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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산과하늘 원문보기 글쓴이: 가을하늘
송이도(松耳島)
여행일 : ‘19. 7. 9(화)
소재지 : 전남 영광군 낙월면 송이리
산행코스 : 선착장→큰마을→정수장↔민머리갯벌(왕복)→삼거리↔작은내끼(왕복)→삼거리(쉼터)→큰내끼→능선→삼거리(쉼터)→앙골→작은마을→선착장(소요시간 : 4시간)
함께한 산악회 : 좋은사람들
특징 : 영광 법성포에서 서쪽 해상으로 약 28km 지점에 위치한 섬으로 섬만으로 이루어진 낙월면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섬에 소나무가 많고 섬의 형태가 사람의 귀와 같다하여 ‘송이도(松耳島)’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유래는 알 수 없지만 고려시대에는 ‘남사자도’로 불리기도 했단다. 섬은 희귀동식물의 서식처로 알려져 있다. 전국 최대 규모로 알려진 ‘왕소사나무군락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부속도서인 칠산도에는 세계적인 희귀조 노랑부리백로(천연기념물 361)와 수달(천연기념물 330)이 집단 서식하고 있단다. 특히 4km에 이르는 몽돌(조약돌) 해수욕장은 송이도만이 갖고 있는 자랑거리다. 또한 송이도에서 각이도 사이에는 바닷물이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이 나타난다. 바닷길이 열리면 각이도까지 도보로 왕복할 수 있으며, 물이 빠지면 맛조개 등이 많이 잡혀 갯벌체험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해식애로 이루어진 작은데기와 큰데기도 잠시의 눈요깃거리로는 충분하다. 그러나 미숙해 보이는 행정력은 흠이라 하겠다. 그런 좋은 여건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등산로야 찾는 사람들이 적어서 그랬다고 쳐도, 이정표 하나 없는 곳에서 어떻게 여행을 할 수 있겠는가.
▼ 찾아오는 방법 : 만지도로 들어가려면 일단은 영광군 염산면에 위치한 향화도항까지 와야만 한다. 이곳에서 만지도로 들어가는 여객선이 출발하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너른 주차장에 내리면 영광의 랜드마크라는 ‘칠산타워’가 길손을 반긴다. 올해 문을 열었는데 높이가 111m에 이른다니 전남지역의 전망대 가운데 가장 높다 하겠다. 땅끝전망대(39.5m)와 완도타워(76m), 정남진전망대(45.9m), 고흥우주발사대(52m), 진도타워(60m) 등 다른 전망대들은 100m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타워는 1·2층은 매점과 특산물판매장, 활선어판매장, 향토음식점 등이 입주해 있고 3층엔 하이라이트인 ‘전망대’가 있다. 송이도나 낙월도로 들어가는 여객선의 매표소도 1층에 들어있다. 참고로 향화도는 과거에 갯벌로 연결된 섬이었으나 현재는 간척지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 타워 앞에 ‘영광군 관광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염산면 앞바다에 떠있는 송이도는 두 곳에서 뱃길이 연결되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홍농읍의 계마항은 28,5㎞가 떨어져 있고 염산면 향화도까지의 거리는 30.5㎞란다. 하지만 여객선은 향화도항에서 출발한다니 참조한다. 그건 그렇고 안내판은 송이도의 ‘몽돌해수욕장’을 ‘영광9경(靈光九景)’의 하나(8경)로 꼽고 있다. 공모와 설문조사를 거친 결과이니 경관만 빼어난 것이 아니라 인지도 또한 높다는 얘기일 것이다. 나머지 8경은 백수해안도로와 4대 종교문화유적지(불교·원불교·천주교·기독교), 불갑사, 칠산타워, 가마미해수욕장, 불갑저수지 수변공원, 숲쟁이꽃동산, 천일염전 등이다. 참고로 영광군에서는 먹을거리인 9미(九味 : 굴비한정식·간장게장·황금보리돼지·보리새우·덕자찜·황토갯벌장어·청보리한우·보리떡(빵)·백합)와 살거리인 9품(九品 : 영광굴비·모싯잎송편·천일염·대마할머니막걸리·간척지쌀·태청딸기·태양초고추·찰보리쌀·설도젓갈)도 함께 선정했다고 한다. 경관 좋은 곳에서 놀면서 맛있는 음식도 사먹고, 돌아갈 때는 특산품들을 사가라는 의미일 것이다.
