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 초림 재림
오늘 우리는 초림과 재림이라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축을 80분 특강으로 깊이 나누려 합니다.
호헌신학.대학원
강의교수 : 임명락 목사
🍞1부 (40분): 초림(初臨)의 성경적·신학적·영적 의미와 속죄론 심화
📚2부 (40분): 재림(再臨)의 의미와 초림-재림의 통합적 이해 및 목회적 적용
이 두 오심은 단일한 구속 역사(redemptive history)의 양면입니다. 초림은 이미 이루어진 구원의 사건이며, 재림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구원의 완성입니다. 성경은 이 둘을 결코 분리하지 않습니다.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의 긴장 속에서 우리의 신앙과 목회가 형성됩니다.
🍞1부: 초림(初臨)의 성경적·신학적·영적 의미와 속죄론 심화 (약 40분)
서론
초림은 구약의 메시아 예언이 신약에서 성취된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사건(요 1:14)은 구속 역사의 개시이자 절정입니다. 오늘 1부에서는 초림의 성경적 근거, 신학적 의미, 특히 **속죄(Atonement)**의 심화 설명, 그리고 영적·목회적 적용을 다루겠습니다.
▶1. 성경적 근거
구약 예언: 이사야 7:14(“임마누엘”), 9:6-7(“평강의 왕”), 미가 5:2(“베들레헴에서 나실 자”), 다니엘 7:13-14(“인자”).
신약 성취: 마태 26:64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인용하심. 빌립보서 2:6-8의 케노시스(kenosis) — 하나님의 아들이 종의 형체를 입으심.
초림의 절정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요한복음 19:30 “다 이루었다”는 선언은 구약 제사 제도, 언약, 예언의 완성입니다.
특히 속죄의 성경적 근거:
구약 그림자 — 레위기 16장 대속죄일(Yom Kippur): 대제사장이 피를 뿌려 죄를 “덮음”(kaphar)과 “제거”(azazel). 이사야 53장: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 여호와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5-6).
신약 성취 — 요한 1:29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로마서 3:25(속죄물, hilasterion), 히브리서 9-10장(완전한 대제사장으로 단번에 영원한 속죄), 고린도후서 5:21(대리적 죄 짊어짐과 의 전가), 마가 10:45(대속물, lutron).
이로써 우리는 이미 의롭다 함을 받았고(롬 5:1), 화목을 얻었습니다(롬 5:10-11).
▶2. 신학적 의미와 속죄론 심화
초림은 하나님의 **자기-계시(self-revelation)**와 구속의 개시입니다.
성육신 신학: 칼빈은 《기독교강요》 2.12-14에서 “하나님이 사람이 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없었다”고 강조합니다. 성육신 없이 속죄는 불가능합니다(빌 2:6-8).
속죄론의 다층적 의미 (다각도로 균형 있게 이해):
승리자 그리스도(Christus Victor): 초기 교부들(이레네우스, 아타나시우스)이 강조. 십자가에서 사탄·죄·사망의 권세를 정복(골 2:15, 히 2:14-15). 초림의 전투적 측면.
만족설(Satisfaction Theory): 안셀무 — 하나님의 명예를 인간의 죄가 훼손했으므로, 하나님-인간이신 그리스도가 순종과 죽음으로 만족시킴. 칼빈도 이 전통을 계승.
대리 형벌 속죄(Penal Substitutionary Atonement, PSA): 종교개혁자들(루터, 칼빈)이 강조. 하나님의 공의(진노·저주)가 요구되므로 무죄하신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 형벌을 받으심(갈 3:13). 로마서 3:25-26에서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자비로우심이 동시에 드러남. J.I. Packer는 《What Did the Cross Achieve?》에서 PSA를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해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감당하셨다”고 논증하며, 이는 사랑과 공의의 조화라고 강조합니다. 칼빈 《기독교강요》 2.16-17에서도 강하게 피력.
도덕적 영향설(Moral Influence): 아벨라르드 — 십자가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죄인의 마음을 변화. 보완적 의미 있으나 객관적 효력을 약화시킬 위험.
기타: 재현설(Recapitulation, 이레네우스) — 예수님이 아담의 실패를 재현하며 승리.
개혁주의 관점에서의 균형: PSA는 성경의 핵심(죄의 형벌, 대리, 의 전가)을 잘 포착하지만, Christus Victor나 만족설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속죄는 **다층적(multi-faceted)**입니다. 삼위일체적 속죄: 성부의 계획, 성자의 순종, 성령의 능력(요 3:16, 요 10:18). 공의와 사랑의 조화(롬 5:8, 롬 3:26). 대리·연합·전가: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분의 죽음에 참여(롬 6:3-6, double imputation).
비판점 숙지: 일부는 PSA가 삼위일체 분열을 초래한다고 하나, 성경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고후 5:19)라고 명확히 합니다. 정의는 보복적(retributive)이면서 동시에 구속적(redemptive)입니다(사 53:10).
초림 속죄는 “이미 실현된 구원의 기초”이며, 재림에서 완성됩니다(롬 8:23).
