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 2354 글쓴이 싸울아비 조회 4537 점수 487 등록일 2006-7-21 00:53 바둑 대문 0 톡톡 0
나는 바둑을 잘 두지도 못한다. 아니 잘 두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겨우 축머리 정도를 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하늘같은 고수들을 평하게 되었고 내가 평한 그 고수들을 나는 실제로 본적이 없으나 주워들은 귀동냥과 신문에 난 바둑기사 몇 줄을 본 눈동냥으로 몇 자 끌쩍거려 본 것이 지나치게 너무 깊고 많이 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다시 말해서 스바방에 연제된 3편의 바둑이야기는 리얼리티가 결여된 관념 산수화 비스무리하게 되었으나 일부 독자들의 호응도 있고 해서 무리하게 4편까지 끌고 왔다.
이런 졸필에 격려를 주신 독자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를 표하며 또한 황공무지하게 계속 대문에 걸어준 서프 운영진에게도 감사를 표하고 싶다. 그리고 혹 졸렬한 비평으로 명예를 훼손당했을 천하의 고수분들이 계신다면 졸필로 인한 본인의 진위 왜곡으로 혜량해 주었으면 좋겠다.
독자분들은 혹 의문을 품을 것이다. 왜 바둑이야기 하면서 제목을 한자로 외자인 "樂"자만 쓰고서 시리얼 넘버를 붙이면서 연재하고 있을까??라고 의아하게 생각하신 분들 도 계실 것이다.
나는 이 "樂"을 설명하기 위하여 너무 먼 길을 둘러왔다. 먼저 밝히자면 서봉수의 휘호에서 따왔다. 서봉수의 쓴 휘호 "樂"자가 너무나 절묘하기에 그 글을 보는 순간 언젠간 바둑에 관한 글을 쓸 일이 있다면 나는 제목으로 반듯이 "樂"자를 붙이겠다고 생각해 왔다.
나는 "일본 바둑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세고에 9단을 비롯하여 "바둑의 신" 또는 "20세기 기성" 불리는 오청원 9단 그리고 가까이는 "戰神" 조훈현, "神算" 이창호의 바둑의 세계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금세기 고수들을 함부로 논했고, 희롱했다. 그저 바둑을 조금 아는 얼치기 바둑팬으로 그 분들의 바둑사상과 철학을 논하기에는 바둑적 깊이도 깊지 않으려니와 인격적 성숙도 한참 떨어지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격언처럼 무식이 도를 넘어 만용을 부려서 용감하게 스바방에서 바둑의 주변 이야기를 연재하는 건방을 떨었다.
우리는 1등에게 환호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는 승자독식의 체제이며 특히 프로 스포츠는 그 정글의 법칙이 철저히 적용된다.
그러나 나에게 영원한 화두가 있다. 정치건, 스포츠건 그리고 인생살이건 간에 나는 성공한 메인 스트림에 대해서는 별로 흥미가 없고 있다면 소위 말하는 마이너리티나 패자에게 더욱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혹자는 서봉수가 바둑의 마이너리티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따질 것이다. 물론 맞다. 서봉수는 한국 바둑계에 나아가 국제기전에서 적어도 마이너리티는 아닌 것 분명하다.
하지만 서봉수에게는 조훈현이라는 1인자에 가려져 있지만 도태되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서 다시 부활하는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이기에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또한 서봉수에게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 아들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독학으로 공부하여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신분상승을 이루어낸 상투적이지만 드라마틱한 구성요소를 지니고 있어서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뿐 만 아니라 나의 알량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이다. 좋은 조건에서 왕자처럼 생활 하다가 좋은 대학 나와서 별로 힘들지 않고 이 땅에 주류로 편입되는 왜곡된 사회질서에 반항하다가 절망해 버린 나의 자존심을 세워 주는 것 같아서 그를 좋아 한다.
그리고 그는 또한 순수 오리지널 국내파라는 것이다. 그에게는 스승도 선배도 없었다. 있다면 번득이는 기재와 질 수 없다는 오기 그리고 자신만이 천하제일이라는 자부심으로 노력하고 노력하여 일가를 이루어 당당히 실력으로 유학파들의 아성을 허무는 된장바둑이라는 애국심이 서봉수에게 미치도록 환호하게 한다.