▼ 송이도까지는 유진해운 소속의 차도선(車渡船)인 ‘칠산페리호’가 하루 2회 왕복 운항한다. 향화도에서 오전 8시와 오후 2시30분(동절기 오후 2시)에 출발한다. 배의 뒤로 보이는 다리는 무안군 해제면과 영광군 염산면을 잇는 ‘칠산대교(七山大橋)’인데 연말 개통을 앞두고 마무리공사가 한창이다.
▼ 느려터진 배에서는 할 일도 없다. 마침 바닥도 온돌이라서 부족한 잠을 청하기로 했다. 그리고 90분 정도 되는 뱃시간을 늘어지게 자고나자 어느덧 송이도에 도착한다. 3.68㎢의 면적에 해안선 길이도 15㎞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그러나 낙월면에서는 두 번째로 큰 섬이란다. 선사시대 조개무지와 무문토기 조각 등이 발견될 정도로 유서 또한 깊다. 100명쯤 되는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김 양식)에 종사하나 요즘은 관광서비스업도 늘어가는 추세라 한다. 주말이면 인근 광주 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 선착장에서 내리면 ‘아름다운 섬, 송이도’라고 적힌 표지석이 여행객들을 반긴다.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여행들로 항상 붐비는 곳이다. 오른편 해안에는 모래는 없고 대신에 몽돌만 잔뜩 깔려있다. 그것도 하얀색 돌맹이뿐이다. 송이도가 자랑하는 몽돌해수욕장이라는데, 오랜 세월 동안 파도가 깎아낸 부드럽고 동글동글한 모양의 조약돌이 끝없이 펼쳐지면서 색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마을표지석 앞에서 길을 좌우로 나뉜다. 왼편은 포구와 내연발전소로 이어지고, 오른쪽이 마을로 가는 길이다. 해수욕장도 물론 오른편이다.
▼ 방파제의 왼편은 송이도항이 자리 잡았다. 작은 어선 서너 척이 정박하고 있을 뿐인 한적한 포구이다. 송이도 인근의 바다는 한때 ‘칠산어장’이라는 만선(滿船)의 대명사로 불리었을 정도로 황금어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먼 옛날얘기가 되어 버렸단다. 저런 풍경이 송이도의 현실인 셈이다. 참고로 송이도 인근 바다는 하늘이 내려준 생선, 즉 조기의 최대 산란장이었다. 임금님에게 보내는 진상품으로 유명한 영광 굴비는 이 칠산바다 주변에서 잡혔다는데 그 칠산바다의 중심에 있는 섬이 송이도이다. 1960년대 조기가 많이 잡힐 때 칠산바다는 조기를 잡는 어선들과, 이들이 잡은 조기를 사들여 운반하는 상선들이 바다를 뒤덮여 불야성을 이루었다지만 오늘날 송이도 주변에서 그런 모습은 볼 수 없다. 어족 자원을 보호하지 못했던 탓일까?
▼ 마을 표지석의 뒤 언덕에는 광주대학교와 인성고등학교의 설립자인 김인곤(金仁坤) 박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곳 송이도에서 태어난 그는 어렵게 모은 전 재산을 육영사업에 쏟은 인물이다. 그는 또 13·14·15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인이기도 했다. 특히 DJP 단일화로 DJ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 포구를 벗어나 첫 번째로 마주치는 마을은 ‘큰말’이다. 한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촌(大村)’이라고 부른단다. 1973년도까지만 해도 송이도에는 큰말, 작은말, 외미, 양골 등에서 107가구 522명의 주민이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큰말과 작은말만 남아있는 등 인구가 대폭 줄어들었단다.
