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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깨우리로다(시57:8)
시 57편은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도망치다가 아둘람 굴로 피신했을 때 쓴 시이죠. 사울 왕은 다윗을 잡아 죽이기 위해서 3,000명의 수색 부대를 조직해서 그를 추격했어요. 다윗이 가는 곳마다 집요하게 추격했고, 다윗은 피하다 피하다 더 피할 곳이 없어서 아둘람 굴속으로 뛰어들었어요. 마지막 막장 도피처였죠.
형편이 그렇다보니 다윗은 설움과 불안과 절망이 가득했어요. 그 심리가 본문 여기저기에 엿 보여요. 1b절에서 “재앙들이 지나기까지”라며 탄식해요. 4절에서도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토로해요. 죽을 지경 가운데 있다는 것이죠.
다윗이 당한 공포와 두려움이 오죽했으면 이렇게 표현했을까 싶어요. 이런 다윗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위로를 받아요. 다윗이 강하게 태어난 게 아니라는 것, 다윗도 불안해하고 겁먹고 있다는 것에서 위로를 받아요.
뿐만 아니죠. 다윗은 억울함도 토해내요.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6절) 분하고 원통해해요.
그런데, 그러던 다윗이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요. ‘괴롭다. 힘들다. 억울하다. 슬프다. 탄식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이걸 할 거야!’ 단단히 마음먹고, 뭔가를 하기로 결정해요. 7a절이죠.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그리고는 두 가지를 확정해요.
첫째는, 노래할 것을 확정해요.
7절에서,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고백해요.
‘말할 수 없는 어려운 형편이지만, 굴속에 웅크리고, 울고 하소연만 할 것이 아니라 찬송하리라.’ 확정해요. 객관적으로 보면 노래할 처지가 아니에요. 탄식하고 낙담하는 게 맞아요.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탓하는 것이 맞아요.
그래서 그동안 노래하지 못했어요. 8절에서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말하죠. 그동안 비파도 수금도 쳐 박아놓고 노래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젠 내가 노래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고 말해요.
왜 그랬을까요? 믿는 구석이 생겼기 때문이었어요. 그 믿는 구석이 무엇인가요? 노래하는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뭘 노래하나요? 하나님이에요. 특히 2절에서는 “지존하신 하나님“이라고 말해요. ”지존“은 ”최고“라는 뜻이죠. ‘사람들이 뭐라고 빈정거려도 지존은 하나님이시니까! 지금은 죽을 것 같지만, 지존이신 하나님이 어떻게든 살리실 테니까!’이 믿음을 새롭게 해요.
다윗은 아둘람 막장 굴에 숨으면서, 자존심(自尊心)이 바닥이었지만, 주존심(主尊心)을 높였어요. 자존심이 꺾이면서 사라졌지만, 주존심은 더 강해졌어요. 그래서 그 지경에서도 노래하리라 결단해요.
휠체어를 탄 기적의 지휘자로 불리는 정상일 교수님이 있어요. 세계 20여 개 나라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대학 교수로 후학을 양성했어요. 그런데 2012년 5월 새벽에, 병원에 입원 중이었는데, 갑갑해서 베란다로 나가서, 몽롱한 상태에서 걷다가 그만 11층에서 추락해요. 기적적으로 살았지만 하반신 마비가 되었죠.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었어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대요, 목숨도...
하지만 그에겐 작은 믿음이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매일 마다 교회에 가서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한 번 해 보자.’ 용기가 생겼어요. 재활 훈련도 시작했어요. 그 후 기적이 일어났어요. 회복이 되었고, 학교로 복직도 했어요.
그리고 2016년에 휠체어 합창단을 조직해서 현재 100명의 단원들이 있어요. 악보 넘기는 것이 힘들어서 전체를 외워서 지휘해요. 휠체어에 앉아서요. 카네기 홀 등 세계 이름난 곳을 순회하면서, 희망과 행복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어요.
