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바빠서 자주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
방학때 보자하고 기다리고 기다려서 오랫만에 만나는 날입니다.
찻집에 앉아 시간을 보내지 말고 숲길을 걷기로 합니다.
서대문구에 있는 낮은산 안산,
가까우면서도 숲이 울창하고 풍광이 빼어나기로 소문난 곳입니다.
독립문역 5번출구에서 만나서 나가니 서대문형무소가 나오고
한성과학고를 바라보고 언덕길을 돌아 올라가서 숲으로 들어섭니다.
입구에서 약도를 보고 코스와 시간을 정해서 출발합니다.
숲에 올라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와~ 아래로 서울시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앞에 인왕산이 있고 그뒤로 희미하게 북한산, 오른쪽으로 청와대..
눈이 시원하고 가슴이 탁 트입니다.
서울시내 가까운 곳에 이런 멋진 숲길이 있다니!
나무데크를 따라 들어가면 숲으로 숲으로 안내를 해 줍니다.
앙상한 겨울나무들이 곧게 서 있고
데크옆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않은 곳 사이사이로 파릇파릇 잎들이 보입니다.
겨울속에서 봄이 준비하고 있는 게지요.
걷기 편한길이어서 좀 더 긴 코스로 돌기로 하고 다시 방향을 바꾸어서 능안정까지 갑니다.
정자에 들어서 잠시 쉬고 귤도 먹고 나오는데
어떤분이 따뜻한 물이 있으면 좀 달라고 해서 드리고 같이 걸어갑니다.
3년째 어머니와 함께 80넘은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고 있다는 분,
2주동안 꼬박 아버지곁에서 간호하다 머리가 터질것 같아서 바람쏘이러 나오니 살 것 같다고.
55세인데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사는데 어머니와 갈등이 심해 말도 않고 산다고..
독립을 하시라고, 결혼과 관계없이 나이들면 독립하는게 정상이라고, 그러면 어머니와도 관계가 좋아진다고..
조언을 해 줍니다.
만남과 헤어짐의 균형, 반가움과 아쉬움의 조화
모든 관계는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아름다운 거리'
잣나무숲길을 지나고 메타쉐콰이어 길을 지나니, 숲속무대.. 야외 음악회나 파티를 하면 좋을 넓은 곳이 나옵니다.
두꺼비들살이 아이들 생각이 납니다.
따뜻한 봄날에 도시락싸와서 먹고 뛰어놀면 엄청 좋아할 것같은..
숲에서 나오니 바로 '자연사박물관'이 있습니다.
궁금해서 들어가보니 방학이라 아이들과 부모들로 북새통, 머리가 아파 얼른 나옵니다.
연희동으로 내려가서 음식을 아주 잘한다는 유명한 중국집을 찾아갑니다.
오후2시, 음식을 시켜놓고 밖을 보니 눈이 오네요.. 와~
얼른 밥먹고 다시 눈맞으며 걸어야지..
유명세답게 짜장면과 짬뽕 군만두가 모두 맛있습니다.
눈은 사라지고 이골목 저골목을 구경하며 걸어다닙니다.
연대후문으로 가는 길가에 아지자기 예쁜공방이 있어서 이름을 보니 앗 '초방'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전문책방.. 이후 전국적으로 어린이책방이 생겨난 계기가 된 곳
15년전부터 말만 듣고 한번 와 보고 싶었던 곳..
반가운 마음에 안으로 들어갑니다.
책 사이사이로 인형, 소품, 조각보들이 진열되어 있고 책공부하는 분들이 모임을 하고 있어서
한번 둘러보고 조용히 나옵니다.
까페에 들어가서 따뜻한 올리브빵과 커피를 마십니다.
못다한 이야기도 실컷 하고, 같이 여행가자 계획도 세우고
부드러운 빵과 구수한 커피를 마시며 친구가 참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래 이게 행복이지..
저녁밥을 하러 가야 하는 친구와
저녁모임 하러 가야 하는 여울각시가 헤어집니다.
저녁7시 사당역
숲교육을 하는 어린이집, 숲유치원을 꿈꾸는 원장들이 만났습니다.
공식적이고 거창한 모임보다 따뜻한 사람들과의 소박한 자리를 더 좋아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사람들..
모처럼의 만남에 아이들같이 반가워합니다.
보고 싶은 마음에 멀리서 달려왔네요.
덕소에서, 파주에서, 수원, 영등포 그리고 광명에서
몇달만의 외출인지 모른다는,
늘 보는 사람외에 다른사람과의 교류가 없다는,
집과 어린이집만 왔다갔다 한다는,
열심히 그러나 답답하게 사는 사람들이
사당역의 현란한 불빛과 탁한 밤공기에도 즐거워 합니다.
한달동안 방학을 하는 여울각시를 부러워합니다.
교사가 쉬면서 공부도 여행도 하며 새로워져야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지 않는다고 방학을 좀 더 길게 하라고 하니..
어림도 없답니다.
하루종일 교사의 짜증소리와 아이들의 칭얼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어 숲반을 하고싶다는 분도 마찬가지..
제도권에 묶여있는 사람들이라 엄두를 못 냅니다... 제도의 불편함..
저녁을 먹고 자리를 옮겨 술을 마시고
각자의 지난해 한 일에 대해, 요즘의 추세에 대해, 올해 계획에 대해,
고민도 풀어놓고, 의논도 하고..
얘기를 많이 할 수록 시간도 더욱 빠르게 가는지..
어느새 11:40분, 서둘러 일어납니다.
막차시간을 확인하니 연계되는 버스가 끊겨버려, 멀리 신도림역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돌아 들어 옵니다.
합정동으로 갔던 파주댁은 차가 끊겨 다시 서울역으로 간다고 하고
덕소댁은 잠실에서 시외버스를 타야한다고 하고..
너무 짧은 시간이 아쉬워 다음엔 1박을 하자며 부지런히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집에오니 새벽1: 8분.. 벌써 1박을 하고 말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