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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월 10일부터 2월13일까지
설날연휴이다.
4일간의 연휴기간동안 어디를 갈까? 무엇을 할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린결과
10일에는 정동진으로 13일에는 대구에 가기로 했다.
(대구는
14일에 갔었다. 자세한것은 대구,호미곶 여행기 참조..)
2월 9일이 지나고 2월10일이 되었다.
10일에는 밤차로 정동진에 갈려고 했으나, 갑자기 마음이
바꿔서 정동진 대신 전라남도로
가기로 했다. 전남지역중에서 목포,해남,완도지역을 가기로...
그래서 부지런히 열차표를 예약하고 이런저런 준비를 한
다음 밤 10:20분에 집을 나섰다.
우리집부근 수락산역에서 서울지하철7호선을 타고
노원역에서 서울지하철4호선으로 환승,
서울역에 도착하니 11:30분이다.
전동차에서 내려서 부지런히 서울역사(驛舍)로 들어갔다.
2.
서울역사(驛舍)안에는 수만명의 귀성객,관광객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처음화면으로
갈래)
표사는 곳으로 가서 예약한 철도표를 구입하고, 개표를 받은
다음, 열차 타는곳으로 내려갔다.
이번에 타는 열차는 서울역을 23:40분에 출발하여 목포로
가는 임시무궁화호 제 9429열차
목포역에는 5:17분에 도착하며,
좌석은 2호차 72석이다. 운임은 할인하여 15800원이다.
자세한 열차시간표는 ---> (이곳을
검색)
열차에 탑승하여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내가 앉는 72석은 바로 문옆에 있는 아주 안좋은
자리이다.
문을 열면 찬바람이 나한테 불어온다. (그날 날씨가 좀
추웠다.)
그리고 설연휴인지라 입석승객들이 졀라 많았다.
입석승객중 한 가족이 내뒤에서
진을 치고 앉아 있었다. (입석승객들이 제일 선호하는
부분이 열차의 맨끝자리 뒤쪽 공간)
23:40분이 되자 열차는 슬슬 출발한다.
열차안에 좌석은 완전 만땅으로 찬 상태이며 입석승객도
졀라 많았다.
3. 열차는 한강을 건너 영등포역,수원역에서
엄청난 승객을 태운다.
입석도 그만큼 늘어났다. 나는 잠을 청할려고 했으나 잠이 졀라 안온다.
마침 열차안에는 가족단위로 탄 승객들이 많았는데. 그들이
데리고 온 애들이 여기저기서
떠들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뒤에 진을 치고 앉아있는 애들때문에 나는
완전 자는것을 포기했다.
그런 와중에서 열차는 부지런히 남쪽으로 달려서 어느덧
천안,조치원,서대전에 이른다.
아직도 좌석은 만땅인 상태이며 입석도 전혀 줄지 않았다.
서대전역에 이르니 눈이 조금 쌓여있었다. 마침 그날
대전지역에 눈이 왔었다고..
서대전,논산을 지날쯤해서 내 뒷자리도 조용해졌는데 보니까 자고 있었다.
그것도 양말을 벗고.. 어린 애들 같은 경우 속옷차림으로 자고
있었다. (안추운 모양이지?)
논산,익산을 지나자 겨우 잠이 오기 시작...
잠에서 깨보니 송정리역이다. 송정리역은 광주광역시의 2번째역이다.
이때쯤 입석도 많이 줄었으며 좌석도 점점 썰렁해지기 시작...
송정리역을 지나서 10여분뒤 나주역에 이른다.
나주역은 최근에 영산포역과 나주역이 나주역으로
하나로 통합하면서 나주역사를
나주시청부근에 새로 만들었다.
나주역을 지나 함평역에 정차. 함평역은 舊 학교역이다.
몽탄,일로역을 지나 5:17분에 호남선의 종착역이자 나의
목적지인 목포역에 정시에 도착했다.
4.
목포역에 도착하여 열차에서 내린다.
(처음화면으로 가고 싶으면)
열차에서 내린 승객은 약 100여명정도.. 졀라 많았다.
열차표는 기념품으로
가져오고..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졀라게 한 다음, 역사(驛舍)안을
서성이다가 밖으로 나왔다.
아직 밖은 어둑어둑하다.
역전광장에는 택시운전사들과 식당아줌마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목포시는 호남선의 종점이자 1번,2번국도의
종점이다.
나는 목포에 3번정도 와 봤다.
1번째는 1992년, 2번째는 2000년3월, 3번째는 2002년 2월 10일이다.
목포시의 대표적인 관광지는 유달산이다. 유달산은 목포의
상징으로 그 이름을 날렸다.
유달산이외에 삼학도,신안해저유물관등의 관광지가 있다.
이번에 내가 가는 곳은 유달산이다.
유달산을 한번도 안올라가봤기 때문에 이번에 한번
가볼려고...!!
목포역을 나와서 어둠을 헤치며 시내쪽으로 걸어갔다. (5:40)
시내는 썰렁했다. 아직 날이 어둡기 때문에..
좀 걸어가니 2차선비슷한 도로가 나온다.
목포역안쪽 시내도로는 대부분 이런 구조이다.
목포역에서 1여km정도 걸어가니 오른편에 오랜된듯한 건물이
하나 나온다.
그 뒤로는 유달산이 펼쳐져 있으나 날이 아직 새지 않은
관계로 보이지 않는다.
그 건물은 무엇일까?
그 건물에게로 다가가니 건물입구에 비석(碑石)몇기가 서
있다.
비석의 내용은 모름... (모두
한자로 쓰여 있어서 ㅋ ㅋ ㅋ)
비석뒤에 그 문제의 건물이 서 있다.
5.
그 건물은 목포문화원(木浦文化院)이다.
(처음화면으로)
지금은 문화원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이 건물의 역사는 대개
오래되었다.
이 건물은 조선 광무4년(1900년
* 광무는 조선 제26대왕 고종이 칭제(稱帝)를 하면서 사용한
연호)에 일본 영사관으로 지은 건물이다.
1900년 1월에 짓기 시작해서 12월에 완공하고, 1907년까지 일본
영사관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1914년부터 목포부청사, 1974년부터
목포시립도서관, 1990년부터 목포 문화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해안에서 1㎞ 가량 떨어진 유달산 기슭에 위치하며, 붉은
벽돌을 이용한 2층의 르네상스 양식 건물이다.
건물의
평면은 네모난 형태로 앞면 중앙에 바깥으로 튀어나온
현관이 있고, 내부 바닥은 나무였으나
지금은 인조석으로
바뀌어 있다. 대부분의 천장은 시멘트 위에 페인트 칠을
하였으나, 열람실 천장은
나무로 각종 장식을 하였다. 또한
각 방의 벽난로는 대리석으로 치장하였고, 당시 사용하던
거울 등이
원형 그대로 잘 남아있다.
이 건물은 근세 서양 건축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사적 289호로
지정되있다.
* 사적 289호로 지정된 목포문화원(구 일본영사관)
건물안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 시간에 영업을 할 리가 없지.
그리고 설연휴인데..
건물은 사진에서 보는 거와 같이 붉은벽돌로 만들었다.
건물앞에는 안내판이 서 있다.
6. 목포문화원을 보고 2차선도로로
계속 올라가니 3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유달산이다. (물론 왼쪽으로 가도
유달산은 나온다.)
아직까지 날은 어두웠다. 이른 새벽이지만 유달산으로
산책,조깅하러 가는 목포시민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오른쪽길로 계속 올라가니 멀리 목포항구가 보인다.
바다는 안보이지만 불빛때문에 항구와 바다가 어렴풋이
보인다.
계속 올라가니 유달산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에는 약 10여대의 차량들이 잠을 자고 있었다.
주차장을 기준으로 왼편은 유달산공원, 오른편은
노적봉이다.
유달산은 계단으로 해서 올라가야되고 오른편 노적봉은
주차장 바로 옆에 있었다.
노적봉은 바위로 된 좀 특이하게 생긴 암산(岩山)이다.
(6:00)
나는 먼저 노적봉으로 갔다.
7.
노적봉은 유달산
오른편에 자리잡은 큰바위로 된 봉우리이다.
(처음화면으로)
목포시 대의동 2가 1-120번지에 위치한 노적봉은 해발 60미터의 바위산으로 임진왜란(1592년
쪽발이들이 조선에 와서 난동부린 사건)
때
충무공 이순신(1545~1598)장군의 뛰어난 전술적 설화가 깃든
호국사적지이며 한때 초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되어 더욱 더
유명해진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소수의 군사로 많은 왜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이 봉우리에 이엉을
덮어 군량미로
가장하여 우리의 군사가 엄청나게 많은 것처럼 위장을
하였는데 쪽발이들이
이 봉우리를 보고 "조선군들 졀라 많다. 안되겠다
후퇴하라..!" 하면서 줄행랑을 쳤다고 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 --> 쪽발이들은
졀라 단순,무식하다..)
