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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었던 하루 이야기 (2015년 10월 16일)
우리가 수원대의 개혁을 목표로 교수협의회를 만든 날자는 2013년 3월 19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원로교수님들의 전언을 통하여 과거인 1987년에 교수들이 교협을 만들었다가 학교측의 탄압으로 교협이 와해되었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교협 대표는 목정균 교수님(그후 파면됨)이었고, 총무는 강인수교수(최근에 부총장에서 물러남)이었습니다. 우리가 만든 교수협의회는 1987년 교협이 와해된 이후 26년 만에 다시 만든 제2차 교수협의회가 되는 셈입니다.
1987년에 1차 교협이 와해된 후 26년 동안 수원대는 악명 높은 동토의 왕국이었습니다. 교수들은 학교측의 전횡과 비민주적인 처사들에 대하여 항의하지 못하고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열악한 교육환경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직원들도 총장의 횡포에 시달렸습니다. 모든 교수, 학생, 직원들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2003년에 교육부에서 계약직 교수 제도를 인정하자, 학교측에서는 신임교수들을 전임교수이지만 모두 1년 계약직 교수로만 뽑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협이 출범할 당시인 2013년에는 계약제 교수들이 약 100명으로까지 늘어났습니다. 계약직 교수님들의 저임금, 신분 불안, 심적 고통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런 비참하고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교수협의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우리는 교협을 만들면서 공동대표를 세 사람 선출하였습니다. 공동대표를 3명이나 선출한 것은 총장이 교협 대표를 한 사람씩 만나서 회유와 협박으로 각개격파하는 전략을 막아내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창립회원 30명이 모여 공동대표를 세 사람 선출한 후에 공동대표들은 모여서 두 가지 사항을 약속하였습니다. 첫째, 총장과 만날 때에는 반드시 세 사람이 공동으로 만난다. 둘째, 교협의 공식적인 입장은 3인의 완전합의제로 결정한다.
교협이 출범한 이후 9개월 동안 교협공동대표 3인과 총장과의 공식적인 만남은 한 차례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총장은 교협을 처음부터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교협대표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총장과 교협대표 세 사람이 동시에 만날 것을 요구하였고, 총장은 한 사람씩 만나자고 개인 자격으로 만나자고 요구하였습니다. 잘 알려졌듯이 1:3 이냐 1:1 이냐를 두고서 무려 9개월을 끌었습니다. 그 동안 두 차례의 비공식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기는 했습니다. 파면되기 직전인 2013년 12월에 배교수와 총장이 1:1로 한 번, 배교수와 제가 총장과 2:1로 한 번, 총장실에서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다른 공동대표인 이원영 교수가 빠졌기 때문에 두 번의 만남은 비공식적인 대화 수준이었는데, 그마저도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학교측에서는 교협이 출범한 후 9개월이 지난 2013년 12월 27일 계약직 교수 2명(장경욱 손병돈)의 재계약을 거부하였습니다. 2014년 1월 9일에 학교측에서는 호봉제 교수 4인(배재흠 이상훈 이원영 이재익)에 대한 파면을 단행하였습니다. 우리는 파면 취소를 요구하는 민사재판을 시작하였는데, 학교측에서는 재판 결과가 나오기도 전인 2014년 8월 27일에 4인이 출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징계위원회를 열고서 다시 한번 파면을 단행하였습니다. 파면시킨 교수를 복직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재파면을 단행한 것은 사학비리 역사상 처음 있는 폭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파면 후에 이원영 교수와 이재익 교수는 한 팀이 되어 민변의 변호사를 선임하여 파면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민사재판을 2014년 3월 19일 시작하였습니다. 이원영 교수 팀은 2015년 1월 22일 1심 판결에서 승소하였습니다. 그러나 학교측에서는 불복하고 항소하여 현재 2심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배재흠 교수와 저는 또 다른 한 팀이 되어 다른 변호사를 선임하여 민사재판을 2014년 7월 28일에 시작하였습니다. 배교수팀의 민사재판이 이원영교수팀보다 4달이나 늦은 것은 그 사이 배교수와 저는 교수지위보전가처분 소송을 진행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 교수지위보전가처분 신청에서 승소했기 때문에 배교수와 저는 폐쇄되었던 연구실을 중간에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복직을 위한 소송이 왜 형사재판이 아니고 민사재판인지 궁금하실 것입니다. 파면의 결정은 문서화된 어떤 규정이나 법률을 적용한 결과인데, 결국은 법률 조항의 해석을 다투는 문제이고 따라서 민사소송의 대상이 됩니다. 민사재판에서는 우리가 원고가 되고 파면을 최종적으로 승인한 학교법인 고운학원이 피고가 됩니다. 파면의 최종 결정은 고운학원 이사회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고운학원 이사장이 소송에서 피고가 됩니다.
