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로 수학여행을 가면 꼭 들리는 곳이 첨성대입니다. 첨성대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어요. 별을 관측하던 천문대다, 달력을 만들던 기구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다, 상징을 담은 건축물이다 등 여러 입장이 있어요. 그 가운데 별을 관측하던 천문대라고 보는 사람이 많아요. 첨성대가 동양에서 남아 있는 천문대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말을 듣고 잔뜩 기대를 하고 갔는데 높이 10m도 안되는 것을 보고 실망을 많이 해요. 그리고 제대로 잘 모르게 되면 ‘이게 신라 첨성대야? 그런데 왜들 그렇게 첨성대, 첨성대 하는 거지?’ 하고 별 관심없이 지나칩니다. 그러나 선생님과 학생들이 우리 역사와 과학 전통을 제대로 배웠다면 이런 모습일까요? 첨성대를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돌도 세어보고, 나침반도 가져와서 방위도 확인해 보겠지요. 또, 옛 신라 사람들이 보았던 청룡·백호·주작·현무 같은 우리 별자리를 안다면 우리 문화적 상상력을 확인하는 중요한 장소가 될 것입니다. |
첨성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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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는 별을 보기 위해 돌로 높게 쌓은 천문대입니다. 첨성대는 왕궁 가까이에 만들었는데 주변에 건물들이 많았으니 높게 대를 쌓아야 별을 관측하기 편하겠지요. 더구나 이 곳에 신성하고 상징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면 그 사회적 의미가 달랐을 거예요. 첨성대는 신라 27대 선덕여왕(632∼647년)때 만들었으며 동양에서 현재 남아있는 천문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국보 제31호입니다. 첨성대는 높이가 약 9.1m로 전체적인 모습을 살펴보면 밑에서 위로 좁아지는 병모양이지요. 어때요? 그 모습이 부드럽고 우아하지요? 각 부분을 좀 더 자세히 보면 기단, 몸체, 정자석 3부분으로 나눌 수 있어요. 맨 아래 사각형 모양으로 2단 쌓은 것이 기단이고, 높이는 78cm이에요. 이 기단 위에 원주 모양으로 돌을 27단 쌓았어요. 몸체의 가장 밑단 지름은 약 4.93m이고, 가장 윗단은 약 2.85m이지요. 첨성대는 옆의 곡선이 우아한데 이렇게 쌓기 위해 설계할 때 27단의 원주를 각 단마다 정확하게 작도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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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국보 제31호) | |
어때요? 신라인의 수학수준이 놀랍지 않으세요? 몸체 위의 정(井)자 모양 돌이 보이죠? 왜 둥글게 된 몸체 위를 정자 모양으로 마무리했을까요? 거기엔 이유가 있어요. 정자석은 그 방향이 동서남북을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어 방위를 알 수 있게 한 거죠. 이 정자석 안은 2.2m×2.2m×0.64m의 공간을 이루고 바닥에는 목판을 깔았어요. 이 목판 위에 눕거나 서서 관측을 하거나 천문관측기구를 놓고 관측을 했겠지요. 어떻게 정자석까지 올라갔을까요? 첨성대를 아무리 둘러봐도 창문 하나밖에 안보이네요. 이 창문이 문이에요. 이 문을 통해 사다리를 걸어놓고 올라갔어요. 그 안으로 들어가 13단부터는 다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거나 안으로 튀어나온 돌을 밟고 정자석 위까지 올라갔다고 해요. |
신라 사람들은 첨성대에서 무엇을 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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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들이 하늘을 관측하였다면 그들이 보았던 하늘이나 별자리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을까요? 우리는 오리온, 카시오페이아 등 서양 별자리는 많이 알지만 우리 고유의 별자리는 잘 몰라요. 우리 나라를 비롯한 동양은 서양과 다르게 별자리를 인식했어요. 동양에서 중요한 별자리를 28수라고 했는데, 이것을 7개씩 나누어 동서남북 사방에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하늘을 가득히 메우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밤하늘을 가득 메우며 위용있게 포효하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본다면 그 광경이 얼마나 장쾌하겠어요? 그럼 우리와 신라시대 사람들은 하늘을 생각하고 그 현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떻게 다를까요? 