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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자기 아들을 꾸중하기 위해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를 동원한다면, 직장인들은 자기 회사 구내식당을 욕하기 위해 "내 친구네 회사는…"이라며 말을 꺼낸다. 그들 말에 따르면, 친구네 구내식당에서는 점심에 매일 5가지 요리가 준비되며, 식당 북엇국은 아내가 끓인 것보다 훌륭하다. 대신 자기네 회사 밥 맛있다는 직장인은 '일요일에 회사 나오고 싶어 죽겠다'는 직장인만큼이나 드물다.
그러나 10~20년 전쯤과 비교해 본다면, 대부분의 직장의 구내식당은 외형상 업그레이드됐다. 대기업이 급식(給食)사업에 뛰어들면서 주방 아줌마 등 식당 스태프의 유니폼은 꽤나 세련되었다. 메뉴판은 어떤가. '지중해식 볶음밥', '즉석철판볶음밥', '신선한 그린 샐러드를 곁들인 토마토 파스타' 같은 것들로 채워져 있다.
하긴 작가 앨랭 드 보통 역시 '어떤 문학작품에서도 룸서비스 메뉴만큼 시(詩)적인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비아냥거렸다. '도톰한 망고를 얹고 레몬후추를 뿌려 풍미를 돋운 대서양 참돔' 같은 표현을 말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세련된' 식당을 이용하는 직장인 중 상당수가 "옛날이 더 나았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초, 광주과학고 취재를 갔다가 구내식당에 들렀다. 반찬은 두릅오이무침·콩자반·닭볶음·김치·미역국. 메뉴는 단출했지만 맛은 출중했다. 두릅오이무침은 인사동 한정식집과 비교해도 나은 수준이었고, 다른 찬도 하나같이 맛깔났다. 구내식당 밥이 이래도 되나 싶었다. 교장 선생님께 묻고 또 물어봤으나, 비결은 "그냥 아줌마들이 알아서"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손맛'이다.
그런데 이 '손맛'은 결코 며느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어떤 비책(秘策)이 아니다. 단 음식은 달게, 짜야 할 건 짭짤하게 만들어 찬 음식은 차게, 더운 음식은 덥게 내는 능력이다. 손맛은 또한 과학이다. 이를테면 국은 65도 내외에서, 커피는 70도 내외에서 최적이라고 한다. 그곳에선 밥을 갓 지어 퍼내왔고, 국은 뜨끈했으며, 두릅 무침은 달콤시원했다. 그렇다면 다른 데서는 왜 이게 불가능할까.
그건 바로 대기업의 급식 시스템이 사람을 덜 동원하는 형태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대형 급식 업체는 전문요리사가 한 번 만든 레시피대로 재료를 넣고, 조리과정을 진행한다. 닭이 조금 질기다거나, 배추에 물기가 많다는 것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이렇게 하면, 개별 식당이 고용하는 인력이 줄어들면서 '단가(單價)'를 맞출 수 있다. 손맛 좋았던 아주머니들조차 이제는 그저 공장식으로 미리 만들어둔 음식을 퍼주면서 "맛있게 드세요" 같은 인사를 되뇔 뿐이다. 제조업자였던 주방 아줌마들은 이제는 서비스업 종사자다.
'일하는 손'의 퇴출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본에 갈 때마다 놀라는 것은 공중화장실의 타일의 청결함과 목욕탕 타일의 정치(精緻)함이다. 반면 고급을 표방하는 서울 근교 콘도미니엄의 목욕탕에도 타일 대신 그를 흉내낸 일체형 플라스틱 벽체가 사용된다. 사람의 가치를 낮게 보니 기업 입장에선 인건비도 무섭고, 고용·해고 과정이 귀찮기만 하다. 그러니 사람 대신 다른 걸로 때우는 데만 머리를 쓴다. 일하는 사람도 육체노동보다 서비스업이 한 수 높다고 생각한다. 누굴 탓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손재주' '손맛'의 한국은 이렇게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