장식적이라 할 정도로 아름다운 이작품 역시 보는 이를 깊이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있다.
In 1908, she won the League's William Merritt Chase still-life prize for her oil painting Dead Rabbit with Copper Pot.
20대 초반 오키프는 뉴욕에서 미술수업을 받던중 유화로 윌리엄 메리트 체이스 상을 수상한다.
위의 사진은 당시 수상한 오키프의 작품이다.(구리 단지와 토끼 사체)
Idle Hours, 1894. William Merritt Chase. Amon Carter Museum, Fort Worth, Texas (전시작 아님)
윌리엄 메리트 체이스 는 미국 인상주의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체이스 스쿨을 만들었으며 현재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인 스쿨 중 하나인 파슨스 디자인 학교의 전신이다.
(전시작)
20세기 초부터 미국 작가들은 유럽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기 시작하며 유럽의 미술은 실시간으로 미국에 전파되었다.
미국의 경제력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면서 미국은 이제 더 이상 미술의 단순한 소비시장이 아니라 생산시장으로 발돋음 하게 되며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와 중간의 대공황 시기 마저도 미술계는 뉴딜 아트라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성장동력이 꺼지지 않고 유지 되었다.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도 미국은 미술계를 구소련을 중심으로한 공산권에 대한
상대적 우위를 점하려는 정책을 펼치기도 한것이 이후 공개된 문서를 통해 확인 되기도 한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술은 미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짐을 볼수 있다.
이는 전쟁중 미국으로 이주한 유럽의 많은 화가들의 저력이 본격적으로 발휘되었기 때문이고 또한 전쟁후 1945~60년대의 베이비 붐에 의해 탄생한 베이비 부머들이 이러한 환경속에서 미국적 미술을 주도적으로 계승 발전 시켰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전쟁 후 경제적 풍요와 안정속에 소비문화를 주도하고 선도했던 이들은 본격적으로 미국 미술의 주인공들이 되어
세계미술의 중심지를 미국으로 정착 시키는데 주인공이 되었다.
추상표현주의 / 신표현주의
색면추상
팝아트와 옵아트
미니멀 아트
행위미술과 개념미술
대지미술
포스트 모더니즘등을 거쳐 이제는 Pluralism(Cultural pluralism 문화적 다원주의)으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현재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화 현상이기는 하지만.
미국 300년전을 감상하고 느낀점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초기 미술을 전시한 1관부터 시작해 4관 까지는 오히려 지방색채 짙은 소박한
미국 미술에 대한 흥미와 함께 약간의 실망감이 앞서는게 사실이었고
5관에서는 유럽 미술에 대한 적극적인 유입과 작가들의 실험적인 태도가 흥미로웠다.
마지막 6관에서는 짧은 기간내에 제국을 이루어낸 미국의 단편을 보는것 같았다.
르네상스 이후 이탈리아의 완벽에 가까운 미술 양식이 북부 지역까지 전파 되는데는 1세기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이 소요 되었다. 비록 전파가 되었다 하더라도 이탈리아 본토의 양식이 제대로 표현 되기 까지 또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 했고 지역의 특성이나 민족성의 기질에 따라 독특한 변화와 특징적 문화로 재탄생되는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바다 건너 나라인 영국지역의 전파시기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더욱 늦어질수 밖에 없어서 한동안 영국은
유럽에서 문화적 변방국으로 취급 받았다.
Sir Anthony van Dyck
Amor and Psyche, 1638
Peter Paul Rubens
Diana and Callisto, 1639, Museo del Prado
하지만 문화적 후진은 영원하리란 법이 없다.
위의 두 작품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이다.
위의 작품은 1638년에 제작된 영국의 안소니 반 다이크(1599 - 1641)의 작품이고
아래 작품은 1639년작 프랑스의 루벤스(1577 – 1640)작품이다.
