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쪽의 이파리를 따다가 발견한 풍경이다.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선채로 눈높이를 중심으로 위아래를 보는 것이 평균적인 시선의 높낮이다. 앉은 자세에서 위를 바라본 풍경은 낯설다. 정해진 틀 안에서만 생각하게 되고, 그 기준을 벗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습성이 있다.
오래전에 읽은 "프레임"이란 책이 생각난다. "프레임"은 서울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최인철 박사의 심리학 서적이다.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나가야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힘이 생긴다는 의미 있는 책이었다. 유연한 사고로 말랑말랑한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 새로 만나는 풍경처럼 낯설지만, 신선함을 반기는 사람이면 좋겠다.
블루베리 하우스 안은 온도 조절을 위해 밤낮으로 창들을 닫아 놓는다. 한낮에는 우리가 작업하기 편하도록 천창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한다. 이른 아침 작업 시간에는, 물방울 연주곡을 들으며 작업하다 기온이 오르면 천창을 연다.
오후 3시를 넘기면 추워지기 시작해서 천창도 조금씩 닫는다. 오후 5시에는 모든 문을 닫아야 한다. 오후 6시 반까지 이파리를 따 주다 퇴근한다. 해가 점점 길어지고 있어서 작업 시간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블루베리 하우스의 꽉 찬 나무들 사이에 서면, 숲 속에 있는 것 같다. 밀식하지 않아서 널찍한 작업 공간이 있는데도, 잎이 무성해지면, 가지들이 통로쪽으로 뻗어 나와 길을 막을 정도다. 잎이 나고, 열매가 열리기 전에, 중간중간 지주대를 세우고, 측면을 와이어로 고정해야 하는 작업이 또 기다리고 있다. 이파리를 제거한 부분의 나무들이 시원해 보인다.
한 줄씩 나무 이파리를 제거해 나가는 기쁨으로 뒤를 돌아본다. 내가 돌아선 자리마다 꿈이 떠오른다. 이파리를 떨군 가지들에 숨어있던 꽃눈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꽃눈은 희고 예쁜 꽃과 보랏빛 탱글 거리는 열매를 마구 상상하게 만든다. 그 너머, 보다 더 구체적인 꿈들이 다가선다.
말썽꾸러기 둘째에게 그럴싸한 옷 한 벌, 첫째 아이 전세금도 좀 올려 줘 볼까. 부모님 용돈도 조금 더 두둑하게~ 올 가을에는 넉넉한 자금과 시간을 들여 여행을 갈 수 있겠지? 이런 꿈에 젖어보면, 이파리 따내는 작업도 조금은 덜 힘들어진다. 이번 주 일요일까지 모든 나무의 이파리를 따낼 수 있을까?
[복숭아밭에서]
오랜만에 복숭아밭에서 작업을 했다. 블루베리 이파리 따기와 쉼터 만들기 작업을 하느라 한동안 복숭아밭에 가지 못했다.
지난해 12월에 동계 전정을 한 후, 이번이 올해 최초의 작업이다. 복숭아밭 평탄작업을 위해 받아 놓았던 흙을 땅이 깊은 부분까지 운반차로 날라서 포클레인으로 펼치고 다지고~~ 이런 작업이 사흘 걸려 마무리 되었다.
나는 사흘 동안, 오전에 블루베리 이파리 따주는 작업을 했고, 오후에는 복숭아밭에서 운반차를 맡았다. 바닥이 반듯해야 다음 주부터 가지치기 작업에 투입될 고소작업 차의 통행이 원활해진다. 양쪽 가장자리가 협소했던 부분을 두둑을 다듬어서 기계들이 수월하게 다닐 수 있도록 만들었다.
우린 일하는 모양새가 청개구리가 따로 없다. 지난 일요일엔 블루베리 하우스에서 나무 이파리 따는 작업을 했는데 날씨가 더워서 창문을 올렸다 닫았다를 반복하며 작업했었다. 이주에는 지난번 눈이 오던 날씨 이후로 많이 춥다는 예보가 있었다. 복숭아 밭은 찬바람이 불어서 모자 달린 양모점퍼를 입고 머플러로 둘둘 말고 마스크를 쓰고도 추웠다. 눈까지 가릴 수는 없었다. 남편도 얼굴이 빨개졌고, 나는 장갑 낀 손이 시렸다.
남편은 포클레인으로 운반차에 흙을 퍼 주었고, 내가 땅이 패인 곳에 흙을 부려 놓으면, 포클레인으로 평탄작업도 했다. 운반차가 있어서 흙을 실어 나르고 퍼내리는 일은 수월했다. 버튼을 올리면 차체가 들려져서 흙이 쏟아져 내렸다. 운반차가 열일을 하는 형국이었지만, 날씨는 너무 추웠다.
이 모든 사달은 작업의 키를 맡은 선장 격인 남편 때문이다. 날씨와 상관없이 날짜별로 해야 할 일들을 정해 놓고,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일을 하려고만 한다. 융통성, 운영의 묘 이런 것을 아예, 모른다. 내가 툴툴거려도 그냥 웃어넘긴다. 바람이 몰아쳐서 진저리 치는 내 앞에 양팔을 벌려 바람을 막아 준다. 이러지 말라고!!! 처음부터 내 말을 좀 들어 달라고!!!
첫댓글 농원 일이 작가의 상상력을 최고조로 펼치게 하는 것 같아서 재미있게 읽었어요.
초지일관 밀어붙이는 대장과 보조 역할이 티격태격하면서 균형을 맞춰가는 과정이 \
참 재미있는 한편의 드라마 같다는 상상도 하면서요.
꿈꾸는 농원의 2025년 여름과 가을을 기대할게요.
특별히 잘 키운 블루베리와 달콤한 복숭아가 벌써부터 침을 넘어가게 하네요.
사랑의 가족이 여기 있음을 말하고 있는 듯하여 읽는 동안 내내 흐믓했어요.
회장님! 좋게만 봐 주시는 마음 너무도 감사합니다. 연일 농원에서 일만 하다보니 투정이 쌓이곤 합니다. 탱글탱글한 꽃눈을 보면 꿈도 부풀어 오릅니다. 금방 꽃들이 피어나려고 합니다. 꽃피면 사진도 올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쉴틈 없는 농가의 바쁜 일손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고있는 게으른 몸집이 부끄러워집니다
가까이 살면 도외드리고 싶네요
불루베리 농사도 짓고
글 농사도 짓고
참 근면 성실하신
손길에 빛나는 일거양득을 누리게 하소서
늘 따뜻한 마음으로 지켜봐 주시는 분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봄 기운이 저도 기운을 내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