그는 그로기는 될지언정 넉다운되지 않는 맷집을 가졌다. 그리고 자신이 지면은 깨끗이 자신의 실력부족을 인정하고 칼을 갈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서봉수는 조-서 15전쟁에도 살아남았고 "일지매"로 불리는 세게 최고의 공격수이자 충암사단의 맏형 유창혁의 협공에도 살아남았다.
한국의 바둑 실력을 미주나 유럽정도로 취급했던 중화주의자 응창기옹이나 일본의 바둑 제국주의자들은 조훈현의 제1회 응창기배 우승으로 경악했으나 우연의 산물로 취급했다.
그리고 우승삼금 40만불을 놓친 중·일의 고수들은 4년 후에 통쾌한 설욕을 다짐하며 조훈현과 한국바둑을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그들은 그제야 한국에 대한 경계 눈초리를 가졌으나 바둑 종주국으로서 자부심과 근대 바둑효시로 자존심은 여전히 대단했다.
조훈현이 우승한 덕으로 제2회 대회가 열리는 1993년에는 단 한명이 초청된 1회 대회와 달리 무려 3명이나 초청되었으며 서봉수 9단 그 응창기배에 구색맞추기용으로 초대되어 일본과 중국의 바둑팬들의 카타르시스를 채워줄 희생양으로 간택되어 졌다.
한국에서 서봉수 인기는 조훈현을 능가했다. 서봉수의 특유의 건달적 기질과 맞물려서 된장바둑이라는 국가주의가 결합되어 천하의 조훈현과 그 인기가 어깨를 나란히 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미세하나마 서봉수 9단의 인기가 더 높았다.
그런 서봉수가 응창기배에서 결승에 진출하자 국내가 발칵 뒤집어졌다. 조훈현이야 일본 유학파에다 한국의 제1의 기사로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서봉수는 조훈현과 유창혁의 뒤지며 이제 돌부처로 불리는 이창호에게 밀리는 NO4급에 지나지 않는 서서히 지는 태양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들의 열광은 서봉수의 응창기배 선전으로 된장바둑의 힘을 보여 준 것에 대한 지지였으며 스스로를 중국과 일본에 뒤진다는 자학적 패배주의에 젖어 있던 바둑팬들에게 NO4급이 내놓으라는 중국과 일본의 최고수들을 베고 결승에 올랐다는 자체가 한국바둑의 전체적인 레벨업을 의미하였다.
제2회 응창기배의 파이널 파트너는 미학자 오다께였다. 오다께는 바둑의 결과 보다는 내용을 중시하며 그는 자신이 비록 승리한 경기라고 하더라도 바둑내용이 본인이 납득하지 못하며 자학하곤 하는 바둑의 순수파였다.
특히 그는 포석 시 또는 착점 시 실리보단 모양을 중요시했으며 지나치게 모양을 따지다보니 결과를 그르친 경우가 많았을 뿐 아니라 화려한 외양을 치중하다가 스스로 파놓은 함정에 걸려들기도 했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마지막 대국을 위해 출발하기에 앞서서 서봉수는 그 승부에 대한 필살기를 알고 있었다. 그는 기자들에게 말하기를 "이런 큰 시합은 심장의 크기로 (승패가) 결정된다고 봅니다"라고 할 정도로 국제 바둑기전 중에서 가장 큰 메이저 대회 중압감을 표현했다.
국내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서봉수는 오다께를 압도했다. 그래서 경기는 2승1패 40만불을 가져가는 데는 단 한판만이 필요했다. 마지막 화룡점정을 찍고자 하는 제4국에서 거칠 것 없는 야생마처럼 반상을 헤집고 다녔고 미학자 오다께는 그런 서봉수를 잡지 못하였고 국내 내놓으라는 해설가들은 연구생이 와서 두어도 이미 승패는 서봉수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미학자 오다께 뒷심은 무서웠고 패착과 패착을 거듭한 서봉수는 믿기지 않는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절망이었다. 다 잡은 승리가 방심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이 제4국으로 인해 죽어가는 오다께는 무섭게 기사회생했으며 천하를 잡을 것 같은 서봉수는 내리막길로 내려갔다.