▼ 마을로 향하는데 ‘열부진주강유인실적비(烈婦晉州姜孺人實蹟碑)라고 쓰인 빗돌을 모신 비각이 길가에 세워져 있다. 안에는 다른 열녀인 인동 장씨(仁同張氏)의 비석도 모셔져 있다. 하지만 그녀들의 행실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 너무너무 잘 가꾸어진 집이 있어 카메라에 담아봤다. 문설주 노릇을 하고 있는 바위에 올려놓은 돌맹이에는 ’꽃가람‘이라고 쓰여 있다. ’가람‘이란 강(江)을 나타내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사원의 건축물을 가람(伽藍)이라 일컫기도 한다. 주인장은 과연 어떤 의미로 사용했을까? 오른편 문설주의 돌맹이는 ’Welcome to my house’란다. 예쁜 외모를 보는 것만으로도 손님노릇을 하고 싶어지니 어찌할까나.
▼ 마을은 길이 복잡하게 나있다. 그러나 어디로 가든 다 만나게 되어 있고 또 거리도 짧은 편이다. 집들은 산재해 있는 편이고 가끔은 폐가도 보인다. 그렇게 좀 걷다보니 법성포초등학교 송이분교가 나온다. 하지만 학교는 문을 닫은 지 이미 오래이다. 그런데도 빈집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곱디고운 잔디가 운동장에 깔려있는가 하면 건물 또한 티 하나 없이 깔끔했기 때문이다. 하얀 석고로 된 두 개의 조형물도 새것같이 또렷했다. 리모델링해서 ‘송이도 친환경가족펜션’이라는 숙박시설로 활용하고 있는 덕분이란다.
▼ 학교 앞에 펜션의 ‘시설 안내판’이 세워져 있으니 꼼꼼히 살펴보고 가길 권한다. 펜션의 건물위치도와 함께 송이도의 지도를 그려 넣었기 때문이다. 처삼촌 벌초하듯이 지나쳐버린 우리 부부는 많은 구간을 중복(重複)으로 걸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세심히 살폈더라면 무장등이나 왕산봉을 올라보려는 꿈도 애초부터 포기해 버렸을 것이다. 하긴 그랬더라도 이정표 하나 없는 곳에서 길을 제대로 들어선다는 보장은 없었겠지만 말이다.
▼ 학교 앞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 잠시 후 마을을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산자락으로 파고든다. 임도인 셈인데 시멘트로 포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차량 두 대가 비켜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하다. 뒤돌아보기라도 할라치면 마을이 한눈에 보인다. 양쪽의 산을 낀 마을이 포근하게 자리를 잡았는데 섬의 크기에 비해 작다는 느낌이다. 네 개의 마을 가운데 두 개만 남았는데도 저 정도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 25분 만에 도착한 고갯마루에는 정수장이 들어앉았다. 이곳에서 길은 두 갈래 나뉜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민머리갯벌로 연결되고, 큰내끼와 작은내끼로 가려면 오른편 임도로 들어서야 한다. 민머리갯벌을 둘러본 다음에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얘기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도 있다. 이곳 송이도의 명물인 ‘왕소사나무군락지’로 들어가는 길이 정수장 옆으로 나있기 때문이다. 샛길을 따라 10분 정도를 들어가면 만날 수 있다는데, 소사나무를 신성시 하는 송이도 사람들은 숲에 터를 닦고 산제(山祭)를 지내왔단다. 1970년대 땔감이 귀했던 시절 주변 산들이 모두 민둥산으로 변했을 때도 소사나무군락지가 무사했던 원인이다. 켜켜이 서린 믿음이 수백 년 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남겨둔 셈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그냥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숲의 위치를 모른데다 이정표까지 세워져 있지 않으니 어떻게 찾아갈 수 있겠는가.
▼ 고개를 넘자마자 모세의 기적으로 유명한 ‘각이도’가 나타난다. 뒤에 보이는 큰 섬이 ‘대각이도’고, 그 앞은 지금은 무인도가 되어버린 ‘소각이도’이다. 오른쪽에 있는 작은 섬은 각이도에 딸린 무인도다.
