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지리산 종주를 준비하면서 이곳 까페에서 활동하시는 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여, 나도 산에 다녀와서 나름의 산행기를 쓰겠다고 다짐하였더랬죠..
15일날 돌아왔는데 이제서야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화엄사에서 세재 마을 (대원사 근처)까지의 코스를 1박2일에 다녀 온 셈이니 나름대로 참고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중간중간에 tip 이라고 적어 올린 것은 처음 나서는 분들을 위한 것인데 혹시라도 수정할 부분이 있다면 가르쳐 주십사..
아울러, 화엄사에서 부터 저와 같이 동행하신 두 분이 이 글을 읽게 되신다면 제게 메일하나 띄워주십사..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제 연락처를 드리면서 정작 님들의 연락처는 제가 받지 않았더군요..
첫날 (12일)
저녁 11시 30분 차를 예약해 놓았으니 한나절을 산행 준비로 보내야 할 터였다. 집안 곳곳에 박혀있던 등산 장비를 꺼내와선 펼쳐 놓고 이마트에 가서 먹거리도 준비했다.
산장 예약이 안되어 있으니 비박 준비도 철저히 해야 했다. 한여름이라도 해발 천미터 위를 오르내리면 추워지기 마련이니 방한이 첫째요, 지리산 중턱은 비가 자주 내리니 방수가 둘째다. 처마밑이 되었건 취사장 시멘트 바닥이 되었건, 또는 최악의 경우에 이슬도 피할 수 없는 풀밭이 되었건 하루밤을 보낼 수 있으려면 메트리스와 비닐 그리고 침낭이 있어야 했다. 예약이 안되어 있어도 산장에서 어찌어찌 잘 수 있겠단 꿈을 품고 가지만 행여나 안되면 어찌할까. 비박 준비만으로 배낭 무게는 한참 업그레이드되지만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먹거리라 하면 여섯 끼의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계획대로 라면 3박 4일의 산행 중 점심은 건너 띄고 아침, 저녁으로 밥과 라면 또는 밥과 3분 요리를 주 메뉴로 삼을 것이다.
당일치기 산행이 아니라면 코스별 예상 시간이 줄수록 좋다. 어두워 지기 전에 산행을 해야 함은 물론, 자칫 비가 쏟아지거나 기온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잘 곳이 확보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산장에 되도록 일찍 도착하여 대기자 명단에 선착을 해야 하니, 어떻게든 식사시간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도 하나의 필수 전략이겠다. 하여, 고작 생각해 낸 것이 햇반과 3분 요리다. 햇반이라면 끓는 물에 15분 끓인후 간단히 한끼를 해결 할 수 있다. 별도의 밥그릇도 필요 없고 뒷처리도 간편하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만큼 쓰레기가 많이 생겨버린 셈이다. 정해진 쓰레기 처리장에 잘 버린다 손 처도 산행에 있어 일회용 용품을 많이 가져간다는 것은 분명 '틀.렸.다.'... 생각이 짧았다 할 밖에..) 문제는 무게였다. 여섯 개의 햇반을 다 가져가려면 무게와 부피 모두 만만치 않다.
점심은 건너 띄기로 했으니 만큼 산행 중 곳곳에서 간단한 영양 보충이 있어야 했다. 과일, 오이 등을 준비할 수 있으면 수분도 보충이 되고 좋다지만 무게가 많이 나간다. 다양한 생각은 있었지만 결국 '쪼꼬바'가 '딱'이겠다. 큰 것 열 개와 작은 것 한 봉지.. 그리고 영양갱 두 개로 간식거리를 갖추었고 유일한 밑반찬으로 오징어 젓갈과 참치 캔, 햄 캔 하나씩을 준비했다.
준비된 것들을 다 펼쳐 놓고 보니 과연 저것들이 배낭에 다 들어갈지 걱정되더라.. 몇몇 물품은 '생존'에 있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으니 요령 껏 넣어 보고 안 들어가면 뺀다는 생각이었다. (나중에 깨달은 바로 이런 식으로 배낭을 싸는 것이 문제였다. 꼭 필요 한 것이 아니면 일단 제외시켜야 했던 것을..) 그런데, 꾸역꾸역 차곡차곡 넣어 보니 다 들어가는 것이었다. 어깨에 메어 보니 전혀 생소한 무게가 전해지고 높이만 해도 내 허리까지 넘보게 되었지만 여튼 다 들어간다는 데 의의를 두었다. 그리고는 결국 죄다 가져가기로 마음 먹었다. 어느 것 하나 뺐다가 후회하리란 생각에.. 이거 하나 뺀다고 무게가 얼마나 줄까 하는 생각에..그리고 내 어깨가 아직은 '젊어' 이 정도는 거뜬하겠다는 생각에...(정말 꾸준히 어리석었다...)
차시간이 다 되어 집을 나서는데 스틱하나 쥐고 크디큰 배낭을 짊어지고 나니 폼은 나더라 . 그런데 얼마 안가 '내게는 버거운 무게다'라는 걱정이 솟았고.. 몇 개 빼놓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걱정스런 얼굴로 환송하는 어머니 앞에서는 꽤나 당당했건만 내 스스로 '무모하다'는 생각을 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원행 전철을 타고 수원역으로 가서 기차 시간을 기다렸다. 11시 50분경에 기차가 도착하니 몸을 싣고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야 했다. 내일부터 다소 파란만장할 성 싶으니...( 밤 기차 안에서 자기 애 데리고 노는 사람들 보면 뭐하나 짚어 던지고 싶다. 정.말.로..)
tip :
먹거리 - 햇반6, 삼분요리3 , 라면3, 젓갈, 참치캔 하나, 햄캔 하나 (여섯 끼 分)
쵸코바 (자유시간3, 아트라스 6, 미니 쵸코바 한봉지 ), 영양갱 둘
버너 (가끔 보면 그 어려운 산행에 버너랍시고 부르스타를 가지고 다니는 등산객을 본다. 무게도 무게려니와 손이 자유롭지 못하니 위험하기 까지 한데도 그 고집이 대단하다.) ,
코펠 (냄비 하나, 밥그릇, 수저)
물통 (네버스탑 두 개 정도면 충분하더라. 실은 한 개들고 다녀도 별 문제 없었다. 네버스탑 병은 꼭지가 특이하여 걸으며 물먹기에 아주 좋고 물을 쏟는 일도 없다.)
맥가이버 칼, 판쵸우의(접어서 배낭 겉에 메달아 놓는게 좋다.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모르니 재빨리 꺼내 쓸 수 있어야 한다.)
침낭, 매트리스, 후레쉬(헤드랜턴이 좋다. 미리 성능을 점검해야 한다. 건전지 여분을 준비하는 것도 필수 겠다. ) ,
물티슈 (산장에 사람이 많으면 세수하기도 쉽지 않다. 물티슈로 세수 하는 것도 뭐, 그럭저럭.. 사람에 따라서는...^^;;),
비닐 봉지(비닐봉지가 없으면 젖은 옷을 처리하기에 아주 곤란해 진다. 여러개 준비해야 한다.), 가스등, 가스 (두개 정도면 충분), 버너 바람막이(산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
옷가지(추워 떠는 일이 종종 있으니 긴 옷은 필수 , 속옷, 양말, 등등..)
수건, 세면도구 (린스까지 챙겨 오는 여성들 보면 한숨만 나온다. 산에서 샴푸를 쓰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
둘째 날(13일)
구례구 역에 도착한 시각이 새벽 4시 30분이었으니 역 주변 식당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혼자 등산 온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들 좋아서 반기는 택시 기사님들을 뒤로하고 식당에 가서 해장국 한 그릇을 비우다. (밥 두 그릇을 먹지 않은 것도 나름대로 후회'꺼리'가 되더라. )
역전 식당의 주인 아저씨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도 상당하다. 차시간에서부터 간단한 등산로 안내까지.. 식당에 들어온 등산객들을 엮어 주어 싼값에 택시를 탈 수 있게끔 해주기도 하더라. 내가 만약 성삼재에서 오르는 코스를 택했다면 주위에서 식사하던 등산객 셋과 합승하여 택시비를 절약할 수 있었겠으나 이미 화엄사 코스로 마음을 굳힌 후였다. 성삼재까지 2만 5천원 가량의 택시비가 사람하나 끌어들일 때 마다 2分, 3分 .. 되니 얼마나 신나는 일이겠는가...