이제는 2승2패, 진짜로 심장의 크기를 저울질하는 마지막 제5국이 다가왔다. 다이긴 4국를 놓친 서봉수는 의기소침했고 기사회생한 오다께는 펄펄 날았다. 바둑이 진행되면 될수록 오다께의 보가는 커져갔으며 서봉수는 반상에서 너무 초라하여 돌을 던지는 시점을 찾을 정도로 몰렸다.
이미 오다께는 승리의 8부 능선을 넘어 서봉수가 최후로 발악하고 있는 고지 턱 앞인 9부 능선까지 진격해와 항복을 종요하고 있었다. 잡초 서봉수에게는 이 상황이 죽기보다도 치욕스러웠다. 이때 물수건을 얼굴에 감싼 서봉수는 애매한곳을 찾아 서슴없이 가일수하였다.
오다께는 여유를 부렸다. 이미 승리한 게임, 적장의 목을 단숨에 치지 않고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야말로 적장을 더 굴욕스럽게 굴복시키는 것이며 그동안 한국바둑이 너무 겁 모르고 바둑의 중시조인 일본에 도전한 것에 대해 응징하여 그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었다.
승리감으로 오다께는 들떠있었다. 그리고 서봉수의 고통을 잔인하게 즐겼다. 그러는 사이 이 수수께끼 같은 사나이 서봉수는 체력과 기력을 회복하여 눈이 트이고 반상의 전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제대 말년에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한다는 격언처럼 다 된 밥에 무리수를 두지 않고 물러서기를 반복하다가 오다께가 밀리기 시작했다. 서슴없이 가일수한 수들이 패가 되고 패는 오다께의 대마의 사활을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둑의 흐름은 서봉수로 넘어 오기 시작했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난전으로 빠져든 오다께가 "아뿔사"하고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그의 주위는 곳곳이 서봉수가 뿌려놓은 지뢰밭에 발이 담겨져 있었다. 서봉수의 마술에 걸려든 오다께는 돌을 거두어야 했다. 그야말로 서프라이즈한 대역전극이었으며 조훈현에 이어 다시 한 번 한국 측에 응창기배를 안긴 날이었다.
바둑은 끝나면 반듯이 복기를 한다. 승자든 패자든 간에 차분하게 마주앉자 다시 반상에서 승착과 패착을 묻고 연구하고 검토한다. 이것이 바둑의 道이며 禮이다.
너무나 솔직한 서봉수에게 복기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희열해야 할 때 희열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적이고 보다 솔직하다고 생각하는 기사이다. 그는 주최 측 진행자들 불러 자신을 이 복기라는 쇼에서 빨리 꺼내줄 것을 부탁했다.
건성으로 복기를 끝내고 만찬에 앞서 패자인 오다께와 승자인 서봉수는 휘호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붓을 든 오다께는 "念"으로(기억이 확실치 않음) 쓰고 붓을 놓자 40만불을 가슴에 안은 서봉수는 머뭇거리지 않고 "樂"을 쓰고 붓을 놓았다.
과연 서봉수다웠다. 오다께의 얼굴은 찌푸려졌고 서봉수는 파안대소하였다. 그리고 제2회 응창기배는 한국 품으로 날아왔다.
서봉수는 신비로운 사람이다. 그리고 가식이 없다. 어깨너머로 배운 바둑으로 한세상을 호령했으니 서봉수야 말로 천재였는지 모른다.
이제 그도 늙어갔고 매스컴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베트남 처녀와 결혼이라는 바둑외적인 일로 뉴스를 타는 그를 보고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그러나 "樂"을 휘호로 쓰는 서봉수의 배포와 솔직함이 아직 나에게는 강렬하게 남아있다. 다시 그가 부활하여 과거의 그 화려한 행마를 보여 주길 팬의 한 사람으로 기대한다.
ⓒ 싸울아비
※ 지금까지 ‘樂’을 연재해주신 싸울아비 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왕성한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 편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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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미리칸 작성일 2006년7월21일 01시15분
잘 읽었습니다
시간이 허락하면 종종 바둑이야기 들려 주세요...
건강하시길..