이후로 이 봉우리를 가리켜
노적봉이라 부른다고 전하며, 영산강에 횟가루를 뿌려
쌀양식이
많은 듯이 보이게 한 것과 진도의 강강술래,
울돌목 의 쇠줄 등도 모두 이런 전술의 일환으로
이 곳은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전술적인 측면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지금부터 노적봉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 노적봉의 기괴한 모습
8. 아직 날은 어두웠다. 그러나
가로등이 환하게 밝혀주고 있어서 이동하는데 지장은
없었다.
주차장을 지나서 노적봉으로 갔다.
노적봉의 모습은 위에 사진과 같다. 노적봉뒤로는
공원이 조성되 있다.
노적봉 주위를 반바퀴쯤 도니 노적봉 관련 안내판이 나온다.
안내판에 쓰인 내용은 위에 언급한 내용과 같다.
이곳도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주요 전승지중 한곳이라 할 수
있을것이다.
노적봉주위를 돌다가 벤치에 앉아서 잠깐 쉰다음.. 노적봉을
완전히 한바퀴 돌았다.
노적봉꼭대기로는 올라갈 수 없게 되어있다.
다시 주차장으로 나와서 유달산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을 올라가니 건물이 1동있는데 그 건물은 입장료
받아묵는 매표소였다.
(그건 내려와서 알게 되었다.)
건물을 지나 유달산으로 올라갔다.
유달산등산로는 잘 포장되있었다. 등산로의 상당수는
계단길,산길이다. 바위길도 있다.
어둠을 헤치며 산을 올라가니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은 충무공
이순신장군 동상이다.
이순신장군 동상은 목포시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9.
유달산은
노령산맥의 제일 끝으머리에 위치한 산이다.
(처음 화면으로)
유달산은 면적140ha, 높이 228.3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노령산맥의 맨 마지막 봉우리이자
다도해로
이어지는 서남단의 땅끝인 산이다. 유달산은 옛부터 영혼이
거쳐가는 곳이라 하여
영달산이라 불리웠으며 도심 속에
우뚝 솟아 목포시와 다도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호남의 개골’ 이라고도 하는 유달산에는 대학루, 달성각,
유선각 등등의 5개의 정자가 자리하고 있으며,
산 아래에는
4.19 기념탑과 충혼탑, 가수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
기념비 등이 있다.
1982년 발족된 추진위원회의 범시민적인
유달산 공원화 사업으로 조각작품 100점이 전시된
조각공원과
난공원 등이 조성되어 볼거리가 많으며 산
주변에 개통된 2.7km의 유달산 일주도로를 타고 달리며
목포시가와 다도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영혼이 심판을 받는다 하여 이름 붙여진 해발 228m의
일등바위(율동바위)와 심판 받은 영혼이 이동한다
하여 이름
지어진 이등바위(이동바위) 로 나뉘어진 유달산은 갖가지
기암괴석과 병풍처럼 솟아오른
기암절벽이 첩첩하며 그
옛날 소식을 전하기 위해 봉수를 올렸던 봉수대와 달성사,
반야사 등의 전통사찰을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임진왜란 때 이엉으로 바위를 덮어 아군의
군량미처럼 가장해 왜군의 전의를 상실케
하였다는 이순신
장군의 설화가 전해오는 노적봉을 비롯하여 유선각, 오포대
등 역사상 의미 있는곳이 많으며, 특히 유달산에는 이곳에서
멸종되면 지구상에서 영원히 소멸되는 왕자귀나무가
서식하고 있다.
* 목포시내와 나란히 있는 유달산의 모습 (왼쪽의 높은 봉우리가 유달산의 정상)
10.
이순신장군동상을 지나서 좀 올라가니 대학루란 누각이
나온다.
이 누각은 물론 최근에 와서 만든 것이다.
대학루에서 목포시내와 바다를 바라보았다. 아직 날은
어둡지만...
보이는 것은 빛과 빛에 비추어 보이는 시가지와 바다뿐이다.
누각안에는 아침 산보나온 아저씨 한명이 앉아있었다.
그런데 대학루옆에는 대포가 하나 설치되있다.
왠 대포가 여기에 설치되 있는것일까? 대포는 목포시내를
향해 설치되있었다.
그 의문의 대포가 설치된 곳은 예전 오포대(午砲臺)라고
불리운 대(臺)였다
11. 오포대는 유달산 입구의 이충무공동상 남쪽, 대학루 옆에
있는 것으로 1909년 4월에 측우소가 있는
동산에 설치되었다.
(처음 화면으로)
처음의 포는 조선식 선입포로 조선 현종 10년(1669)때
제작되었으며 높이 5자, 구경 3치 5푼, 중량 733근으로 1회
발사하는데 화약 30량이 소모되었다. 경기도 광주에서
옮겨와 천기산에서 시험발포를 했는데, 발포때마다 뒤로
밀려가는 구식이었다. 1913년에 가격 160원에 일본식
야포로
대치되었고, 이전의 조선식대포는 송도신사에
보관하던 중 태평양 전쟁을 위해 쪽발이들이
가져가 버렸다.
예전에 이 오포는 포탄 없이 화약만 넣어 포를 쏘아
시민들에게 정오를 알리는 신호로서 기능하였는데
전쟁도구를 생활도구로 이용했다는 점이 특이하며 지금도
목포 토박이들은 이 오포소리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다.
1986년 지방문화재자료 제 138호로 지정되었으며
목포애향협의회는 같은 해에 현충사 박물관에 전시된
천자총통을 복원하였는데, 복원된 오포는 놋쇠 주물로 길이135.5cm,
무게 420kg이다. 현재 오포는 모형으로 전시되고
있으며 당시의 오포대는 유달산공원의 전망대로 사용되고
있어 유달산을 찾는 관광객들과 지방 후손들에게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되고 있다.
* 오포대의 모습 (포대뒤로 목포시내가
보인다.)
12. 오포대의
모습은 위에 사진과 같다.
대포는 목포시내를 향해 설치되있다. 당장이라도 포를
발사할것 같은..
오포대를 보고 계속 위로 올라가니 매점이 나온다.
이른아침이라 아직 영업을 하지 않는다.
매점을 지나니 저쪽 바위에 무슨 비석이 하나 서 있다.
그 비석은 바로 '목포의 눈물'
기념비이다.
목포의 눈물은 일제시대때 이난영이 불렀던 가요이다.
가사의 내용은 이곳 '목포의 눈물'
기념비에 자세히 나와 있다.
'목포의눈물' 기념비를 지나 부지런히 올라가니 제법 험한
길이 나온다.
그렇다고 아주 험한것 까지는 아니고 그냥 가파르고 절벽이
있는 산길이다.
이때쯤 동쪽에서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하는데..
목포시내와 목포앞바다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
가파른 등산로를 계속 올라가니 길이 2갈래로 갈라진다.
그중 왼편은 마당바위로, 오른편은 유달산정상,일등바위로
향한다.
나는 마당바위로 올라가기로 했다.
조금 올라가니 정자가 하나 나온다. 정자의 이름은
유선각인가 그렇다. (자세한 명칭을 안타깝게도
잊어먹음 -.-)
정자를 뒤로 하고 계속 올라가니 마당바위
정상에 이른다.
마당바위는 진짜 마당처럼 넓고 크다. 마침 그 곳에는 3명의
남자들이 해돋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대반동쪽 바다가와 고하도가 보이는군...
마당바위를 뒤로 하고 정자를 지나 아까전 갈림길로 나왔다.
이번에는 일등바위쪽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길이 좀 안좋았다. 아직 어두운지라 길도 잘
안보이고 가로등도 없었다.
그런길을 넘어서 좀 가니 왼편에 일등바위로 오르는
계단길이 나온다.
그 계단길을 계속 올라가니, 정상부근에 넓은 공터가
나온다.
그 공터에는 아저씨 3명이 아침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더니 이상해 하는 눈치이다.
그 공터를 지나 바위정상으로 올라가니 정상에 무슨 표석이
세워져있다.
그 표석의 내용은 ->
'유달산 정상 229 m'
어느덧 유달산정상까지 올라온것이다. (7:00)
13. 유달산정상은 바위로 되있다.
정상에서 동쪽하늘을 바라보니 하늘이 온통 새빨갗다.
이제 해가 나오는구나..
마침 그날 일출시간이 7:30분경이다.
기왕 온거 해돋이를 보고 가기로 했다.
바다에서 해돋이를 본적은 있으나 산에서 해돋이를 본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정상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목포시내와
대반동,고하도,서해바다를 바라봤다.
멀리 대불공단이 보이는군...
유달산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서해바다와 고하도를 비롯한
수십개의 섬이 보인다.
서해바다는 엄청 깨끗하고 푸르게 보였다.
