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본 영절하의 가장 큰 문제는 영어 학습을 고난의 강행군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영어를 배우는 과정은 하나하나 표현을 알아가고 사용하며 깨닫는 즐거움의 연속이어야 하건만, 이해도 안 되는 문장들을 끝없이 듣고, 안 들리는 발음을 받아 적고, 뜻도 모르는 영영사전을 무한정 뒤적이며 베껴야 하는 과정이 너무나 힘들다는 것이죠. 영절하 카페의 경험담들을 통해 그 고통의 현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 잡는다”는 말까지 나오더군요.
저자는 영어 학습이 어린아이의 자연습득 과정과 같아야 한다고 외치고 있지만 자연습득은 이런 고통과 엄청난 인내의 과정이 아닙니다. 어린 아이가 언어를 배울 때 처음에는 무조건 많이 듣고 축적하는 것은 맞습니다. 이것을 모방하기 위해 첫 단계에서 영어 테이프를 들으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나 아이는 표정, 손짓, 발짓으로 엄마와 또 주위 사람들과 재미있게 대화를 합니다. 삶의 현장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가 표현 하나하나를 배우고 사용하려는 강한 드라이브를 유발시킵니다. 녹음기 소리에 몇 시간씩 귀를 대고 있는 것과는 다르죠.
이런 면에서 <영절하>는 자연습득과는 정 반대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조금씩 차근차근 알아가는 학교식 영어공부가 더 자연습득에 가깝다고 할까요? 물론 인내와 투지로 이 방식을 따라 성공한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 스스로도 성공한 사람은 60명중 세 명밖에 안 된다고 말하듯이 많은 사람들에게 실현이 어려운 과정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또 하나는 문법에 대한 인식입니다. 저자는 문법은 영어 학습에 전혀 필요가 없다, 심지어 문법 공부를 하면 오히려 영어실력이 퇴보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당연히 현재 학교의 영어 수업은 그럼 어찌 하오리까 하는 독자들의 질문이 빗발치게 되었고, 이윽고 <영절하> 2탄에서는 학교식 교육을 거부하고, 선생들은 모두 어학연수를 보내고 학생들끼리 <영절하>식으로 공부하자는 극단적인 처방을 내놓게 됩니다.
문법은 학문이요 인위적인 것이고 영어는 언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문제입니다. 문법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자연습득의 일부입니다. 즉, 문법을 잘 익히면 아이들이 오랜 과정을 통해 습득하는 것을 훨씬 짧은 기간에 흡수할 수 있습니다. <나의 영어 정복기>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제가 미국에서 영어를 단 기간에 정복할 수 있게 해준 것도 한국의 중, 고교에서 다진 문법과 독해 실력이었습니다. 그리고 <영절하>식 훈련을 할 때도 테이프를 듣고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한 기반이 있어야 그 과정을 그만큼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겠죠.
사실, 저자가 문법을 배척하는 것은 문법 자체가 아니라 문법을 통해 영어를 수학 공부하듯이 대하는 학문적인 학습태도를 질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칼럼을 통해 여러 번 설명을 드렸듯이, 영문법을 하나의 분석하고 이해해야 할 지식체계로 생각한다면 진짜 살아있는, 생활을 통한 자연 습득에 다가가지 못하게 됩니다.
수학은 문제를 몇 개 풀 줄 안다고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들을 꿰뚫는 공식과 이치를 간파하지 못한다면, 문제를 아무리 많이 풀어도 진짜 실력은 제자리걸음입니다. 그러나 영어는 그렇지 않습니다. 표현 하나, 단어 하나를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다면 이 하나하나가 다 피와 살이 되고 그대로 쌓여서 실력이 됩니다. 또 이러다 보면 모르던 문법도 자연히 알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영어를 어떤 특별한 비법을 통해 한꺼번에 통달하려 하지 말고, 티끌을 모아 태산을 쌓아가는 심정으로 조금씩 꾸준히 하는 방식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경로로 영어를 접하고, 때로는 참고서나 사전도 보고 해서 이해를 넓히며,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어린 아이와 같이 영어를 생활의 일부로 인식하고 절실한 필요성과 재미를 느끼는 것입니다. “이 표현을 오늘은 어디에 써먹어볼까?” 이런 기대감 속에 살아야 합니다.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너무 고민하지 말고 그냥 넘어가세요. 쉬운 것부터 하다 보면 얼마 안 있어 어려운 것들도 스르륵 녹아 들어옵니다. 어린 아이도 쉬운 것부터 하나하나 알아가잖아요?
한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unless는 아주 까다로운 단어입니다. 보통 if와 not의 결합으로 설명을 하는데 단순한 if+not과 그 어감이 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이해를 하고 있으면 사용할 때 애를 먹습니다. not을 넣을지 말지 주춤거리다 보면 말할 타이밍을 놓치게 되는 것이죠. 이윽고 unless는 기피 대상 목록에 오르게 되고 영어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쌓이게 됩니다.
그러나 unless로 된 간단한 문장을 하나 둘쯤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unless의 일반적인 의미나 사용법은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쉬운 표현부터 야금야금 사용해보세요. 영영 사전이나 코퍼스에서 unless의 예문들을 찾아서 자기가 그 상황에 있다고 상상하며 예문을 중얼거려도 좋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unless의 느낌이 except와 아주 유사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 감이 통하는 순간부터 생각 없이 unless가 입에서 튀어나오는 대견스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과를 처음 깎아보는 사람은 아주 서툽니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자꾸 끊어지고, 그러다가 손에 쥐가 납니다. 그러나 자꾸 깎아봐서 익숙해지면 빠른 시간에 잘 깎을 수 있게 됩니다. 영어가 학과목이 아니라 생활의 “도구”라는 저자 말을 다시 한번 새겨보시기 바랍니다. unless도 if+not 식으로 분석을 해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칼쓰기를 익히듯이 자꾸 사용해 봐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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