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장 맛을 찾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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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바뀌어도 사람의 입맛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느끼는 고유의 장 맛. 장 담그기 제철인 음력 정월에 장 맛있기로 소문난 김천 정월 농장을 찾아가 보았다. | |
ⓒmaison에디터/ 정현숙(메종) 포토그래퍼 이종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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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이면 무쇠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피고 콩을 삶는다. 구수한 콩 냄새가 온 집 안에 퍼질 때면 무르게 삶아진 콩을 절구에 넣고 쪄서 네모난 메주를 빚는다. 메주가 알맞게 뜨면 처마 끝에는 볏짚으로 묶은 메주 덩이가 주렁주렁 내걸리고, 음력 정월에서 삼월이 되면 좋은 날을 택해 정성스러운 손길로 된장을 담그던 어머니의 모습. 옛날에는 어느 집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지만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향수 어린 풍경이 되어 버린지 이미 오래다. 이러한 풍경과 더불어 전통의 된장 맛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 그 맛이 그리운 사람들에게 공장에서 규격품으로 만드는 된장은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허전함이 느껴지는 맛을 채워 주는 전통 장 농장인 경상북도 김천의 ‘김천 정월 농장’을 찾았다.
추풍령을 넘어서 전해지는 청량한 바람과 풍부한 일조량으로 예로부터 온갖 종류의 과일과 작물이 풍성했던 고장, 김천. 서울에서 자동차로 3시간 남짓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 그 김천 시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농소면 메주 마을에 이르면 한가로운 풍경의 정월 농장과 만나게 된다. 이곳에 도착해 큰 숨으로 맑은 공기를 몰아쉬고 나니 금세 평온해진다. 사용할 수 없는 옹기를 모아 만든 길을 따라 오르니 즐비한 장독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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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에 홀로되신 어머니와 누이 동생 환순이와/함께 살던 나에게 제일 행복했던 시절/한창 놀기만 좋아했던 열세 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 당신의 성화에 못 이겨 똥장구 지게에 지고/저 언덕 올 때 땀에 젖은 고무신 벗겨질까 발가락 오모리고/두 다리 바들바들 떨면서도 풍년 수확 기다려 인분 뿌려 주던/이 땅/보리 갈고 콩 심어서 오누이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며/희망 잃지 않고 살게 해 준 이 땅/그래도 연약한 여자 몸으로 농삿일 힘들어서 원수 같았던 이 땅/이제 은혜로운 이 땅에 어머님이 땀 흘리며 일하시던 모습 그리워 정월 농장 일구고/수백 개 장독 놓아 장 담그어 어머님이 빚었던 장맛 온 나라에 보급하여/자손만대 어머님의 거룩한 뜻 이어가려 하니/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늙은이 나이에도 어머님 당신이 그리워 한 없이 눈물이 납니다’.
장독대 초입에 있는 옹기에 아로 새겨진 정월 농장 김환옥 사장의 시다. 메주 고을 김천이 고향인 그가 장 집을 하는 게 뭐 그리 특별할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모 일간지의 광고 국장 출신으로 광고 에이전시 사장을 지내는 등 화려한 경력을 지닌, 소위 서울에서 잘나가던 광고인이었다. 서울에서 한창 일을 할 때에도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를 짓고 늦가을이면 메주를 쑤는 시골집을 늘 그리워했다. 그러한 옛것에 대한 그리움은 비단 김 사장만 느끼는 것은 아닐 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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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빚어 만든 집 앞 뜨락에 깔아 놓은 자갈 위에는 1천 개 남짓한 항아리가 줄을 서 있다. 지금은 전수자가 없어 그 맥이 끊어져 버린 재래식 전통 옹기. 하나하나 장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독의 모양이 모두 제각각이다. 또한 지방마다 옹기 주둥이의 크기와 허리 모양도 다르다고 한다. 더운 지방의 것은 햇빛을 충분히 담아내기 위해 주둥이가 넓고 허리의 곡선이 밋밋하지만 추운 지방의 것은 햇빛을 최대한 품고 있기 위해 주둥이가 좁고 허리가 불룩 튀어나와 있다. 정월 농장에서 만드는 된장은 국내에서 가장 일조율이 좋다는 이곳 김천에서 재배하는 순수한 국산 콩만을 고집한다. 장 맛을 좌우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바로 메주콩. 반드시 우리 땅에서 자라난 무공해 콩을 사용해야 비로소 제 맛을 갖춘 된장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정월 농장의 이야기이다. 지하 1백m의 천연 암반수로 콩을 삶고, 그 옛날 어머니들이 했던 전통 재래 방식으로 된장을 만든다.