고하도쪽에는 해안선을 따라 설치된 가로등과 그 빛이
보이는군...
바다에는 여객선으로 보이는 배들이 각자의 목적지로 가고
있었다.
그무렵 동쪽하늘에서는.. 저 멀리 큰산뒤에(월출산으로
생각됨)숨어있던 해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7:25)
* 유달산 일등바위의 모습
14.
해가
서서히 그 자태를 선보이기 시작한다.
(처음화면으로)
해의 머리부분부터 나타나기 시작.. 7:30분이 되니 그
중간부분이..
7:35분이 되니 아래부분까지 모두 나왔다.
해돋이를 여러번 봤지만 이렇게 산에서 본 적은 처음이다.
바다에서 보는것 보다는 이렇게 산꼭대기에서 보는것도
진짜 괜찮다.
7:35분이 지나서 해는 완전한 자태를 선보이며 우리들앞에 그
위용을 드러냈다.
오늘도 해는 떴다...
해돋이를 바라본다음 다시 왔던길로 내려가기로 했다.
유달산정상(229m)을 기준으로 서쪽으로는 대반동과 서해바다,고하도등의
섬들이 보인다.
동쪽으로는 목포시내,삼학도와 멀리 월출산등이 보인다.
북쪽으로는 북항과 임자도등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목포항과 남해바다,대불공단 멀리 해남땅이
보인다.
유달산 정상을 뒤로 하고 부지런히 내려갔다.
마당바위입구에 이르니 해는 어느덧 높게 떠 있었다.
유달산주차장으로 계속 내려가니 수백명의 관광객들이
산으로 올라가는군...
'목포의눈물'기념비,오포대를 지나 매표소에 이르렀다.
나는 유달산입장료가 없는 줄 알았는데 보니까 입장료를
징수하는것이 아닌가,..
물론 아침일찍 올라간 사람들은 무료이다. (나도 당연히
무료..)
8시이후부터 올라오는 사람들은 무조건 입장료를 내야된다.
매표소를 지나 계단을 내려와서 노적봉앞 유달산주차장에
이르렀다.
이렇게 해서 약 2시간여동안에
유달산 산행은 이렇게 막을 내리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찾아 다시 목포시내로 걸어갔다.
15.
유달산주차장을 지나서 왔던길을 경유하여 목포문화원(사적289호)앞에
이르렀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목포터미널로 가야하기 때문에...
목포시내버스는 태원여객과 유진운수가 공동으로 운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회사는 같은 회사이다.
10여분정도 기다리니 목포좌석200번(여객터미널-무안읍)이
온다.
그런데 그 넘은 좌석버스이므로 그냥 보냈다.
가까운 거리를 가는데 좌석버스타기는 좀 아깝다.
잠시뒤 목포105번이 온다. 이넘은 일반도시형버스이다.
이번에 탄 버스는 유진운수소속
목포시내버스105번(삼학도-용당) Aero City 540SL이다.
배차간격은 20~40분이다. 운임은 630원...!
목포시내버스
요금은 630원이다.
목포 105번의 자세한 노선정보는 ---> (
105번노선도 )
버스는 목포역,1호광장,2호광장,3호광장을 지나 10여분뒤
목포터미널에 도착하여 내렸다.
목포터미널은 목포시내 외곽에 위치해 있다.
버스에서 내린다음 길을 건너서 목포터미널로
들어갔다. (9:20)
이번에 갈곳은 해남지역.....!!
해남가는 버스시간을 알아보니 9:40분에 있다. 운임은 무려 3600원..
허걱~~
할 수 없이 버스표(3600원)를 구입하고 가게에 들어가서
생수와 과자를 하나 구입하고
버스를 기다렸다.
목포터미널은 시외버스터미널과
고속터미널이 같이 있는 종합터미널이다.
목포터미널에서 운행하는 시외,고속버스정보는 아래를 클릭
--> (시외,고속버스
정보)
16. 9:30분쯤에
버스타는곳으로 나가니 해남가는 버스가 대기하고 있군..
이번에 탄 버스는 금호고속소속
목포->해남행 직행버스이다.
차종은 그랜버드이며 목포->해남을 운행하는 직행버스는
20~30분간격으로 운행한다.
9:40분이 되자 버스는 승객 10여명을 태우고 출발한다.
목포터미널을 나와서 하당신도시를 지나서 어느덧
영산강하구둑에 이른다.
* 영산강하구둑은
영산강하류에 설치한 둑이다.
(처음화면으로)
금강하류에 금강하구둑(서천-장항)과 낙동강하류에
낙동강하구둑(부산하단-녹산)과 비슷한
규모에 거대한 둑이다.
영산강하구둑을 기준으로 동쪽은 영산강, 서쪽은
서해바다이다.
하구둑을 넘으니 이제부터는 전남 영암군 삼호면이다.
대불공단입구,농업박물관,대불공대입구를 지나서 2번국도를
졀라게 달려서 어느덧
독천에 이른다.
독천에서 오른편 길로 들어가서 이리돌고 저리돌고 하니까..
10:20분경에 해남군의 중심인 해남읍내에 진입...
10:25분경 해남터미널에 도착했다.
* 영산강 하구둑의 모습 (하구둑
왼쪽부분이 목포시, 오른쪽은 영암군 삼호면)
17.
해남은 근 10년만에 와본다..
(처음화면으로)
해남은 한반도(섬제외)에 제일 남쪽 끝에 위치해 있으며
주요 관광지는
두륜산,대흥사,윤선도유적,땅끝,우수영기념공원,명량대첩비,미황사등이
있다.
이번에 내가 갈 곳은 남창리이다. 왜 남창리를 가는가?
그것은 계속 읽어내려가면 알 수 있다.
버스에서 내려서 터미널안으로 들어갔다.
해남터미널에서 운행하는 시외,고속버스 노선은 아래를
클릭...!
1. 해남-서울,인천 고속버스 정보를
원하면 -> (
고속버스정보)
2. 해남-광주,완도,땅끝,진도
방면 직행버스 정보를 원하면 -> (시외버스정보)
매표소(자동판매기)로 가서 남창리까지 버스표를 구입.
운임이 무려 2200원...!
버스표를 구입하고 좀 서성이니 완도,진도방면 배차를
담당하는 광우교통소속 배차원아저씨가
"학생 어디 가나?"
그래서 "남창리요"
그러자 아저씨가 "좀만 기달려.. 버스오면 알려줄께"
그래서 기다렸다. 해남에서 완도까지는 무척 가깝다. (약 40 여km)
그러나 버스는 그렇게 많이 안다닌다.
그 배차원아저씨는 나를 볼때마다 "좀만 앉아있어,
버스가 곧 올거야" 하면서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잠시뒤 땅끝가는 직행버스가 들어왔다.
그러자 땅끝방면 담당하는 금호고속소속 배차원아저씨가 나한테 오더니
땅끝 안가냐고 묻는다..
그래서 "남창리 가는데요"라고 하니 그냥
가버렸다는...
11:00가 되자 완도가는 버스가 들어왔다.
그 배차원아저씨가 버스왔다고 얼렁 타라고 말해준다.
그래서 나는 고마움을 표하고 완도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번에 탄 버스는 금호고속 소속
완도행 직행버스이다.
차종은 bh115h..!
버스는 터미널을 나와서 해남읍내로 들어간다.
그런데 읍내4거리에서 약간의 교통정체가 발생.. 4거리를
빠져나오는데 무려 10여분이 걸렸다.
버스는 13번국도를 졀라게 달린다.
화산,현산,북평면사무소를 지나 어느덧 목적지인 남창리에
도착하여 내린다.
18.
남창리는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에 중심마을이다.
(처음으로 가기)
북평면의 면사무소가 있는 제법 큰 마을이다.
버스에서 내린 곳은 남창리의 시외버스정류소이다. 부근에
수퍼와 온갖 가게들,건물,집들이
들어서 있는 남창리의 중심지이다.
내가 여기서 내린 이유는 완도로 가기 위해서이다.
물론 아까전에 탄 버스로 완도에 갈 수 있지만 그넘은 내가
가고자 하는곳에 정차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내린것이다.
이곳 남창리가 완도읍내로 운행하는 완도군내버스의
종점이다.
완도읍을 출발한
완도군내버스(완도교통)는 서부선,동부선으로
분리운행하다가 원동에서
다시 재회.. 완도대교를 건너 이곳 남창리에서 잠깐
쉬었다가 다시 완도로 운행한다.
정류장 가게에서 장좌리까지 버스표를 구입하니 무려
1000원...!!
남창리에서 동부선경유 완도읍으로 운행하는 군내버스는 30분간격
남창리에서 서부선경유 완도읍으로 운행하는 군내버스는
30~1:00간격으로 운행한다.
내가 타야 할 노선은 동부선(장좌리경유)이다.
11:50분이 되자 내가 탈 완도군내버스가 남창리에 들어왔다.
