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아이만 둘 있는 나는 가족간 대화에서 소외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는데
특히 화제가 '축구'일 때는 더욱 그렇다.
내가 아는 축구에 관한것 이라고는....
나 어릴적에 백 넘버 11번을 달고 뛰던 차범근 선수, 잘생긴 허정무 선수, 축구황제 펠레아저씨
대를 이어 훌럭거리는 차두리 선수, 또 축구보다는 잘 생긴 얼굴에 속옷광고 사진이 더 기억에 남는
베컴 선수, 지네딘 지단.....이 고작이다.
솔직히 말하면 난 축구에 관심도 없었고 따라서 무지했다. 엄청나게..
도대체 다 큰 남자들이 공 하나를 가지고 이리 저리 힘들게 뛰어 다니며 결국엔 그 그물로 쳐진
네모칸에 넣어 이기려고 기를 쓰는게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후 프랑스가 월드컵 챔피언이었던 1998년엔 프랑스에서 살면서 그 나라 사람들의 축구에 대한 열광을
보았고 2002년엔 우리나라가 4강에 진출하는 기적에 TV를 보며 흥분, 4년 후 2006년엔 살고 있는 독일에서
월드컵이 개최되면서 축구에 거의 광적인 독일사람들을 보며 축구에 대한 나의 생각은 차츰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했던 단순한 '공차기'가 결코 아니라는 것...
체력과 기술은 기본이고 거기에 지능적인 전략과 전술, 동료에 대한 철저한 존중과 배려를 요구하는 팀웍...
우정, 의리, 성공과 실패....거기엔 인생의 희노애락이 다 들어 있었다.
여기선 대체로 딸들은 발레학교에 보내고 남자아이들은 열이면 일곱, 여덟은 축구클럽에 가입한다.
다른집 애들처럼 축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질을 보이지 않았던 큰아들은 초등학교 내내 축구엔 관심을 안보이더니
언제부터인가 열렬한 축구광팬이 되어가고 있다. 몸집이 작아 사나운 태클이나 몸싸움이 무서워 실제로 뛰지는
못하니 이론에서라도 최고가 되려는 모양으로 관심이 대단하다.
원래 학교에서 돌아오면 숙제부터 해야 직성이 풀리던 아이가 요즘은 오자마자 밥 먹을 생각도 안하고 축구신문부터 붙든다.
일주일에 두번 나오는 신문을 사려고 일주일에
받는 용돈을 다 써 버리고도 모자라니 아예
정기구독을 신청했는데 어린이 신문이 아니라 정기구독 할인가격도 대학생 부터 밖에 없다고 남편이 투덜댔다. 글자도 빽빽하고 꽤 읽을거리가 많은 신문인데 아들은 한 글자도 안 빼고 정독을 하는것 같다.
보통 방과 후 집에서의 점심식사 시간에도
두아들의 축구얘기는계속된다.
나는, 오늘 학교는 어땠는지, 무슨 특별한 일은 없었는지 친구들 하고는 어떻게 지냈는지....
뭐 이런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속도 모르는 두 아들은 계속 축구 얘기에만 열을 올린다.
"제1 분데스리가....수비....점수가 ......공격수인데....부상당해...마뉴엘 노이어가...레버쿠젠이...제2 분데스리가팀이.....
골키퍼....대기선수....손이 (응? 함부르크에 손흥민, 나도 이 정도는 안다 이제)...킥커신문에....다음시합은........................"
끝없이 펼쳐지는 두 아들의 대화는 나에겐 또 하나의 외국어다. -.,-
두 아들의 대화에 간절히 끼어 들고 싶은 내가 한마디 묻는다.
나:나이가 제일 많은 분데스리가 선수는 누구야?
큰아들: 안드레 렌츠, 볼프스부르그의 세번째 골
키퍼. 38살 (자동으로 나온다. 축구에 관
해선 위키페디아가 필요없다)
나는 한 번 끼어들기에 성공한 대화를 놓칠세라
또 열심히 묻는다. 제일 젊은 선수는?
율리안 드락슬러, 솰케04팀, 가운데 공격수, 18살.
음.....그럼 돈을 제일 많이 버는 선수는?
아들, 생각할 것도 없이 곧장 대답이 나온다.
아이언 로벤, 바이에른 뮌센, 연봉 14500,000유로
지난 시즌 액수라 지금은 바뀌었을 수도 있어. (도대체 천사백오십만유로는 얼마다냐?...)
얼마전에 남자2님이 큰아들에게 존경하는 인물을 물어 봤다길래 나도 방학을 맞아 빈둥거리는 두 아이에게
물어 보았다. 과연........누구를.........얘기할 것인가 내심 기대하면서...
예상외로 두 아들의 대답은 간결 명료했다.
큰아들 : 르네 아들러, 미하엘 발락, 시몬 롤프스. 다 들 좋아하는 바이어 레버쿠젠의 선수들.