아쉽게도 화엄사로 가는 등산객은 찾을 수 없었다. 주위 분들한테 일일이 물어도 다들 성삼재로만 간다 하니 '오늘은 다들 화엄사를 외면하는가 보다' 했는데.. 택시 기사들은 용케도 찾아낸다. 내 눈에 띄었으면 저도 좋고 나도 좋았을 것을.... (택시 기사가 합승시키러 데려오는 손님들을 일행이라 할 수는 없겠다. 뭐, 정 돈이 궁하고, 남 못잖은 배짱과 능청이 있다면 해볼만도 하겠다만.. .실제 그런 경험담을 들은 적도 있다. 합승시키러 데려온 손님을 태우고 기사 아저씨가 잠시 자리를 비웠더니 그새 쌩판 모르던 사람이 대학 동창이 되었다나..)
tip : 성삼재로 가나 화엄사로 가나 보통 구례구역에서 많이 내린다. 화엄사 주변에는 식당이 없으니 노고단 즈음에서 취사할 생각이 아니라면 구례구역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고 가는 것이 좋겠다. (좀더 일찍 화엄사에 들어서면 절 밥을 먹을 수 있는 행운이 떨어지기도 한다더라..) 그리고 택시가 서는 곳은 등산로 바로 앞이니 기타 필요한 물품을 사려거든 역시 역전의 상점을 이용해야 한다. 지도가 준비되지 않았으면 반드시 지도를 사고.. 간단한 부식거리 등도...
성삼재로 갈려면 택시로 2만5천원, 화엄사는 만원에서 7천원 정도를 내야 한다. 구례구 역에서 내리는 분들은 대부분 등산객들이니 눈치껏 합승할 분들을 찾는게 좋다. (물론 돈이 여유가 있고 새벽부터 등산객들 맞이하는 택시 기사 분들을 배려한다면야 굳이 쌍심지 키고 그럴 필요 없겠다.. 내 경험으로는 구례구 역 택시 기사 분들은 비교적 친절하시더라믄..)
어정쩡하다가 택시를 늦게 타도 안된다. 새벽에 도착하여 조금만 부지런 해도 화엄사로 들어가는 입장료를 안낼 수 있다. (입장료가 꽤 비싸다..) 정확히 언제부터 입장료를 받는 다는 것은 정해진바 없다 한다. 자주 그곳을 오가는 택시 기사들만이 대략적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5시가 넘으면 버스도 다닌다. 구례 터미널로 가서 성삼재로 가나 화엄사로 가나 교통비는 훨씬 절약된다. 버스 차시간이 뜸하게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식당 아저씨의 정보에 의하면 5시 10분 버스를 놓치면 6시 30분까지 구레구역에 묶인다 했다. 눈물을 머금고 택시를 잡아 타던지..
화엄사 도착 시각이 5시 20분이었으니 예상 출발 시각 보다 40분 정도를 당길 수 있었다.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의 코스가 험하다는 풍문에 겁을 먹고 있던 터라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건 분명 중요했다.
그러나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리 만!무!(혼자 나선 산행 치고 그때까지 너무 순조롭다 싶었다.)택시에서 내려주는 곳에 바로 등산로를 표시한 이정표가 있었는데 날이 어두워 그걸 못보고 절 쪽으로 들어선게 문제였다. 길이 나 있는 곳을 보고 마냥 걷다가 절에서 수련하는 듯한 사람에게 (스님은 아니었다. 또, 무척 불친절 했다.) 물으니 이 길이 등산로가 맞다 했다. 그 말을 믿고 좀더 오르는데 다른 등산객이 보이지 않는 것도 이상했고 아무런 표시가 없는 것도 수상했다. 가던길로 내려와 이번엔 스님께 여쭈었는데 그 길이 맞단다. 가다보면 등산객들도 만날 수 있단다. 하여, 다시 돌아왔던 길을 밟아 나가는데 한참을 오르다 보니 스님들 숙소인듯 한 한적한 절간이 하나 나왔다. 도무지 길은 안보이고 아무래도 등산로가 아니려니 싶어 다시 그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 제대로 된 길을 밟아 올라도 힘든 차에 엉뚱한 데서 헤매이고 있으니 오죽했을까.. 더욱이 벌어놓은 40분 여를 그렇게 허비하고 있으니..)
처음 택시에서 내렸던 곳으로 돌아오니 이미 날이 밝아 오는 차였고 그제서야 '노고단' 방향을 표시하고 있는 이정표가 뚜렷이 들어왔다. 첫발을 잘못 내딛은 것이었다.
tip : 택시에서 내려 바로 오른 쪽에 나있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주위가 어두워도 찾을 수 있는 이정표였다. 행여나 길을 못찾아도 스님이 일러주는 방향을 따를 때에는 조심해야 한다. 스님들은 일반 등산로를 일러주기 보다는 자신들이 이용하는 묘~한 길을 일러주시는 듯 했다. 조금 더 빨리 가라고 나름의 배려를 하시는 거겠지만 자칫 길을 잃어버리기 쉽상이다. 아예 스님꼐 처음부터 등산객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 어딘지를 여쭙는다면 모를까..
등산로를 찾았으니 안심은 되었지만 결국 예정된 6시에 출발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더 늦춰지지 않은 것을 위안 삼으며 본격적인 등산에 나서기 위한 재정비에 들어갔다. 물통에 물 채우고 배낭 끈 조이고, 신발 끈 묶고.. 그러던 차에 알게 된 묘령의 여성 한 분과의 만남이 내가 이번 등산에서 맺은 첫 번째 인연이자 가장 뜻깊은 인연 중 하나였다.
역시 혼자 오신 분이었다. 또한 역시 종주 길에 나선다 했다. 그런데 배낭 부피가 내 것과 너무 차이가 나서 의아해 하던 차에 내게 질문하나가 던져 지는데.. '산장에 가면 먹을 것 다 팔죠??' 하는 것이었다. 지리산 종주 길에 나서면서 쌀은 물론 취사 장비를 하나도 안 챙겨 온 것이었다. (그런 것 치고는 배낭이 컸다..^^;; 용감무쌍한 여성이었다....)
여튼, 혼자 온 사람끼리 벗하며 화엄사 계곡 코스를 올랐다. 보통 네 시간을 잡는 코스(화엄사~노고단)로서 노고단 근방(성삼재)까지 버스가 다닌 이후로 등산객 발길이 뜸해진 길이다. 개인적으로도 세 번째 지리산 행이었으나 이 코스를 밟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길이 잘 닦여 있어 버스가 다 다니는데 굳이 무거운 배낭 메고 고생할 필요 있겠냐는 거였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혼자 온 김에 조금 힘들더라도 평소 가기 힘든 길로 가고자 하는 고집을 부린 것이다. (같이 동행하게된 여자 분도 그런 생각이었던 듯 싶다.)
화엄사 계곡 길은 소문대로 힘들었다. 계곡을 따라 가는 길이어서 물이 부족하지는 않았고 숲도 우거져 좋았지만 길이 거칠었다. 몸도 제일 무겁고 가방도 제일 무거운 만큼 첫날 산행이 제일 어려운 법이다. 그에 더하여 어려운 길을 택했으니 그야말로 사서하는 고생인 셈이다. 배낭 무게에 어깨가 눌리고 경사가 급해지자 숨이 차왔다. 계곡 물에 수건을 적셔 이마에 메고 나아가는데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매번 등산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등산을 함으로써 얻는 만족감, 성취감 등은 나에게는 다소 늦게 찾아오는 것들이었다. 짐을 꾸리고 차에 몸을 실을 때만해도 내가 무엇 때문에 산에 가는지를 잘 모른다. 다만 매번 산에 올랐을 때 느껴지는 기운이라는 게 있고, 그 기운에 다시금 몸을 적시고 싶다는 생각에 산으로 이끌린다. 그게 어떤 기운이었는지 언제쯤에나 찾아 오는 것인지에 대하여는 기억되는 바가 없다. 산에 가서 고생을 좀 하다 보면 찾아 오리라는 정도 밖에는.... 하지만 그게 그렇게 그리워 산을 찾는다. 정말 불투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그때문인지, 화엄사 계곡을 오르다 보니 자연스레 하나의 의문이 던져졌다. '나는 산에 왜 왔을까?? 혼자서라도 굳이 지리산에 몸을 던진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산에 오르다 보면 금새 계곡물 소리가 들리고 울창한 숲에 몸이 파묻히면서 몸에서 작은 흥이나마 일기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배낭이 너무 무거워서 였는지 아니면, 길이 너무 거칠었던 탓인지 좀체 흥이 일지 않기에 던져진 질문이다. 산에 오르면서 스스로 그런 물음을 던져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동행하던 분은 이미 나를 앞질러 갔다. 가파른 경사를 사뿐사뿐 올라가는 모습이 가벼워 보였다. 여자보다 쳐진다는 것이 자존심을 건드리기는 하지만 그것도 체력에 여유가 있을 때에나 발동한느 자존심이다. 눈앞에 펼쳐진 오르막길을 올라서면 또 다른 오르막이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배낭 위에 돌이 하나씩 얹어 지는 기분이다.