배교수와 저의 운명을 가름하는 민사소송(사건번호 2014가합 67532)은 15개월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학교측에서 여러 가지로 지연작전을 썼기 때문에 진행이 느렸습니다. 2015년 10월 16일 오전 10시에 민사소송 1심 판결이 수원지방법원 법정에서 선고되었는데, 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원고 이상훈의 소 중 각 파면처분 무효 확인 부분을 각하한다.
2. 피고가 원고 배재흠에 대하여 2014.1.9.자 파면처분 및 2014. 8. 26.자 파면처분은 각 무효임을 확인한다.
3. 피고는 원고 배재흠에게 99,704,000 및 이에 대하여 2014. 11. 21.부터 2015.10.16.일 까지는 5프로, 그 다음날부터 갚는 날까지는 20프로를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원고 이상훈에게 97,813,375원 및 그중 95,613,375원에 대하여는 2014.11.21.부터 2,200,000에 대하여는 2015.4.2.부터 각 2015.10.16.까지 연 5프로 다음 날부터 갚는 날까지는 20프로를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4. 피고는 원고 배재흠에게 2014.12.1.부터 위 원고의 복직 시까지 9,064,000를 비율로 계산한 돈을 원고 이상훈에게 2014.12.1.부터 2015.8.31.까지 8,892,125원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각 지급하라.
5. 원고들의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
6. 소송비용은 5분의 1은 원고들이, 나머지는 피고가 부담한다.
7. 제3항 4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판결이 선고될 당시 제가 방청석에 앉아 있었고 (배교수는 참석하지 못함) 학교측에서는 최형석 교수와 정재명 과장이 방청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재판장이 낭독하는 제1항을 듣는 순간 ‘각하한다’는 단어가 분명히 들렸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제2항에서 배교수에 대해서는 파면이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낭독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배교수는 승소하고 나는 패소했다는 말인가?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판결을 들어보니 원고 배재흠에게 얼마를 이자 붙여 지급하고 원고 이상훈에게 얼마를 이자 붙여 지급하고 등등... 뭐가 뭔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선고는 약 10개의 재판 결과를 한꺼번에 낭독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고, 재판장은 낭독이 끝나자마자 다른 사건의 변론을 시작한다고 선포하는 것이 아닙니까! 재판장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도 없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우리 변호사는 다른 재판에 간다고 나오지 않고 대신 법률사무소 여직원이 나와서 판결을 적고 있었습니다.
선고는 10여분 만에 끝나고 법원 바로 앞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로 걸어가는 동안 저는 매우 불안하였습니다. ‘각하’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 우리 변호사는 부재중이었기 때문에 저는 사무장에게 “배교수는 파면 무효가 되었지만 나는 각하되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무장도 의아해 하였지만 명확한 해석을 못하였습니다.