[2/25] 주터질래 작성일 2006년7월21일 01시25분
저두요
[3/25] Crete (Crete) 작성일 2006년7월21일 05시47분
바둑의 ㅂ 자도 모르는 접니다만... 요즘 심란한 마음을 풀어주시는 글을 읽으며 즐거웠습니다. 앞으로도 짬이 나시면 가끔씩 바둑 얘기 좀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싸울아비님 덕분에 스바방에 최근에 가장 자주 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4/25] 굿럭 작성일 2006년7월21일 07시43분
이렇게 끝내면 안되죠!!!!
[5/25] 착한여자 작성일 2006년7월21일 09시19분
고난한 삶 속에 樂,기쁨이죠.
싸울아비님 좋은 글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6/25] 조르바 작성일 2006년7월21일 09시53분
徐명인에 대한 이런 일화도 기억 나는군요.
5공 전대머리 시절로 여겨지던 어느 날, 그 당시 군바리 출신의누군가가 한국기원 이사장으로
부임하여 徐명인과 한 번 지도 대국을 두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래서 한국기원의한 직원이 대국실에서
복기하며 바둑공부를 하고 있는 그에게 이런 사유로 이사장실으로 호출하였는데, 徐명인 曰
" 이사장의 자격으로 나를 부른다면 언제나 달려가겠지만, 대국을 하는 경우라면 당연히
사범인 자기를 보러와야 하지 않는가 !"고 일갈하였다는 멋진 얘기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참 양보에 관한 거라면, 1회 응씨배였던가 8강전에서 조훈현 국수와 겨뤘던 갬블러
'차민수'씨와의 대국도 잊혀질 수 없는 당대의 회자거리였죠. 절대 질 수 없는 국면에서
떡수를 몇 번이나 거듭하여 결국에는 지는 데 성공(?)하였죠. 대국이 끝난 뒤 많은 사람들이
의혹의 눈으로 무수한 질문을 하였지만 한사코 자신의 실력차 때믄 뿐이라고 말할 뿐이었죠.
뒤에 들리는 얘기로는 '일단 자신이 이기는 것은 작은 일이고, 객관적으로 보아 그 이후 다른 나라의
기사들과의 싸움을 고려한다면 - 당시 그는 미국 대표였음 _ 무조건 曺국수가 이겼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 멋들어진 우정의 모습과 함께, 車사범은 얼마 전 TV연속극으로 방영됐던 '올 인'의 실재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많이들 알려져 있죠. 이 양반 야그도 한 편의 정통무협지를 능가하지요.
좋은 얘기 들려주신 싸울아비님께 감사드리고요, 또 늘 넉넉한 자리를 맹글고 계신
스바방식구들의 장단에 절로 오른 흥취로 댓글달아봅니다.
[7/25] 완행열차 작성일 2006년7월21일 10시29분
저희집에서는 아버지가 여자들은 잡기에 능하면 안된다고 장기 바둑을 가르쳐주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장기도 한자만 읽을 줄 알고 바둑은 더더욱 모르는데
남편이 바둑을 꽤 즐기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가르쳐주라 라고 할 때 밭전 날일 이런것 이야기 하니
제가 이해를 해 나가닌까 소질 있다고 해서 배우려는 찰나에 너는 안하는것이 도움이 되겠다 라고 해서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싸울아비님 글 유익하게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8/25] 아랑 작성일 2006년7월21일 10시33분
그 군바리출신의 이사장이 결국은 통 큰체 하며 서명인이 있는 기사실로 와서 한판 청했답니다.
나름대로 아마추어 단증이 있는 사람이었던 모양인데... 서명인이 무려 9점을 깔게 하고는
예의고 안면이고 없이 두드려 패서 만방으로(90집이상 차이..야구의 몰수게임과 비슷함)이겨버렸죠.
그 뒤로 미운털좀 박혔다는 소문이...
[9/25] 아랑 작성일 2006년7월21일 10시42분
서명인의 인생중 큰 사건으로 응씨배 우승 외에 진로배 9연승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사건을 더 크게 봅니다.
한물간 서봉수가 출전이 웬말이냐며 말이 많았는데 서명인이 첫번째인가 두번째타자로 나서서
중국,일본의 대표들을 한큐에 혼자서 죄다 박살내고 우승컵에, 연승상금에...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해버린 전대미문의 사건이었죠.
중국의 진조덕이 '한국의 4천왕의 무서움을 이제야 알겠다' 고 탄식했다죠..