tip : 화엄사 길은 보통 네 시간 정도를 잡는 코스라 하지만 직접 올라보니 네 시간은 좀 길었다. 도중에 세 번정도 쉬면서 부지런히 오르니 세시간 삼십분 정도가 소요되었고 짐이 좀 가볍다면 세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올라 설 수 있는 거리였겠다. 9 km가량의 이 길은 지리산 종주의 정통 코스(가장 긴 코스)라 할 수 있는 화엄사~ 대원사 코스의 출발점이기도 하지만 노고단 바로 아래 위치한 성삼재까지 버스가 다니면서 등산객들의 발이 뜸해져 다소 한가해졌다.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고 숲이 우거져 멋은 있으나 경사가 급하다. 화엄사에서 처음 들어서게 되는 길은 잘 닦여져 있긴 하나 재미가 없어 아침 일찍 나서게 되는 경우, 어두울 때 통과해 버리는 것이 낳겠다.
2박 또는 3박의 종주 길의 첫출발 지점으로서 화엄사 계곡 길을 거치게 되면 어느 정도 몸이 다듬어져서, 다음 코스가 수월해 지는 느낌도 든다.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의 준비운동이 된다는 것..(그만큼 만만찮다.)
세시간 정도를 오르니 계곡길이 끝나고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가는 길과 만날 수 있었다. 잘 닦여진 노고단 행 길에 오르게 되면 이미 1500미터 정도의 높이에 다다르게 되는 셈이니 숨통을 트이는 시원한 기운이 몸을 감싸도는 것을 느낀다. 결국 조금 전에 던져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게 된 셈이다. 이번엔 그 기운이 더욱 강했다. 끝나지 않을 듯 했던 계곡 길을 어렵사리 올라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만족감 때문이었겠다.
노고단 날씨는 전방 10미터 앞이 안보일 정도로 안개가 자욱했다. 시야가 트였다면 곳곳에서 펼쳐지는 장관도 볼만했을 터, 날을 잘못 택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가슴속 깊이 까지 전해져 오는 상쾌함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다른 어느 곳에서 이런 기분을 맛보랴..
노고단 산장에 도착하자 화엄사 부근에서 만난 여자분과 다시 상봉할 수 있었다. 웬지 모르게 하산할 때까지 함께 할 듯한 느낌이 들었고 벌써부터 머릿속으로 내가 준비한 식량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산에 오르면 인심이 후해진다는 것'은 나름의 진리인 셈이다.
길고 여유로운 산행을 생각하며 3박4일을 잡아봤던 것이니 조금 서둘러 2박3일로 일정을 단축하면 나누어 줄 수 있는 먹거리가 대충 나오겠다 싶었다. 이 분은 먹을 건 없어도 좋은 사진기가 있었으니 나름대로의 기브 앤 테이크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혼자 가는 산행이고 짐도 많아 나는 사진기를 준비하지 않았다.)
노고단 정상 탐방을 위해 대기자 등록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에 또 다른 만남이 이루어 졌다. 화엄사 계곡 길을 오르던 중 콜라 페트 병을 내밀던 등산객이었다. 역시 혼자 종주 길에 오른 터라 궁합이 맞았다. 혼자나선 산행이니 어느 정도의 외로움은 각오하고들 있었지만 그래도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좋았던 것이다. 서로의 산행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야... (사실, 산에서 우연히 함께 한 사람들끼리는 서로 여러 가지 도움을 주고 받는다. 물과 음료, 먹거리에서부터 산장 정보, 날씨 정보 등등.. 특히 각자 준비해온 간식거리들을 나누다 보면 정은 자연스레 붙는다. 물론, 이번 경우 여자 분에게는 준비된 먹거리가 별로 없었지만 그렇다고 눈치 주는 일이야 있으랴... )
결국 각자 따로따로 화엄사를 나선 세 명의 등산객이 노고단에서 만나 팀을 이루게 되었고 산행이 끝날 때를 넘어 귀성 길에까지 함께 하게 되었다. (① 우연히도 다들 서울, 수도권 거주자들이었다. ② 노고단에서 '우리 함꼐 갑시다'란 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비슷한 페이스로 걷다가 쉬는데서 함께 쉬고.. 그러면서 먹을 것 나누고.. 하다 보니 자연스레 동행하게 된 셈이다.. 산에서나 이루어 질 수 있는 팀워크라 하겠다.)
노고단 정상 탐방 시간이 되자 관리자의 인솔을 받으며 탐방에 나섰다. 오랜 시간 동안 등산객의 발길이 통제되었다가 얼마 전부터 개방되기 시작한 곳이라 복원된 생태계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그날은 뿌연 안개와 등산로 주변에 간간이 보이는 꽃들이 전부였다. (처음엔 그 꽃들이라도 유심히 보아가며 다른 데선 볼 수 없겠거니 했지만 대부분 주능선 코스를 지나면서 눈에 밟히는 종류의 것들이었다. ) 안개 탓에 시야가 트이지 않으니 답답하더라. 섬진강이 내다보인다는 전망대가 있어도 하얀 구름위에 올라선 듯한 기분이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그 나름의 매력도 컸다. 구름 위에 올라 선 듯한 그 상쾌함에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쌤쌤)
tip : 노고단 정상은 자연 휴식년제가 얼마 전부터 풀리면서 현재는 하루 세 번 시간을 정하여 한번에 100명씩 등산객들의 탐방을 허용한다.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한 후 관리자의 인솔을 받으며 한바퀴 돌고 오는 것이다. 그러나 예약된 사람들이 시간에 맞추어 오지 않을 경우 즉석에서 대기자를 받으니 미리 예약을 안해도 둘러 볼 수 있는 방법은 충분히 있다. 단, 노고단 산장에서 반드시 등록을 해야 한다. (탐방로 입구까지 힘들게 올라와서 통제 받고는 여기까지 올라온 게 불쌍하지 않느냐며 떼쓰는 사람들이 종종 있더라. 관리자 아저씨들은 그들 달랜다고 애쓰고..)
11시쯤 탐방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임걸령으로 향한다. 노고단에서 출발하기 전 옆에서 일행이 되신 분이 건네주는 미숫가루와 작은 먹거리(이름 까먹었다..)가 나름의 요기가 되어주었다. 화엄사 계곡을 올라 노고단에서 시작되는 주능선을 타기 시작하면 산행이 한결 수월해 진다. 간간이 험한 봉우리를 넘어야 하지만 화엄사 길처럼 가파른 경사가 길게 이어지는 경우는 없다. (또한 발아래 펼쳐지는 경치가 좋아 흥을 돋우지만 이는 역시 날이 좋을 경우에나 느낄 수 있는 '흥'이겠다. --;;)
본래의 내 계획에 따르면 첫날 무리하지 않고 뱀사골까지 가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코스별 시간에 따르면 연하천까지 갈 수 있겠으나 첫날이라 많이 힘들고 화엄사 길에서 지체될 것을 예상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노고단에 올라섰을 때 이미 예상보다 30분여가 당겨졌고 그 후로는 걷기가 더 편해져 연하천까지는 갈 수 있을 듯 했다. 동행하는 분의 계획도 그러했으니 첫날의 목적지가 쉽게 수정되었다.
노루목에서 반야봉을 오르느냐 그냥 지나쳐 가느냐의 결정을 해야 했다. 예상 시간보다 조금씩 빨리 걷고 있었던 덕분에 반야봉을 오른 후에라도 다섯 시까지는 연하천에 도착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반야봉에서 내려다보는 장관이 그렇게 멋지다는 소문을 접했기에 욕심도 생겼다. 동행하던 남자분과는 이미 합의를 봤고 머뭇거리던 여자 분도 쉽게 넘어와 주어 반야봉 등정 길에 오를 수 있었다.