반 다이크의 작품은 루벤스의 작품에 비해 소박하고 건조한 인상이지만 작가의 개성이나 지리적 환경적 요인을 감안해 볼때
두 작가의 기량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날 정도는 아닐 만큼 비슷한 기량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사실 개인적인 생각은 약간 떨어진다.ㅜㅜ)-루벤스의 경우 말년 작품이라 전성기때 보다 전체적으로 화면의 활력이나 생명력이 떨어져 보이는것은 사실이다.-하지만 지금의 영국 미술계는 미국가 함께 커다란 미술품 시장이자 공장이다.
1909년 일본에서 서양화를 조선인 최초로 수학한 고희동의 그림을 보면 어수룩한 느낌을 지울수 없다.
이번 미국 미술 300년에 전시된 조셉 배저의 작품을 보았을때의 느낌은 고희동의 작품에서 느끼는것과 비슷했다.
한국에서 서양화의 역사는 100년이 약간 넘었다.
200년이 넘는 서양인들이 작업한 서양화와 이제 갓 100년된 동양인이 그리는 서양화를 단순 비교 한다는것 자체가
무리수이고 또한 의미가 없는 일이지만 이것 하나만은 생각하고 본문을 맺어야 할것 같다.
그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작품의 역사만큼이나 우리가 우리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 자긍심이나 소중함을 느끼고 있는지.
겉모습만 보고 작품을 대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근거 없는 패배주의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국적이나 작가 또는 이미 매겨진 작품의 가치를 떠나서 우리는 그 작품안에 내재되어 있는 작품의 영혼과 대화할수 있어야 한다.
작품은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다만 우리가 다가가지 않을뿐.
첫댓글 와~ 저 지금 미국미술 보러 가려는데.. 무작정 갈 참이었는데. .. 많은 공부하고 갑니다. 보스코님 내공 상당히 부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오셨나요? 내공은 무슨. 책에 다 나오는 내용입니다.ㅎ
역쉬!!!
감사합니다^^
저도 역시 감사합니다^^
Review를 보니 보고싶어지네요. 감사합니다.
가족들과 같이 가실거죠? 마왕님 리뷰 보면 훈훈합니다.
리뷰1편에 이어 2편 잘 읽었습니다...마지막 문단의 글들이 참 좋으네요...지난번 사소님 번개하실 때 갔어야 했는데
웬지 이제는 혼자 가려니 싫다는...그래도 조지아 오키프 작품은 가서 꼭 봐야지요...^^*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1,2편~ ^^*
오키프 작품 맘에 드실겁니다.
정말 역쉬..보스코님이네요 이제서야 읽었습니다.
저는 비판의식없이 봤어요.단지 인상파그림들의 따스한 추억이라고 할까요.
고희동의 그림과 비교해서 미국인상파화가를 생각해보는
보스코님의 깊은 통찰.. 그리고 패배주의적인 시각.. 글,,
그러한 보스코님의 글과 더불어 다시 한번 한국화단의 글과
미국 300년전을 다시 한번 더 가보고 싶습니다
생각의 감성의 폭을 더 넓혀서
항상 그렇듯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오~! 보스코님 넘 감사드려요..^^
국박의 도슨트분들은 대체적으로 작품 자체만 나열하며 설명을 해주시는 방식이던데.
개인적으로 덕수궁 도슨트분들께서 해주시는 식으로 시대적,역사적 설명과 함께
해주심 어떻했을까하는 아쉬움을 살짝 해봤었어요..
시간 관계상~아닐까요? ㅎ 사실 도슨트 내용이 자상하긴 했지만 조금 평이했다는 느낌? ㅎ
애들 델꼬 오늘 갔다 왔는데... 시간 없어서 후반부 다 못 보고 나왔네요. 애들은 밖에서 왜 안 나오냐고 전화해대궁...
담에 또 가고 싶은 전시였지만, 가격의 압박이 ... 하하
리뷰 미리 봤음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4부 전시에 중요한 현대미술 작가들이 많았는데 아쉽네요. 맞아요,,,가격의 압박,,,,,
보통 미술교과 선생님들에겐 초대권이나 할인권이 보내지는데 미술선생님을 압박해 보세요,,^^
올 ~~~ 보고왔는데 미술관을 옮겨놓으셨군요 ... 역쉬~~
오랜만이시네요~ 잘 지내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