하늘에 신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우리는 대부분 해나 달은 우주에 떠 있는 별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신라 사람들에게 해, 달, 별은 신이었고 하늘은 이런 신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믿었어요. 그 신이 비를 제때 내려주고 햇빛을 적당히 주어 농사를 잘 되게 해준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왕은 신의 아들이고, 왕은 신의 뜻에 따라 나라를 다스린다고 믿었어요. 지금은 신화를 상징이 담긴 단순한 이야기로 여기지만 그 때 사람들에게는 정말 신들의 이야기였던 것이죠. 이렇게 하늘에 대한 생각이 달랐으니 하늘을 관측하려는 목적과 방법도 차이가 있었겠지요. 그 때는 혜성이 나타나는 것, 일식이나 월식, 별똥별 등을 주로 관측했어요. 일식이 일어나면 우리는 달이 해를 가리는 현상으로 알고 흥미로와 하지만 신라사람들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신의 경고라고 믿었어요. 이렇게 일식이나 월식, 혜성이 나타나는 자연현상은 신이 미리 알려주는 변괴이고 이를 미리 알고 극복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그래서 왕궁 가까이에 천문대를 두고 수시로 관측을 했던 것이죠. 그 밖에 농사가 중요한 산업이었던 옛날, 정확한 때를 알아 달력을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했어요. 이렇게 왕은 하늘의 현상을 알려고 무척 애를 썼고, 지금 최첨단 산업에 투자를 하듯이 온 나라의 우수한 두뇌와 역량이 천문에 집중되었던 것이죠. 그러니 지금보다 하늘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고 볼 수 없겠죠. 그렇다면 왜 첨성대가 그리 높지 않은지, 굳이 산에 있지 않고 오히려 왕궁에 가까이 있는지 이해가 되겠죠? 고려, 조선의 관천대도 왕궁 안에 있었답니다. |
첨성대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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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의 생김새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요. 몸체를 쌓은 돌을 하나하나 세어 볼까요? 모두 360여 개입니다. 이번엔 둥글게 쌓은 석단을 세어 볼까요? 모두 27단인데 위의 정자석까지 하면 28단이에요. 또 석단 가운데 문 아래까지 세어 보세요. 모두 12단이죠? 그럼 이 숫자들은 우연일까요? 이것은 1년 365일, 12달과 동양의 기본 별자리 28수와 그 숫자가 같아요. 그러니까 첨성대의 구조는 1년 12달과 365일과 별자리 28수 등 우주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죠. 그럼 첨성대는 단순히 모양만 상징적으로 표현한 걸까요? 실제 첨성대가 커다란 규표(해그림자를 재서 절기를 측정하게 하는 기구)로서 달력을 만들고 방위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기능을 했어요. 첨성대의 문의 위치를 눈여겨 보세요. 들어가는 문이면 아래에 나있는 것이 당연한데, 왜 불편을 무릅쓰고 가운데에 나 있을까요? 이 문은 정남향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춘분 추분이 되면 남중 때 햇빛이 첨성대 밑바닥까지 비친다고 해요. 또 하지와 동지에는 아랫부분에서 모두 사라지게 되어 춘·추분점과 동지·하지점을 잴 수 있어요. 이렇게 동지와 하지점, 춘·추분점을 알아내어 1년 24절기를 알아낼 수 있었어요. 꼭대기의 정자석은 동서남북의 방위를 정확히 가리켜요. 지금은 나침반이 있어 언제든지 방위를 정할 수 있지만 그 때는 표준이 되는 곳이 있어야 했어요. 무엇보다 정자석은 그 위에 혼천의를 놓고 쉽게 방위를 맞춰 관측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럼 처음 방위는 어떻게 정했을까요? 1년 365일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했을까요? 이것은 ‘규표’로 잴 수 있습니다. 규표라는 것은 긴 막대기와 그 그림자를 잴 수 있는 자를 말합니다. 이것은 6학년 자연과목의 태양 고도 실험에서도 나오는데 그것이 규표의 원리라는 것은 잘 모릅니다. 하루동안의 그림자 길이를 재서 가장 짧을 때가 태양이 남중하는 때입니다. 그 쪽 방향이 바로 정남향이 되죠. 1년 동안 그림자를 재서 1년 중 남중할 때 그림자가 가장 짧을 때를 동지, 가장 길 때를 하지로 하여 1년이 24절기와 365일이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어요. 이것은 직접 실험을 해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어요. 어때요? 첨성대가 있는 경주로 빨리 가서 막대기와 나침반을 들고 확인해 보고 싶지 않으세요? |
첨성대공부를 통합적으로 해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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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학년 아이들과 첨성대 실물을 축소하여 작도를 해보며 모형 첨성대를 만들어 보세요. 몸 체 밑
단이 약 4.93m이고, 가장 윗단은 약 2.85m이니 얼마만큼씩 줄여야 할까요?