반야봉 코스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절벽이 가파른 길에 비도 내리고 바람도 불어 위험하기까지 했다. 막상 오르니 나름의 성취감이야 있었지만 역시 날씨가 문제였다. 안개가 노고단보다 더 심하여 발아래 무엇이 펼쳐져 있는지 알도리가 없었다. 그저 꼬임에 넘어와 힘들게 따라 올라온 여자 분이 안쓰러울 밖에..
tip : 1734m 높이의 반야봉은 임걸령과 뱀사골 사이의 갈림길로 올라서는 봉우리다. 반야봉을 오른 후 뱀사골로 다시 향하려면 어차피 같은 길로 오르내려야 하니 배낭을 아래에 풀어 놓고 가는 것이 좋다. (걱정이 된다면 적당히 숨겨 놓고 가면 된다.) 소요시간은 보통 왕복 두 시간 정도를 잡는데 한시간 삼십분 정도로도 충분한 듯 했다. (날씨가 좋으면 경치가 아주 멋지다지만 안개가 많이 끼는 날이면 애써 올라 후회하는 수도 있겠다. 주위에 절벽이 많아 비가 오거나 바람이 많이 불면 다소 위험한 코스가 된다. )
반야봉을 내려와 간단히 허기를 달랬다. 배낭 맨 윗 주머니에 모셔둔 쵸코바들이 아주 유용했다. 여튼, 그걸로 연하천까지 내달려야 했으니..
연하천까지 목표했던 다섯시까지 도착하기에는 다소 빠듯한 듯 했다. 노루목에서 연하천까지 두어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했으니 길도 그리 원만하진 않았다. 그러나 지체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산장 예약이 안되어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빨리 가서 대기자 명단에 이름 석자를 올려 놓아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섯 시쯤에만 도착하면 어느 정도 편한 잠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 줄 알았다.. --;;)
우선 연하천까지 가서 자리가 없으면 두 시간 여를 더 걸어 벽소령까지 가겠단 계획을 세웠다. 근데, 몇 개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동안 체력이 떨어져 다들 연하천이 나오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연하천에 일단 도착하면 더 나아갈 힘이 없었던 것이다. 토끼봉, 총각샘을 거쳐 연하천에 도착하니 목표했던 5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얼추 목표를 달성했으니 등 붙이고 잘 수는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 어디 그게 맘대로 되는 일이랴..
tip : 노루목에서 연하천까지의 길은 다소 힘들지만 시간 여유만 있다면 오히려 지루하지 않아 좋은 코스다. 삼도봉, 토끼봉을 지나 연하천 가기 30분 전 즈음하여 총각샘이 나온다. 등산로와 다소 떨어져 있어 지도를 보고 찾아야 하는데, 바위 틈에서 흐르는 물이라 운치가 있고 물맛이 좋다.
연하천에 도착해보니 대기자가 밀려있단다. 적정인원 50명에 불과한 작은 산장이라 휴가철이면 늘 붐비는 곳이었다. 미리 전화예약을 한 사람 중 오지 않거나 7시내에 도착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했던 건데, 웬걸,, 예약한 사람들의 출석율이 100퍼센트 란다. 벽소령까지 가기엔 아무래도 무리고 대기자들에게도 일일이 돈을 받았으니 무언가 대책을 마련해주겠지 싶어 식사 준비를 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지리산에서 먹는 첫 번째 '밥'이었다.
내가 준비한 햇반 하나와 동행한 남자 분이 준비한 쌀 2인분에 라면 두 개를 끓이고 참치캔을 꺼내어 저녁을 차렸다. 준비 부족으로 신세를 지게된 여자 분은 말 그대로 눈치밥을 먹게 되었는데 역시 주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이 불편하기 마련이니, 소화나 잘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밥을 깨끗이 비우고 뒷정리를 하는데 산장 관리인이 사람을 모은다. 사람들 이름을 일일이 부르는데, 예약된 사람 우선이고, 그 다음엔 어린이, 여자, 노약자 우선이다. 나머지는 건장한 청년들이니 나는 그 나머지가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충분히 건장했고, 충분히 젊었기에..^^:;) 나머지 28명의 이삼십대 남성들은 골방으로 안내되었다. 들어가는 데로 벽에 등을 기대고 앉으라는데 차후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 충분히 짐작이 되었다. 방에 들어가는 데로 우겨 넣고는 엉덩이만 붙일 수 있다면 그대로 자라는 거였다. 정말 진풍경이었다. 하루종일 산행을 한 사람들이차곡차곡 뭉쳐졌으니 방안에는 온갖 냄새가 감아돌더라. 사방에서 엉겨 붙는 끈적끈적함과 후끈함을 인간미라 느끼기엔 지나치게 낭만적일 필요가 있었다. (물론, 나는 그게 안되었고..)
허나, 비를 피할 수 있고 춥지 않을 수만 있다면 오늘 밤 필요한 최소한의 것은 모두 갖춘 셈이었다. 문제는 '사람'이다. 이렇게 모르는 사람끼리 꼭꼭 뭉쳐져 있으면 결국 사람 때문에 더욱 불쾌해 지기 십상이겠다. 좁은 장소에 굳이 등을 붙이고 두 발을 뻗으려는 사람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리가 더욱 비좁아진 사람은 불만이 생길 수 밖에 없고 그 불만이 여기저기서 불거지다 보면 온 방안이 짜증으로 가득차게 될 터인데.... 산에서라면 이러한 공식이 보기 좋게 깨지고 말더라.. 그 좁은 곳에서 군소리 하나 터져 나오지 않았다. 자다가 발에 밝히기도 하고 차이기도 했다. 내 옆에 앉은 이는 누군가 자기 짐을 꺼내다 떨어뜨린 물병에 얼굴을 맞기도 했다. 그러나 아프다는 외마디 소리만 있은 후 어떠한 불만도 없었던 풍경이 생소하기까지 하다. 좋은 사람들이 산에 오는 건지 산에 오면 좋은 사람들이 되는 건지.. 참 이래저래 훈훈한 밤이었다.
tip : 연하천 산장은 지리산에 있는 9개의 산장들 중 제일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한다. (따져보니 노고단, 세석, 벽소령, 장터목이 크고 넉넉할 뿐 나머지는 그게 그거겠다.) 수용인원 80명에 적정인원 50명이라니 여름 휴가철이면 편안함 잠자리를 기대하기 힘들다. 전화로 미리 예약을 한 인원들은 지정된 방에서 잘 수 있다지만 그 역시 안락한 장소는 아니었다. 하물며, 예약 안 된 인원들이야 비 피할 수 있는 공간만 있어도 감지덕지다. 주능선을 종주하던 중 여력이 있으면 두시간 정도 더 나아가 벽소령까지 가는 것이 좋겠으나 체력이 충분하고 날이 밝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무리해서 가기에는 연하천~ 벽소령 길이 그리 만만치 않다.)
사용료 3000원씩을 내고 들어가는데 아무리 잠자리가 비좁다 한들 관리인에게 불평할 일은 아니겠다. 날이 어두워져 가는데 연하천에서 사람들을 돌려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관리인 입장에서야 그렇게라도 모두 수용해야 하겠으니 말이다. 개인이 관리하는 산장이라 그런지 시설은 다소 열악하지만 좁은 것 빼놓고는 딱히 불편하다 할 것도 없다. 간단한 음료(술, 커피 등)와 가스 등을 구입할 수 있다.
셋째날
부대껴 누울 때는 한숨도 못잘 듯 했고 어떻게든 잠을 청하려 뒤척여 봤지만 허사였었다. 마냥 그렇게 하룻밤을 꼬박 세우려는가 했더랬는데...
어느새 잠들었는지 침낭에 파묻혀 있는 나를 누군가 깨우는 소리에 그 골방을 나왔다. (나의 적응력도 참 어지간하다..^^V) 새벽 네 시쯤 일어나 일찍 연하천을 출발하자는 얘기가 미리 오갔던 터라, 동행하던 남자 분이 날 깨운 것이다. 골방을 나서니 짐이 제대로 있는지가 우선 걱정이었다. 안그래도 좁은 방이니 그 커다란 배낭을 방에 둘 수 없었고, 모든 배낭은 주인들과 떨어져 산장 밖으로 밀려나야 했더랬다. 천막 밑에 차곡차곡 내던져진 배낭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잘 있어 준 것이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무사히 내 것을 찾을 수 있었고 습기를 넉넉히 머금었다 뿐 상태도 양호했다.