▶3. 영적 의미와 목회 적용
초림은 우리에게 겸손과 성육신의 삶을 요구합니다. “너희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빌 2:5) — 권력·성공이 아니라 십자가의 종의 형체를 선택.
목회자: 설교가 아닌 삶으로 복음을 전하십시오. 신학생: 학문의 탑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임마누엘 신학을 몸으로 살아내십시오.
속죄 적용: 죄책감에 시달리는 성도에게 PSA의 확신을, 절망하는 성도에게 Christus Victor의 승리를 제시. 매일 십자가를 묵상하며 “내 죄를 대신 지신 주님”을 기억(갈 2:20).
설교 팁: 크리스마스 설교에서도 십자가를 연결하고, 부활절 설교에서도 성육신을 언급하십시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만나는 곳”으로 선포.
(1부 마무리: Q&A 또는 전환)
초림은 하나님 나라의 “침투(inbreaking)”입니다. 이제 재림으로 나아가 이 긴장을 통합적으로 이해해 보겠습니다.
📚2부: 재림(再臨)의 의미와 초림-재림의 통합적 이해 및 목회적 적용 (약 40분)
서론
재림은 구속 역사의 **완성(consummation)**입니다. 초림 없이 재림은 의미 없고, 재림 없이 초림은 미완으로 남습니다. George Eldon Ladd는 “이미와 아직”의 긴장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 안에서 이미 동적으로 역사하지만, 아직 완전한 도래를 기다린다고 합니다(《The Presence of the Future》). N.T. Wright는 부활을 새 창조의 서광으로 보아, 재림이 온 우주의 희망이라고 제시합니다(《Surprised by Hope》).
▶1. 성경적 근거
구약: 다니엘 7:13-14, 스가랴 14:4-5, 말라기 4:1-2.
신약: 마태 24:30-31, 25:31-46(심판의 왕), 데살로니가전서 4:16-17(강림과 휴거), 계시록 19:11-16(백마 탄 자), 21-22장(새 하늘과 새 땅).
예수님: 마태 24:44 “준비하고 있으라”. 사도들: “주께서 오시리라”는 소망(벧후 3:10-13).
▶2. 신학적 의미
재림은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실현”되는 순간입니다. 종말론(Eschatology): 이미-아직의 긴장 해소.
심판과 구원: 요한 5:22-29 — 예수님은 심판의 주체이시며 구원의 완성자.
부활과 영광: 고린도전서 15:51-54 — 죽을 몸이 불사의 몸으로 변화.
신학적으로 재림은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이며 인간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선물입니다. 바울은 “그 날”을 “소망의 날”이라 불렀습니다(딛 2:13).
▶3. 영적 의미와 목회 적용
재림은 소망, 경계, 선교적 긴장감을 줍니다.
소망: 세상의 고난 속에서도 “주님은 반드시 오신다”(롬 8:18-25). Wright처럼 부활 희망이 현재 선교와 사회적 행동의 동력이 됩니다.
경계: 마태 25:1-13 열 처녀 비유 — “항상 깨어 있으라”. 교회를 “흠 없는 신부”로 준비(엡 5:27).
선교적 열정: 마태 24:14 “온 세상에 증언되리라” — 재림 지연은 복음 전파의 시간(벧후 3:9).
목회 현장: 절망한 성도에게 소망을, 안일한 성도에게 경각심을 심어주십시오.
▶4. 초림과 재림의 통합적 이해 및 실천적 적용
초림 = 하나님 나라의 침투(inbreaking)
재림 =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도래(full realization)
이 긴장을 유지할 때 신학이 건강합니다.
초림만 강조 → 현세주의(이미 실현된 구원으로 안주)
재림만 강조 → 세대주의 위험(현실 도피)
균형: Ladd와 Wright, 오스왈드 챔버스, 박형룡 《기독교신학》, 정준모 《종말론》이 제시하는 “이미-아직 eschatology”.
실천 적용:
설교: 한 설교 안에서 초림과 재림을 함께 다루십시오. 크리스마스에도 재림, 종말 설교에도 초림을 언급.
목회: 교회를 “이미 구원받은 공동체”이자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신부”로 양육.
개인 영성: 매일 “마라나타(주여 오시옵소서)” 기도. 초림의 겸손과 재림의 소망 속에서 살라.
신학 연구: 대학원생 여러분은 이론이 아닌, 목회 현장에서 살아 숨쉬는 신학을 추구하십시오.
결론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초림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셨고, 재림으로 우리는 하나님께로 갑니다.
이 두 오심 사이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는 믿음으로, 소망으로, 사랑으로 행하되, 주님의 초림을 기억하며 재림을 기다리는 자가 되십시오”(고전 13:13, 벧전 1:13).
이 80분 강해가 여러분의 설교, 강의, 영혼 돌봄에 작은 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질문이나 보완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참고 문헌
성경 (개역개정)
칼빈, 《기독교강요》
George Eldon Ladd, 《The Presence of the Future》
N.T. Wright, 《Surprised by Hope》
J.I. Packer, 《What Did the Cross Achieve?》
한국신학: 박형룡 《기독교신학》, 정준모 《종말론》
하나님의 은혜가 목회자와 여러분과 호헌신학.대학원 생 모두에게 항상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