▼ 정수장에서 몇 걸음 더 내려가자 오른편에 ‘송이저수지’가 있다. 산악회에서 나누어준 지도에는 ‘무장등’으로 가는 길이 이 저수지의 오른편으로 나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상수원인 저수지는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그렇다고 우회로가 따로 나있지도 않은 걸 보면 지도가 잘못 그려져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참고로 송이도에는 아직도 초분(草墳)을 하는 풍습이 남아 있다고 한다. 정수장에서 민머리 갯벌로 내려가는 부근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했는데 직접 확인해 보지는 못했다. 초분은 일종의 풀무덤으로 시신 또는 관을 땅 위에 올려놓은 뒤 짚이나 풀 등으로 엮은 이엉을 덮어 두었다가, 2~3년 후 탈곡된 뼈를 씻어(씻골) 땅에 묻는 무덤을 말한다.
▼ 10분쯤 내려갔을까 ‘민머리갯벌’이 나타난다. 건너편 각이도까지 약 4.5km(폭 250m)의 바닷길이 열리는데, 이 ‘모세의 기적’을 보기 위해 일부러 찾는 사람들도 있단다. 갯벌로 내려가는 길가에는 여러 대의 경운기가 주차되어 있었다. 각이도까지의 바닷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바닷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모래등’에 지천으로 널려있다는 맛조개를 잡기 위해서이다. 주민들이 갯벌을 포함한 이 일대를 '보물창고'라고도 부른다면 대충 이해가 갈 것이다. 송이도는 ‘다이어트 식품(저칼로리이지만 칼숨과 철분, 단백질이 풍부하단다)’으로 인기 만점인 맛조개의 주산지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맛조개는 크기가 크고 살이 부드러운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데치지 않고 회로 바로 먹어도 맛이 탁월하단다. 저칼로리인데다 칼슘과 철분, 단백질까지 풍부해서 미식가들도 많이 찾는단다. 참! 옛날 이 부근에 ‘이미마을’이 있었다고 했다. 마을이 후미진 꼬리 부분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하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창고 같은 건물 하나와 방치된 수영장만이 시름을 달래고 있을 따름이었다.
▼ 바닷가에 내려서자 너른 갯벌이 펼쳐진다. 바닷물이 빠져 질퍽해진 갯벌은 온통 부드러운 진흙으로 뒤덮여 있다. 천연 머드팩(mud pack)이라 할 수 있겠다. 갯벌 너머는 ‘모래등(풀등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이라 불린다. 바닷물이 빠지면 등을 드러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른 한편으론 조개의 한 종류인 맛이 많이 난다고 하여 ‘맛등’이라고도 불린단다. 이 일대에서 백합과 맛조개, 동죽이 채취되며, 각 종 갯벌체험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 정수장까지 되돌아 나와 이번에는 오른편 임도를 따른다.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길을 따라 2~3분쯤 진행했을까 왼편으로 임도 하나가 나뉜다. 이정표가 없어 그냥 지나쳐버렸지만 어쩌면 ‘무장등’으로 가는 들머리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해도 문제는 있다. 이 길을 따를 경우에는 아까 보았던 송이저수지 위의 계곡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야만 무장등 능선으로 연결될 것 같기 때문이다.
▼ 정수장에서 10분 정도를 더 걷자 삼거리가 나온다. 앞서가던 일행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게 보인다. 이정표가 없으니 어디로 가야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은 왼편으로 진행하고 본다. 걸어온 길을 가운데에 놓고 왼편으로 가야만 작은내끼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 4분 후, 오른편으로 임도 하나가 나뉜다. 비포장인데 일단은 들어서고 본다. ‘무장등(147m)’으로 오르는 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네이버(Naver) 지도도 비슷한 지점을 가리키니 망설일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일행들도 하나같이 무장들으로 가는 길이라고 격려한다. 하지만 뒤따르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작은내끼를 다녀오는 길에 오르려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무장등’이라는 자신의 믿음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이곳 송이도에는 지금 오르려고 하는 무장등 외에도 왕산봉(161m)과 내막봉(111m)이라는 산봉우리가 더 있다.