하나하나 챙기고 침낭도 접어 나가는데 도무지 어제의 그 컨디션이 나올 듯 하지 않았다. 우선 속을 채우자 하여,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데 아침의 상쾌함이라고는 느낄 수 없길래 오늘 산행에 대한 이런저런 걱정이 밀려온다.
그런데, 이 또한 산의 매력일까.. 하나둘 눈비비고 나오는 사람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무언가 하나둘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습기를 잠뜩 머금고 축축해진 배낭도 짊어질 수 있을 듯 했고, 어제 저녁과 비슷한 메뉴로 아침을 해 먹으니 기운도 났다. 누구보다 동행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큰 힘이 되는 듯 했다. 산행을 함께 할 사람들과 오늘 일정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서로를 격려하게 되더라. (문득, 내가 그분들에게 어떤 힘이 되었을까 하는 느닷없는 의문이 생긴다.. 과연....--;;;;;;;;;;;)
아침을 먹으며 그제서야 통성명을 할 수 있었다. 처음 만난지 24시간여가 흐른 후였다. 하루 산행을 꼬빡 동행했던 그 분들은 자기들끼리는 서로 동갑이요, 나에게는 다섯 살 많은 형, 누나들이었다. 짐작은 했었다만 나의 실제 나이를 안 그 분들의 반응이 인상적이다. 형은 말을 잊지 못했고 누나는 나를 '핏덩이'라 했던가..(이십이년 묶은 핏덩이 봤나... 칫..--;; 여튼, 스물 두 살이면 학교에서도 고학번 취급받을 만 한 연배인데도 산에 왔더니 영락없는 막내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만 험한 산길에서는 나잇살 더 먹은 '어른' 노릇보다 철없는 '애' 노릇하기가 '훠~~얼씬' 쉬운 법이라니... )
아침 먹고 짐 정리 마치고 이런저런 준비를 하다 보니 7시 30분쯤 되어서 연하천을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우선 벽소령에 도착하여 한숨 돌리고 세석, 장터목을 거쳐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을 찍어야 했다. 이미 3박 4일의 예정은 없던게 되어 버렸다. 두 번 씩이나 한 솥밥 (? 한 코펠 밥?)을 먹었으니 하산까지 함께 해야 했고, 짐작컨데, 2박3일로 충분히 마무리할 수 있는 일정을 굳이 하루 더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두 사람 분의 식량으로 세 사람이 움직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만, 먹을 게 부족하다는 것에 대하여는 이상하게도 심각하게 고민된 적이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큰 당면과제였음에도 뭘 믿고 그랬는지 모를일이다.)
연하천에서 벽소령까지의 길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만만한 길도 아니어서 아침에 몸풀기 산행으로 적당하다 할까.. 가는 길에 형제봉에 올라 '폼'한번 잡아주고 (사진 한번 찍어주고..) 벽소령에 닿으니 두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분명 두끼의 식사를 해치웠으니 짐이 가벼워 졌을 법도 한데 어깨를 누루는 무게는 여전히 묵직했다. 둘째 날부터 그리 대단한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만 실망이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더라. 아마도 젖은 옷가지들 때문이겠다. 그나마 컨디션에 별 문제가 없어 다행이다 싶으니, 불편한 잠자리에서라도 눈을 붙일 수 있었던 내 '능력'에 감사할 따름이다.
tip : 연하천에서 벽소령까지 가는 길은 적당히 험한 코스다. 어느 정도의 수면을 취하고 난 아침 산행으로야 별 문제될 것이 없지만 전날 무리해서 벽소령까지 내달렸다면 '쌩'고생 했으리라고.. 서둘러 가면 90분 정도에도 가능하겠으나 중간에 형제봉에 올라 사진 찍고 쉬엄쉬엄 하다보면 두시간 정도 걸린다. 형제봉은 연하천에서 50여분 정도 가면 나오는 바위산인데 키가 엇비슷한 두 봉우리가 나란히 서있는 모양새를 묘사한 이름인 듯 했다. 앞으로 나아가는데 급급하다보면 자칫 지나칠 수 있으나 한번쯤 올라 볼 만 하다. (무엇보다 폼잡고 사진 찍기에 조~~은 곳이니까..)
벽소령 산장은 유난히 애착이 가는 곳이다. 2년 전 이곳에서 별나게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받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무엇보다 시야가 탁 트이는 이곳 풍경이 아주 그야말로 지리산 답다. 산장 건물만 보면 대학로의 까페에 온 듯 한적하고 운치가 있어 며칠을 머무르고 싶어진다. 주위에 양이나 소 몇 마리만 풀어 놨다면 영락없는 목장 풍경이다. 내 직접 가보지는 못했다만 그 유명한 알프스 초원이래 봤자, 벽소령 주변의 풍광과 견주어 더 나을게 뭐가 있을까 보냐.. (다 덤벼라~~)
벽소령이 유난히 좋은 이유라면 또 있다. 벽소령부터 장터목까지 완만한 길이 펼쳐져 주시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사진을 실컷 찍기로 마음먹었다면 벽소령~장터목에서 그만큼 지체해야할 시간이 많아지고 말 것이다. 지리산 주능선 종주 코스의 멋을 제대로 담고 있다 할까. 발 아래는 구름이 펼쳐져 있고, 기운은 한여름이라도 '상쾌' 무.쌍!! (한여름 때가 아니면 무지 추워진다는 말이겠다..) 높지 않은 봉우리 두어개를 넘으며 지리산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늘 그런 것 만도 아닌 것이.. 지금 돌이켜 보면 이번 산행에는 이 코스도 그리 간단치 않았던 듯 하다. 벽소령에서 세석으로 가는 한시간 여는 좋았으나 그 다음부터 오르막 내리막을 거치며 몸에 작은 고장이 느껴진 탓이었다. 2년 전에는 3박4일 산행의 마지막 날 백무동으로의 하산길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오른쪽 발을 내딛을 때마다 무릎에서 전해지는 통증.... 처음에는 그냥 욱신거리는 정도이나 나중에는 심해져 한번 내딛을 때 마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만다. 오랜 산행 끝에 무리가 가해지면 전해지는 그 통증이 베낭의 무게 탓인지 산행 이틀만에 찾아 온 것이다. 오른손에 스틱을 쥐고 무릎에 전해지는 무게를 다소 줄이려 해 보았으나 통증을 아주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약간 당황했으나 차츰 익숙해져 갔다. 속도를 낼 수 없을 뿐 꾸준히 나아가는 데는 별 무리가 없었다. 다만, 2년전의 그 상쾌함이 무뎌져 버린게 못내 아쉬울 따름이었다.
일행 중 항상 앞서가는 형의 체력은 여전했다. 다소 완만한 길에서는 일행 셋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정도로 페이스가 맞았으나 길이 좀 험해진다 싶으면 으레 시야에서 멀어져 버린다. 앞서가다가 나머지 둘이 좀 쳐진다 싶으면 적당한데서 기다려 주니 일행의 선두로서는 더할 나위 없었다. 적당히 힘들게 걸었고 또 적당히 쉴 수 있었다.
전날 반야봉에서 숨을 몰아쉬던 누나의 컨디션도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나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걷는데 때로는 나를 뒤로하고 성큼성큼 나아가 나로 하여금 무기력함을 안기더니 때로는 내 뒤로 쳐져 스스로 무기력함을 보이더라. 좀체 지쳐 보이지 않는 형에 비하면 다소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tip : 벽소령과 세석은 비교적 넓고 깨끗한 산장이다. 여름 휴가철이면 붐비기는 마찬가지라지만 연하천, 장터목에 비하면 잠자리가 편하다. 산행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벽소령에서 세석, 장터목까지의 코스에 시간을 두고 천천히 거닐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안개만 걷힌다면 사진 찍을 곳도 많고 명상에 잠겨볼 만한 바위산도 곳곳에 있다. (하긴, 마음에 여유만 있다면 사진 찍고 명상할 곳은 지리산에 널렸다.. --;;)
여튼, 다음 산행에는 꼭 벽소령에서 하룻밤 잘 것을 다짐해본다.(벽소령과 세석에서 각각 하룻밤씩을 묵고자 하는 것은 무리겠지...) 단, 민간이 운영하는 연하천과 같은 산장에 비해 장터목, 세석과 같은 산장은 관리공단에서 운영해서인지 다소 불친절한 경우가 있다. 직접 겪어 보지는 못했다만 간간이 들려오는 불친절 사례가 연하천, 치밭목 산장 등에서 들려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세석 산장은 규모도 제일이지만 시설도 제일이었다. 평소에는 매점에서 다양한 부식거리도 판다지만 그것만 믿고 준비를 제대로 안하면 낭패보기 싶다. 내가 갔을 때는 매번 성수기였기 때문인지 매점 아저씨가 '암껏도 없습니다'만 연발하더라..