운전사는 승객을 모두 하차시키고 정류소가게에 들어가서
가게주인과 이야기하고 여러가지 궂은일을
도와준다음 다시 버스에 오른다.
그때쯤 서부선경유 완도행 군내버스가 정류소공터로
들어왔다.
나는 동부선경유 버스에 올라 버스표를 내고 탑승..
이번에 탄 버스는 완도교통소속
완도읍행 완도군내버스 Aero city 520SL이다.
12:00가 되자 버스는 남창리를 출발...
마을을 벗어나니 바로 남해바다와 완도대교가 나온다.
19.
남창리를 지나서 완도대교를 건넌다.
(처음 화면으로)
완도대교는 완도군의 관문이다.
원래 완도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던 섬이였으나, 1980년(연도가
틀릴 수 있음)에 연륙교인
완도대교가 개통됨으로써 접근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서울에서 차를 이용하면 6시간이면 갈 수 있다.(운전사의
운전실력에 따라 소요시간은 다를 수 있음)
완도대교는 2개의 다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다리중간에
달도라는 섬이 있다.
'남창리-달도', '달도-원동'까지 2개의 다리가 걸려있다.
완도대교왼쪽다리를 건너니 달도에 이른다.
달도는 섬의 이름이다.
양쪽으로는 푸르고 깨끗한 남해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다.
남해바다에는 어선들과 갈매기들이 유유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달도를 지나니 완도대교의 오른쪽다리가 나온다.
그 다리는 건너니 이제부터는 전라남도
완도군이다.
완도의 관문인 원동을 지나 완도의 동부선(13번국도)을
경유하여 왼쪽으로 남해바다를
옆에끼고 장좌리로 간다.
영풍리,대야리를 지나니 바다에 큰 섬 하나가 보인다.
그 섬이 바로 청해진이 있는 장도이다.
어느덧 청해진이 위치해 있는 장좌리에 도착하여 내렸다.
20. 장좌리는
평범한 어촌(마을)이다. 가구수는 수십가구에 이를
정도로 큰 마을이다.
버스에서 내려서 해안쪽으로 걸어갔다.
해안쪽으로 가는 길은 마을을 가로질러 가는 길 하나이다.
마침 설날연휴인지라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모두
고향으로 내려온 귀성객들...
마을을 가로질러 5분정도 걸으니 어느덧 장좌리바닷가에
이른다.
바닷가에는 동네아저씨들 서너명이 모여서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바닷가에 이르니 바로앞에 푸른색의 남해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다.
바닷물은 졀라 깨끗했다...
멀리 연륙교가 하나 보이는데 그것은 신지도를 이어주는
연륙교인듯 하다. 아직 공사중인것
같다.
바닷가에는 자갈로 된 자갈밭이 펼쳐져 있다. 그러나 그렇게
넓지는 않다.
바다건너에 장도가 보인다. 그러나 갈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동네사람들에게 청해진이 어디에 있냐고
물어봤는데..
그들의 답변은 "이곳이 청해진이다. "
그러자 내가 "청해진 유적은 어디에 있는가?"
동네사람왈 "저 섬에 있다"
내가 " 가는방법은 없는가?"
동네사람왈 "물이 빠져야 갈 수 있다. 지금은 못간다"
내가 "섬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동네사람 "토성과 건물터가 있는데 볼것이 없다. 지금
발굴하는 사람들이 들어가서 발굴작업을
하고 있다"
21.
청해진(淸海鎭) 바로
장좌리앞바다에 떠 있는 장도에 있다.
(처음 화면으로)
동네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바닷물이 빠져야 장도에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바닷물이 찼기 때문에 갈 수 가
없다.
청해진유적은 모두 그 섬에 있다. 장좌리 마을에는 청해진
관련 유적이 하나도 없다.
할 수 없이 바닷가에서 장도를 바라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장도를 바라보니 토성흔적이 보이고 발굴작업을 했던
흔적이 보였다.
바로앞까지 왔는데 바다때문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래서 배를 빌려서 섬으로의 진입을 시도할까 생각도
해봤는데.. 마침 바닷가에는 배가 한척도
없었다.
장도와 남해바다를 한없이 쳐다보고 다시 왔던길로 나왔다.
22.
청해진은 신라 흥덕왕 3년(828) 장보고가
설치한 해군기지이자 무역기지로, 전라남도
완도 앞바다의
작은섬인 장도에 있다. 당시 이곳은 신라와 당,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의 중요한
길목이었다.
여기서 잠깐 청해진과 청해진대사 장보고, 그 당시 신라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야되겠다.
역사와 담을 쌓고 사는 이들은 아래쪽에 있는 건너뛰기를
누르면 바로 다음내용으로
넘어간다. ------->
( 건너뛰기 -.-;; )
지금으로부터 1100여년전인
800년대 그당시는 중원대륙에 당나라(唐),
만주,요동,연해주지역에
넓게 자리잡은 발해(勃海, 원래 국호는 대진국), 그리고
조그마한 한반도 구석에 틀어박힌 신라(新羅),
신라남쪽에 제2의 백제국과 다름없는 일본(日本),
이렇게 4개의 나라가 있었다.
물론 더 있을 수 있지만...
그 당시 신라는 통일신라시대로써 무열왕인 김춘추와
문무왕인 김법민이 이리뛰고 저리뛴 끝에
겨우겨우 당나라세력을 몰아내고 대동강이남의 땅을
확보하여 676년 자칭 통일을 하게 된다.
통일같지도 않은 통일이다.
그러나 신라는 그것에 만족하고 혼자서 들떠있었다.
(문무왕 재위시절에 임해전과 안압지가 완공...)
신문왕,효소왕,성덕왕,경덕왕때까지는 신라는 그런데로 여유가
있었다.
이때 성덕대왕신종,석굴암,불국사,감은사등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신라 36대왕 혜공왕이후부터 나라사정이 안좋아지기
시작한다...
곳곳에서 해적들이 나타나 노략질을 하고 사람들을 노예로
잡아 다른나라에 팔아먹었는데
이때 주로 해적질을 한 나라는 발해,당,신라,일본이다.
그런데 그중에서 해적들의 피해가 제일 큰 나라는
바로 신라였다. 역시 약소국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해적들은 제일 약해빠졌던 신라를 공격하여 많은
신라인들을 노예로 잡아서 각지에 팔아먹었다.
해적들의 이런행위를 보고 크게 분개한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장보고였다.
장보고(?∼846)는 평민 출신으로 당나라에 건너가 장군이
되었으나, 해적들이 신라사람들을
노예로 삼고 팔아먹는 것에
분개하여 고국인 신라로 돌아간다.
신라로 돌아오자 당시 신라왕이던 흥덕왕(재위 826~836년)의 허락을 받고 828년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였다.
장보고는 청해진대사가 되어 청해진을 열심히 키우고
가꾸고, 군사들을 조련하여 어느덧 1만명의
군사를 거느리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동아시아지역의
해적들을 본격적으로 때려잡기 시작..
수많은 해적들이 장보고에게 소탕되고 만다. 그 이후 청해진은
해적들을 때려잡은 그 위세로
국제무역의 중심지로 성장..! 동아시아의
무역을 독점하면서 번영을 누리며 큰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이때 일본의 승려인 엔닌이 장보고의 도움으로 당나라로
유학갔다는 사실이 그것을 입증하며
청해진부근을 지나가는 모든 상선들은 청해진에 들려서
허가를 받고 진귀한 물건과 통행료?비슷한것을
바쳐야 했다.
이후 장보고는 왕위계승과 관련된 권력다툼에 끼어든다.
이때 희강왕의 사촌인 김우징이 장보고에게 와서 자기가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줄것을 요청한다.
장보고는 김우징과 손을 잡고 그 당시 신라왕이던 민애왕을
몰아내고 김우징을 신라왕으로 옹립한다
그때가 839년 4월이다.
민애왕은 왕위에서 밀려나자 곧 자살해버렸다.
김우징이 신라왕(이가 곧
신무왕)이 되자 장보고는 엄청난 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
그러나 839년 7월에 신무왕이 등창으로 갑자기 붕어하고, 그
뒤를 이어 왕이 된 문성왕은 청해진에
호랑이처럼 웅크리고 앉아 크게 세력을 떨치고 있는
장보고가 크게 눈에 거슬렸다.
심심하면 조정에 간섭하고 왕실에도 간섭하고, 그래서
문성왕은 결심한다.
장보고를 없애기로..!!
846년 문성왕의 비밀스런 칙령을 받은 염장은 청해진으로
가서 장보고를 만난다.
장보고와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염장은
장보고가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자 그때 칼을 빼들고 장보고를 무참하게 죽인다, 그리고
그 목을 베어 문성왕한테 바친다.
이 사건으로 청해진내에 있던 장보고의 수하병사들은 크게
동요하고.. 851년(문성왕13년)에
결국
청해진은 문성왕에 의해 강제 폐쇄되고 말았다.
