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의 집안에 상비되어 있던 금창약, 안티푸라민과 빨간 약.
극성스럽진 않았어도 어린애는 어린애, 넘어지고 멍들고 피나는 일은 다반사였다.
피나는 데는 빨간 약, 멍든 데는 안티푸라민이 만병통치였는데 나는 그 안티푸라민 냄새를 좋아했다.(물론 지금도)
또 어떤 벌레에게 헌혈 내지는 영양보충을 시켜줬는지, 왼 손 손등이 산처럼 부어올랐다.
좀 불편할 뿐 아프진 않아서 그냥 있는데, 누가 맨소래담 연고를 발라준다. 근데 그 냄새가 안티푸라민과 많이 비슷하다.^^
누구는 신나 냄새를 맡고 혹자는 부탄가스를 들이마신다는데... 내겐 안티푸라민이 꼭 그 짝이다.
그 향기(?)를 한참 잊고 있었는데, 손등을 코 가까이 들이대고 냄새를 맡으니 문득 오래 전에 있었던 또다른 상비약에 대한 에피소드가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독일 생활의 초창기에 작은 상처가 생겨 피가 나는 사고(?)가 발생했다.
보통 의사의 처방 없이는 약을 살 수 없는 시기였지만, 그 때의 생각에도 설마 빨간약까지 처방을 요구할까 싶어 약국으로 들어갔다.
나름대로 혀를 구부려 '머큐러크롬'을 발음했는데...
빨간약이란 이름에 익숙해진 데다가 기껏 그 약의 본명(?)이 '머큐롬'이라는 어디선가의 헛소문에,
나름대로 중고등학교 때 배운 풍월로 영어사전을 찾아 대견(?)하게도 머큐러크롬이라는 정확한 이름을 댔건만... 문제는 발음이었겠지. ㅜ.ㅜ
약사 아저씨의 멀뚱거리는 눈동자, 대체 이 동양인이 뭘 달라고 하는 건가?
......
에라~ 모르겠다! >.<
"Rot Wasser, bitte!"
명사 앞에 오는 형용사의 어미변화고 뭐고 다 생략하고 아는 단어만 조합해서 그냥 '빨간 물' 주세요 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Ach, rotes Wasser!"
100% 이해했다는 그 억양, 그는 웃으면서 손가락 크기의 작고 불투명한 플라스틱 병을 내주었다.
상처부위를 빨갛게 바르면서 나는 새삼스럽게 웃었다.
빨간약, 빨간물이라... 약국에서.
이건 또 하나의 만국 공통어가 아닌가 말이다. 기회가 되면 다른 나라에서도 시험해 봐야지.
안티푸라민 향기나는 맨소래담의 약효를 기대하며...
카페 게시글
우리들의 강호
안티푸라민과 빨간 약
阿瑟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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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7.14 11:47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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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근데 그 빨간물이 빨간약(아까징끼?) 맞았소???...나같으면 상처부위를 보여주면서 바뒤랭귀지로 표현했겠구만...혹 보여주기 어려운 자리에 난 상처면 대략 낭패지만...^^
그럼 약국에서 설마 봉숭아물 팔겠소~?
머 마시는 물약에도 빨간색이 더러 있드만...^^;;
호랑이 고약 거 뚜껑에 날렵한 호랑이그림이 그려진 쩝 이거 말하는 건가요? ㅡㅡ@
'만금유'말씀하시는군요...타박상같은데 바르면 효과는 좋죠...다만 냄새가...ㅋㅋㅋ
어? 내가 본건 淸凉油인데...
호랑이기름도 여러가지 브랜드가 있나 보군요...만금유 만든 사람은 그거 하나로 갑부가 됐다던데...쩝~
음 냄새는 고약하지만 뭐 효과가 좋으니 냄새도 좋게 느껴지더군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