그럭저럭 장터목에 도착하니 4시가 되어갔다. 연하천에서 출발할 때 치밭목에 다섯시쯤 도착할 것을 목표 했었으니 이미 시간이 많이 오버되어 버린 셈이다.
장터목은 내게 아픈 과거가 있는 곳이다. 2년전 해프닝인데, 야영이 금지된 것을 모르고 텐트 두 개를 짊어지고 올랐다가 고생했던 경험이다. 뱀사골에서는 200여미터 떨어진 헬기장에서 관리인을 피해 야영할 수 있었고, 벽소령에선 다행히 산장에 자리가 있었으나 문제는 장터목에서 였다. 천왕봉 일출을 꿈꾸는 등산객들로 항상 인기있는 장터목 산장은 당시, 신발장까지 누군가에 의해 선점되어 있었고 관리인은 오갈데 없는 등산객들에게 무조건 '야영금지'만을 반복했다. 산장에 들어서지 못한 많은 등산객들은 결국 산장 주위에 막무가내로 텐트를 쳐놓고 관리인과 협상에 들어갔는데, 그 협상 결과라는 것이 참으로 어이없는 것이었다. 관리인 말인즉, 지리산에서는 텐트를 못치기로 되어 있으니 그것만 지켜달라는 것이었고 등산객들은 그걸 받아 들여 텐트 안에서 자되 텐트를 치지 않는 방법을 택해야 했던 것이다. 결국, 텐트를 덮고 자야 했다는 것.. 폴대를 뽑고 텐트 안에서 자보았는가.. 밖에서 보면 흡사 전쟁터에 흩어져 있는 시체들 같다.
그런 아픔이 있는 곳인데, 이번에도 그냥 지나치지는 못하였다. 고장난 오른 무릎을 그나마 잘 지탱해 주던 스틱을 분실한 것. 산장 밖 벤치에 놓아두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누군가가 가져간 듯 했다. 연하천에선 하룻밤을 꼬박 방치해도 그대로 있던 것이 장터목에선 잠시를 못 견딘 셈이었다. 여기저기 찾아 보았으나 허사였고 시간이 자꾸 지체되는 와중에 더 머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쉬움과 씁쓸함을 뒤로하고 천왕봉으로 향할 밖에....
장터목 산장에서 천왕봉까지의 길도 꽤나 쾌적했던 코스로 기억되었었다. 으스스한 운치가 매력적인 고산목 지대를 지나 두어개의 능선을 넘는 동안 경치는 그 어느때보다 좋고 길도 유달리 험하다 할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아니, 그보다도 지리산의 정산인 천왕봉을 한시간 여 거리에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피로를 이길 수 있는 설레임을 안기기 때문일 것이다. 하여, 벽소령, 세석을 지나는 동안에도 장터목까지만 가면 힘든 코스도 끝나리라는 엉뚱한 기대를 안았더랬는데..
그 기대란 것이 정말 어리석었다. (현재 처한 상황을 간과했음인지.. 일부러 모른척 해서 였는지..) 그간 이 코스를 오를 적에는 장터목에 짐을 풀어놓고 맨몸으로 갔던데 비해 이번에는 듬직하기 짝이 없는 배낭과 함께 해야 했고, 또한 예전에 그리도 멋드러지던 그 주변 경치라는 것이 이번에는 뿌연 안개에 가리워 졌기 때문에 누적된 피로를 덜 수 있는 아무런 플러스 요인도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천왕봉을 오르는 길도 꽤 가파른 경사길이라 지형상으로도 유리할리 없었던 것을.. (그래도 천왕봉을 바로 앞에 두고 있다는 그 설레임만은 여전했다. 그게 그나마 적잖은 힘이 되었으리라... 또한 그때까지만 해도 천왕봉을 넘어 치밭목으로 향하는 하산 길은 완만할 줄 알았다.. 내리막길이지 않은가....--;;)
앞서가던 형은 이미 멀찍이 나아가 있었고 내 뒤를 따르던 누나는 멀리서 보기에도 무척 고생하는 듯 했다. 하긴, 화엄사에서부터 코스를 밟은 지리산 초행자를 이튿날에 천왕봉까지 내달리게 했으니 동행자로서 나와 형이 미안해해야 할 일이었다.
어찌어찌하야 천왕봉에 다다르니 나름의 성취감은 대단했다. 2년전 3박을 하고서야 밟을 수 있었던 고지를 이틀만에 오르게 된 것이었다는 성취감과 아울러 그 만한 배낭과 함꼐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아울러 혼자 나선 산행이라는 상징적 의미..(실질적으로는 두명이 함꼐 했기에..) 천왕봉에 와서도 자욱한 안개는 걷힐 줄 몰랐고 바람마저 드세어, 그 위에서 젖어볼 수 있는 감격이라고는 '천왕봉 1915m'가 새겨진 비석 끌어안고 찍은 사진 한 장이 전부였다. 한라산 백록담을 제외한 한반도 이남의 모든 속세를 발아래 두고 광활하게 펼쳐진 풍광을 즐기며 담배하나 물어 피우리라는 그 멋진 계획은 누적된 피로와 칼바람에 밀렸다. (정말 그때 담배하나 물었다가는 두 다리에 잔류하던 얼마안되는 체력마저 소진될 듯 했다. 분위기에 취할 여유가 없었던 거다. 사실, 이렇게 지리산 산행기를 쓸라치면 천왕봉에서의 감흥에 대해 가장 구구절절한 얘기를 늘어놓아야 할진데, 되돌아보면 정말 쓸말이 없을 뿐 더러 그 후의 사정이 더 구구절절하다. 어찌보면 애석한 일이지만, 또 어찌보면 그만큼 이번 산행이 독특했다.)
tip : 천왕봉에서 맞이하는 일출이 많은 등산객들을 유혹하면서 장터목 산장은 지리산에서 가장 인기있는 잠자리가 되어 버렸다. 장터목에서 하룻밤을 묶고 다음날 새벽 맨몸으로 천왕봉에 오르리라는 계획들을 많이 짜는 것이다. 그러나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려면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 했다. (실제로, 주변에 안개가 자욱한 날이 많아 그 장엄한 광경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행운이 따라야 한다.) 하여, 천왕봉 일출에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다른 '멋'을 잃기 쉬울 듯 하다. 예컨데, 장터목에서의 하룻밤을 계획한다면 어느 정도의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일출에 대한 욕심을 접고 벽소령이나 세석에서 다소 편한 잠자리를 갖는다면 천왕봉에 조금 늦은 시각에 오르더라도 그만큼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긴, 천왕봉 일출을 이미 경험한 사람으로서 배부른 소리를 한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천왕봉에서 맞는 해가 나름의 매력을 지니고 있긴 하더라...^^;;)
여튼, 종주할 적에 장터목에서의 하룻밤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결론!! (장터목서 두 번이나 험한 경험을 당한 당사자로서의 피해의식일까..--;;)
천왕봉에서의 하산 길을 대원사 코스로 계획하지 않는다면야 (일반적으로 상대적으로 짧은 중산리나 백무동 코스를 잡는다.) 장터목에서 짐을 내려놓고 천왕봉으로 가는 것이 좋다. 어차피 같은 길로 내려와야 하므로....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의 코스에 멋드러진 곳이 산재해 있다. 도벌꾼이 산에 불을 놓아 나무들 무덤이 되어 버렸다는 고산목 지대도 그 중 하나다. 가지고 왔던 필름도 장터목 이후의 포인트에 대비하여 아껴둘 일이다.
천왕봉에서 치밭목까지의 하산코스를 밟으려는데 이미 목표했던 시간은 많이 오버한 후였다. 중봉, 써래봉을 거치며 치밭목까지 보통 두시간을 넘게 잡는다 했을 때 오후 7시는 되어야 치밭목에 닿는다는 계산이 나왔다. 보통 하산 길은 맘이라도 편하기 나름인데 이번에는 그것도 아니었다.
대원사 쪽으로의 하산코스를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이정표가 방향을 애매하게 지시하고 있는 덕에 50여 미터를 오르내리기도 했는데, 그 50여미터라는 것이 수백미터는 되듯는 했다. 무릎이 유난히 욱신거렸던 탓이다.