조금 후에 우리 변호사가 사무실로 들어왔습니다. 법정에 갔던 직원이 자기가 들은 내용을 워드로 작성하여 가지고 왔습니다. 공문서로 된 전체 판결문은 다음 주에 받아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판결문을 법원장이 승인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상담실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저는 우리 변호사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원고가 되어 제기한 재판은 정확히 표현하면 파면무효확인 및 월급보전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이다. 소송의 결과는 기각(피고 승소)과 인용(원고 승소)으로 구별된다. 기각이 되면 학교측의 파면 처분이 정당하다는 의미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밀린 월급을 받을 수가 없다. 판결 결과를 보면 배재흠 교수는 2번의 파면이 무효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당신은 지난 8월 31일자로 정년을 맞아 교수직을 떠났기 때문에 복직을 해도 교수로 돌아갈 수가 없다. 법률적으로는 소송 요건을 따져 볼 때에 정년 퇴직으로 심리의 필요가 없으므로 각하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의 파면이 정당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판결 내용은 기각이 아니고 인용에 해당하며 파면은 무효라고 해석된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판결에서 원고 이상훈에게 얼마를 지급하라는 조항은 파면이 무효라는 것을 전제로 할 때에 내리는 판결이다. 결국 이 재판은 우리가 승소한 재판이다. 다만 우리는 월급보전 및 위자료까지 요구했는데, 아마도 위자료 부분은 인정하지 않은 것 같다. 자세한 것은 판결문 전체를 다음 주에 받아보면 알 수 있다.”
저는 변호사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습니다. 법률 용어를 알지 못하여 괜히 불안에 떨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변호사에게 그동안 수고하셨다고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배재흠 교수에게 승소한 사실을 전화로 알려 주고 학교로 갔습니다.
오전 11시 20분에 핸드폰 문자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읽어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형님, 사필귀정이자만 승소 축하드립니다. 건강 지키면서 성공하시기 기원합니다. 양00 드림” 양교수는 고등학교 3년 후배로서 전남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우리가 승소한 소식이 멀리 전남 광주까지 퍼진 것입니다. 정말로 빠르고 무서운 세상입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이 그대로 실현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12시 30분경에 학교에 도착하였습니다. 교정에는 나뭇잎이 붉게 단풍들기 시작하여 가을이 완연했습니다.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교정이었습니다. 학생들은 귀엽고 생기발랄해 보였습니다. 건물들도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주차장은 아직도 여유가 있었습니다. 수원대는 하드웨어는 훌륭한데 소프트웨어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프트웨어만 고치면 얼마든지 발전하여 경기 남부의 명문대학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교수1을 만나 점심 식사를 같이 하였습니다. 교수2를 만나서 차를 한잔 같이 마셨습니다. 교수2는 학교를 떠난 제가 부럽다고 합니다. 왜냐고 물어보니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나빠질 일만 남았지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전혀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빨리 정년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에게서 엄청난 패배주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2년 연속으로 부실대학 평가를 받은 수원대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25년 동안 근무한 직장이고 제가 열성을 바쳤던 직장인데, 수원대는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교수3을 만나서 학교 소식을 자세히 들었습니다. 이제 강인수 부총장보다는 박진우 부총장이 실세로 떠오르고 있나 봅니다. 대학구조개혁이라는 그림은 모두 박진우 교수가 그리고 있나 봅니다. 단과대학을 학부로 축소시킨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학과들이 통폐합된다고 합니다. 없어지는 학과도 생긴다고 합니다. 교수들의 반응은 어떠냐고 물어보니, 대부분의 교수들이 체념한 듯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교협에서도 어쩔 수 없습니다. 우는 아기에게 젖을 준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수원대의 교수님들이 용기를 내고 단결하여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면, 교협에서도 어쩔 수 없습니다. 학과 통폐합과 그에 따르는 불이익은 감수하십시오. 두 세 명이 모여서 작은 소리로 불평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교수님의 학과가 없어져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운명처럼 받아들인다면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오후 3시경에 정문으로 나가서 1인 시위를 시작하였습니다. 왜 시위를 계속하느냐고요? 민사 1심에서 우리가 이겼으므로 사람들은 축하한다, 고생했다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지인들은 우리가 민사재판에서 이겼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는 총장과의 싸움이 끝나고 고생이 끝난 줄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밀린 봉급을 다 받을 줄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승소하여 기쁘기는 하지만, 총장은 틀림없이 항소할 것입니다. 1심에서 판사는 피고는 우리에게 밀린 봉급을 지불하라고 판결을 내렸지만 총장은 불복하고 우리에게 줄 돈을 법원에 공탁할 것입니다. 1심에서 승소하였지만 제가 받는 돈은 한 푼도 없을 것입니다. 1심 재판이 15개월 걸렸으니, 2심 3심까지 가서 최종적으로 승리하려면 앞으로도 2년 이상 걸리지 않겠습니까! 휴우... 한숨만 나옵니다.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기 위해 재판에서 3심 제도를 도입하였지만 돈 없고 힘 없는 일반 국민에게 3심 제도는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사 1심에서 패소한 총장은 2심과 3심에서도 질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너희들이 나를 괴롭혔으니 나도 너희들을 괴롭히겠다는 것이 총장의 생각일 것입니다. 우리를 끝까지 괴롭히기 위하여 항소에 항소를 거듭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것은 부정적인 예상이 아닙니다. 이원영 교수팀의 민사소송 1심도 승소로 판결이 나왔지만 총장은 항소하고 2억5천만원의 공탁금을 법원에 맡겼습니다.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저는 가만히 앉아서 총장의 선처를 기다릴 수만은 없습니다. 돈과 권력의 힘을 믿는 총장과의 싸움에서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투쟁 방법은 1인 시위입니다.
