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은사골 메아리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삶의 쉼터 스크랩 내 이름 석 자 - 글ㆍ그림 이수동(화가) / 해돋이
ysoo 추천 0 조회 61 15.12.30 11:4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 ‘내 이름 석 자’(캔버스에 아크릴릭, 40.9×53cm, 2007)

 

  

내 이름 석 자

- 글ㆍ그림 이수동(화가)

 


오늘,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하고서
내 이름 석 자 크게 외칩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지금 외친 그 이름은
앞으로 사랑 앞에서 말을 더듬거나
숨어서 가슴 졸이는 일도 없을 겁니다.


그리고 어떤 고민이 생겨도,
이리저리 재거나 여기저기 물어보지 않고
스스로 결단을 내릴 겁니다.
저 태양을 삼킨 사람처럼 살 겁니다.
나는 이제, 어제의 내가 아닙니다.

 

 

 

 

 

 

해돋이

 

 

동쪽으로 가려 한다. 정동진이나 낙산, 또는 간절곶이나 호미곶.해가 일찍 뜨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다.

무릇 동쪽이 희망의 방위(方位)인 까닭은 단 하나, 그곳에서 새벽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새해의 태양은 어제의 그것과는 다르다. 매일 뜨고 지는 태양이 새로울 게 뭐 있느냐고 되물어서는 안 된다.

다시 꿈꾸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원단(元旦)의 일출은 충분히 아름답고 소중하다. 내버려둬도 저절로 흘러가는 시간에 금을 그어 묵은해와 새해를 구분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그렇더라도 기껏해야 몇 분 차이인 해돋이를 보기 위해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굳이 먼 길을 가야 할까?


어차피 해는 저 산 위로도 솟을 터인데, 그리고 햇살은 이 창문 안으로도 비칠 터인데. 일상적인 계산법을 무시한 채 비효율적인 여행을 떠나는 건 빛을 향한 간절함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어둠에서 벗어나고픈, 그리하여 조금이라도 빨리 새벽을 맞이하고픈. 해를 마중함으로써 그 목마름을 풀 수만 있다면 아무리 먼 길이라도 주저할 까닭이 없다.


하물며 몇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내 나라의 바닷가임에랴.
어둠 속에서 해돋이를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해를 토해내려는 검은 바다의 뒤척임이 얼마나 격렬한지를.

해 뜨기 전의 새벽 바다가 얼마나 서늘한지를.

일출이란, 혹은 새로운 시작이란 언제나 그만큼의 고통을 필요로 한다는 것도.


새벽에 깨어 있던 사람은 절대 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
해돋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먹장구름 뒤덮인 날에도 태양의 존재를 잊지 않는다. 새해 첫날 동쪽 해변이 사람들로 붐비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새벽 바다에서 길어 올린 희망으로 고단한 일상을 견디기 위해.

그날 이후에도 해는 언제나처럼 뜨고 또 지겠지만, 저마다의 가슴속에 갈무리한 신새벽의 불덩이는 결코 쉽게
저물지 않을 것이다.

 


글 박경수(소설가)

사진제공 2008 호미곶 해맞이 축제 입선작(장미숙),
festival.ipohang.org/festival/sunrise/festival_gallery/

 

 

GOLD & WISE

KB Premium Membership Magazine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