다른 등산객 대여섯 명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치밭목까지 가는데, 그야말로한걸음 떼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오전부터 욱신거리던 오른 무릎은 그 통증을 더해갔고 얌전하던 왼쪽 무릎마저 오른 무릎과 뜻을 같이하더라. 벌겋게 부어오른 어깨에는 물집이 잡힌 듯 따끔거렸고 진흙을 밟아온 등산화 안으로 물이 차 발바닥에도 다양한 아픔이 전해져 왔다.
하산 코스도 코스 나름이었다. 체력이 딸리니 어떻게든 치밭목까지 빨리 닿기만을바랬고 힘들더라도 오히려 가파른 내리막이길 바라는 정도로 마음이 급했다. 이러다 무릎 통증이 더 심해지면 어찌될 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있었던 거다. 그런데, 천왕봉에서 치밭목까지의 코스는 기대를 져버렸다. 중봉과 써래봉을 지나야 한다는 것은 지도상으로 알고 있어 각오하고 있던 바이지만 단순히 두 개의 봉우리를 지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가며 이어지더라. 느닷없는 오르막을 맞닥뜨렸을 때는 다양한 감정이 교차하는데,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며 겪는 체력의 한계는 오히려 부수적인 것이었고 마음의 부담이 더 컸다. 참 단순했다. 치밭목은 분명 내 발밑에 있는데 조금이라도 오르막 경사를 밟을라치면 목표지점과 멀어진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워 힘이 더 빠지더라는 것이다. (지극히 단순 무식한 논리였다.) 화엄사부터 함꼐한 형과 누나는 물론, 다른 등산객들도 모두 힘에 부친 듯 했다. 날이 차츰 어두워져 모두들 급한 마음이었음에도 쉬는 시간이 전보다 잦아졌던 것은 그만큼 여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tip : 천왕봉에서의 하산길은 대략 세가지 정도로 나누는데 대원사 방향은 제일 긴 코스이다.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의 종주라하면 지리산 산맥의 양끝을 밟는 것이라 제일 정직한(?) 종주 코스라 하겠지만 등산객의 발길이 비교적 뜸한 길이기도 하다. (오죽했으면 대원사 길에 위치한 치밭목 산장 관리인 아저씨가 심심하다 하실까 ^^;;)
내가 다소 험한 경험을 했기 때문일까? 천왕봉에 올랐을 적 체력에 자신이 없다면 과감히 대원사 코스를 뒤로하라고 말하고 싶다. 천왕봉에서 치밭목 산장까지 크고 작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험한 길이 당당히 버티고 있길래... (그 길을 짚어 보면 경치는 좋았던 듯 했다. 체력에 여유가 있었다면 그토록 힘들었다기 보단 오히려 흥미진진한 등산길이 되었을지도 모를일이다.)
무거운 발걸음 재촉해가며 어찌어찌 치밭목에 닿았을 때는 이미 오후 7시를 넘어선 후였다. 그래도 그토록 바래왔던 목적지이니 만큼 치밭목 산장에 닿았을 때의 감흥은 작은 '감동' 비슷한 것이었다. 몸이 무거웠던 만큼 치밭목 까지의 길이 한없이 길게 느껴졌고 그런 와중에 찾은 산장이라니 그 안도감이 오죽했을까. 한적한 곳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산장 생김새가 아름답기까지 하더라니 ... ...
그런데, 그 모든 안도감, 감흥은 그날의 산행을 그것으로 마감한다는 걸 담보하여 얻은 것이었다. 그날의 계획도 그러했거니와 체력도 이미 '바닥'이다 싶었으니....(정말 한발짝도 더 갈 수 없을 듯 했다.)
그러나 먼저 산장에 도착한 분들이 중요한 뉴스를 전해왔다. 치밭목이 꽉 찼다는 것... 치밭목이 다소 한적한 산장이라 해도 편한 잠자리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연하천, 장터목보다는 사정이 훨씬 나을 줄 알았다. 사전에 조사한 정보에 의할 때 치밭목 찾는 사람이 적다 했고, 그냥 느낌에도 그랬고... ('만일'을 생각하지 못한건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 )
맘씨 좋아 보이는 (실제로도 맘씨 좋았고 친절하셨다. 말에 '과장'이 심한 것 빼고는 다 좋았다.) 산장 아저씨 말씀으로는 30여명 수용하는 산장에 22명이 한팀이 되어 들이 닥쳤고 다른 팀들도 몇몇 오다보니 취사장까지 다 차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좋은 정보라고 주시는 것이 두시간 정도를 더 내려갈 것을 권유하시더라. 두시간여 내려간 곳에 마을이 하나 있고 (결국 그 길로 하산하라는 말씀이셨다.) 거기에 닿아 민박집을 찾으면 샤워하고 편히 쉴수 있다시며...
'샤워'란 단어가 그토록 매력적으로 다가온 적이 없었는데..... 지쳐서 그대로 주저 앉을 듯 한 몸이 '샤워'와 편한 '잠자리'란 말만으로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전날 새벽에 화엄사를 나선 이후로 땀에 지~인하게 절었지만 머리한번 제대로 감을 수 없었던 게 꽤나 불편하게 다가왔고 또, 지난밤 연하천 산장에서의 그 새우잠이 꽤나 서러웠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두시간이란 시간이 이십여분 정도로 단축되어 느껴졌던 것일까... 그 지경이된 몸을 이끌고 두시간여를 더 가리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선, 이미 오후 7시를 넘었으니 금방 날이 어두워 지리라는 것.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니 순탄할리는 없고 더욱이 야간 산행이라면 처음이었으니 무작정 나설 것이 아니었다. 또한, 동행하던 누나가 걱정이었다. 치밭목에서 1박을 할 수 없단 소식을 접하고는 앉아 눈물을 흘리더라니 천왕봉 언저리에서 느꼈던 안스러움과 미안함이 배가 되었다. 아침 7부터 오후7시까지 산행을 했으니 이미 체력을 다했을 진데 야간산행으로 2시간여 더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은 나 또한 서럽게 했다. 아무리 비좁다지만 치밭목 산장에서 잘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필요하다면 비만 피할 수 있는 장소에서 매트리스 깔고 잠을 청하면 될 일이었다. 아무리 불편하다 한들 연하천에서의 하룻밤과 대동소이 할 듯 했다. 그렇다면 굳이 강행하여 하산할 필요는 없었다.
결정을 해야 했다. 내려갈 거면 조금이라도 밝을 때 출발을 해야 했기에.... 천왕봉에서부터 같이 내려온 다른 팀들은 이미 내려가기로 마음을 굳힌 듯 했다. 동행하던 형도 내려가는게 좋을 듯 하다는 눈치였고 나도 이상한 모험심이 발동했다. 랜턴하나에 의지하고 오르내리는 야간산행이란 것을 한번쯤 접해보고도 싶었고 내 체력을 시험해 보고 싶다는 정말 지극히도 무식한 모험심... 그러던 차에 누나도 내려가자 했다. (역시 편한 잠자리에 대한 열망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할 수 없이 여론을 따랐던 건지는 아직도 모를 일이다.) 산장 아저씨의 감언이설도 한몫 단단히 했다. 정말 두시간여라면 그리 긴 시간은 아닐 듯 했을 뿐 아니라 30분여만 험한 길을 내려가면 그 때부터 길이 아주 좋아 랜턴 없이도 갈 수 없다고 하시지 않은가....(자신은 열두시 넘어서도 담배사러 내려가는 길이라고도 하셨다. 그 말을 왜그리도 철썩같이 믿었던 걸까...)
여튼, 내려가기로 합의를 보고 행동에 옮겼다. 랜턴을 준비하여 각자 하나씩 나누어 갖고 계곡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무릎 통증과 어깨 통증은 이미 익숙해 진 듯 했고 더 아프지만 않는다면 두시간여는 견딜 수 있겠다 싶었다. 언제부턴가 발바닥에 물집들이 잡혔는지 따끔거리기 시작했지만 그 또한 못 걸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뿐 아니라 다들 비슷한 통증을 겪고 있을 듯 했고 7명 정도의 동행인이 그런식으로 형성하는 연대감이란 것에 또한 나름의 힘이 실렸다.
