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人類文明)의 역사(歷史)
12. 캄보디아 앙코르(Ankor) 유적군(遺蹟群)
앙코르와트(Ankor Wat) 전경 / 눈부신 앙코르와트의 부조(쿠루 평원의 전투) / 바이욘(Bayon) 사원
동남아시아 캄보디아(Cambodia)에 번성하였던 앙코르(Ankor) 왕조는 크메르족이 세운 왕국으로, 인근의 베트남(Vietnam), 미얀마(Myanmar), 태국(Thailand)과 힘겨루기를 하고 또 한족(韓族:중국)의 침입도 견디어 내며 성쇠(盛衰)를 거듭하던 나라인데 이 크메르족 앙코르 왕조의 수도(首都)가 앙코르(Ankor)였다.
삼국지(三國志)에 보면 촉(蜀)나라 제갈량(諸葛亮)이 크메르족 왕인 맹획(孟獲)을 일곱 번 잡았다 일곱 번 놓아주어 결국 항복을 받아냈다는 ‘칠종칠금(七縱七擒)’ 고사(故事)가 바로 이곳의 이야기이다.
부연(敷衍)하면, 전쟁이 끝나고 촉군이 돌아가려고 강을 건너려는데 수많은 병사들이 강에 빠져 익사하는 사고가 생긴다.
제갈량(諸葛孔明)이 천기(天氣)를 살피니 전쟁에서 죽은 크메르군 원혼(冤魂)들이 촉군을 귀국하지 못하게 하고 목숨을 빼앗으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갈량은 밀가루를 둥글게 빚고 속에 돼지고기를 넣고 삶아 사람의 머리처럼 만들어 강가에서 원혼을 달래는 제사를 올린 후 강물에 뿌리자 원혼들은 죽은 사람의 머리인 줄 알고 물러가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고 한다. 제갈량이 밀가루로 반죽을 하고 고기를 넣어 사람의 머리처럼 만든 이것이 바로 만두(蠻頭:오랑캐 머리)가 생긴 시초라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앙코르(Ankor) 왕조는 7세기, 자야바르만 2세에 의하여 ‘캄푸챠(Kampuchea)’란 이름으로 롤류오스 지역에 건국되는데 당시, 중국에서는 이 캄푸챠를 진랍(眞臘)이라고 불렀다. 9세기부터 건립되기 시작한 거대한 사원들은 자야바르만 7세(Jayavarman VII) 때 이르러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수많은 사원들과 힌두교 대서사시의 벽화와 조각상들이 대량으로 조성되는데 그 거대한 규모에서부터 정교한 솜씨로 다듬은 석공들의 기술과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들이 넋을 빼앗길 정도이다. 사원(寺院)들은 초기에는 불교사원으로 건립되지만 곧이어 힌두교가 들어오면서 힌두사원으로 탈바꿈한다.
12세기, 수리야바르만 2세(Suryavarman II) 때 국토를 넓히고 지금의 앙코르와트를 건설하게 되는데, 12세기 말 자야바르만 7세 때 참파(Champa:베트남)의 침입을 막아내며 전성기를 이루게 되고 이때의 도시인구가 10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당시 우리나라(고려) 전체인구가 250만 정도였다고 하니 그 번성함을 짐작할 만하다.
이때, 수많은 사원들이 세워지는데 타프롬(Ta Prohm:어머니에게 헌사), 프레아칸(Preah Khan:아버지에게 봉헌), 앙코르톰(Angkor Thom), 바이욘(Bayon) 등 아름다운 사원(寺院)들이 잇달아 건립된다.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유적군 인근의 도시 씨엠립(Siem Reap)은 ‘씨엠’(시암족:태국)을 ‘립’(격파)하다라는 의미이다.
크메르족은 인근의 나라들과 인도차이나반도의 주도권을 놓고 끊임없는 경쟁을 벌렸는데 앙코르 왕조에 이르러 인도차이나반도의 맹주(盟主)가 된다. 그 후, 끊임없는 타민족의 도전을 받아 시암족(태국)의 일곱 번 침공까지는 잘 막아냈지만 결국 여덟 번째 침공에 무너졌다고 한다.