한때 동아시아의 해상권을 장악했던 청해진은 이렇게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 이후 청해진은 그 흔적만 남아서 지금까지 전해온다.
청해진이 있던 장도는 섬 전체에 계단식 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앞바다를
제외한 주변바다는 수심이
얕아 방어용 목책을
박아 외부접근을 막도록 만들었다. 성터 안에는 토기와
기와조각이 발견되고
있고, 장보고가 지었다는 법화사터(法華寺址)가 장좌리
뒷산에 남아있다.
청해진은 신라 후기 장보고가 서남해안의 해적을 소탕하고,
중국의 산동지방과 일본을 연결한 해상
교역로의
본거지로서 중요한 역사적 유적이다.
청해진유적은 사적 308호로
지정되있다.
아쉽게도 청해진이
있던 장도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그냥 바닷가에서
쳐다보는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 청해진 유적이 있는 장도의 전경 (바다 가운데에 있는 섬이 장도이다.)
* 청해진 토성(土城)
* 청해진 장도내에 있는 건물터 유적
23.
청해진유적을 뒤로 하고 장좌리마을 가로질러
버스정류장으로 나왔다. (청해진으로
가기)
여기서 어디로 갈것인가? 기왕 온것 완도읍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장좌리에서 완도읍으로 운행하는 노선은 완도교통이 굴리고
있는 완도군내버스 동부선이 전부이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니 마을주민으로 보이는 3명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10여분정도 기다리니 완도읍으로 가는 버스가 왔다.
이번에 탄 버스는 완도교통소속
완도군내버스 '남창-완도읍'을 운행하는 노선이다.
차종은 BS106이다.
운임 650원을 내고 탑승.. (기본요금이 650원)
버스는 남해바다를 옆에 끼고 완도읍을 향해 졀라게 달린다.
10여분뒤 완도읍내에 진입.. 어느덧 완도터미널에
도착하여 내린다. (13:00)
24.
완도는 처음 와본다.
(처음 화면으로)
완도읍은 전라남도 완도군의 중심지로서
다도해에 관문이다.
완도에 주요 관광지는 청해진유적,정도리구계등,다도해국립공원,보길도,신지도,고금도,
이충무공유적등이 있다.
완도터미널은 완도읍내에 위치해 있으며
완도터미널에서 운행하는 시외,고속버스 노선정보는 아래를
클릭..
--->
(시외,고속버스)
버스에서 내린다음 부근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마침 점심시간인지라..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질
않는가..!!
비빔밥을 먹었는데.. 무려 4000원이나 받는군.,. 허걱~~
점심을 먹고 터미널로 다시 들어왔다. 다시 해남으로 나가기
위해서..
완도에서 해남으로 가는 직행버스는 20~30분간격으로
굴러다닌다.
해남까지 버스요금이 무려 3000원을 넘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학생표를 구입했다. 학생표는
3000원이다.
표를 구입하고 승강장으로 나가니 해남경유 광주행
직행버스가 승객을 태우고 있군..
이번에 타는 버스는 광전교통소속
해남경유 광주행 직행버스이다. 차종은 BH115H..
10여분뒤 버스는 터미널을 출발.. 완도읍내를 뒤로하고
해남으로 달린다.
오른쪽으로 남해바다를 옆에끼고...
청해진유적이 있는 장도를 지나 완도의 관문인 원동에
이른다.
원동을 지나서 완도대교를 건너 다시 해남땅으로 진입...
나는 피곤한지라 잠이 들고.. 꾸벅꾸벅~~
잠에서 깨니 어느덧 해남에 이르렀다.
잠시뒤 해남터미널에 도착하여 내린다.
25. 다시 해남으로
왔다.
완도에서 목포,광주,서울로 나올려면 반드시 해남을 거쳐야
된다.
이번에 내가 갈곳은 우수영지역이다.
우수영지역은 해남군 문내면지역으로 명량해전이 일어났던
울돌목이 있다.
그리고 그에 관련된 관광지가 있다.
우수영으로 갈려면 진도행 직행버스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화원,목포행 군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자세한 시간표는 ->
(시외버스정보)
매표소(자동판매기)에 가서 우수영까지 버스요금을
알아보니 무려 2200원..!
직행버스와 군내버스 요금이 모두 2200원이다. 허걱~
그래서 남리까지 버스표를 구입했다. 남리까지 요금은 1400원이다.
이번에는 직행버스를 안타고 해남군내버스를 타기로 했다.
마침 남리,우수영경유 화원행 군내버스가 승강장에
들어왔다.
나는 그넘을 잡아 탔다. 승객은 10여명정도 탔다.
이번에 탄 버스는 해남교통소속
남리,우수영 경유 화원행 해남군내버스로 차종은 BS106이다.
확인해보니 서울에서 구입한 중고차이다.
10여분뒤 버스는 터미널을 출발..
해남읍내에서 약 20여명의 승객을 태우고 18번국도를 졀라게
달린다.
상등리,송호리를 지나 어느덧 남리에 이르렀다.
남리를 지나 부곡리,옥동리에 이르니 남은 승객들이 모두
내린다.
버스안에 승객은 달랑 나 혼자이다. 아~ 심심하당..^^*
학동리를 지나니 제법 큰 마을이 나온다. 그곳이 바로
우수영(문내면)이다.
어느덧 우수영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면서 운전사한테 내가 가고자 하는곳에 대해
물으니 택시를 타고 가라고
그러는군.. 그 말을 듣고 버스에서 내렸다.
26.
우수영은 전남 해남군 문내면의 중심지이다.
(처음 화면으로)
지명(地名)에서 말해주듯
이곳에는 조선시대때 전라우수영이 있었던 곳이다.
조선정부(1392~1910)에서는 해적들의 난동과 쪽발이들의
침입을 막기위해
전라도와 경상도해안에 해군기지를 설치한다.
이곳 해남군 문내면에는 전라우수영을,
여수에는 전라좌수영을
설치했고
통영에는 경상우수영을,
부산에는 경상좌수영을
설치했다.
지금은 전라우수영의 그 위용은 온데간데 없고 대신 그
이름만 남아서 지금까지 전해온다.
버스에서 내려서 그곳까지 어떻게 갈까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결론은 걸어가기로 했다.
아무리 멀어봤자 2km정도 될것이라 생각을 하고... (그것은
내 최대 큰 실수였다.)
정류장건너에 골목길로 들어갔다.
그길로 쭉가면 바다가 나온다.. 나는 그곳이 마을 바닷가에
있는줄 알고 그길로 가는것이다.
이곳 우수영이란 마을은 면사무소가 있는 동네답게 무척
크고 넓었다.
골목길로 좀 들어가니 문내면사무소와 파출소가 나온다.
그길로 계속 남쪽으로 걸어갔다. 마을은 대개 넓었다.
걸어가면서 마을사람들에게 내가 가고자 하는곳에 대해
물으니 상당수 모르는 표정이였다.
갈켜준다고 해도 모두 어정쩡하게 가르켜 주는지라..
햇갈리기 시작한다.
우수영정류장에서 2km정도 걸어오니 어느덧 포구에
이르렀다.
앞에 드넓은 남해바다가 펼쳐져있고 포구에는 수십척의
배들이 정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은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진도대교도 보이질 않았다. 우수영 근처인것으로
아는데.. 이런 실수를..
그래서 계속 마을사람들에게 물어봤으나 모두 엉뚱한
답변만 한다.
할 수 없이 왔던길로 해서 우수영정류장으로 왔다.
마침 시간이 3:00를 넘었군...
나는 그냥 목포로 가기로 하고 목포까지 버스표를 구입했다.
목포까지 운임은 무려 2600원이다.
목포가는 버스가 언제 오냐고 물어보니 3:50분에 온다고..
아직 40분에 여유가 있다.
그리고 내가 가고자 하는 명량대첩비에 대해 물으니 택시를
타고 좀 가야된다고 그런다.
그 비는 충무사란 사당안에 있다고 그런다.
그런데 버스정류장에 택시들이 몇대 서 있었다.
이곳이 우수영의 중심지인지라 택시들이 대기하고
있는것이다.
그래서 기왕 온거 그 대첩비를 보기로 했다.
그래서 택시 1대를 잡아타고 명량대첩비로 갈것을 지시했다.
택시는 우수영시내를 뒤로하고 진도로 가는 18번국도를
졀라게 달린다.
2km정도 가니 충무사가 나온다. 그러나
택시운전사는 "대첩비는 울돌목에 있다" 하면서
계속 간다.
충무사를 지나 1km정도 가니 그 유명한 진도대교가 보이고
진도대교아래로는 물살이 세기로
유명한 울돌목이 있다. 그리고 진도대교 못미쳐에는 무슨
공원이 있다.