▼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라 10분 남짓 진행하자 산꼭대기가 나온다. 그런데 이곳이 ‘무장등’이라는 그 어떤 표식도 눈에 띄지 않는다. 정상석이나 이정표는 물론이고 그 흔한 리본하나 매달려 있지 않은 것이다. 나중에 ‘친환경 가족펜션’에서 세워놓은 송이도 지도를 확인해보니 무장등은 다른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다음(Daum)의 지도도 비슷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까 펜션 앞을 지날 때 사진만 찍지 말고 지도도 좀 꼼꼼히 살펴봤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무장등을 찾아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겠지만 말이다. 등산로는 물론이고 들머리가 어디서 열리는지도 나타나 있지 않으니 무슨 수로 찾아갈 수 있겠는가.
▼ 임도는 꼭대기를 넘지만 우리 부부는 되돌아 나오기로 했다. 계속해서 포장임도를 따르고 있는 일행들과 행동을 같이 하기 위해서이다. 가는 길목에 잘 지어진 정자가 보인다. 헛고생한 다리가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오는데 마침 잘되었다.
▼ 정자를 지나면서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작은내끼’라 불리는 작은 몽돌해안에 내려선다. 아까 배에서 내리자마자 보았던 몽돌들 보다는 굵기가 꽤 굵어졌다. 생김새 또한 거친 모양새이다. 삼거리에서 이곳 작은내끼까지는 35분이 걸렸다. 아까 무장등으로 여겨지는 봉우리까지 올라갔다 오는데 15분 정도가 걸렸으니 실제로는 20분이 걸린 셈이다.
▼ 그렇다고 해서 보잘 것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조약돌의 질은 좀 떨어지지만 해식애(海蝕崖)가 그 부족함을 채워주고도 남기 때문이다. 거대하지도 그렇다고 으스스할 정도로 날카롭지도 않지만 잠깐의 눈요깃거리로는 부족함이 없는 바위절벽이 몽돌해안의 좌우로 기다랗게 펼쳐진다.
▼ 이곳 ‘작은내끼’도 낙조(落照)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누군가는 송이도의 자랑거리를 늘어놓으면서 그중 제일은 낙조라고 했다. 서해안의 작은 섬들 너머로 지는 노을이 매우 이국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겨울철 눈발이 날리는 송이도 앞바다로 떨어지는 노을은 이곳 섬에서만 만끽 할 수 있는 것으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환상적인 풍경화 그 자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행운은 주어지지 않았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섬을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오른편 길로 향한다. 5분쯤 걸었을까 이번에는 사거리가 나온다. 정자를 짓고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이번에도 왼편으로 향하고 본다. 눈대중으로 ‘큰내끼’가 왼편에 있을 것 같아서이다.
▼ 5~6분쯤 걸었을까 ‘큰내끼’를 코앞에다 둔 지점에서 왼편으로 길이 나뉜다. 상당히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 왼편으로 접어들어 5분쯤 오르자 전망대가 지어져 있다. 수십 마리의 염소들이 우리를 피해 도망치는 걸 보면 그네들에겐 쉼터인 모양이다. 아무튼 임도는 계속해서 비탈진 산자락으로 파고든다. 이 길은 아까 우리 부부가 ‘무장등’이라고 여겼던 산봉우리로 연결된다. 부득부득 끝까지 올라갔다 내려온 일행들이 내린 결론이다.
▼ 전망대에 서면 발아래에는 해식애로 이루어진 해안선이 펼쳐지고 눈이라도 들라치면 안마도와 오도, 대석만도 등이 잘 조망된다.
▼ 전망대에서 내려와 이번에는 ‘큰내끼’로 내려선다. 밀물과 썰물에 따라 냇가가 드러나고 덮인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는데 아까 들렀던 ‘작은내끼’와 규모의 차이는 별로 없어 보인다. 자갈의 크기도 비슷하다. 다만 해식애(海蝕崖)가 아까보다는 훨씬 더 커졌다. 해안가 공터에는 캠핑카가 주차되어 있다. 송이도의 자랑거리라는 일몰이라도 보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화장실도 설치되어 있지 않은데다, 근처에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수원지도 눈에 띄지 않는다.