[10/25] 애독자 작성일 2006년7월21일 10시50분
싸울아비님 樂시리즈는 서봉수구단으로 마무리 되겠지만...
앞으로 바둑얘기 계속 연재해 주실거죠? 기대하겠습니다.
조르바님께 딴지하나
조훈현9단과 차민수4단의 8강전은 후지쓰배로 알고있습니다.
그 이후로 올인의 주인공 차민수4단의 별명이 '세계8강'이 되었답니다. ^^
프로겜블러로 백만장자인 차민수4단의 바둑에 대한 애착은 대단해서
거의 바둑을 두지 않는 현재에도 그의 명함은...
'한국기원 전문기사 차민수' 입니다.
[11/25] 골피 작성일 2006년7월21일 10시56분
제 보기엔
우리 스바방 스타 션그라스 싸나이나
차사범이나 같은 과입니다.
[12/25] 조주 작성일 2006년7월21일 11시15분
님의 시리즈글 덕분에 참 즐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ㅎ~
[13/25] 재밌게봤삼 작성일 2006년7월21일 11시54분
오타 하나 : 내놓으라 하는 -> 내노라 하는 ^^
[14/25] 매고 작성일 2006년7월21일 12시33분
가서 공부 좀 합니다.
[15/25] 목소리(웃으며) 작성일 2006년7월21일 12시45분
까르르르~~~
이쪼쪼글할망구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왜 이렇게 재밌는 거냐아? 하하하
또 해 주세요.
하하하
목소리(웃으며)
[16/25] 바람 작성일 2006년7월21일 14시27분
중앙일보 박치문 위원에 버금가는 필력을 보이시는 군요.
이렇게
짧은 연재를 하실꺼면 시작을 마시지,,,
허전해서 우쩐데요 ㅜ.ㅠ
[17/25] 으악~~ 작성일 2006년7월21일 14시53분
아니 여기서 끈나면 어떻합니까 ? 계속 더 하시죠..
아우~~ 미치겄넹...
좀 2-3편 더 하시징...
[18/25] 조르바 작성일 2006년7월21일 15시26분
애독자 님//
밖에 일보고 돌아와 님의 님의 애정어린 딴지(-.-;;) 잘 보았습니다.
기억의 오류를 고치게 되어 고맙단 인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저의 짧은 기억력 때문에 이렇게 님과 대화하게 되었으니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여겨집니다. 그러고보니 스바방 작업의 전설이신 J^^모님께선 그 옛 날부터 절대 시계를
차고 다니지 않아야 한다는 작업의 정석 제 1항의 이바구가 새삼 떠오릅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가끔씩이나마 햇볕을 보게되어 더욱 좋은 하루입니다.
[19/25] 어휴 대문에 오타가 작성일 2006년7월21일 16시49분
피안대소가 아니라 파안대소(破顔大笑)입니다.
빨리수정 바랍니다.
[20/25] 싸울아비 작성일 2006년7월21일 17시24분
헉 오타가 한두개 아니네요..지송합니다..급히 쓰다 보니 그리된 것 같습니다
[21/25] 송기삼 (kissarm) 작성일 2006년7월21일 17시30분
바둑글 중에서 이처럼 재미있는 글은 처음입니다.
싸울아비님, 감사합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
[22/25] 이쁜돌 작성일 2006년7월21일 19시10분
서봉수님 하면 응씨배 우승과 함께 앞서 말씀하신 구연참!!!
저는 바둑모르는데
아는 형님이 3급으로 이런 저런 바둑이야기 많이 들려주셨습니다.
그때 기억이 새록합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23/25] .. 작성일 2006년7월21일 21시52분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서봉수씨의 명언은....
'꽁수도 실력이다.'
상대가 응수 할수도, 안할수도 있지만....
결국은 딸려오게 만드는.... 상대방을 파악하고 두는 수라는 요지로 말씀하셨죠...
[24/25] 장삼이사 작성일 2006년7월21일 22시15분
서 봉수가 조 남철 선생을 쓰러뜨리고 명인위를 쟁취한 사건은 바둑사에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지만,
서 봉수가 누구의 가르침도 안 받고 초일류의 강자로 되기까지의 과정은 베일에 싸야 있다.
그 과정이 궁금하다..
그걸 쓰면 베스트 셀러가 되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