택시는 나를 그곳에서 내려주었다. 택시운임은 3000원...
허걱~~
택시비를 지불하고 그 공원으로 갔다.
그 공원은 입장료를 받고 있군. 입장료가 무려 500원이다.
그래서 군경,청소년요금인 300원을 지불하고 입장권을
구입하여 공원내로 들어간다.
27.
그 공원은 바로 명량대첩 기념공원이다.
(처음 화면으로)
이 공원은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역사깊은 명량해전을 기념하기 위해 울돌목 자락에
조성한 공원이다.
공원내에는 최근에 세운 명량대첩비,명량대첩탑,전망대,전시관,여러가지
조각품등이 있으며 바다(울돌목)가 바로 옆에 있어서 한번쯤 가볼만 한 곳이다.
특히 여기서 울돌목이 한눈에 다
보인다. 울돌목의 물살이 얼마나 센지 직접 확인 할 수가
있다.
그 물살소리가 진짜 우렁차다. 울돌목위에 만든 진도대교의
위용도 감상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명량해전 관련 이야기를 해야겠는데..
역사분야와 담 쌓고 사는 이들은 아래 '건너뛰기'를 클릭하면
바로 다음 내용으로 넘어감..
----->
( 건너 뛰기 -.-;; )
명량해전은 1597년에 일어난 해전이다.
일본을 통일한 풍신수길(도요토미히데요시)은 무사들의
여러가지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1592년 정명가도(征明假道)를 외치며 조선을 공격한다.
이것이 바로 임진왜란이다.
쪽발이군단은 서울을 점령하고(1592,5,2) 계속 북진 평양을
점령하고 함경도로 진출하여
성진,길주,회령,청진,무산,온성까지 북진한다. 그것도
모잘라서 쪽발이들은 두만강을 건너
조용히 자고 있던 여진족을 공격한다.
이 지경에 이르자 조선왕 선조는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하고
명나라왕 신종은 그 요청을 받아들여
1차로 조승훈을 보내 쪽발이를 막게 했다. 그러나 조승훈의
명나라군은 평양에서 쪽발이와 맞짱뜬
결과 크게 패하고.. 조승훈은 명나라로 줄행랑을 친다.
그렇게 되자 명나라는 크게 쪽팔렸는지 제2차로 이여송을
보낸다.
이여송은 그런데로 이름값을 했다. 조선군과 합세하여
평양탈환,서울탈환을 하면서
남으로 밀어부치기 시작..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그런데로
싸움은 마무리가 되는듯 했다.
그러나 쪽발이들은 경상남도해안에 계속 주둔하고
있었는데..
이때 풍신수길은 조선,명나라에 다음과 같은 조건을
요구했다.
1. 3남지역(경상,충청,전라) 일본에게 양도 2. 조선의
왕자 볼모로 보낼것 3. 조공바칠것..
그러나 여기서 오해가 생긴다. 당시 일본에 사신으로 갔던
심유경(이름이 맞나 모르겠음)이 이런
풍신수길의 요구를 있는 그대로 보고하지 않고 엉뚱한 말을
했던것이다
심유경은 명나라왕 신종에게 보고하기를 "풍신수길은
자신을 일본의 왕으로 임명해줄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신종)이 그것을 인정하는 문서를 써서 그놈(풍신수길)에게
보내면 될것입니다."
라고 말한것이다. 그 말을 들은 신종은 즉시 그 내용을 써서
일본에 보냈다.
쪽발이 우두머리인 풍신수길이 그것을 보자 발작?을 하면서
"이노무 새끼들이 누굴 놀리나"하면서
다시 조선을 공격한다. 이것이 바로 1597년에 일어난
정유재란이다.
쪽발이들은 무려 15만의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공격한다.
그러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쪽발이들은 계속 북진을 했으나 직산(충남 천안시)에서 조,명연합군에게
크게 패하고 다시
남쪽으로 도망친다. 한편 남해바다에서는 충무공이순신이
계속해서 쪽발이의 수군을 격파하고
있었다.
이순신을 크게 두려워한 쪽발이들은 엄청난 공작을 꾸미기
시작한다.
당시 조선국왕인 선조는 이들의 공작에 속으면서 이순신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순신이 계속 출병을 안하고 있어서 의심을 한것이다.
결국 미련한 선조와 일부 신하들은 이순신을 파면한다.
대신 원균에게 이순신의 모든 권한을 부여한다. 그러나
원균은 칠천량(경남 거제)에서
쪽발이들에게 보기좋게 패하고 원균자신은 자살한다. 그의
묘는 경기도 평택에 있다.
한편 이순신은 자칫 잘못했으며 사형을 당할뻔 했다. 그러나
정탁이 그를 변호해주어서
다행히 그 위기는 모면했다. 이순신은 권율장군 휘하에서
백의종군을 하면서 모친상을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원균의 패배소식이 전해오자 선조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며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여 남쪽으로 보낸다. 선조의 명을 받고 경상도로
내려온 이순신은 진주에서 그의 부하장수들과
재회하고
(그 유적이 남아 있음 -> 배미지유적)
남해바다가에 있는 장흥 회령포에 오니
남은 전함은 겨우 12척..(어떤 이는 13척이라고 함).. 12척으로
과연 무엇을 할것인가?
그는 좌절하지 않고 남아있는 배를 부지런히 수리했다.
이순신을 따르는 많은 부하장졸들과 백성들이 그를 도왔다.
1597년 가을에 이르자 쪽발이들이 서해를 거쳐 한양으로
공격한다는 첩보가 입수된다.
그래서 그는 이리저리 생각을 한결과 "쪽발이들은
반드시 울돌목으로 올것이다"라고 생각
미리 울돌목으로 와서 쪽발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쪽발이들은 과연 그의 생각되로 울돌목근처에 나타났다.
이순신장군은 쇠사슬 두줄을 안목과 밖목에 건너 매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도록 울돌목에 장치해
두고 장수들을 불러 훈교하기를..
"병법에 이르기를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하였고 또 한사람이 길을 막으면 천사람을
두렵게 할 수 있다 하였으니 이것은 지금의 우리를 이르는
말이다.
공들은 살 생각을 말고 조금도
명령을 어기지 말라"
"나라를
위해 죽기로서 싸워라. 만일 조금이라도 영을 어기는 자는
군법을 시행하리라"하여
임전결의(臨戰決意)를 다졌다.
1597년 9월 16일 새벽. 드디어 어란포(於蘭浦)에
머물고 있던 쪽발이들은 133척의 배를 이끌고
밀물을 타고 명량으로 공격해
왔다. 이순신이 12척의 배로 이를 공격하니 왜선이 이순신의
배를
포위하여 격전이 벌어졌으나 이순신은 적장 마다시를
향해 시위를 당겼다.
이때 기다리고 기다렸던 조수(潮水)가 썰물로
돌아서기 시작하자 쪽발이들은 중심을 잃고
동요하기 시작.. 마침 잡아죽인 왜장 마다시의 목을 장대에
내걸자 쪽발이들은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을 치기 시작. 이때
격파된 왜선은 31척, 물고기밥이 된 쪽발이의 수는 수천명에
이르렀다.
그에 비해 조선군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명량대첩으로 세계 해전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대승리였다.
노량해전을 계기로 쪽발이들은 크게 쫄기 시작.. 1년뒤인
1598년 10월말에 노량해전과 남해전투를
마지막으로 임진,정유란은 끝나게 된다.
명량해첩 기념공원은 이 역사깊은 명량해전을 기념하기
위해 1990년에 조성했으며
1986년에는 이 지역이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28.
입장료 300원을 내고 기념공원안으로 들어갔다.
(명량대첩에
대해서)
공원은 울돌목옆에 위치해 있는데 경관이 아주 좋다.
울돌목과 대첩비,진도대교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공원안으로 들어가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대첩탑이였다.
이 명량대첩탑은 조국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영령들을 기리기 위해 높이 17m, 넓이 19.12m의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우뚝 솟아 충무공을 중심으로 굳게 뭉쳐
싸우는 관병과 의병들의 모습을
군상 조각으로 배치했다.
대첩탑을 보고 옆에 있는 유물전시관으로 갔다.
유물전시관에는 명량해전에서 사용했던 천자총통,지자총통,현자총통,거북선,조총
등의 모형이
전시되 있으며 명량해전을 그린 기록화가 있다.
거북선과 판옥선의 모형같은 경우 선내(船內)에 세세한
부분까지 쉽게 알 수 있도록
그 모형과 안내문이 설치되있다.
전시관의 한 구석으로 가니 명량해전에 대한 그때의 활약상을 담은
슬라이드가 상영하고 있었다.
물론 관람객은 없다. 나는 잠깐 그 슬라이드를 관람했다.
내용은 명량해전에 대한 내용.. 그내용은 앞에 나와
있으므로 생략한다.
전시관을 대충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 대첩비는 없군.. 저 위에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전망대로 올라갔다.