오후 3시 정각에 몸자보(몸에 걸치는 플래카드)를 두르고 정문으로 나갔습니다. 정문에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4개나 걸려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버스를 타기 위하여 통과하는 작은 통로 앞에 서 있었습니다. 몸자보의 앞면과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구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존중하라 법원 판결! 취소하라 불법 파면!”
“수원대 비리 총장 이인수는 물러나라!”
정문 수위가 황급히 본부에 전화를 하고 약 10분 후에 직원1이 정문으로 나왔습니다. 직원1은 매우 온순한 성격의 사람이었으므로 매우 부드럽고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교수님, 1인 시위는 해도 좋지만 길 건너편으로 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시위하면 불법입니까?”
“교수님이 여기 있으면 우리 직원들도 나와서 시위를 해야 합니다.”
“저는 여기서 시위를 계속하겠습니다.”
조금 후에 직원2가 나왔습니다. 그 직원은 제가 잘 아는 사람으로서 매우 충직한 성격의 직원이었습니다. 저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였습니다. 직원2는 저를 설득해서 길 건너편으로 보내려고 했습니다.
“교수님의 입장을 이해합니다. 1인 시위를 해도 좋지만 건너편으로 가셔서 직원들과의 충돌을 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는 당신의 입장을 이해합니다. 윗사람이 나가라고 해서 나왔겠지요. 당신은 나를 이해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니, 민사소송에서 우리가 이겼으면 총장이 승복하면 끝나는 일 아닙니까? 판사가 밀린 봉급 지불하라고 하면 지불하면 될 것 아닙니까? 왜 항소하고, 왜 밀린 봉급을 주지 않고 공탁을 합니까?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세요. 89세 되는 우리 아버님이 지금 노인요양병원에 계시는데 장남인 내가 병원비를 대야 합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총장이 나를 끝까지 괴롭히는데 나는 직원들이 요구하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야 합니까? 나에게 착하게 굴라고 말하지 마세요. 나는 이제 악만 남은 사람입니다.”
3시 30분에 직원3이 대형 피켓을 들고 나왔습니다. 지난 9월 24일 오후에 우리가 라비돌 정문에서 시위할 때에 처음 등장한 대형 피켓입니다. 피켓의 문구를 보고서 저는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상훈) 허위 사실 유포 무단 결강으로 파면당한 자. 해교행위 중단하라.” 법원의 판사들은 우리의 주장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결하였는데, 허위사실 유포? 검찰청의 검사들은 총장이 제기한 명예훼손 고발사건에서 우리의 주장이 명예훼손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불기소를 결정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무단 결강이 파면 사유가 됩니까? 무단 결강했다고 파면시키는 학교가 대한민국 어디에 있습니까? (저의 경우 사실은 무단 결강이 아닙니다. 그 과목은 대학원 박사과정 과목이었고 한 학기에 4번 강의하는 과목이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미 다른 글에서 밝혔습니다.)