(2) 첨성대 밑바닥 넓이 계산도 해보고, 둘레도 추측해 보세요.
원넓이 = 반지름×반지름×3.14 원둘레 = 지름 ×3.14.
(3) 간이 규표를 만들어 동서남북을 정해 보고 하루 시간과 4절기를 알아봅시다.
① 15cm 막대와 50cm×50cm되는 판지를 준비해요. ② 판지에 반원을 1cm 간격으로 그려요. ③ 원의 중심에 막대를 세워 그림자 끝이 어디에 오는가를 보며 시간을 잽니다. ④ 같은 길이의 그림자 끝을 이어 이등분한 가운데가 정남향이므로 나머지 방위도 찾을 수
있어요. ⑤ 절기를 아는 것은 인내심이 필요해요. 매일 남중 고도를 잰 뒤 그 중 그림자가 가장 긴 때를
동지, 짧을 때를 하지라고 해요. 그 중간은 춘분과 추분이예요.
(4) 천체와 관련된 전래동요를 찾아보고 같이 불러보세요. - MBC 민요대전, ‘가자가자 감나무’ 등의
CD가 있지만 주변의 할머니께 어릴 때 해, 달, 별을 보며 불렀던 노래를 듣고 배우는 것이 가장
좋아요.
(5) 우리 나라 별자리와 신화를 찾아보고 서로 이야기하고, 내가 생각하는 하늘을 그림으로도 표현
해 보세요. - 조선시대 《천문유초》, 고려시대 《삼국유사》 참고.
(6) 우리 마을에서 별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을 우리의 천문대로 정해 꾸준히 별을 관찰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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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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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천문대하면 경주에 있는 첨성대만 떠올리는데, 지금 남아 있지는 않지만 고구려에도 천문대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백제는 675년에 일본에 점성대라는 천문대를 세워 천체관측을 지도했다는 것으로 보아 백제에도 천문대가 세워졌을 거예요. 고려도 궁성인 만월대 안에 관천대가 있었고, 조선시대 관천대도 2개가 남아있어요. 그 중 하나인 창경궁 관천대는 보물 제851호로 1434년(세종16)에 경복궁 내 경회루 북쪽에 설치되었다가 옮겨졌어요. 그 높이가 약 6.3m, 세로 약 9.1m이며 가로 약 6.6m입니다. 지금 2층 건물 높이 정도겠죠. 또 하나는 구름재(운현)란 곳에 설치된 관천대로 높이가 약 3.8m, 세로 약 2.9m이며 가로 약3.8m 로 경복궁 관천대의 반정도 됩니다. 이것은 사적 제29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 관천대는 첨성대와 모양이 다르죠. 신화적인 상징을 담은 첨성대와는 달리 유교적 질서를 보여주듯 사각기둥이며 천문관측기구인 간의를 놓을 수 있게 위가 편평하게 되어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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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천대(사적 제296호)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