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인계동2 - 3
-누구를? 당시 여기 살던 사람들을 다 기억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김 형자 석자를 쓰시는 분과 박 성자 덕자를 쓰시는 분인데
-김형석, 박성덕이라? 글쎄,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 같기도 하고
진철을 통해 두 사람의 이름을 들은 여자가 한 동안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오래전의 이름들을 떠올리는 것
같더니
-아! 그래 맞다. 그 사람들이구나.
하면서 무릎을 손으로 탁 친다.
진철의 귀가 활짝 열리는 기분이다. 정신이 바짝 든다.
-아세요? 그분들을?
-그럼 알다마다. 그 사람들 한동안 우리 동네에서 얘기 거리였는데.
-얘기 거리라니요?
-그러니까. 내가 이 동네 들어와서 한 이삼년 되었나? 하룻밤에 두 남녀가 없어진 일이 있었지, 남자 둘은
한 집에 살았고 한 여자는 이 동네 아가씨였는데 그 때 들은 소문으로는 한 남자가 그 여자를 좋아했는데
집에서 결혼을 반대했다나, 그래서 그 남녀가 도망을 갔는데 그 때 한 남자도 함께 도망을 같다고 들었지,
그래서 한 동안 말하기 좋아하는 여자들이 모이면 삼각관계였다는 말도하고, 누구는 둘이 도망가려고 하자
한 남자가 따라서 함께 도망했다는 말고 하고, 뭐, 그러다가 사그라졌지. 소문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잖아.
-그럼, 또 다른 얘기는 없었나요?
진철은 그 여자에게서 더 많은 말을 하게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여자에게서는 더 이상 들을 말이 없었다.
이곳에 들어 온 지 몇 해 되지 않아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 뿐, 하지만 그 여자에게서 오늘 만난 이 노인을
소개 받은 것이었다.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면 나룻배 타는 곳이 있어요. 거기 가서 최용출 할아버지를 찾아보세요. 그 할아버지
는 여기서 태어나서 여기서 사신 분이니 자세히 들을 수 있을 거예요.
빈 커피 잔을 거두어 간 안노인이 부엌에서 무엇인가 덜그럭 거리면서 움직이는 소리가 한 참이나 들리더니
쟁반에 감자전과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들어와 앉으며
-여기 강원도 토속 음식이니 한 점 들어봐요. 이거 들다보면 오징어순대가 다 익을 테니 그것도 드시고 하면서
젓가락을 진철과 진우의 손에 들려주더니 할아버지 앞에 놓인 잔에 막걸리를 가득 붓는다.
-자네도 술 할 줄 알지?
할머니의 손에서 주전자를 받아든 노인이 진철에게도 한 잔 가득 따라 주면서
-기억이 가물거리기는 해도, 그저 기억나는 데로 말해 줌세.
하면서 오래 전의 기억을 되새기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였다.
-색시 할아버지가 지금 생존해 계신다면 여든 여섯이나 일곱을 되었을 걸세. 색시 할머니가 나하고 동갑이었
으니 지금 살아있으면 여든 셋이었을 테고. 여기는 색시 할머니 고향이지. 그러니까 색시 할머니와 나는 동무
사이였고, 색시 할머니가 색시 할아버지에게 시집간 것이 아마 열일곱 여덟 쯤 일 텐데, 그 때까지 이 동네에
살았지. 그러다가 강원도 철원에 사는 박씨 문중으로 시집을 간 거야. 그 때 동네잔치가 말이 아니었네. 철원
갑부 댁에 맏며느리로 시집가게 되었다고 며칠 잔치를 벌였지 돼지도 잡고 말야. 그리고는 그걸로 우리는 잊고
살았는데. 색시 할머니가 시집 간지 삼년이나 되었나?
-무슨 삼년, 한 오년은 되었지.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기억을 정정해준다.
-그거야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 해에 전쟁이 났고, 색시 할아버지는 전쟁을 피해서 처가 동네인 이곳
으로 온 거야. 색시 할머니와 함께 왔는데 아이 둘을 데리고 온 거야.
노인은 입술이 마르는지 막걸리 잔을 들어 몇 모금 마시더니 손으로 입을 훔치면서
-그게 알고 보니 한 아이는 색시의 아버지였고 한 아이는 자네의 아버지였지. 전쟁이 나고 박씨댁에서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를 피난 보내면서 그 집 마름으로 있던 자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그 아들과 함께 피난을
보냈는데 피난 중에 자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폭격에 죽었고,
-에구! 영감도, 말을 하려면 바르게 말해주어야지. 이 양반 말은 사실이 아니고, 사실은 어찌 되었는가 하면,
나중에 나도 들은 말인데, 피난길에 양식이 떨어져서 자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양식을 구하려고 어느 마을
엔가 들어갔다가 일을 당한거지.
-이 할망구가! 무슨 쓸데없는 말을.
노인이 할머니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할머니는 입을 다물지 않았다.