피켓맨은 노골적으로 저의 시위를 방해하였습니다. 제가 정문의 북쪽으로 건너가자 피켓맨이 따라와서 옆에 나란히 섰습니다. 제가 정문 중앙에 서자 피켓맨이 따라와서 나란히 섰습니다. 저를 미사일처럼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어린애들 장난도 아니고 학생들 보는 앞에서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후에 직원4가 제게 다가와서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직원4는 그전에 시위할 때에 집요하게 저를 괴롭혔고 또 중얼중얼 알아듣지 못하게 저에게 욕을 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저의 감정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직원4가 저를 설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그저께 이재익 교수님이 시위할 때에 우리가 내걸었던 과격한 구호의 플래카드를 전부 바꾸었습니다. 보십시오. 지금 정문에 걸린 플래카드는 모두 교통안전에 관한 것입니다. 왜 교수님들이 직원들과 싸워야 합니까? 우리도 괴롭습니다. 그저께 배재흠 교수님도 서로 이해하고 길 건너편에서 시위를 하셨습니다. 이교수님도 협조해 주십시오.”
“당신이 괴롭다면 나는 죽을 지경입니다. 작년 1월에 파면된 이후 봉급도 못 받고 가정이 파탄날 지경입니다. 나를 더 이상 건드리지 마십시요. 저 피켓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총장이 지시했나요? 무단 결강했다고 파면? 웃기는 총장 아닙니까! 나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놈입니다.”
저는 직원 한 사람을 불러서 임진옥 교무처장을 만나게 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전할 말이 있으니 정문 앞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요청했습니다. 직원이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서 전화를 하더니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지금 임진옥 교수님이 강의중이고 8교시에 끝난다고 합니다.
직원4가 다시 저에게 다가와서 웃음을 지으며 저를 달래기 시작하였습니다.
“교수님, 시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길 건너편으로 장소만 옮기시면 우리 직원도 모두 철수하겠습니다. 교수님 협조해 주십시오.”
“같은 말 반복하지 맙시다. 저는 합법적으로 제가 원하는 장소에서 시위를 하겠습니다.”
직원4는 조금 후에 피켓맨에게 들어가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아마도 직원4가 직위가 높은가 봅니다.
직원5가 저에게 다가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교수님이 길 건너편으로 건너가시면 서로 좋지 않겠습니까? 협조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직원5는 수원대 졸업생으로서 책을 많이 읽고 글재주가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직원5에게 임진옥 교수가 안 되면 기획실장인 조기준 교수를 만나게 해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직원5는 조기준 교수님은 기획실장이 아니고 비서실장이라고 수정해 주었습니다. 저는 “조기준 교수에게 전할 말이 있다. 조기준 교수가 나오면 시위를 중단하고 정문 앞 커피숍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직원5가 전화를 하더니 “15분 후에 나오시겠답니다”라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조기준 교수가 나올 때까지 시위하면서 기다리겠다고 말하고 길 건너편으로 시위 장소를 옮겼습니다. 그때가 3시 55분이었습니다.
저는 4시 30분까지 길 건너편에서 시위하면서 기다렸지만 조기준 교수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직원이 거짓말을 했는지, 아니면 조기준 교수가 직원에게 말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지 제가 알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다시 시위 장소를 정문으로 옮겼습니다. 제가 길을 건너 정문으로 가자 몇 분 후에 피켓맨이 다시 나타나서 제 옆에 섰습니다. 시위는 원래대로 되돌아갔습니다.