장의 원료인 메주는 주로 입동 전후에 쑤고, 겨우내 띄운다. 추위가 풀리기 전인 이른 봄에 장을 담그는데 예부터 ‘장 담그기 좋은 날’을 정하여 고사까지 지낼 정도로 중요하게 여겼다. 옛 문헌에 의하면 음력 정월 말일 또는 그믐, 손 없는 날, 병인일, 정묘일, 제길신일, 정일 등이 장 담그기 좋은 날이라 한다. 주로 음력 정월에서 삼짇날 사이에 장을 담그지만 특히 정월에 담그는 ‘정월장’을 최고로 친다. 기온이 낮을 때 담가야 세균 감염이 적어 변질이 되지 않고 온도가 상승하면서 잘 숙성되어 특유의 맛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 담그는 시기도 파리와 같은 병충해가 없는 늦가을에서 초봄까지인 것이다. 이른 봄 소금물에 메주를 띄워 60일 정도 숙성시킨 후 양력 4월 초쯤에 메주를 건져서 장 가르기를 한다. 불린 메주는 으깨어 된장으로 담그고, 메주를 우려낸 간장은 따로 보관해 숙성시킨다. 이렇게 담근 햇된장은 여름내 햇볕에 숙성시켜 가을부터 먹을 수는 있지만 1년 이상 묵어야 더 깊은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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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정월 농장에서는 3년 이상 묵은 된장만을 판매한다고 한다. 메주를 달아맬 때는 볏짚을 엮어서 만든 새끼줄을 사용한다. 메주를 빚은 후 겉말림을 하며 형태를 굳힐 때에도 볏짚을 깔아 주는 게 좋다. 이때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볏짚을 사용하고 되도록이면 볏짚 마디가 많이 노출되도록 묵은 이파리를 털어야 한다. 볏짚 마디 부분에 고초균과 같은 발효에 관여하는 미생물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짚 속에 미생물이 많을수록 된장의 발효를 돕고, 발효 중에 생기는 암모니아의 불쾌한 냄새도 없애 준다.
“김천이 발효의 최적지라고 말하는 것은 장 맛이 좋을 수밖에 없는 지리와 기후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인근에 큰 하천이 없어 연중 건조할 뿐 아니라 푄 바람으로 인해 습하지 않은데다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공장도 없답니다”. 김 사장은 이곳의 지리적 특성이 정월 농장 장 맛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김천 정월 농장은 장 맛도 좋지만 옛 시골 정취와 그리운 옛이야기가 가득 차 있어 가족 나들이 길에 들러도 좋은 곳이다. 손때 묻은 오래된 농기구, 디딜방아, 베틀, 다듬잇돌과 방망이…. ‘그때 그 시절을 기억하십니까.’라고 이름 붙인 야외 전시관에서 지금은 보기 힘든 옛 물건을 보며 향수에 젖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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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햇콩을 구입해 돌과 벌레 먹은 것을 골라내고 깨끗이 씻어 콩의 3배 정도 물을 붓고 불린다(여름에는 8시간, 겨울에는 20시간 정도). 불린 콩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다시 한 번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다. 솥에 불린 콩과 물을 넣고 푹 삶는다. 2 삶은 콩의 물기를 빼고 뜨거울 때 절구나 분쇄기를 이용해 곱게 찧는다. 3 네모 모양이나 둥근 원추 모양의 메주 틀에 베 보자기를 깔고 찧어 놓은 메주를 눌러 담는다. 4 메주 형태가 단단하게 만들어지도록 베 보자기를 감싼 메주 틀 위를 꼭꼭 밟는다. 