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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찬가
2007. 5. 1.
보성 일림산-사자산(간재봉)-제암산
한밤을 달려 보성에 이를무렵
해무가 밀려와 질퍽해진 새벽은
용추골 가는길을 막아선다
미약한 불빛에 의지하여
어둠짙은 용추골 삼나무숲에 들기까지
보성벌을 뒤덮은 어둠과 해무는
날 몸시도 힘들게 하였다
부지런한 새들의 노랫소리가
채 어둠이 걷히지 않은 숲에서 요란하게 들려오고
골치의 편안한 오솔길은
인생의 행복처럼 잠깐동안 이어지더니
이내 세워진 사면길을 죽어라 올라서게 하였다
광명은 대지를 깨우고
어둠에 묻혔던 침묵이 동요하며 바람이 몰아치는 일림산정
갑자기 생각나 단숨에 달려온 곳
떠오르는 태양과 때를맞춰 홀연이 그곳에 섰다
어둠에 묻혔던 산야가
떠오른 태양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유혼들의 넋인양
푸른산정에 뿌려진 피빛 꽃봉들
죽엄을 보내는 황천길인양
만장깃발 휘날리며 산야를 휘감는 해무江
오월!
뜨거운 기운이 불끈하여
심장이 아려오는 계절
이 계절의 화두는
언제나 악몽과도 같은 고통으로 다가오지만
서슬퍼런 칼날도
세월의 장고앞에 녹슬어 무디어지듯
적어도 이곳에 서기까지
지나간 세월의 흔적이라 여기며 외면했던 기억들이
다시금 깨어나 아픔을 전해주었다
흘러간 시간이라고..
잊혀진 기억이라고..
애써 지우려 했던 오월의 함성은
그러나 잠재된 의식속에 버젖히 살아나
저 아름다운 풍광에 투영됨은
무슨 이유일까?
해풍 몰아치는 척박한 땅에 뿌리를 박고
유난히 붉은 꽃으로 오월의 서두를 장식한 일림산정
투명한 아침햇살 눈부시게 쏟아져도
바람에 흔들리는 가여린 몸짓은
저승길 마다하고 구천을 떠돌다 머문 혼불인양
애처롭기 그지없으니
아직도 내 가슴에 슬픔되어 맺혀진
그날의 아픔이 오월의 풍요마저 앗아가 버린다
이제와 그 누구를 탓할 것인가
남해의 푸른물결 굽어보며 한을 삭이고
소금기 진한 해풍에 상처 씻으며
퇴락한 이승 밝히는 한송이 꽃으로 승화되어
아름답게 피어오르니
그 숭고함에 절로 고갤 숙인뿐..
아침이 되자 산정은 하나둘 늘어나는 산객들로
북적대기 시작했다
아침을 대신하여 커피 한잔을 아내와 나눠 마시고
무거운 기억을 잠시 내려놓은채
찬란의 오월의 빛을 가슴에 담았다
대지를 덮은 해무가 서서히 사라져 가고
가슴 식혀주던 해풍도 서서히 잠들어 갈쯤
고요했던 산정은 달궈진 햇볕과 함께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더 이상 날 잡아두지 못했다
< 일림산에서 바라본 골치산 >
일림산정을 내려 제암산으로 향했다
오월봄볕이 여름 땡볕으로 변하여 등짝을 지져 놓았다
거침숨을 몰아쉬며 은신봉을 넘어서니
땟깔고은 철쭉꽃이 등로를 수놓아 피로를 덜해 주었다
호젖한 등로길은 사자산까지 이어지다가
곰재산 철쭉능선에 이르러 번잡해져 갔고
철쭉제단이 있는 철쭉평원은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우리부부도 이곳에서 김밥을 꺼내놓고 철쭉꽃에 파묻혀
망중한을 보냈다
< 사자산 간재봉에서 바라본 곰재산 철쭉능선과 제암산 >
< 곰재산 철쭉평원 >
두리뭉실 널직한 능선 평원은
키를 훌쩍 넘은 철쭉이 빼옥하였고
지천을 빨갛게 물들여
사람들로부터 탄성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휩쓸려
떠밀리듯 곰재에 내려서니 제암산 오름길이 만만치 않았다
앞서걷는 아내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워 보이는데
뒤처진 걸음이 자꾸만 쉬어가길 원하였다
< 형제바위 >
< 제암산 주능선과 임금바위 >
< 제암산 정상 임금바위 >
어렵사리 제암산 정상인 임금바위에 올라섰다
807m 고도가 장흥과 보성산군을 호령하는 제암산
육중한 산세와 호남정맥이 지나가는 장쾌한 마루금
그 정상인 임금바위 또한 명칭에 걸맞게
웅장하면서도 위엄스런 모습이 역력하였다
< 부처바위 >
< 휴양림 하산길에서 바라본 임금바위의 위용 >
집에서 준비한 식수가 아무래도 부족할 것 같아
편의점에서 구입한 1.5리터 생수가 이번산행의 구세주가 되었다
녹음 짙어가는 휴양림 하산길을 내려서면서
역사의 한페이지에 남겨진 슬픔은
더 이상 우리가슴을 아리게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리고
오월의 푸르름이 온전히 내 가슴에 담아지길 빌었다
오랜만에 아내와 단둘이 걸었던
철쭉화려한 일림-제암 산행
잊을수 없는 추억으로 남으리라..
- 감사합니다 -
신태인 50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