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장릉과 여주 영.녕릉
답사를 다녀와서 (2006.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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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게만
느껴졌던 영월과 여주...
왕릉을
살펴보다 단종대왕의 장릉이 영월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처음엔
놀랬습니다. 그 먼 영월을 어떻게 가야되나... 그래서 영월 장릉을
왕릉 답사 마지막으로 미뤄두고 있었습니다. 영월 뿐만 아니라 여주
영녕릉또한 그랬습니다. 여주는 경기도이긴 했지만 차편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여주 영녕릉도 답사 마지막으로 미루었는데... 이번에 영월과
여주를 가게 되었습니다.
보현당 선생님께서 괜히 저 때문에
두 배로 고생하시면서도(운전...), 가는 길은 심심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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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
입구에 있는 박충원 정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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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
재실 옆에 있는 엄흥도 정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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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
배식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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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
배식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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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은 충신을
모신 곳도...
장릉은
입구에서부터 박충원 정여각이 있습니다. 박충원은 중종 36년(1541)에
암매장된 단종의 묘를 찾아 봉분을 만들고 제사를 지냈던 인물입니다.
그 후 1972년에 박충원의 충신됨을 후세에 널리 알리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장릉 재실 옆에는 단종의 영원한 충신인 엄흥도의
정여각이 있습니다. 엄흥도는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몰래 거두어
지금이 자리에 가매장할 정도로 단종이 죽을 때까지도 끝까지 단종을
모셨던 충신으로 영조 2년에 세워진 비각입니다. 엄흥도 정여각 옆에는
배식단사이 있는데 배식단사은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충신위 32인,
조사위 198인, 환자군노 28인, 여인위 6인을 합하여 264인의 위패를
모셔놓은 곳이며,제사는 앞에 있는 배식단에서 지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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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
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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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
전경 (홍살문, 수복방, 정자각, 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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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게
예감과 산신석이 같은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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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상
위에서 본 장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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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
봉분 (부인 정순왕후의 사릉과 같은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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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나이의
등극, 상왕으로 물러 난후 노산군 강등, 뒤이어 사사... 241년만에 복위된
왕!
단종은
아시다시피 가장 슬픈 임금이십니다. 태어난지 하루만에 어머니(현덕왕후)를
여의셨고, 12살의 나이에 등극하여 수양대군의 권력으로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사육신사건에 연루되어 노산군으로 강봉된 후 뒤이어
폐서인되어 사사까지... 겨우 17년밖에 안사셨는데...
하지만
슬픈 임금 단종은 224년만인 숙종 7년(1681)에 노산대군으로 추봉되었고,
다시 17년 후인 숙종 24년(1698) 11월에 왕으로 복위되시어 묘호를 단종,
능호를 장릉으로 올려지면서 조선 제 6대 임금으로 복위되셨습니다.
이제 남은 한 가지는 부인 정순왕후와의 재회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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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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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英陵)
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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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英陵)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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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英陵)
정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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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英陵)
수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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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
게 있는 영릉(英陵) 수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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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화사업의
현실.
1970년대
영릉성역화사업으로 훈민문, 세종대왕상, 세종전 등이 세워졌었습니다.
그리고 영릉을 보수하여 홍살문을 나무가 아닌 콘크리트로 세웠고, 참도도
2도가 아닌 3도로 바꾸었으며, 수라간과 수복방 등을 복원하였습니다.
하지만 홍살문을 콘크리트로 세웠다는 것이... 영 내키지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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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장릉
형식으로 혼유석은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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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英陵)의
석양과 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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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의 영릉(英陵) (합장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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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의 합장릉 형식과 예종때의 천장.
영릉(英陵)은
조선 최초의 합장릉입니다. 처음 영릉은 이 곳이 아닌 경기도 광주 대모산(지금의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헌릉(태종과 원경왕후의 능) 서쪽에 있었습니다.
1445년에 세종이 아버지인 태종과 어머니 원경왕후 곁에 묻히기를
원하여 잡은 자리인데, 1년 후 소헌왕후가 승하하고 그 자리를 파보니
물길이 있어 불가론을 주장하였지만 세종이 명을 뿌리치고 소헌왕후를
장사하였습니다. 그리고 1450년 2월에 세종이 승하하자 세종의 유교로
합장으로 모셔졌었습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영릉 불길론이 있어 천릉이
거론되었으나 실현하지 못했던 것을 예종 원년(1468)에 지금의 자리로
천장한다는 뜻을 정하고, 이듬해인 1469년 3월 6일에 지금의 자리로
천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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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이
넘은 영릉(寧陵) 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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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寧陵)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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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게
참도를 지나 금천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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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寧陵)
정자각과
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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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도를
지나 금천교가 있는 특이한 왕릉.
원래
왕릉은 재실을 시작으로 하여 금천교를 지나 홍살문으로 이어지고 참도,
정자각, 비각, 봉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곳 영릉은 좀 다릅니다.
재실을 시작으로 홍살문이 나오고 참도를 따라가는데 금천교가 있습니다.
즉, 위의 사진처럼 참도와 정자각 사이에 금천교가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조영하였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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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상하봉릉
형식으로 쌍릉은 쌍릉이나 앞뒤로 봉분을 조성한 능역. (앞에
봤을 때 뒤에 있는 봉분이 왕릉(효종)이고 앞에 봉분이
왕비릉(인선왕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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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선왕후릉(하봉)에서
본 효종릉(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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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릉(상봉)에서
본 인선왕후릉(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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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寧陵)의
효종릉(상봉).
곡장이 둘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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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寧陵)의
인선왕후릉(하봉). 곡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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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상하봉릉이란?
쌍릉은
쌍릉이나 봉분이 쌍릉처럼 좌우로 배치가 되어있는 것이 아닌 앞뒤로
배치되어 있는 형식으로 풍수지리설에 따라 생기가 왕성한 정혈에서
벗어 날 것을 우려하여 배치한 형식입니다. 그래서 상봉-하봉으로
나뉘며 상봉이 왕릉이 되고 곡장이 둘러져 있으며, 하봉이 왕비릉이
되고 곡장이 둘러져 있지 않습니다. (왕릉에만 곡장이 있는 이유는 한방을
같이 쓰는 부부임을 뜻하여 쌍릉형식에 맞게 한 곳에만 곡장이 두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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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리...!
이번
답사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강원도와 경기도를 왔다갔다하여... (물론
저는 열심히 구경하였고, 수고는 보현당 선생님께서 더...^^)
이제
왕릉 답사는 두 군데가 남았습니다. 양주에 있는 단경왕후의 온릉과
김포에 있는 추존 원종의 장릉 이렇게 두 개가 남았는데, 올해 안으로
끝내려고 합니다. 그러면 42개의 능 답사는 끝났고, 13개의 원은 한 곳(소현세자빈
강씨의 영회원)만 제외하고 다 다녔습니다. 같이 가실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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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최강이 님의 글과 사진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는것이 내게는 기쁨입니다. 자주 자주 올려주면 참 좋아들 할겁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최강이님의 깔끔하고도 명쾌한 답사기, 잘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왕릉 답사, 이제는 모두 전문가들이 되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