-양식 구하려고 마을로 들어갔다가 인민군을 만나서, 인민군인지 오랑캔지, 하여튼 여자를 욕보이려는 놈들과
싸우다가 할아버지는 개죽음 당했고, 그 후로 자네 할머니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압록강까지 치고 올라갔던 국군과 유엔군들은 중공군
의 인해전술을 감당하지 못해 후퇴하기 시작하였고, 전쟁은 국군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며 피난길에서 돌아와
고향에 안주하려던 박씨 일가는 다시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고, 박씨는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나서면서 그 동안
몇 대째 집안을 돌보던 마름이었던 김씨의 가족을 함께 데리고 피난길에 나섰던 것이다.
우선 급한 대로 처가동네인 속초로 길을 잡은 그들 일행은 가능한 산길을 택해 철원에서 화천으로 화천에서 인
제로 길을 잡아 걸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그들의 길양식이 떨어진 것은 인제를 채 못간 어느 산골이었는데, 양
식을 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 김씨 부부가 주인 내외와 두 아이를 위해서 양식을 구하러 마을로 내려갔다가 중
공군에게 들키고 말았고 김씨는 아내가 그들에게 능욕을 당하는 것을 두 눈 뜨고 보아야만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그들에게 잡혀 있다가 그 밤에 도망을 한 김씨는 박씨에게 아들을 맡겨놓고 아내를 찾으러 간다고
되돌아 간 것이 마지막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 박씨가 처갓집에 남자아이 둘을 데리고 온 거야. 그 중 한 아이가 바로 자네의 아버지였던 것이지.
-그 두 사람은 친 형제보다 더 가까웠어, 동네에서 누구도 그 사람들을 깔보지 못했으니까. 글쎄, 한 사람이
누구에게 당하면 다른 사람이 쫓아가서 결국은 복수를 하고.
할머니가 기억이 나는지 말을 거든다.
-전쟁이 끝난 후 색시 할아버지는 일 년에 몇 번 철원을 다녀오곤 했어. 이북 땅이었던 철원이 수복되면서
철원 땅이 그대로 살아 난거야. 하지만 박씨 고향은 이북이 되었다는군. 그러니까 천행이라면 천행이겠지만
재산은 찾을 수가 있었던 거야. 고향은 잃어버렸지만 어쨌든 그 바람에 박씨는 고향의 가족들에 대한 소식을
들을 길은 막혀버렸어. 그래서 여기 그대로 눌러 앉아서 살기 시작한 거지. 철원 땅 때문에 어렵기는 해도 먹고
사는 것은 괜찮았어. 도지를 놓은 땅에서 먹을 양식은 나왔거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도락구로 한 차씩 쌀을
싣고 왔으니까.
-그 때도 철원이 수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철원으로 이사 가려고 했지만 처갓집에서 반대했다지. 거기는
너무 이북과 가까이 붙어있는 지리적인 걱정도 있었고, 이왕이면 딸을 곁에 두고 살고 싶은 부모들의 욕심도
있었고, 하긴 박씨도 이남에 피붙이라고는 처가 집안 뿐이니, 그냥 자리 잡은 거지 뭐.
할머니가 다시금 추임새를 넣어준다.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길어지고 있었다. 그냥 이대로 있으면 밤새도록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되뇔 것 같아
보인다.
-아참! 내 정신 좀 봐. 저녁 해야 하는데.
할머니가 문 밖을 보더니 일어서려고 하는데
-할머니, 저희는 올라가야 합니다. 애기를 두고 와서요.
-무슨 소리! 그래도 손님인데 식사는 하고 가야지.
-그래, 당신은 저녁 준비하고 우리는 나머지 얘기를 해야지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면서 담배를 한 가피 꺼내어 문다.
-그러다가, 사람이 죽으려면 마가 낀다고, 먹고 살만한 사람이 굳이 힘든 일을 할 필요가 없었는데. 사람이 죽
으려니 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어느 핸가 배를 타겠다고 나서더군. 마땅히 할 일도 없고 그렇다고 놀기도 뭣하
니 조금 벌어볼 겸 해서 배를 탔는데, 배를 탄지 얼마 되지 않아 풍랑에 빠져 죽었지. 그 때 그 배를 탔던 사람들
모두가 물고기 밥이 되었어, 시체조차 찾지 못하고. 그 때가 아마 자네 아버지, 그러니까 성덕이가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며칠 시체를 찾다가 결국은 옷가지 몇 벌 관에 넣어 가묘를 쓰고 말았지. 그리고 나서 성덕이 그 사
람은 여기를 뜨려고 했어, 하지만 외가 집에서 허락하지 않았지. 성덕이 그 사람이 그 때 사귀던 처자가 있었는
데, 사람은 참하지만 집안 가세가 형편없어서 집에서 반대를 조금 심하게 했을 거야.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 때
그런저런 일로 성덕이 그 사람이 그 처자를 데리고 집을 떠났고, 그 친구였던 형석이도 함께 떠났지, 몇 년이 지
난 후 성덕이 모친이 죽었을 때 와서 장례를 치루고 그리고 떠난 후 소식은 몰라. 철원에서 산다는 말도 있고,
철원이 가까운 포천인가 의정분가에서 살았다는 말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