▼ 바위절벽의 규모가 커지다보니 해식동굴도 생겨났다. 이 동굴은 기암괴석을 액자로 두른 듯한 풍경이 일품이다. 그래선지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에는 어김없이 들어가 있다. 아무튼 누군가는 저 바위를 일러 ‘거북바위’라 했었다. 금세라도 물가로 기어오를 것 같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내 눈에는 촛대바위에 더 가까워 보인다. 까짓 서로 다르게 보인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무학대사도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豕眼見唯豕, 佛眼見唯佛)’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 큰내끼를 빠져나와 이번에는 왼편으로 향한다. 어디로 갈까를 놓고 망설이는데, 캠핑카 부부가 아까 우리가 걸어왔던 길과 만나게 된다고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을 따라 10분 남짓 진행하자 사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오른편으로 진행한다.
▼ 이후부터는 능선길이 이어진다.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대신 눈에 담을만한 볼거리도 없다. 그렇게 15분 남짓 걷다보면 아까 지나왔던 쉼터 사거리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는 큰내끼와 반대방향으로 진행한다.
▼ 10분쯤 걸었을까 오른편에 헬기장이 만들어져 있다. 왼편에는 체육시설도 들어서 있다. ‘양골마을’이 있었던 곳일 게다.
▼ 이젠 해안도로를 따른다. 대략 2㎞정도 되는 거리인데 왼쪽으로 바다를 끼고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S자형의 해안도로에서는 칠산도가 뚜렷하게 보인다. 난간 아래의 해안은 바위와 커다란 돌들로 이루어져 있고, 해식으로 생긴 동굴과 절리층이 잘 발달된 해안절벽은 경관이 수려하다.
▼ 바다 건너에 보이는 섬들은 대노인도와 소노인도일 것이다. 그 뒤는 ‘칠산 앞바다’라는 조기어장의 대명사를 만들어냈던 ‘칠산도’일 것이고 말이다. 조기가 사라지다시피한 칠산도는 이제 천연기념물들이 터를 잡았다고 한다. 크기가 비슷한 일곱 개 섬에 세계적인 희귀조 노랑부리백로(천연기념물 361호)와 수달(천연기념물 330호)이 서식하고 있단다. 칠산도에 무리지어 산다는 괭이갈매기도 매력적이다. 환경부에서 전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을 선정했는데 살아있는 생물체 중 이곳 괭이갈매기 소리가 1위로 선정되었을 정도란다.
▼ 길가 바위들은 하나 같이 차돌(石英, quartz)이다. 도자기의 원료로 사용되는 규석(硅石, silica)의 일종인데 이따가 만나게 될 몽돌해안의 돌들도 같은 성분이란다. 아무튼 바위가 흰색을 띄는 걸로 보아 순도가 높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긴 40년 전 까지만 해도 폭약을 이용해 규석을 채취하던 광산이 있었다니 이를 말이겠는가.
▼ 모퉁이를 돌아서자 진행방향 저만큼에 ‘작은마을(小村)’이 나타난다. 모래해변을 끼고 있는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래서였을까, 2003년 해양수산부에 의해 ‘아름다운 어촌 100선’마을로 선정되기도 했고, 2005년에는 ‘6월의 어촌’으로도 선정되었다고 한다.
▼ 마을로 들어서기 직전 만나는 팽나무 두어 그루가 시선을 끈다. 한 그루는 수령이 천 년을 넘겼을 것이라고 한다. 육지에서도 천 년 수령의 나무를 찾기는 힘들다. 정확한 수령은 측정해 보아야 하겠지만 보통은 아닌 게 분명하다. 팽나무 아래는 작은 공원을 만들어 놓았다. 정자와 파고라, 벤치 외에도 데크와 식수대까지 갖춘 걸 보면 야영장이 아닐까 싶다.