이런 고백을 해요. “이전에는 선데이(주일) 크리스천이었는데, 사고 이후 에브리데이(매일)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제2의 삶을 주셨으니 음악을 통해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자고 결심했습니다. 사고 이후 지금은 앉아만 있어도 축복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노래하는 인생으로 살려고 작정했습니다.”
시 150:6절에 보니까 이보다 더 강력한 고백이 있어요.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찬양하라”가 시편 150편의 결론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찬양할 조건이 무엇인가요? 호흡이 있다면 이에요. 숨을 쉴 수만 있어도 축복임을 알고 찬양한다는 거예요. 다윗이 그랬어요.
그런 노래에는 감동이 있고 향기가 있어요. 바닥까지 흔들릴 때, 죽고 싶을 때. 그런 지경에도 부르는 노래에는 감동과 향기가 있어요.
2015년에 출판된 「다시 나무를 보다」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살아 있는 것 중 아프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 나무는 늘 아프다. 늘 아파서 향기가 난다. 인간이 좋아하는 ‘피톤치드’라는 것은 ‘식물이 죽는다.’는 뜻을 가진 물질인데, 나무는 자신이 아파서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이 물질을 낸다.
사람이 편안한 자리를 만들어서 키운 인삼의 치유물질이, 산삼의 치유물질보다 못하듯이, 나무도 편한 자리에서 아픔을 없애주며 키우면 피톤치드가 적어진다. 자신이 아파서 내는 향기, 우리는 그 향기를 마시고 낫는다. 향기로움 뒤엔 그 향기가 진한만큼 아픔이 숨어 있는 것이다.』
다윗의 노래가 그랬어요. 아픔을 노래로 승화시켰어요. 그래서 향기가 나요. 다윗이 아둘람 굴에 숨었다는 소식을 들은 400명의 사람들이 그 굴에 모여 들었는 데, 그들의 출신이 예사롭지 않아요.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사람들이에요. 언제든지 산적이나 불량한 집단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이죠.
그런데 그 비류들이 이스라엘 왕조를 세우는 일등공신들이 되었죠. 비결이 무엇일까요? 다윗 신앙의 덕분, 하나님 덕분이에요. 다윗의 노래를 들으면서 ‘하나님이 지존이시구나!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구나! 믿어지게 되었어요. 다윗의 찬양을 듣고 치유를 받았어요.
아파서 피톤치드 향기를 내는 나무가 사람을 낫게 하듯, 아파서 노래 향기를 내는 다윗이 자신은 물론이고 400명의 사람들을 낫게 했어요.
우리도 아픔 중에 있지만, “노래하고 찬양 하리이다.” 확정합시다! 그래서 우리도 세워지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사람들이 됩시다!
둘째는 새벽을 깨우겠다고 확정했어요.
8절에서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고백해요. 입술로 노래만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몸까지 일으켜 새벽을 깨우고 말씀을 받고, 기도를 드리겠다는 거예요.
다윗은 새벽의 신비를 깨달은 사람이었어요.
자신의 삶이 새벽에 받은 은혜로 살아온 것임을 시편 여러 곳에서 고백해요.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시5:3),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46:5), “내가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를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시63:6, 7),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시119:147, 148)
그리고 하나님도 새벽에 일하신 기적들이 많아요.
하나님이 홍해에 길을 내신 때가 새벽이었고, 만나를 주실 때도 새벽이었어요.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가 새벽이었어요.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 철옹성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살리신 때도 새벽이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새벽을 깨우는 사람을 찾으신 것이 아닐까요? 같이 일하시려고! 같이 역사해 주시려고요! 그 사람이 다윗이었어요.
우리도 이번 주에 가을 새벽 부흥회에 모여요. 새벽에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하나님을 얻을 수 있기를 소망해요.
그러기 위해서 버릴 것은 버려야 해요. 잠도 버리고, TV, 핸드폰도 잠시 버려야죠. 세상 재미도 버려야 해요. 내 몸을 쳐서라도 그리해야 해요.
바울은 말해요. “내가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8, 9) 새벽에 역사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발견되고, 그 하나님을 얻기 위해서, 버릴 것이 있어요.
