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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과 진심을 담은 "최인아 책방"
이화인 여러분은 책을 읽고 싶을 때 어떤 책을 살지 고민되지 않나요? 서점의 넘쳐나는 책들 중 어떤 책이 나의 마음에 들지, 어떤 책이 나의 인생 책이 될지 알기란 쉽지 않죠. 선릉역에 위치한 '최인아 책방'은 이런 현대인의 마음을 대변하듯이 최인아 동문 지인들의 추천 도서가 책꽂이에 꽂혀있을 뿐 아니라, 현대인의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요! 2012년 12월까지 제일기획 부사장으로 근무하시다가 2016년 8월 18일 최인아 책방을 오픈하여 제2의 인생을 살고 계신 최인아 동문, 이화투데이 리포터가 만나 뵙고 왔습니다.
Q.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요즘 '최인아 책방'이 큰 사랑을 받고 있어 찾아 뵙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살롱을 옮겨온 느낌이 물씬 풍겨 마음이 정화되고 치유되는 듯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책방과는 색다른 분위기의 책방인 게 최인아 책방을 더욱 특별하게 해주는 것 같은데 이렇게 최인아 책방을 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4년 전에 필립 헤레베헤라는 연주자의 공연을 다녀온 적이 있어요. 이 지휘자는 고(古) 음악을 연주하는 분인데, 우리가 지금 듣는 클래식은 사실 베토벤, 슈베르트, 바하, 모차르트가 그 곡을 썼을 때의 음악과는 매우 달랐어요. 그 당시에 이 곡들이 연주되는 환경이 매우 달랐기 때문에 오늘날에 이르면서 악기가 개량되어 똑같은 악보를 보고 연주를 해도 소리가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음악과는 매우 달라진 것이죠. 그 때의 그 소리를 그대로 재현하는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그 중에 필립 헤레베헤라는 사람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는 그 당시의 소리를 재현하기 위해 오케스트라와 합창단까지 직접 만들었어요. 직접 그 음악을 재현해내는 걸 보면서 저런 사람이 진정한 크리에이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또한 온전히 한 세상을 크리에이트(CREATE), 만들어보고 싶어졌어요. 저렇게 내 뜻이 통하고 그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같이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낸다면 그 크기가 작더라도 참 의미가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사실 제가 남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다만 비교대상을 저로 국한시킬 때,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 때 가장 좋은가 생각해보면 정말 명확히, 책을 붙들고 있을 때에요. 제가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법 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저 혼자만 즐거운 일이 아닌 딴 사람한테도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이러한 생각들이 모두 만나는 지점이 바로 ‘책방’ 이었던 거에요. 광고를 할 때나 지금이나 제가 하는 일들은 전부 생각하는 일들 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나니 출근하는 곳만 다를 뿐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Q. 최인아 책방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 다른 특색이라면 강연, 콘서트, 시인들의 시 낭송, 출간기념 행사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은데요. 모시기 어려운 쟁쟁한 분들께서 강연자로 나오셔서 본인들의 노하우를 풀고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나요?
제가 정식모임이 없는 사람인데도 그 동안의 경력들이 저도 모르는 새 저의 사회적 자본이 된 것 같아요. 일을 하면서 저에 대한 신뢰가 쌓였기 때문에 저를 믿고 오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부탁하는 입장이 됐는데도 많은 분들께서 기꺼이 와주셔서 강의를 해주시는 것은 정말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죠. 또한 그 분들도 강의를 할 기회에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 해보시는 것 같아요. 저는 프로그램들을 기획할 때 듣는 분들께 지적이고 우아함으로 충만한 시간을 누리게 해드리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때로는 책으로, 강연으로, 혹은 콘서트로. 시간과 돈에 쫓기며 살게 되는 우리 사회에서, 적어도 최인아 책방의 문을 열고 들어와있는 두어시간 동안은 오랜만에 내가 괜찮은 시간을 보냈다 라는 생각을 하실 수 있게요. 그래서 그 괜찮은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컨텐츠 들을 프로그램화 시키고 있습니다.