그러나 거기에도 내가 찾고자 하는 대첩비는 없고 대신 대(臺)만
있었다.
나는 전망대위로 올라가서
부근 경관을 바라보았다.
앞에는 기념공원이 있고, 공원앞에는 울돌목이 흐른다.
울돌목에는 진도대교가
걸려있고 다리건너에 진도가 보인다. 그리고 멀리
남해바다의 여러섬들이 보인다.
물살은 엄청 빨랐다. 그 물살 소리가 엄청났다.
전망대에서 잠깐 앉아서 쉬다가 다시 공원으로 내려왔다.
유물관옆을 돌아서 바닷가로 갔다.
바닷가에는 바위와 돌들이 어지럽게 늘어서 있다.
나는 바다가까이 가서
바다물을 만졌다.
오늘도 바다는 유유히 흐른다.. 쩝...
바다를 뒤로 하고 다시 공원으로 들어가서 여러가지
조각품을 관람했다.
이 조각품들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과 관군들의 전투모습을
조각한 상들로 생생한 감동까지 주고 있다.
* 명량대첩 기념공원의 모습 (대첩탑과 유물전시관, 온갖 조각품들이 있다,)
29. 조각품들을
관람하며 밖으로 나오니 매표소 부근에 2개의 안내판이
있다.
그 내용을 보니까 하나는 강강술래에
대한 내용(중요무형문화재 8호)
또 다른 하나는 우수영
부녀농요에 대한 내용이다. (전남무형문화재 20호)
강강술래는 아마 모르는 이가 없을것이다. 강강술래는
강에서 하는 술래잡기가 아니라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왜군에게 우리의 병사가 많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의병술로, 마을
부녀자들을 모아 남자 차림을 하게 하고 옥매산을 돌도록
한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원시시대부터 1년중 가장 달이 밝은 밤에 축제를 벌여
노래하고 춤추던 풍습에서 비롯된
민속놀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강강술래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
(강강술래)
우수영 부녀농요에 대한 정보는 --->
(부녀농요)
안내문을 보고 매표소를 나왔다.
저쪽에 진도대교가
보이는군.. (처음
화면으로)
* 진도대교의 모습 (오른쪽은
진도대교의 야경)
30. 이제 어디로 갈것인가? 기왕
여기까지 온거 진도까지 들어갈까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시간도 없고 (그때 시간 4:20) 서둘러서 목포,광주로
가야하기 때문에 그냥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명량해전기념공원에는
보물로 지정된 대첩비가 없었다.
아마 충무사에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충무사는 어디에 있는가? '우수영-진도대교' 국도변에
있다.
그럼 어떻게 가야되는가? 할 수 없이 걸어가야 된다.
그래서 충무사까지 걸어갔다. 진도대교와 울돌목을
뒤로하고 부지런히 걸어갔다.
왼쪽에 바다, 오른쪽에 논,밭이 펼쳐진 국도를 1여km정도
걸어가니 저쪽에 송림으로 우거진
언덕이 있다. 그 언덕에 그것이 있다. 어느덧 충무사입구에 도착했다.
충무사는 국도변에 위치한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나는 계단을 통해 충무사로 들어간다.
31.
충무사는
이충무공을 모신 사당으로 사당경내에 명량대첩비가
세워져있다. (처음화면으로)
충무사경내에 있는 명량대첩비는 임진왜란(1592∼1598) 당시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의
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이곳은 옛 조선시대의 우수영(右水營)이며, 강
건너 바로 앞이
진도를 바라보는 해남의 남쪽 끝
해안지역이다. 일제시대때 쪽발이들이 경복궁구석에
쳐박아 둔것을
1947년에 다시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
이 석비는
직사각형의 비받침 위에 비몸돌을 꽂고, 그 위로
구름과 용을 장식한 머릿돌을 얹은
형태이다.
비문에는 선조 30년(1597) 이순신장군이 진도 벽파정에
진을 설치하고 우수영과 진도
사이 바다의 빠른
물살을 이용하여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적함대를
무찌른 상황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비문은 1686년에 쓰여졌으나 비가 세워진 것은 2년 뒤인
1688년으로, 전라우도수군절도사
박신주가 건립하였다.
명량대첩비뒤에는 이충무공의
사당인 충무사(忠武祠)가 있다.
명량대첩비는 보물
503호로 지정되있다.
* 보물 503호로 지정된
명량대첩비 (국가의 위난이 있을때 마다 땀을
흘린다고???)
32. 계단을 좀 올라가니 오른편에 비석들이
서 있다.
이 비석들은 전라우수영관련 비석들이다. 비석부근에는
화장실도 있다.
비석을 지나 3문안으로 들어가니 정면에 굳게 닫힌 문이
보인다.
그 문안에는 명량대첩비와 충무사가 있다.
나는 그 문으로 가서 문틈을 통해 대첩비를 관람했다.
대첩비의 모습은 위에 사진을 참조...
대첩비뒤에는 충무사가 있다. 이
사당은 이충무공을 모신 사당..
사당안에 이충무공 영정이 있었는데
얼마전에 도난당했다고 한다.
어느 뭣같은 놈들이 가져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안타까울뿐이다.
이곳에 와보니 대첩비와 충무사를 관리하는 사람이 없다.
그냥 썰렁 그 자체이다.
* 충무사의 수군비
* 충무사의 모습 (바로 앞에 대첩비각이 있다.)
33. 대첩비를
보고 충무사를 나왔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
충무사에서 우수영시내까지는 약 2km.. 언제 걸어가나??
쩝..
비석군을 지나 계단을 내려왔다.
그런다음 우수영까지 부지런히 걸어갔다.
왼편에는 남해바다, 오른편에는 논,밭이 펼쳐진 18번국도를
열심히 걸었다.
이런것이 바로 차 없는 자의 서러움인가??
1km 걸으니 왼쪽에 우수영포구로 들어가는 도로가 나온다.
나는 그 길로 들어갔다.
우수영포구에는 수백척의 배들이 정박되있었다.
포구를 지나 마을로 진입.. 마을중심도로를 경유하여
우수영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충무사에서 여기까지 2km가 넘는 거리를 걸어온것이다.
따지고 보면 울돌목에서 여기까지 약 4km를 걸어왔다. 에구
다리 아프당.. -.-;;
이번에는 어디로 갈것인가? 이미 갈곳은 정해져있다. 바로
목포이다.
버스표는 아까전에 구입했기 때문에..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매표소아저씨한테 버스가 언제 오냐고 물어보니 5:20분에
온다고.. (그때 시간 5:00)
그래서 열심히 버스를 기다렸다.
그사이에 해남,광주,진도가는 직행버스가 여러대 와서
승객을 내려주고,태우고 각자
목적지로 갔다.
5:20분이 되자 버스한대가 정류장으로 들어온다.
그넘이 바로 목포가는 버스이다.
이번에 타는 버스는 해남교통소속
해남- 우수영,화원,영암방조제,대불공단경유 -목포터미널행
해남군내버스로 차종은 BS106 ROYAL CITY이다.
버스표를 내고 자리에 앉았다. 버스안에 승객은 약
10명정도..
34. 버스는 우수영시내를 벗어나서
801번지방도를 졀라게 달린다.
무고리를 지나 해남군의 서북방에 위치한 화원에 이른다.
화원을 지나서 좀 가니 왼편에 남해바다가 보인다. 오늘따라
바다를 졀라게 많이 본다.
왼편에 남해바다를 옆에 끼고 둑을 건넌다. 이둑은 바로 영암방조제이다.
영암방조제는
해남,영암지역의 해안을 육지화하면서 만든 방조제이다.
(처음화면으로)
영암방조제를 반정도 지나자 잠이 서서히 오기시작..
결국 잠이 들고.......
잠에서 깨보니 어느덧 대불공단을 지나 영산강하구둑을
건너고 있었다.
하당신도시부근을 지나서 6:10쯤에 종점인 목포터미널에
도착했다.
35.
목포터미널을
거의 9시간만에 와본다.
(처음화면으로)
9시간전에 여기서 해남행 직행버스를 타고 목포를
떠났는데, 9시간후인 저녁 6시에
다시 목포터미널로 온것이다.
목포터미널에서 운행하는 시외,고속버스정보는.. ---> (시외,고속버스
정보)
이번에는 어디로 가야되는가? 당연히 광주로 가야된다.
그런데 광주까지 직행요금이 5300원이다.. 허걱~
그래서 나주까지 가기로 했다. 나주까지 요금은 3500원이다.
그래도 비싸군..
나주까지 버스표를 구입하고 버스를 기다렸다.
목포에서 광주까지 직통버스는 15~20분간격으로
운행하지만
목포에서 청계,무안,학교,영산포,나주 경유 광주행
직행버스는 30~40분간격으로 운행한다.
나주경유 광주행 직행버스가 6:40분에 있다는군..