작은아들 : (사실 지 형이 이토록 축구에 몰두하지 않았으면 다른 인물일 수 도 있었을텐데..)
마뉴엘 노이어, 익카 카시아스, 프랑크 리베리. 역시 축구 선수들......
흐흐...뭘 더 바래?........무슨 대답을 기대 했었는데......
그런데 그 다음 이어진 두 아들의 대화는 뜻밖의 놀라운 축구의 비하인드 스토리...
큰아들 : (동생에게)너 축구선수들 마누라들이 다 예쁜거 알아?
작은아들 : 그래?
나 : (드디어 내 수준에 맞는 주제가 나왔으니 기쁨에) 정말?
큰아들 : 결혼 안 한 선수들 여자친구들도 다 예뻐.
나 : 어떻게 알아? 신문에 그런것도 나와?
큰아들 : 아니, TV에서 봤지. (분데스리가 전 시즌을 볼 수 있는 유료유선 TV를 아들을 위해 설치했음)
나 : (신나서)누구 마누라가 그렇게 예쁜데?
큰아들 :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는 익카 카시아스 마누라도 예쁘고 미하엘 발락 여자친구도 예쁘고...
근데 엄마, 그 선수들은 자기들도 다 잘 생겼어.
나 : 그래? 발락은 핸썸한거 엄마도 알쥐~
큰아들 : 그런데 엄청 못 생긴 프랑크 리베리 마누라도 되게 예쁘게 생겼어.
나 : 오~? (얼굴에 흉터 자국에다 ㅋㅋ... 리베리선수가 들으면 기분 나쁘겠구낭..)
근데 왜 유명한 축구선수들 부인들은 다 예쁠까? 이상하네....
큰아들 : 엄마는 몰라 왜 그런지?
나 : 아니~ 몰라.
큰아들 : 걔네들이 돈이 많으니까 그렇지~!.
나 : 응?.................으응.....................아....................그런거구나................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그런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니?
큰아들 : 아빠가 한 번 그랬어. 내가 생각해도 그럴것 같고...
그러면 그렇지.....이런...이런... 애비라는 사람이 애들한테....
갑자기 내 눈꼬리는 남편을 향해 치켜 떠졌다...
개구장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야들아~
첫댓글 이런.. 이런... 91년 포르투칼 FIFA 세계청소년 남북 단일팀 주장, 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출전,
프로성남일화 선수생활에 경주대 감독을 역임하시고 현재 후예양성에 힘 쓰고 계시는
우리의 '축구돌이'님을 빼고는 축구에 대해 안다고 할 수 없겠죠? *^.^*
봉투님 지리산학교에 글 쓴거 모아서 책내세요.. 글이 넘 좋아요.^^ 글고 재미없는 아들놈들한테 왕따당하지 마시고
예쁜 공주님 하나 더 만들어 보시죠,,
우리도 심각하게 고민했는데 딸이라는 보장이 없어서리...^^
아이구~ 책이라니요..쑥스럽네요.. 왕따!! 딱 그 표현이 맞습니다. 정말 따 당하는기분...-.,-::
내 12년만 더 젊고 100%딸이라는 보장만 있으면...어찌 함 해 보겠으....ㅋㅋ
유럽쪽 나라들은 좀 과장해서 말하기를 TV프로그램이 하루 죙일 축구하고 뉴스밖에 안나온다고 이야기를 하던데..봉투님 가족 이야기에서 한번 더인을 하네요..그런데 그 사람들이 축구에 이토록 열광하는 배경이 뭘까 궁금해지네요..글 잘봤습니다.
저도 참 신기했어요.. 축구를 스포츠 이상의 어떤 생활의 당연한 일부분처럼 생각하는데 대해서...
분데스리가에 마인츠팀도 있는데 왜 레버쿠젠을 좋아한데요?
그러게말이예요. 마인츠에서 태어나고 평생(?)을 마인츠에서 산 토박이가...
물어 봤더니 그냥 좋아졌다네요 선수들도, 경기하는 팀성격도 유니폼도.. 다~ 마음에 든대요.
마인츠하고 레버쿠젠이 경기하는 날은 친구들 앞에 가서 티내지 말라고 조심시켜요
진짜 왕따당할테니까..ㅋㅋ
예전 둘째놈 중학교 때 축구로 전업한다고 난리치는 통에 ...고생 좀 했조..
세상에 쉬운일이 없어요... 전업하면 뒷바라지도 꽤 일이던데요..
축구공 하나면 골목대장하던! 그 때!
하지만 지금은 공차는 아이를 참 찾아보기 힘들어 안타까워요.
공부.. 공부...학원...또 공부...아이들이 가여워요....
축구에 대해 저 보다 더 많이 아시네요;;
우리집 큰애 데리고 딱 하루만 지내시면 남자2님은 축구에 관한 논문하나 쓰실 수 있습니다...ㅎㅎ
투님도 펠레아저씨...수준??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