Q. 그렇다면 지금까지 진행된 최인아 책방의 프로그램들 중 어떤 강의가 가장 기억에 남으시나요?
인기 강좌에 ‘쟁이들의 생각법’ 이라는 강좌가 있어요. 주로 광고를 하는 분들이 와서 카피라이터나 기획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강연을 하는데, 인기가 좋아서 늘 일찍 마감이 돼요. 상사가 기획사나 제안서를 가져오라고 하며 새로운 생각은 없냐고 물어볼 때, 새로운 생각은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답답해하는 일반 직장인들을 위한 강의죠. 이런 직장인들에게 저는 과제 해결을 해본 사람들인 광고쟁이들이 적절한 스피커(speaker)라고 생각했어요. 저 또한 직장에 있을 때는 어떤 카피라이터가 잘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만날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이런 식으로 일을 하는구나 라고 보게 돼요. 광고계의 전설이라는 이용찬씨도 5월부터 프리젠테이션 강의를 하기로 했어요. 저희 책방에서 밖에 못 듣는 강의랍니다.(웃음)
Q. 최인아 책방이 만들어진 지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운영하시면서 어떤 점들을 느끼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정말 좋아해서 시작한 일인데 사실 스스로가 즐기지 못하며 꼭 숙제 하듯이 무언가를 할 때가 있어요. 이것저것 해야 할 일들이 많다 보니 어느새 계속해서 일들을 만들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업무로 생각한다기 보다는 잘 해야 한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어요. 고단하고 힘들지만 무언가를 자꾸 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또 저는 2호점, 3호점을 더 내는 것 보다는 여기서 굳건하게 자리를 내리고 싶어요. 최인아 책방에 방문하고 이 곳에서 열리는 행사들에 참여하신 분들이 이곳을 '살롱'이라고 생각 할 수 있다면, 제작자의 의도가 잘 전달된 거라고 생각해요.
Q. 광고업계에서 손을 떼시고 책방 주인이 되셨습니다. 광고에 대한 미련이나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은 없으셨나요?
미련은 없었어요. 제가 광고업계에서 일을 하는 동안 맡은 일을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모자라도 모든 것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죠. 번 아웃(Burn-out)했기 때문에 내가 더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었습니다.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려울 거 같아요. 희한한 게, 분야가 다른데도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기획하는 일을 계속해서 그런 거 같아요. 서가 진열 방식이라든지 책방을 좀 다르게 해놓은 것들도 사람들은 새롭다고 생각하지만 저에게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시도였어요. 새로운 세상을 하나 만들고 싶었던 것이고, 그게 책방으로 연결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책방 주인으로 사는 게 아주 자연스러워요. 아주 오래 전부터 해왔던 일 같이 느껴진답니다.
Q. 최인아 책방이 만들어지기 전의 이야기도 궁금한데요,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힘을 중요하게 생각해오신 것 같습니다. 이화여대에 재학하실 때 사고의 힘을 기르기 위해 어떤 연습이나 노력을 하셨는지, 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대학 시절부터 제 생각을 글이나 말로 표현하고 설득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정치외교학과를 전공하면서도 사상 쪽에 관심이 있었어요.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글을 읽는데 그치지 않고 이 사람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고찰해보고 되짚어보는, 남들에게는 없는 저만의 한 단계가 더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책을 읽다 보니 생각하는 힘이 길러지더군요.
사실 우리는 누군가가 만든 생각의 틀 안에서만 움직이고, 비판적인 생각을 하는 힘이 없어서 평생 누군가의 생각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생각의 수입국이었어요. 그래서 언제나 누군가에게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묻고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방법만을 쫓아가려고 하죠. 하지만 저는 항상 ‘왜’ 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어떤 일을 했다는 걸 들었을 때,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그 정체를 스스로 고찰 해보는 것이죠. 이렇게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 방법이 나오길 마련이에요. 물에 깊이 빠졌을 때 우리가 발을 바닥에 딛고 차고 올라올 수 있듯이, 고민을 뒤집고 또 뒤집고 하다 보면 길이 보입니다. 이렇게 연습을 해서 만들어지는 시선의 높이가 바로 자신의 삶의 높이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 여기에 최진석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 과 조훈현의 ‘고수의 생각 법’ 이라는 책들을 추천할게요. 생각을 하라는 얘기가 담겨있는 같은 맥락의 책입니다.
Q. 마흔이 되기도 전에 삼성그룹 공채 출신 첫 여성 임원이 됐고, 삼성 최초의 여성 부사장으로 임명되어 많은 관심을 받으셨습니다. 유리천장이라는 여성 장벽을 뚫은 장본인이라고 하실 수 있는데 이런 사회적 고착을 깰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셨나요?