▼ 모퉁이를 돌아서면 하얀 자갈마당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송이도를 세상에 알린 몽돌해수욕장이다. 맨발로 걸어도 감촉이 좋을 정도로 아주 작고 부드러운 몽돌들이 3km나 깔려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콩돌 해수욕장’이라고도 부른단다. 하지만 이곳 송이도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몽돌의 색깔이다. 전국에서 백령도해안과 함께 유일하게 하얀색 몽돌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오염되지 않은 푸른 바다와 하얀 조약돌이 깔려있는 30ha의 광대한 해변은 서해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 몽돌위에 주저앉는다. 돌이 깨끗하니 옷 걱정도 없다. 공기놀이 흉내도 해보다가 이번엔 자갈밭에 드러눕는다. 강한 햇빛에 달구어진 돌에서 발생하는 원적외선은 천연의 치료제라고 하지 않았던가. 세균 박멸효과와 성인병 예방, 신경통에 좋다니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이런 게 바로 행복인가 보다. 그 행복은 또 다른 여유를 가져다준다. 바다와 쉴 새 없이 부딪치는 몽돌들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리곤 쉼 없이 달려가는 우리의 인생과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난 돌이 점점 둥근 돌로 변하듯, 우리의 인생도 둥글둥글해지니 말이다.
▼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에 닳고 닳은 몽돌은 아기 피부처럼 매끄럽다. 공깃돌놀이에 딱 좋은 크기부터 두 손으로 들기 어려울 만큼 큼지막한 것까지 각기 다른 돌멩이가 산을 이룬다. 뭍과의 경계에는 보행을 위한 예쁜 데크 길이 놓였지만 사람들은 다들 몽돌 위를 걷는다. 하지만 맨발은 아니다. 천연 지압보다는 낭만이 우선인 모양이다. 아니 맨발로 걷기에는 철이 일러서인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송이도의 몽돌은 반출을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송이도의 아름다운 해변을 그대로 간직하기 위해서란다. 예쁜 돌을 골라 갖고 놀다가도 돌아갈 때는 하나도 남김없이 해변에 던져두고 가야 할 일이다.
▼ 몽돌해변에서는 송이도와 칠산 앞바다로 오고가는 어선과 이를 따르는 갈매기들의 비행을 감상할 수 있다.
♧ 에필로그(epilogue), 이번 송이도 여행은 즐거움과 아쉬움이 함께했다. 아쉬움보다는 즐거움이 훨씬 더 컸지만 말이다. 그중 아름다운 경관들을 보는 즐거움이 가장 컸다. 몽돌해수욕장과 해식애로 이루어진 해안선, 그리고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각이도까지의 드넓은 갯벌은 그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빼어난 풍경이었다. 두 번째 즐거움은 점심식사를 했던 ‘송이섬펜션(010-8756-9114)’의 주인장이 보여준 친절이라 하겠다. 섬내 유일한 식당이라서 들어간 곳이지만 각종 채소와 해산물을 이용한 밥상은 대도시 맛집보다도 더 맛깔스러웠다.
그뿐만이 아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갯벌로 나간 집사람이 삐뚤이고동으로 여겨지는 바다고동을 한 대접이나 잡아왔는데 싫어하는 기색도 없이 삶아준 것이다. 덕분에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안주거리가 될 수 있었다. 일행들까지 불러 모아 술판을 벌렸는데 그게 보기 좋았는지 인정 많은 주인장께서 전날 자기네가 잡은 것이라면서 더 크고 실한 바다고동을 한 사발이나 삶아다 주셨다. 그 분위기에 녹은 내가 만취해버렸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영광군청의 행정은 못내 아쉬웠다. 요즘은 섬들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여행객들을 맞으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게 대세이다. 그 일환으로 경관 좋은 곳에 산책로를 개설하는 한편 숙소 등의 편의시설들을 확충한다. 이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이정표를 세우는 일이다. 그래야 초행(初行)에 나선 여행객들이 원하는 곳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곳 송이도에는 이정표가 전무(全無)했다. 덕분에 우린 물때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약수 샘물과 천연자연림으로 지정된 ‘왕소사나무 군락’은 물론이고 탐방기에 꼭 등장하는 동굴도 둘러보지 못했다. 이정표가 없다보니 그 위치가 어디쯤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그래도 나는 인심 좋은 송이도가 좋다. 미진한 행정력 때문에 내팽개쳤던 송이도에 대한 이미지를 한꺼번에 싹 되돌려 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더 찾아오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관에 이렇게 넘치는 인심이 있으니 어찌 다시 찾지 않고 배기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