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달의 ‘멋의 의미’
멋이란 말을 과연 어떻게 해석하고 설명을 해야만 그 정곡(正鵠)을 찌른 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흔히들 멋있다. 멋지다. 멋쟁이. 멋거리, 멋쩍다. 멋도 없다. 등으로 표현하면서도 그 뉴앙스가 별로 선명치 않을뿐더러 경우에 따라서는 천차만별일 수 있다.
멋이란 말은 우리만이 갖는 고유의 한글 낱말로, 외국어로 번역을 하거나 표현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소위 ‘스타일’이라든가. ‘댄기’란 용어의 표현도 해당되는 경우가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막연하고 부족한 느낌이 든다.
혹, 멋있는 사람, 멋쟁이란 것을 이른바 방탕스러운 기색이나 몸매를 말하는 경우를 보지만 그것이 진정한 멋의 개념은 아니라고 본다.
멋에는 사람의 멋, 풍치의 멋, 글월의 멋 등을 들 수 있을게다. 멋의 고유한 개념은 다만 아름답다거나, 산뜻한 것도 아니요. 풍치나 운치스러운 것만도 아날 것이다. 이 여러 가지 말들과 관련해서 은연중 풍기는 매력을 이른바 멋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멋이란 어떤 제약이나 어색한 꾸밈이 없고 미풍이 스치듯, 물이 절로 흐르고, 꽃이 아련히 피듯(水流花開), 자연스러운 가운데 어딘지 모르게 풍기는 매력이나 특성이 아닐까?
비록 티끝 속에 묻혀 있다 할지라도, 거기에 뒤범벅이 되지 않고 그것을 벗어나 해맑은 기운으로 번쩍 비치는 그 무엇이 풍기는 매력, 그것이 멋이 아닐까?
현실적이고 속세적인 이해관계를 떠난 품격과 아량의 여유가 있는 곳에 멋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밝고 순박하면서도 어딘지 구수한 인간미가 풍기는 자연스러운 거동. 즉 인간의 본연 그대로를 행동하고 생활하는 면모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깡? 획일적이거나 규격적인 격식 일반적인 규범이나 질서, 특정한 경향을 깨뜨리게 될 때 비로소 멋과 매력이 생기게 마련이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아무 의미도 없는 것,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는 미지근함, 맵지도 달지도 않는 그저 덤덤함에서 멋이 생겨날 수 없다.
어딘가에 생동감이 있고, 액센트가 있는 곳에 멋이 울어날 수 있다. 에오라지 멋이 없다는 것은 결국 ‘싱겁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싱겁다는 말은 규격이나 인습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무미건조하고 무성격적인 말을 드러낸 말이다.
이를테면 서예의 경우만 하더라도 전, 예, 해, 행, 초를 막론하고 단지 기초 서법대로 썼다면 그것은 교본이나 법첩을 그대로 베껴 쓴 것에 불과하다. 자체의 결구(結構)가 미적 요소를 지니면서 선율과 생동하는 파격적 개성을 나타내는 작품에서 멋과 아름다움이 풍기기 마련이다.
미상불 같은 옷을 입되, 단추 하나 쯤은 잠그지 않느다거나, 모자를 쓰되 약간 비스듬히 기울게 쓴다거나, 수수한 옷차림이면서도 그 균형을 크게 깨트리지 않고 어딘지 품위와 특징을 살린 것을 보고 , 사람들은 멋있다고들 말한다. 구차한 격식을 슬쩍 무시해버릴 때,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멋지다고 한다.
딱딱한 규범이나 따지는 완고하고 고지식한 사람, 융통성이 없고 옹고집만 부리는 사람, 지나치게 인색하거나 너무 짜임새기 있어 빈틈이 없는 사람을 보고 언필칭 ‘멋대가리 없는 인간’이라 한다. 말하자면 웃음이 있고, 너그러움과 내강(內剛)이 겸한 사람, 획일적 스타일에서 다소 벗어난 파격성에서 멋이 풍긴다고 할까?
그러나 멋이 지나치면 얼간이가 아니면 건달로 둔갑한다. 또한 행동거지가 엉뚱학게 표일(飄逸)하거나 과장이 심한 경우, 주착이 없는 경우, 분수스럽거나 용렬한 경우, 등에서 멋은커녕 ‘미치광이 같은 실없는 인간’이라 낙인이 찍힌다.
그러기에 사람의 멋이란 각자가 아닌 품도와 개성, 그리고 교양과도 일맥상통하는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즉 교양의 인격이 부실한 인간에게서 진정한 멋을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다. 말하자면 차곡차곡 쌓여진 인간의 온축에서만 멋과 매력은 아는 듯, 모르는 듯 은연중에 풍겨지는 것이 아닐까?
사람이란 살아 있는 한, 어차피 움직여야 한다. 망설이지도 않고 주저하지도 않고 언제나 생각하는 바를 과오없이 행동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움직이는 인간의 모습은 매우 아름답고 멋이 있다.
나는 어느날 살얼음이 햇볕에 녹을 길을 걸으면서 울타리 넘어로 언뜻 남의 집 뜰안에 눈길을 돌렸다.
경쾌한 작업복 매무시를 한 젊은 주부가 부삽 하나만을 들고, 지금은 아무 싹조차 움트지 않은 화단을 손질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매료되어 가던 길을 멈추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 여인은 벽돌로 된 몇 개인가를 구분을 지어 놓은 화단의 주변을 찬바람도 아랑곳없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여인은 봄과 더불어 흙을 갈며, 바야흐로 돋아나오게 될 예쁜 새싹을 연상하면서 생활의 이상을 자기의 것으로 확신을 하고, 아무 불안이나 두려움 없이 굳은약속을 확실하게 순서대로 이행해가는 양 말없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인간의 이러한 행동이 나에게는 매우 아름답고 멋있게 보였다. 지금도 그 광경이 나의 뇌리에 떠오르곤 한다.
‘어떤 여성이 가장 아름답고 멋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자기 일에 열중하고 있는 맵시 있는 여성의 모습’이라고 대답하는 앙케이트를 본 일이 있다.
나도 동감이다.
첫댓글 김사달 님은 우리보다 한 시대가 앞선 분이다. 조지훈의 '멋'에 대한 유명한 글도 있다.
우리보다 앞 세대 분들은 '멋'에 아주 높은 점수를 주었다.
우리 시대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가치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조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