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썹
임병식 rbs1144@daum.net
나이 들어가며 외부로 드러나는 캐릭터 하나쯤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최근에 어떤 것 하나를 착안하게 되었다. 저절로 희어진 눈썹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으면 뒷마무리로 귀 털을 손질하거나 눈썹을 다듬어 주는데 전에는 전혀 이의를 달지 않았었다. 그러다보니 이발을 하고 나면 눈썹의 흰털은 종적을 사라졌다. 일부러 그것을 다듬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엊그제는 이발을 하면서 먼저 정색하며 흰 눈썹은 제거하지 말라 당부를 하였다. 생각해 보니, 그것이 크게 눈에 거슬리지도 않을 뿐 아니라, 속절없이 묵어가는 세월의 흔적인데 굳이 일부러 손을 대기 까지 할 할요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살아온 세월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고 하나의 캐릭터도 될만한 것이 아닌가.
특징적인 흰 눈썹이 유별난 분으로는 서울시장을 지낸 조순선생이 있다. 그리고 문학평론가 임헌영 선생도 있다. 두 분은 내가 보기에 그 흰 눈썹으로 인하여 더 돋보이고 인상이 좋게 보이지 않나 한다.
조선시대로 거슬러 오르면 그런 흰 눈썹이 압권인 사람이 있다. 바로 허목(許穆 1596-1688)선생인데 그래서 호도 미수(眉叟)이다. 선생은 구십 중반을 넘게 사셨는데 그 백설같이 흰 눈썹은 당신의 상징이 되었다.
그렇다면 나도 한번 따라 해 봄직 하지 않는가. 그분들처럼 일색으로 희게 변한 눈썹은 아니더라도 몇 가닥의 흰 눈썹이나마 양편에 간직하여 보존하는 것도 매력적인 일이 아닌가. 세월이 흐르니 해마다 얼굴이 변해가는데 마음은 연암선생이 어느 글에서 언급한 말마따나 어린이와 별반 다르지 않는 마음이다. 좀 치기도 있었다고 할까.
이발을 마치고 돌아와서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전에는 무신경하게 지나치고 말아 몰랐는데 주목하여 보니 그런 데로 볼만한 데가 있다. 우선 품위 있게 늙어간다는 느낌이 들어 좋다. ‘진즉에 눈섭을 다듬지 말고 그대로 기를 걸.’ 생각했다.
관상학에서는 장수의 조건을 몇 가지 든다. 먼저 인중의 윤곽이 분명하고 길 것, 귓속에 이수(耳須)가 나 있을 것, 그리고 눈썹이 흰 백미(白眉)여야 할것 등이다.
그러고 보면 흰눈섭은 얼마나 귀한 것인가. 거기다가 백미는 ‘모든 것 중의 으뜸’이라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으니 특별하지 않는가 한다.
미수 허목 선생의 이야기가 나온 김에 잠깐 언급 하면, 여러 일화가 전해온다. 당신은 백호 임제선생의 외손자로 태어났다. 임제 선생 둘째따님이 바로 미수선생의 어머니가 된다. 당쟁이 심화되고 고착화된 그 시대에 임제 선생은 소수파인 남인으로 활동했다.
그래서 미수선생도 계보를 이어 받았고 나중에는 남인의 영수가 된다. 선생은 서인세력이 강고하게 뿌리를 내린 중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했다. 남인의 구심점으로써 분명하게 서인과 맞서며 그 대척점에 있었다.
선생은 문장과 글씨에 능했으며 특히 삼척부사로 있을 때 세운 ‘척주동해비’는 유명하다. 그것은 잦은 풍랑으로 인해 백성들이 피해를 입자 이를 막기 위해 세운 것이었다.
그런 미수선생을 생각하면 외조부를 위해 지은 행장의 글이 생각난다. 거기에 ‘자유 분망하여 무리에서 초탈한데다 굽혀서 남을 섬기기를 좋아하지 않은 까닭으로 벼슬이 현달하지는 못하였다.’로 썼다. 출중한 인품에 비해 벼슬이 예조정랑에 머문 것을 언급한 것이다.
하기는 평안감사로 부임 중에 개성에 있는 황진이의 묘에 들러 잔을 올린일로 파직을 당할 정도로 행동에 거침이 없었으니 두말 해 무엇 할까.
미수선생은 의서에도 밝아 동시대를 함께 한 우암 송시열선생에게 약을 처방해 주기도 했다. 우암 선생은 병이 깊어지자 아들을 미수선생에게 보내 처방을 받아오게 했다. 미수선생은 평소 우암 선생이 아이 오줌을 먹어온 것을 알고서 부자가 들어가는 것을 처방했다.
그런데 이를 확인한 아들이 부자를 빼버렸다. 그것이 극약인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 바람에 크게 효험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일부러 요독(尿毒)을 빼내기 위해 그리 한 것인데 믿지를 못하고 의심을 한 것이었다. 안타까운 대목이다. 아마, 처방대로 했더라면 병은 나아졌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비록 정파를 달리한 두 사람이 서로 믿고 인품을 신뢰했음은 아름다운 미담이 아닐 수 없다. 미수선생은 장수하여 수를 92세까지 누렸다. 한편 우암 선생은 82세를 살았다. 사약을 받고 죽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그분도 그 정도는 장수했을 것이다. 한양으로 압송 중에도 기력이 쇠했다는 말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흰 눈썹을 손대지 않으려 한 것은 꼭 장수를 염두에 둔 것 때문은 아니다. 남과 다르게 특이한 것이 하나쯤 있다는 것은 얼마나 특별한 것인가. 그것이 나를 대신하는 상징이 될 수도 있으니 남겨두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다시 생각해 보면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얼굴보다는 마음 좋은 것이 낫다는 말처럼 그런 것에 연연하기 보다는 마음을 닦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한다. 하나, 그것은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닌 만큼 둘을 다 함께 병행하여 가꾸어 나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한다. (2023)
첫댓글 청석님께도 이제 연세가 원만하시니 白眉가 돋 보이시듯 합니다.
지금까지 잘 살아 오셨으니 인생의 훈장이듯 보여지십니다.
노후에는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이 최상이듯 사료됩니다.
'마음을 닦는 삶' 참으로 청석님 다운 표상입니다. 존경합니다^^
흰눈썹이 돋았는데 그대로 둘까 합니다.
나이먹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른 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곱게 눍어간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게 됩니다 정신이 곧고 선량한 사람은 자연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고 믿습니다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진다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싶습니다
기왕 백미를 간수하시기로 작정하셨으니 명품으로 가꾸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어언 눈썹 한 구석이 희어져 있군요 이발소에 가도 귓속 털은 촉수엄금입니다 사실 눈썹이나 귓털이 무슨 대단한 것이겠습니까 수필의 마음을 자켜나가시는 선생남의 꿋꿋한 심성이야말로 귀한 복록아니겠습니까
문득 눈섭에 보이는 희털을 보고 글을 써봤습니다.
나이가 드니 신체의 변화가 생기는데 눈썹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살아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눈썹을 그리하실 결심이면 머리도 아예 흰머리는 어떨런지요. 그분하면 임선생님을 떠올릴만큼요. 92세까지를 계산해봐도 선생님은 이제 시작이죠.
아직 머리카락은 엣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다행스럽게도 염색하는 시간과 비용은 아끼고 있지요.
또래의 여러분을 유심히 보니 눈썹이 흰분이 의외로 많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