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호 전 약사공론 주간이 지난 달 21일 별세한 故 김명섭 대한약사회 명예회장에 대한 기억과 절절한 그리움을 본지에 보내왔다.1965년 시작된 첫 인연에서 2013년 고인이 영면하기까지 39년 동안 두 사람이 이어온 질긴 인연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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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호 전 약사공론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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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섭 회장을 처음 뵌 것이 1965년 내가 옛날 베링거의 전신인 백수의약에서 처음으로 세일즈 맨으로서 첫발을 디디면서 회사 선배인 정문영 씨와 함께 영등포지역 약국을 담당할 때였다.
그 당시 김 회장은 영등포 역전에서 영등포약국을 경영하고 계셨고 그때의 인상은 하얀 가운에 단정한 개국약사로서 약국에 현미경과 원심분리기를 설치하고 영등포 역전에 만연한 성병환자를 병리검사까지 하면서 열심히 약국을 경영하고 계셨으므로 당시 나도 약사로서 저런 약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 제약회사를 그만두고 중곡동에서 약국을 경영하면서 약사회무에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1973년경, 성동구약사회 보건위원장을 맡게 되었는데 그때 성동구분회장이며 서울지부 윤리위원장을 맡았든 경희약대 출신의 강인회 회장이 갑자기 서거하여 영등포약사회 회장이셨던 김명섭 회장이 강 회장의 장례식에서 흐느끼며 애절한 조사를 하는 모습이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 당시 강인회회장과는 각별한 사이였든 것으로 기억된다.
서울시약사회 김성준 회장시절, 서울약대 동창회 성동지부 동창회장이던 한명승회장이 서울시 총무위원장으로 임명되는 바람에 내가 한명승 회장과 함께 총무위원을 하면서 관철동 서울시 약사회를 드나들었는데 그때 한약파동으로 약사회는 뒤끓고 있었고 그 투쟁과정에서 김 회장만이 단식으로 링거병을 달고 누워있든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 당시의 나는 약사회의 초년병으로 김명섭 회장과는 아득한 관계였고 그 후 김성준 회장과 박한욱 회장의 뒤를 이어 서울시약사회장 선거가 있었고 중앙대출신인 김명섭 씨와 성균관대출신의 박기준 씨가 경선을 했다.
그 당시 내 기억으로는 서울약대 동문은 소위 김성준 회장을 중심으로 하는 영등포사단과 박한욱 회장을 중심으로 한 서대문사단이 있어 약사회장선거에서는 항상 캐스팅보트싸움에서 대립하고 있었는데 모르긴 해도 그 당시 분위기로는 서울대동문들은 중론으로 박기준 씨를 밀기로 했던 모양인데 투표결과 1표 차로 김명섭 씨가 승리했고 서울약대 출신으로 유일하게 영등포지역에서 약국을 하든 김희중 회장이 김명섭 회장을 지지했고 신호 씨가 사고를 당하여 선거에 불참한 것이 원인이 되어 김명섭 회장이 서울시 약사회장이 되었다고 약사회사에 오랫동안 회자하는 이야기이다.
각설하고 그 후 김명섭 회장이 서울시 약사회장이 되고 김희중 회장이 부회장으로 김명섭 회장과 함께 회무를 맡게 되자 그때부터 나는 서울시 약사회보건위원장을 맡게 되어 김 회장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김명섭 회장은 평소 약사의 사회적 책임과 약사의 직능을 통한 약사의 위상을 제고하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계셨으며 내가 보건위원장 시절 보건위원회담당인 김희중 부회장과 서울시내 45개 약수터의 수질검사를 하여 검사결과를 김명섭 회장의 지시로 중앙일보에 단독 특종보도하여 청와대까지 알려져 사회적 관심을 고조한 바 있었다.
또, 어린이 심장병돕기 사업을 벌여 인기 코미디언 주병진씨를 주병진씨를 제주도에서 판문점까지 국토종단 마라톤을 기획해 전 국민의 관심을 고조시키기도 했다.
주병진의 심장병어린이 돕기 국토종반 마라톤때 나는 서울시 약사회 김중선 차장과 함께 주병진씨가 제주도 5.16도로를 횡단한 후 부산에 도착하면 부산에서의 출발을 준비하는 역할을 담당했는데 그 당시 부산시 약사 회장이었던 송만영 회장과 주상재 회장의 도움을 받아 부산 용두산에서 판문점을 향한 힘찬 출발을 할 수 있었다.
보건위원장 시절 김명섭회장과는 FAPA를 계기로 그 당시 약사들의 해외여행이 드물었던 시기에 약사 20여명을 거느리고 유럽일주 여행을 감행한 일이다.
FAPA회의 대표단 일행 20여명은 내가 임시단장을 맡아 당시 시약 석진균 사무국장과 먼저 떠나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등을 관광하는 사이 김명섭 회장과 당시 표준소매가 제도를 발의 성취시켜준 보사부 최선정 과장(후에 보건 복지부장관, 타계)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합류하기로 하고 먼저 떠났다.
당시 약사들의 가장 큰 관심은 표준소매가의 정착이었고 이를 제도적으로 성취시킨 두 장본인이다.
우리는 독일에서 만나 스위스, 이태리를 거쳐 타이페이에서 개최되는 FAPA 대회에 참석한 후 태국 홍콩을 거쳐 귀국하는 동안 약사로서, 선배로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 후 대한약사회 길병전 회장의 서거로 김명섭 회장이 대한약사회장으로 선출되고 서울시약사회는 박한일씨가 회장으로 선출되어 김명섭 회장과 직접 회무에 참여하는 기회가 없다가 3년 후 박한일 회장의 뒤를 이어 김희중회장이 서울시 약사회장으로 선출되어 내가 서울시 약사회 총무위원장이 되면서 대한약사장인 김명섭 회장과 함께 회무에 참여하게 되었다.