조금 후에 직원5가 나타났습니다. 저는 직원5에게 말했습니다. “직원 말을 믿을 수가 없군요.” 직원5가 변명을 하였습니다. “제가 조기준 교수님께 전화할 때에는 분명히 나오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본인이 무슨 사정이 생겼는지 안 나오시는데 저로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직원4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플래카드가 정면에서 잘 보이지 않도록 바로 앞에 서서는 아까 했던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저는 “똑같은 이야기 그만 합시다”라고 한마디 한 후에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직원4는 조금 있다가 제 옆에 붙어 서 있는 피켓맨에게 들어가라고 지시하고서 다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기만 했습니다. 직원5의 설득작업(시위 방해작업)은 5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오후 5시 쯤에 인도를 따라서 정문으로 걸어오는 교수님을 보니 제가 아는 공대 Y교수님이었습니다. 저는 Y교수님을 불러 사진 한 장만 찍어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Y교수님이 저의 핸드폰으로 찍은 아래 사진은 직원5가 제 앞을 가로막고서 시위를 방해하는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진을 찍은 후에 제가 직원 4에게 “오늘은 그만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시위를 마쳤습니다.
2015년 10월 16일. 기쁜 일, 슬픈 일,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발생한 기나긴 하루였습니다.
여러분은 궁금하실 것입니다. 제가 임진옥 교수나 조기준 교수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까요? 저는 두 가지를 이인수 총장님에게 꼭 전해달라고 말하려고 했습니다. 임진옥 교무처장님은 아래 내용을 꼭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법원의 1심 판결을 존중하라.
둘째,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하면 나는 시위 장소를 전방위로 확대하겠다. 고운학원 이사들의 집과 사무실 등 모든 장소에서 1인 시위를 하겠다.
이 글을 쓰면서 저는 아직도 두 가지 의문점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1. 왜 직원들은 저를 정문에서는 시위를 못하게 하고 길 건너편으로 가라고 했을까요?
2. 왜 조기준 교수는 15분 후에 나가겠다고 직원을 통해 한 약속을 어겼을까요?
첫댓글 사필귀정 승소를 축하드립니다.
교수님의 그간 노고가 안련히 보이는 듯 합니다.
먼 발치에서 마음으로만 응원을 보낸 부끄러움이 감슴을 답답하게 합니다.
이제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언제까지 법제도를 악용하려할 것인가......
학교측에서 항소를 하면 20%의 이자를 물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법정신이 지켜질 것입니다.
조기준 교수는 소심한 겁장이라서 약속을 어겼을 것입니다.
나가기 전에 총장에게 보고하니 나가지 말라고 지시했을 것입니다.
소신이 없고 얍삽한 인간이지요.
이미 작년 11월 “파면처분은 앞서 본 것과 같은 절차적․실체적 하자로 인해 모두 위법하고, 무효이다.”라는 행정1심의 판결이 있었습니다. 이번 민사소송에서도 같은 판결이 나왔네요.
이인수총장부부의 파면 처분이 위법이고 무효라는 사실이 더 확실해 졌습니다.
이인수총장부부의 무모한 처분에 대하여 이상훈교수님과 배재흠교수님이 결국 승소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대학원 수업이 결강되어 실제로 수업의 결손이 없었다는 것이 법원의 결론이지만,
설령 단 1번 무단으로 결강했다고 해서 파면되었다고 주장하는 자에게 묻습니다.
아래의 행위를 자행한 자는 어떤 처벌을 받아야 마땅할까요?
수원대 이인수총장은 2009. 4. 총장임명 시부터 2014.2. 감사일 현재까지
5년 가까이 학교에는 1주일에 2~3일만 출근하여 3~4시간근무하고,
학교에 출근하지 않는 때에는 겸직이 허용되지 않는데도
자신이 소유한 회사에서 근무했다고 교육부 종합감사에서 적발된 바 있습니다.
@단풍나무 인덕원에 보내서 인과 덕을 배우게 해야지요.
설사 결강이 있었다한들 파면사유가 되나...학생들이 바보가 아닙니다. 공개적으로 밝힐 온당한 사유는 없고 옳은 말만 골라서하니, 기분나빠서 짤랐다고 그냥 얘기하시죠. 교협의 주장이
"진실이거나 진실일 상당한 이유" 가 있다고 판결이나서 승복대신 이렇게 계속 돈과 시간으로 계속 괴롭히고 있는거라고..
교협 교수님들의 승소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한편 후유~~숨을 몰아쉬며 수원대교수협의회의 자취, 교수님들의 시간을 함께 다시한번 아프게 껴안습니다.