사실 남자와 여자는 ‘같아야 해’지, 현실은 같지 않거든요. 회사에 들어가서 남녀가 같다고 배운 게 틀렸다는 것을 알았어요. 사실 학교도 소규모일 뿐이지 작은 사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남녀공학 학교를 나왔다면 기득권층인 남자가 먼저인 모습을 보며 자랐을 거예요. 학교에서마저 여자는 소수민족이었을 것이고, 저는 불평등에 노출되면서 어쩌면 이게 당연한 건가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화여대에서 여성학 수업을 들으면서 ‘여자들이 굉장히 능력이 있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현실 속 불평등에 수긍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어린 나이에 불평등에 노골적으로 노출되지 않았던 덕이라고 볼 수 있을 거예요. 입사 후 여자들이 진급 차등, 월급 등으로 차별을 받을 때 머리를 굽히지 않고 컴플레인하고 뚫고 나가게 하는 힘이 여기서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Q. 카피라이터로 일하시면서 만드신 카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대표 카피는 무엇인가요?
많은 분들이 기억할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라는 카피에요. 이 카피에는 제가 살아오면서 느낀 것들, 생각한 것들이 담겨있어요. 회사에 처음 입사하고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했던 7, 8년의 시간들 동안 느낀 것들이죠. 그 때 당시에 저는 남자들과는 달리 미스 최로 불렸는데, 그럴 때마다 내 이름 세 글자마저 외우기 힘들어서 저렇게 부르는 걸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런 생각들이 쌓이면서 일을 잘하고 능력 있는,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자는 생각으로 이어졌죠. 프로라는 것이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잖아요. 마침 일하는 여성이라는 브랜드의 광고 카피를 구성해야 했고, 저는 평소에 생각한 대로 프로가 되자 라는 다짐을 카피에 섞어 넣은 것이죠. 이렇게 평소에 궁금해오고 생각했던 것들이 방법으로 나오는 것 같아요.
“그녀는 프로다”로 성공하고 나서는 저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제가 프로젝트의 중심에 설 수 있게 되고 존재감이 생겼죠. 다른 사람들이 저를 신뢰하게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광고 쪽 일은 좋아하지 않으면 하기가 힘들어요. 집에 가서도 계속해서 일에 대한 생각이 나기 때문에 일과 생활과의 구분이 잘 가지 않죠. 무언가 조금이라도 바뀌면 설득력이 달라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신경 써야 하고, 결국 애정이 없으면 못하는 일이죠. 저는 광고 쟁이라는 말이 좋아요.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이니까.
Q. 마지막으로 이화인에게 책 한 권 추천 부탁드립니다.
우리 책방에서 저자를 모셔 강연도 했었는데 조한별의 ‘세인트 존스 고전읽기 100권’이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어요. 세인트 존스 대학은 4년 동안 전공 없이 고전만 읽혀요. 고전 100 권을 읽히고, 이에 대해 토론하고 글쓰기까지 진행하죠. 어떤 분이 조한별 씨에게 질문을 했는데, 고등학생 때 어떤 책을 읽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이었어요. 조한별은 유클리드의 기하학을 읽으면 좋았겠다고 답을 했죠. 그는 고등학생 때 수학을 못하고 싫어했는데, 고전을 읽다 보니 수학을 좋아했다는 걸 뜻밖에 뒤늦게 깨달았다고 해요. 고전을 접하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이고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기른 것이죠. 우리는 스스로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해요. 우리나라 교육은 한 가지 답을 알려주고 그 답이 아닌 것들은 틀렸다고 하죠. 하지만 사회에 나오면 답을 알 수 없고 심지어 문제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일들이 생겨요. 우리는 사회에 나오기 전, 그러니까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는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책 읽기가 중요한 것입니다. 생각을 하면 방법이 나오길 마련이니 이화인 분들도 꼭 이러한 능력을 기르시길 바랍니다.
길을 잃었을 때 쳐다보는 북극성처럼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생각의 숲과 같은 책방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최인아 동문과의 인터뷰, 어떠셨나요? 광고와 책방, 연관이 없어 보이는 두 분야도 결국은 ‘생각’이 자본이 된다는 점에서 생각의 힘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탐색하는 이화인이 되길 응원합니다. *이화투데이 리포터 김정은(커뮤니케이션 미디어 16), 배선우(영어영문학과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