20분여를 내려가다 보니 날이 어두워져 왔다. 앞이 흐려진다 싶더니 금새 깜깜해졌고 마침내 각자의 랜턴하나에 몸을 의지해야 하는 야간 산행이 시작되었다. 야간산행이란 것은 전에없던 긴장감을 주었고 그것이 또한 피로를 무디게 하였다. 통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 때문에 마음이 약해 지지는 않더라는 것이다. 그쯤 되니 한발 한발 내딛는 것은 다리 근육의 힘이 아니었다. 정신은 랜턴 불빛에 비추어진 전방 1미터의 지형에 철저히 집중하고 발을 '그저' 내딛는다 할까...
부산에서 왔다는 두 남자분이 앞장섰고 우리 일행 중에는 나, 누나, 형의 순이었다. 그 뒤로 한 아줌마와 아저씨가 뒤를 이었는데 그 순서는 하산을 마칠 때까지 바뀌지 않았다. 무엇보다 길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인지 마을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오면서 우리가 옳은 길을 가고 있단 안도감이 들자 긴장감은 반감되었다. (그런데, 그 후로 긴장감 덕에 무뎌진 무릎 통증이 더해 온 것도 사실이다...)
치밭목 산장 아저씨의 권유는 그야말로 사실과 다르게 '달콤한' 것들이었다. 랜턴없이도 갈 수 있다는 그 '조~~은' 길은 하산을 마칠 무렵에서야 한 20여미터 잠시 이어지는 듯 했을 뿐이었고 (물론, 그 길도 야밤에 랜턴없이 지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 두 시간이라했던 소요시간은 날 밝을 적에 내리막길을 아주 서둘러 내려 갈 적에나 가능할 듯 했다. (실제 우리는 세시간 정도 내려와야 했다. 하여, 산을 내려오던 중 모두들 산장아저씨의 '과장어투'에 대해 불만을 품게 되었고, 그러면서 또 한번 연대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
치밭목에서 세재 마을까지의 계곡길은 천왕봉에서 치밭목까지의 두시간여 산행보다 두배는 더 길게 느껴졌다. (실제 한시간여가 더 걸리기도 했지만 ... ) 수차례 미끄러져야 했고 간간이 주저 앉았다. 발을 내딛을 때 무릎에 힘이 안들어가기 시작하니 자연히 이를 악물게 되더라. 다리에 생긴 상처를 길가의 풀들이 쓸어내며 따갑게 하는 것은 또 하나 추가된 통증이었으나 오히려 감각이 분산되는 효과가 있었다. (정말 묘한 경험이었다고 할까..) 내 뒤를 바로 따르던 누나는 체온이 내려간다 하며 정말 많이 힘들어 했더랬는데, 저러다 쓰러질 수도 있단 걱정이 되더라... 이미 치밭목에서부터 몸에서 열이 나는 듯 했는데 다른 일행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 몸을 이끌고 하산을 마쳤단 것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내 일찍이 이런 여성을 본적이 없었는데...^^;;)
야밤에 돌다리를 밟아 개울을 건넌다는 것, 커다란 바위를 딛고 가파른 경사를 내려간다는 것 또는 올라간다는 것.. 하나하나가 정말 생소한 경험들이었고 또한 재미없는 경험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의 흥미도 있었겠다 싶은데, 당시 기억에는 하나하나가 힘들었을 따름이다.) 여튼, 그렇게 하나하나를 넘어가다 보니 마을 불빛이 보였고 모두들 거기에 짜릿함을 느꼈다. (무인도에 갇혔던 이가 지나가는 배의 불빛을 보고 그랬겠다 싶을 만큼.. 좀 지나친 표현일까.. 그때 내 생각이 그랬다는 건데, 당시 좀 격하긴 했다..) 당시 시각은 10시 30분.
세재 마을에서 민박집 찾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방을 잡아 짐을 풀고 황금같은 샤워를 한 후 또한 황금 같은 저녁식사를 마쳤다. 역시 황금 같은 소주 한잔과 함께.. 부산서 왔다는 두 분과 함께 저녁을 먹고 다음날 진주까지 함꼐 갔더랬는데 , 그분들과의 만남은 결국 나에게 세 번째 인연이 된 셈이었다.
tip : 산장 아저씨 말을 그대로 믿지 말자. 돌이켜보면 그날 치밭목에서 불편하고 불쾌한 하룻밤을 더 보내는 것보다는 무리를 해서라도 세재마을로 내려와 황금같은 밤을 보내는 것이 더 옳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우리 일행중 누군가의 체력이 그정도가 안되었다면 었다면 어땠을까. 비단 우리 일행뿐만 아니라 동행하게 된 일곱명 중 누구 하나라도 몸에 이상이 생겼다면 불편하고 불쾌한 밤조차 없었을지 모를 일이다.
치밭목에서 40분여 내려오다 보면 세재 마을 쪽과 유평리 쪽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세재 마을로 가면 시간은 단축되나 버스를 타기가 힘들다. (다음날 택시를 불러 시외버스 터미널 까지 가는데 2만5천원을 내야 했다.) 유평리로 가는 길은 다소 길지만 버스 타는 곳까지 걸을 수 있는 거리다. (하긴 세재 마을에서도 걸어갈 수는 있다 했다. 뭔들 못하랴...) 길은 둘 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로 그렇게 험하지는 않았던 듯 했다.(깜깜할 때 밟은 길이라 잘은 모르겠다. 물론, 밤에 걷는다면 둘다 무척 힘들다. )
넷째날
9시경에 느지막히 일어났다. 남은 음식을 다 꺼내놓고 우리 일행 둘과 부산에서 온 두 분과 함꼐 아침을 먹는데 모든 먹거리를 해치우면서 일종의 '희열'마저 전해지더라믄...( 아침식사가 끝나니 양쪽 어깨에 벌건 멍자국을 남겨준 배낭의 그 당찬 무게는 간데없다.)
택시를 타고 버스터미널에 와서 진주행 버스를 탔다. 진주에서 서울가는 차를 못잡고는 대전을 거쳐 서울로 가기로 결정. 그러고는 점심으로 밀면 한 그릇. (진주 터미널 근처의 밀면집에는 먹어도 줄지 않는 비빔 밀면이 나온다. ) 부산 팀과 이별을 고하고 대전을 경유하여 서울에 도착하니 이미 아홉 시가 다 되어 갔다.
화엄사에서부터 함께 했던 두 분과 저녁식사를 마치고 생맥주 한잔!! 이것으로 내 지리산 종주는 마무리되었다.
덧말....
결국, 3박4일로 계획한 지리산 종주가 1박2일로 마무리된 셈이다. 족히 70여 km 정도 되는 등산로를 듬직~한 배낭 지고 걸어야 했던 강행군이었다. 둘째 날에는 아침 7시30분부터 시작된 산행이 10시 30분에야 끝났으니 누구에게나 체력적인 한계가 느껴질 법 했다. (동행한 누나는 지리산 초행자로서 최장의 종주 코스를 이틀만에 완성한 셈이니 분명 자랑할 꺼리가 되겠다. 무모했다는 핀잔도 간간이 듣겠다만...)
혼자 짐을 꾸려 3박4일의 긴 일정을 잡을 때는 나름의 바램이 있었다. 일정에 쫓기지 않고 여유로운 산행을 해 보겠다는 것.. 능선을 타고 가다 운치있는 곳에 너른 바위가 나오거든 드러누워 보기도 할 것이며, 잠시나마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기기도 하겠노라고.. 발앞에 쓰레기가 보이거든 주워 담을 수 있는 여유도 가져 보고. 산장에서 다양한 사람과 사귀어 진솔한 얘기도 나누어 보겠노라고.
그런데, 결과적으로 일정에 쫓기는 산행이 되어 버렸고, 잠자리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다분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연하천에서 나름의 고생을 한 후 그래도 좀 사정이 나을 법한 치밭목까지 내달렸던 것이고 치밭목에 닿아서도 여의치 않아 결국 이틀만에 세재마을까지 강행 하였다는 것..
세 번째 지리산 종주 길이었지만 이전의 두 번과 견주었을 때 가장 긴 코스를 택하고도 가장 짧은 시간이 소요되었으니 몸고생이 심했던 것도 당연하다. 여유롭고 외로운 산행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어쩌지 못한 점은 끝내 아쉬움으로 남지만 역시 소중한 시간이었고 다양한 일깨움이 있었다. 지리산이 결코 만만하게 보이지 않더라는 것.. 내가 믿고 따르는 '체력'이라는 것이 그 한계도 분명 하다만 그래도 아직 쓸만 하더라는 것... 등등
아울러 산에 가면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는 통설의 진위도 확인했겠다. 화엄사에서부터 함께 했던 한수 형과 미금 누나께는 '특별'한 감사를 전하고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