1989년 당시 대한약사회는 1977년부터 시행된 국민 의료보험제도에는 약국은 완전히 소외되어 약사들의 의료보험제도에의 참여가 최대 과제였으며 대한약사회의 최대 산하 지부인 서울시 약사회 새 집행부가 구성된 직후인 4월부터 약사들의 의료보험제도의 참여를 촉구하는 대 정부 투쟁이 전개되었고 당시 서울시 16개 분회장들을 위시한 임원들은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이때 발생한 서울시 약사들의 박카스 불매운동은 회사에 길이 남을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이런 반대투쟁의 결과로 그해 5월 15일 김명섭 회장과 실무를 맡았던 권경곤 부회장등 대한 약사회는 보사부와 그 해 10월 1일부터 경질환에 대한 약사의 직접조제에 의한 의료보험참여라는 획기적 제도를 성취하고 이것이 약사의 의료보험 참여의 단초가 된 것이다.
그간 투쟁 일변도와 긴장감에 휩싸여 있든 약사회는 평온을 되찾고 약사회의 주변정리를 하는 중에 각 약사회의 사무국장 봉금체계를 상급기관 지급식에서 직접급여방식으로 김명섭 회장과의 담판으로 이뤄낸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 한일이라 생각된다.
그 후 대한약사회장이 정종엽 회장으로 바뀌자 총회 석상에서 내가 김명섭 회장을 총회 의장으로 추대 발언한 것이 기억된다.
그 후 김 회장은 지역국회의원으로 활동하시고 나는 김희중 회장이 대한 약사회장으로 선출되어 약사공론 부주간을 역임할 당시에는 김명섭 회장은 총회 의장으로 회무에 직접관여하시지 않았기에 접촉할 기회가 별로 없었고 그 후 한석원 회장시절에는 내가 약사회 주간이 된 후 김명섭 회장을 찾아 뵙고 약사공론 운영에 관한 조언을 부탁드렸고 약사공론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가지셨던 김 회장님은 약사공론 주간시절 광고비 인상을 통한 경영개선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경여개선에 대해 충고하셨다.
약사공론 6년과 대한약사회총희 부의장 6년을 끝으로 대한 약사회와의 회무를 정리하고 2010년 10월 23일 고희를 기념하여 고희기념문집 “약과 반세기”출판 기념회를 개최하면서 대한약사회 명예회장으로서 축사를 부탁 드렸더니 구주제약 담당 사원으로부터 책자를 보내달라시어 보내 드렸더니 본인의 말씀으로 그 자리에서 독파를 하시고서는 당일 날 책 내용 세세한 부분까지 언급하시면서 진작 더 가까이 함께 하지 못한 점을 아쉬워하시면서 좌중을 리드하는 바람에 다른 분들의 할 말을 잊게하셨다.
그후 권경곤, 황선호, 김희중 회장님과 여의도 송천기원을 찾아 뵐 때면 건강하신 모습을 뵌 것이 얼마 되지 않아 패 질환으로 입원해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했으나 면회할 길도 없고 폐 이식 수술을 했다는 소식 들은지 며칠 만에 비보를 접하게 되니 망연자실할 뿐이다.
내가 아는 김명섭 회장님은 이세상의 누구보다 박력 있게 약사회를 사랑하셨고 약사를 사랑하셨으며 약사의 위상을 정립하기위해 노력하고, 서울시 약사회장 시절 관철동 약사회관에서 서초동 약사회관시대를 연 분임으로도 웅변할 수 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빌며 하늘나라에서 함께 회무를 하시다가 먼저 고인이 되신 여러 선배약사님과 함께 이승의 약사들을 굽어 살피시기를 빈다.
2013년 6월 26일 이규호 올림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김명섭회장님은 그간 약사회를 위해서 하신일도 많지만
산적한 약사회에 앞으로 하실일도 많으실텐데 안타깝게 가셨습니다
그분과 여러 방면에서 의장님과 인연이 많으시고 그러면서
여러일을 함게 하신사실도 이 기고로 새삼 알게되었습니다
약사회나 우리 인생도 여러인연으로 맺어지고 흘러간다는 사실도 깨닫고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어떤 의미로 남게 될지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이런 기고를 쓰시고 올릴수 있는 분이 가가이 계시는것도
우리들의 복이 아닌가 합니다 ^^
이렇게 산들해카페에까지졸고를 옮겨 실어주신김은숙회장님께 깊은감사를 드립니다
김은숙회장님의 말씀처름 사람이살아가면서생긴인연은한사람의운명이 달라질때에야그소중함이느껴지는것같습니다.
산들해를
통한 우리들의인연도정말소중히간직해야하는자산이 아닐런지요
산들해여러분 무더운여름 건강에 유의하시고다시 만날때까지 안녕히계십시요
우리 약사회에 큰 별이 지심을 애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 김명섭 명예회장님의 일생이 지나온 약사회의 역사의 와중에서 함께 하셨던거 같아요.
이규호 의장님께서도 고인과 함께 약사회를 이끌어 오신 큰 업적을 이루어내셨지요.
두분의 각별했던 인연을 고이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이규호 의장님의 약사회와 약사를 사랑하시는 마음, 후배들을 사랑하시는 마음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우리 5반의 모범반장님
반원인나의 졸고를 읽어주시는것만도고마운데다른분들에게읽도록 독려도해주시고또이렇게 댓글 까지주시니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할지 모르겠읍니다.
5반 반원이었다는 사실도 보통인연이 아닌것같은데 어렇게 감사한 마음을 전할 기회를 만들어주시면고맙게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