그러니까, 잡는 것만이 얻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도 얻는 거예요. 꽃을 버려야 열매를 얻고, 단풍을 버려야 새잎을 얻듯이요! 하나님을 얻는 일도 마찬가지죠
물론 쉽지 않아요. 다윗도 쉬운 게 아니었죠. 그래서 결단을 반복했어요. 다윗이 시 108:1, 2절에서 오늘 본문의 결단을 다시 해요.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한 번의 결단으로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결단하고 결단해서, 결단하기를 반복할 때, 가능해 진다는 거예요.
이런 반문도 하시겠죠?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요? 기도는 언제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굳이 새벽에, 굳이 교회까지 가서 기도해야 하나요?’
그런 분들께 왕상 18장의 엘리야의 기도를 보시라고 권해요.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42절)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갔어요. 갈멜산 아래에서, 자기 방에서도 할 수 있는데... 그리고 무릎을 꿇고 그 사이에 자기 머리를 넣고 기도해요. 기도는 혀로 하는 게 아니고, 온 몸으로 하는 것이었어요.
이 기도를 7번을 했어요. 엘리야에 비해 우리는 조급해요. 경박해요. 참지를 못해요. 서너 번 하고는 하산해요. 그래서 우리 기도에는 능력이 없어요.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에요. 우리와 다른 것이 있다면 바로 이 간절함이에요. 약 5:17~18절에서 증언해요.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그토록 위대한 엘리야 같은 사람도 이토록 간절히 기도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더 간절함이 있어야 해요. 그런 기도가 주님의 심금을 울리고 응답을 보장해 주세요.
주님의 기도도 보세요.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눅22:44) 겟세마네 동산까지 가셨어요. 간절하셨어요. 마 1:35에는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서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기록해요. 주님도 때로는 새벽에 기도하셨어요.
엘리야의 기도, 예수님의 기도에 비하면, 우리의 기도는 너무 편하게 하는 기도는 아닐까요? 너무 안일한 기도는 아닐까요? 기도 때문에 치러야 할 불편에 너무 엄살 부리는 것은 아닐까요?
초등학교 때 많이 불렀던 노래가 있어요. 새마을 노래요.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 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기억나시죠.
가사를 바꿔 불러 볼까요.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벽기도 나가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주님 힘으로 만드세』 우리 모두 새벽을 깨워 살기 좋은 가정, 교회, 나라 만듭시다!
마쳐요. 본문의 마지막 절이 어떻게 끝나나요? 11절이죠.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이 고백은 5절에서 한 번 더 했었는데, 마지막에 다시 강조해요.
“노래하리라. 새벽을 깨우리라” 확정하는 다윗의 최종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 세상에서 높아지는 것임을 밝혀요. 다윗은 인생 마지막 막장인 아둘람 굴에서,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떨쳐지기를 기도했어요. 원수를 갚아 달라가 아니었고, 왕이 되게 해 달라가 아니었죠.
이 기도가 우리의 기도이어야 해요. 참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나를 삭제하는 거예요.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고 높이시는 것, 이것이 신앙생활이에요!
광주 부시장, 전남 부지사, 구례군 군수를 역임하며 38년간 모범공무원으로 섬기신 이복량 장로님이 있어요. 구례 군수 재직 시절에 유명한 일화가 있어요. 가뭄이 들자 군수로서 기우제라도 드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들이 나왔어요. 이때 장로님은 지리산 기슭에 올라 금식기도를 시작했어요. 위험한 결단이었어요.
이렇게 기도했대요. “하나님, 하나님의 명예가 세상 사람들에게 밟혀서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4일째 기적이 일어났어요.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넉넉하게 내렸어요. 하나님의 명예를 위하자, 하나님이 장로님의 명예를 높여 주셨어요.
다윗도 그랬어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노래하고 새벽을 깨우자, 다윗의 영광을 깨워 주셨어요. 다윗의 자손들의 영광도 깨우시고 가문을 세워 주셨어요. 이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축원해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