6:30분이 되자 내가 탈 버스가 승강장으로 들어왔다.
이번에 타는 버스는 금호고속소속
나주경유 광주행 직행버스이다. BH116
6:40분이 되자 버스는 목포터미널을 출발한다.
출발한지 얼마안되서 잠이 들고.. 꾸벅꾸벅.......
잠에서 깨보니 어느덧 영산포3거리에 이르렀다.
영산포는 나주시이다.
나주시청을 지나 7:30분에 나주터미널에 도착하여 내린다.
36.
나주는 거의 2년만에 와본다.
(처음화면으로)
나주는 태조왕건에서 많이 나왔던 곳으로.. 원래이름은
금성이다.
나주지역에 대표적인 관광지는 반남고분군,칠천리석불입상,다보사,석당간,나대용장군생가,
지석강유원지등이 있다.
나주터미널에서 운행하는 시외버스노선은 ----->
(시외버스정보)
나주터미널에서 운행하는 서울행 고속버스노선은
------> (고속버스정보)
나주에서 어디로 갈것인가? 당연히 광주로 가야된다.
나주터미널에서 광주시내로 운행하는 시내버스 노선는
다음과 같다. (직행버스는 제외)
나주터미널에서 광주시내로 운행하는 노선 |
|||||
노선번호 | 운행등급 | 운행회사 | 노선길이 | 배차 간격 | 주요경유지 |
광주555번 | 도시형 | 광주 9개회사 | 약 35 km | 5~10분 | 나주터미널종점,동신대,노안,용봉,도산동, 송정리역,공항입구,마륵동,상무입구,서구청, 양동시장,금남로,도청,학동,증심사(무등산)기점 |
나주160번 | 도시형(농어촌) | 광신여객 | 42.1 km | 5~10분 | 영산포터미널종점,나주시청,나주터미널, 동신대,노안,용봉,송정리역,공항입구,마륵동, 상무입구,서구청,양동시장,금남로,대인광장, 광주역(광주시청),전남대,문흥지구,문화동, 광주농수산시장기점 |
나주180번 | 도시형(농어촌) | 나주교통 | -- | 10~20분 | 나주시외곽지역출발,영산포터미널,나주시청, 나주터미널,금천,산포,남평읍,효천동,광주대, 백운동,월산동,대인광장,광주역종점 |
나주180-1번 | 도시형(농어촌) | 나주교통 | -- | 10~20분 | 나주시외곽지역출발,영산포터미널,나주시청, 나주터미널,금천,산포,남평읍,효천동,광주대, 백운동,월산동,대인광장,광주역종점 |
나주150번 | 도시형(농어촌) | 나주교통 | -- | 30~40분 | 나주터미널,동신대,노안,양천리,송학동, 삼도동,명화동,옥동,송정리역,공항입구종점 |
나는 무엇을 타고 갈까 고민하다가,
최근에 좌석버스에서 도시형으로 전환된 광주 555번을
타기로 했다.
광주 555번은 무등산의 입구인 증심사종점을
출발하여 나주터미널까지 쳐들어오는 광주노선이다.
광주까지 요금은 기본요금인 600원이다. 중고생은 400원..!
초등생은 250원..!
나는 매표소(자동판매기)에서 중고생표를 1장 구입(400원)하고
승강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창운수소속 광주 555번버스(aero city 540sl)에 탑승했다.
(7:50)
8:00가 되자 버스는 나주터미널을 출발하여. 나주시내를
벗어난다.
동신대,노안을 지나 어느덧 광주광역시에 진입한다.
37.
광주광역시는 4개월여만에 와 본다.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감회가 새롭군. (처음화면으로)
도산동을 지나 송정리역에 이른다. 송정리역은 광주
제2의 역이다.
영광통을 지나 공항입구,서창입구,마륵동,상무입구,호남대,서구청,양동시장,금남로,도청,
조선대병원,학동을 지나서 증심사입구에서
내렸다.
나주터미널에서 여기까지 승차한 승객(도중 승차 포함)은
달랑 10명이다.
증심사입구에 도착하니 9:40분...
이제는 어디로 가는가? 갈 곳은 광주역밖에 없다.
광주역에서 서울로 올라가야하기 때문에...
증심사입구에서 광주역으로 운행하는 노선은 광주1번,광주17번이
있다.
9:50분쯤에 대창운수소속
광주1번시내버스(지원동-첨단단지)를 타고
도청,금남로,현대백화점을 지나 광주역에서 내렸다.
(10:10)
버스에서 내리자 곧바로 광주역사(光州驛舍)로 갔다.
38.
광주역은 광주광역시의 대표역이다.
(처음화면으로)
역사로 들어가서 내가 예약한 23:50분 광주발 서울행
무궁화호 승차권을 구입하고
밖으로 나왔다. 배가 고픈지라.. 아직 저녁두 안먹었구..
부근 식당에 들어가서 김치찌게를 먹구 (무려 5000원씩이나..!
그런데로 먹을만함..)
다시 역사로 왔다. (10:50)
광주역에서 운행하는 철도노선은 ----->
( 광주역 )
열차시간까지 아직도 1:00이나 남았다.. 1:00동안
TV보고, 세수하고, 열차표 감상?하고,
전화놀이하고(이때 전화해준 이에게
감사의 뜻을 표함.. 덕분의 재밌었음), 역내에
비치된
PC를 이용하여 잠깐 인터넷도 하고..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시간이 11:40분이 되었다.
11:40분이 되자 개표를 시작.. 개표를 받구 열차타는 곳으로
나간다. (바로 앞이다.)
이번에
타는 열차는 광주역을 23;50분에 출발하여 서울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제9456열차.
차실은 6호차 55석, 운임은 13300원이다. 영등포역에
도착하는 시간은 다음날 4:26분이다.
열차에 올라서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내옆에는 어떤 아저씨가 앉았는데. 불편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미치면 안되지..)
39. 23:50분이 되자 열차는 서서히
출발하기 시작......
몇분뒤 극락강역이라는 이상한
역에 정차한다. 원래 극락강역은 통일호만 정차하는
조그만역이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무궁화호 몇편이 추가로
극락강역에 정차한다.
극락강역을 지나 20여분뒤 장성역에 도착..
이때쯤 슬슬 잠이 오기 시작하면서.. 단잠에 빠지고 말았다.
잠에서 깨보니 수원역...
그런데 열차안은 졀라 더웠다. 더워서 미치는 줄 알았네...쩝..
군포,안양,시흥역을 지나 4:26분에
영등포역에 정시로 도착했다.
40.
영등포역에
도착하자 열차에서 내려서 영등포역사로 들어갔다.
(처음화면으로)
열차표는 당연히 기념품으로 가져오고...
졀라게 졸린지라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영등포역을
나왔다. (4:35분)
내가 왜 영등포역에 내렸는가?
그 이유는 집에 빨리, 편하게 가기 위해서...
영등포역사를 나와서 부근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아직 날은 어둡다.. (4:40)
여기서 내가 타야 할 노선은 서울시내버스 30,30-2번이다.
그 2노선을 타면 우리집 근처까지 가기때문에..
그 노선들은 광명시종점에서 첫차가 4:30분경에 나온다.
그러니 4:50분정도 되면 영등포역에
도착할것이다.
4:50분이 되자 서울30번이 왔다.
이번에 탄 버스는 삼화상운소속
서울시내버스 30번(월계동-종로-여의도-개봉동-광명시철산1동)이다.
차종은 NGV (Natural gas
vehicle)이다. NGV는 요즘 절찬리에 운행중인
천연가스버스이다.
30번버스는 여의도를 지나 마포대교를 건너 서울강북으로
진입..
마포,공덕동,광화문,종로,신설동,안암동,종암동,월곡동,석관동을
지나 석계역에서 내렸다.
그때시간 5:20분...!
버스에서 내린다음
석계역으로 가서 6호선 봉화산행 첫열차를 타고
태릉입구역에서
7호선 도봉산행 첫차를 타고 집에 들어오니 6:10분..!
그날은 2월 12일, 바로 설날이였다...^^*
집에
와서 무엇을 했을까?
--> 이불피고 잤다...
--> 이로써 전라남도지역에 대장정은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된다........
41. 마무리
이번여행은 전라남도지역을 갔으며..
목포,해남,완도,우수영,나주,광주광역시지역을 둘러보았다.
유달산과 청해진,명량대첩비,명량대첩기념공원,충무사등을
관람했으며
유달산에서 역사적인 설날전날 해돋이를 구경했다.
--- 집으로 가져온것들 ---
1. 서울->목포 무궁화호 승차권
2. 500원짜리 생수통 ^^*
3. 명량해전기념공원 입장권
4. 광주->영등포 무궁화호 승차권
총 소요 경비는 --->
68580 원
이 여행후기는 2002년
2월 28일 새벽 4시에 완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