표현이 불가한 교수님들의 아픔, 인고의 자취에 모두를 숙연케하는 위대함을 봅니다.
저들은 하늘이 용서하지 않습니다. 법의 판결보다 더 무서운 심판을 비껴가지 못할 것입니다.
교수님들의 자취는 위대한 역사의 한 장입니다. 기나긴 수원대의 어둠의 흑역사는 반드시 제2의 ' 베테랑'보다 심도깊은 다큐소설, 드라마와 영화로 재현되고 반드시 고발될 것입니다. 머잖았습니다. 교수님 힘내십시요!!!
영화로 제작되어도 좋을만큼 극적인 요소와 역사적 의미를 갖춘 실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벌어진 사건들이 세간의 관심을 상당히 불러 일으켰는데, 교문 앞 직원들의 만행 장면이 현실세계보다는 오히려 영화 속 연기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현실보다 더 악날하게 영화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뭐꼬님의 의문을 나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직원들은 저를 정문에서는 시위를 못하게 하고 길 건너편으로 가라고 했을까요?”
같은 사람이 동일한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정문 바로 앞에 서있을 때와 길 건너에 있을 때, 직원들의 반응은 큰 차이를 보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 승강이가 벌어졌고 교협카페에서 그 문제점을 지적했는데도 비슷한 언행이 반복되고 있는 사실에 비추어 직원들에 대한 관리책임을 지고 있는 자의 심경도 그러할 것입니다.
나의 해석1:
내가 정문 바로 앞에서 1인 시위를 할 때, 직원들이 보인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반응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행태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직원과 그 관리책임자는 평소 불안한 자신의 심리상태를 억누르고 겉으로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가, 해직교수가 비리 총장의 실명이 적힌 시위구호를 들고 자신의 몸과 같은 교문 코앞까지 바짝 다가서면 더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증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한 반응이 법이 용인하는 한계를 넘어서기 때문에 또 다른 불안이 그 자들의 내면에 야기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해석2:
같은 구호로 같은 사람이 정문 바로 앞에 서면 직원들의 반응이 그렇게 크게 달라지는 것은 학생과 근거리에서 마주하게 되는 차이에 있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학생들의 보행통로 옆에 서있으면 더 많은 직원들이 나와 둘러싸고 학생들의 시선을 차단하며 시위를 방해하였기 때문입니다.
대학당국은 총학생회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학생들이 해직교수의 주장을 해교행위라고 겉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는 왠지 불안하고 자신이 없어 보입니다.
수원대 문제에 대하여 학생들이 진실에 다가서는 것 또한 그들이 매우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언행에 대한 책임을 진다면 정서불안 장애는 극복될 수 있습니다.
@마중물 한방울 공감합니다. 수원대의 고객은 학생들이고, 학생들의 움직임을 제일 두려워하고 신경쓰는 부분이기 때문에 최대한 근접하는것이 심적 부담이크겠죠. 또한 대문앞 공간도 자기 땅, 자기 권한이라는 생각인게죠.
두 교수님의 일심승소를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갈길은 멀어도 일심판결이 어두운 길을 비추우는 환한 등불이 되리라 믿습니다.
고난의 가시밭길을 가시는 교협교수님들 부디 자중자애하시어 승리의 그날까지
영광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두 교수님의 승소를 축하드립니다. 이뭐꼬님에게 긴 하루 저희 교수들 역시 하루하루가 매우 길군요. 이 상황을 버텨가기가요. 일단, 학교는 학생들과 교수님들과의 거리가 가까워 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정문에서 시위를 하나 길 건너에서 시위를 하나 구호는 똑같은데, 학생들과의 거리에 그리고 학생들의 반응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거죠. 하지만, 학생들도 조금씩 조금씩 진실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고학년으로 갈 수록 취업과 관련되어 학교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치한 문구와 유치한 대응이 수원대를 더 나락으로 빠드림을 정녕모르는지, 원.
유치한 짓을 거리끼지 않는 것은 배움이 유치함에 이르렀으면 그에서 벗어나기 쉽지않다. 유치함을 벗어나려면 군자가 되어야함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