도구를 사용해 누를 경우에는 옛 여인들의 평균 몸무게였던 40~50kg의 무게로 누르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5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볏짚을 깔고 그 위에 틀에서 빼낸 메주 덩이를 얹어 열흘 정도 꾸덕꾸덕하게 말린다. 6 겉면이 마르면 볏짚으로 묶어 25~28℃의 따뜻한 온돌방이나 보일러실에 매단다. 띄우는 기간은 30~45일 정도면 적당하다. 7 장 담그기 2^3일 전에 메주를 물에 깨끗이 씻고 다시 한 번 햇볕에 말려 유해 미생물을 제거한다. 노랑 곰팡이나 흰 곰팡이가 피는 것은 좋은 것이므로 일부러 닦아 내지 않아도 된다. 8 볏짚을 태워 옹기 안을 소독한다. 9 옹기의 9부 정도 선까지 메주를 채운다. 10 간수를 뺀 천일염을 물에 풀어 4~5일 전에 만들어 둔 소금물을 메주를 채운 옹기에 붓는다(4~5일은 소금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소금물의 농도는 기온과 습도에 따라 영향을 받기 때문에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다. 소금물에 달걀을 넣어 5백 원짜리 동전 크기로 수면 위에 떠오르면 알맞은 염도라고도 말하지만 정월 농장에서는 염도계를 이용해 항상 정확한 농도의 소금물로 장을 담근다. 11 숯을 달군 후 깨끗이 닦은 대추, 붉은 고추와 함께 옹기에 넣는다. 12 삼베나 모시를 씌운 옹기를 햇볕을 쪼여 가며 숙성, 발효시킨 후 60일 정도가 지나면 메주와 발효된 소금물을 분리하는 장 가르기 작업을 한다. 메주에서 발효된 물을 따로 옹기에 옮겨 숙성시키면 간장이 되고, 간장을 떠내고 남은 메주 덩이를 부수어 고루 섞어 발효시키면 된장이 된다. 이렇게 3년간 숙성시켜 먹기에 좋은 된장은 양조 된장보다 붉고 거무스름한 색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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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장을 판매하는 곳 김천 정월 농장 예로부터 발효의 최적지로 유명해, 국가에서 메주 고을로 지정한 김천의 정월 농장. 된장(1kg) 1만 2천 원, 간장(0.9ℓ 1만 원, 고추장(1kg) 1만 8천 원, 청국장(1kg) 1만 1천 원, 문의 054-432-3215~6. www.jungwol.co.kr 서일 농원 경기도에 위치한 전통 장 집. ‘된장 박사’로 통하는 서분례 원장의 손맛을 느낄 수 있다. 장류 외에도 매실식초, 장아찌류 등 다양한 밑반찬도 판매한다. 된장(1kg) 2만 5천 원, 고추장(1kg) 4만 원. 문의 031-673-3171. www.seoilfarm.com 두래원 경남 산청 토박이인 김승주, 한상순 부부와 금수암의 대안 스님이 된장과 밑반찬 등 건강 식품을 만드는 곳. 된장(1kg) 1만 원, 약초 된장(1kg) 1만 2천 원. 문의 055-972-9060. www.duraewon.com 수진원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에 자리한 수진원. 스스로를 ‘머슴’이라 말하는 정두화 옹이 직접 농사지은 콩으로 장을 담그는 곳. 된장(9백g) 1만 2천 원, 초콩(5백g) 2만 원, 현미식초(5백ml) 1만 5천 원. 문의 031-773-3747. www.suzinwon.com 보성 성원 식품 보성 녹차를 넣은 녹차 된장으로 신지식인이 된 안효원 씨가 장을 만드는 곳. 녹차된장(1kg) 1만 5천 원, 녹차간장(0.9ℓ×3) 2만 6천 원, 녹차잎 고추장 장아찌(5백g) 2만 원. 문의 061-853-3529. www.swfood.net 옹고집 장집 호박 보리 된장으로 유명한 전북 군산에 있는 곳. 호박보리된장(3kg) 3만 원, 찹쌀고추장(3kg) 4만 5천 원, 민물 참게장(2kg) 7만 원. 문의 080-063-8877. www.ongojib.co.kr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