15세기 중엽, 앙코르 왕조의 쇠락(衰落)과 주변국들이 강대화 되면서 아유타야왕국(시암족:태국)의 침공으로 남쪽의 프놈펜(Phnum Penh)으로 왕도(王都)를 옮기게 되는데, 아유타야의 왕 파라마라자(Paramaraja)는 수백 년 동안 앙코르왕국의 지배와 간섭을 받았던 원한으로 이 지역을 철저히 파괴하고 수많은 문화재, 신들의 무희(舞姬)인 압사라(Apsara), 수많은 대신(大臣)과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다고 한다. 그러나 앙코르를 손에 넣은 아유타야도 오래지 않아 이곳을 포기하였는데 이후, 앙코르 왕조도 폐허가 된 앙코르로 수도를 옮길 능력이 없어서 이곳은 버려진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1860년, 프랑스의 식물학자 앙리 무오(Henry Mouhot)가 재발견하여 세계에 알려지기까지 400여 년 동안, 앙코르는 밀림에 묻혀 잊혀진 도시로, 폐허의 유령도시로 알려져 아무도 접근하지 않으려고 하여 무오가 탐험하기 위하여 짐꾼을 모집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앙리 무오는 1년여 탐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열병에 걸려 현지에서 죽는데 이곳 사람들은 ‘앙코르의 저주’라 하며 무서워하였다고 한다. 앙리 무오의 기록이 책으로 출간된 후 이곳을 방문하였던 몇 명이 더 희생되었고, 이어진 폴 포트(Pol Pot) 공산주의 정권 때는 250만이 희생된 것도 앙코르 저주의 연장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프놈바켕 사원(집사람) / 반데이스레이(여인의 성채) 벽면 부조 / 타프롬 사원
9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 세워진 이 앙코르 유적군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는 걸작으로, 100여 개의 크고 작은 사원들이 밀림 속에 산재해 있는데 훼손이 매우 심각하고 워낙 방대하다 보니 국가 재정으로는 복원을 엄두도 못 내고 유네스코와 몇몇 나라에서 복원을 도와주고 있다지만 진행상황은 지지부진한 형편이었다.
이 앙코르 유적군(遺蹟群)을 조금 더 자세히 드려다 보면,
이곳을 후세 사람들은 ‘신들의 땅’ 혹은 ‘저주의 숲’으로 부를 만큼 영욕(榮辱)이 극심한 곳이었다.
현재 캄보디아의 도시 시엠 레아프(Siem Reap)에는 앙코르 왕조의 초기 유적군으로 꼽히는 ‘롤류오스 유적군’도 있는데 이곳에는 바콩(Bakong) 사원, 프레야코(Preah Ko) 사원, 롤레이(Lolei) 사원이 있다.
이 사원들은 현재 굉장히 훼손이 심한 상태이고, 북동쪽으로 떨어져 있는 반데이스레이(Bantaey Srei) 사원은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석조 사원인데 훼손도 덜하고 눈부신 조각이 돋보이는 사원이다.
또 바켕(Bakheng)산 정상에 세워진 프놈바켕(Phnom Bakheng) 사원은 훼손은 심한 편이지만 사원에서 보는 저녁놀이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여 볼만하다.
다음은 거대한 왕궁건물인 앙코르 톰(Ankor Thom)을 보러갔는데 경내(境內)에는 불교사원 바이욘(Bayon), 시바(Siva)신에게 바쳐진 힌두사원 바프온(Baphuon), 미국 영화 ‘툼 레이더(Tomb Raider)'의 촬영지로 유명한 타프롬(Ta Prohm), 왕궁터와 코끼리 테라스, 문둥왕 테라스, 승리의 문.... 등이 널려있다.
앙코르 톰 왕궁건물의 지붕 위에는 이 왕궁과 사원들을 건립한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과 관세음보살의 인자한 모습이 합성된, 미소 띤 모습의 두상(頭像)이 수십 개 모셔져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의 가장 관심을 끄는 유적인 앙코르와트(Ankor Wat) 사원은 수리야바르만 2세 때 힌두교 비슈누(Vishnu) 신에게 바쳐졌는데 그 웅장한 규모와 치밀한 설계로 ‘신의 지문(指紋)’이라는 찬사를 받는 건물이다.
크기는 외곽이 1.3km×1.5km의 장방형(長方形)인데 둘레에는 넓은 해자(垓字)와 인공호수가 이어져 있다.
건물의 구조를 보면 1층 외곽에 제3 회랑(回廊),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가면 제2 회랑(回廊)이 있고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 한 층을 올라 3층에는 제1 회랑(回廊)이 있는데 건물 전체를 한 바퀴 도는 복도이다.
제1 회랑(3층)의 안쪽 넓은 공간에는 다섯 개의 첨탑(尖塔)이 우뚝 솟아있어 이곳은 천상(天上)의 세계로, 맨 가운데 있는 첨탑은 불교(佛敎)에서 신들이 거주한다는 수미산(須彌山:일명 메루산) 형상으로 60m 높이로 우뚝 솟아있고 나머지 둘레의 4개의 첨탑은 조금 낮다. 이곳은 왕과 대사제(大司祭)들만 오를 수 있는 곳으로,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석조계단이 무척 가파르고 좁게 조성되어있다. 건물의 웅장함도 감동이지만, 눈부신 부조(浮彫)들로 채워진 회랑(回廊)을 둘러보노라면 힌두 신화 속으로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부조들은 모두 돌을 쪼아 부조(浮彫)로 표현했는데 힌두 신화가 배경이다.
‘왕의 행렬’, ‘우유바다 젓기’, ‘쿠루평원의 전투’, ‘라마 왕자와 악마의 왕 라바나의 전투’, ‘천국과 지옥’, ‘천상(天上)의 무녀(舞女) 압사라(Apsara)’.....
제2 회랑(2층)에만 1500여 개의 압사라와 여신(女神)의 부조가 새겨져 있고 ‘왕의 행렬’ 등 제목이 붙여진 부조작품은 그 길이가 10여 m씩이나 되기도 한다. 2010년, 집사람과 함께 이곳을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