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너와 나의 마라톤~~~ 풀코스 마라톤 출전
그 무덥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바람이 솔솔 불고 앞산 뒷산에 군데군데
단풍이 들어갈 무렵, 거의 1년 가까이 준비를 한 풀코스 마라톤대회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춘천 마라톤 대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다음날 아침
청량리 역에서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미래와 함께 기차에 몸을 싣고
춘천으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들.
대학 때 자주 갔던 대성리도 지나고 강촌도 지나고 그렇게 열차는 춘천을 향해
달려갔다. 객차 내 승객들 중에는 춘천마라톤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다들 들떠 있고 활기찬 분위기다. 초조해하는 내 마음을 감추기라도
하듯 나도 미소를 띠어보았다.
미래가 말을 건넸다. “ 오빠 컨디션 어때~~ 자신 있는 거지.” “
그럼 연습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내가 기어코 기어서라도 들어온다.”
그러면서 속으로 잘 할 수 있을 거야. 그래 멋지게 완주를 하는 거야.
아자! 아자! ~~ 하고 마음을 굳게 먹으며 다짐에 다짐을 했다.
운동장 입구로 들어가는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에너지가 솟구치는 느낌이
들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한 느낌. 기분 좋은 느낌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전이되고 감동의 눈물이 찔끔 나오려고 했다.
운동장으로 들어가는 수많은 러너들. 전국에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가에 놀랐고 이들 모두가 오늘 풀코스 마라톤을 달리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상하게도 몸에 자꾸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진다.
발 까락에 힘을 들어가는 것이 느껴지며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자신감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나라는 존재가 멋져 보였고 나 스스로가 대단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라톤 복장으로 갈아 입고 옷을 맡기고 나서 운동장 안으로 들어갔다. 운동장
안에는 열기가 가득했다. 무대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와 함께 스트레칭을
하는 러너들. 또 운동장 트랙을 가볍게 달리면서 몸을 풀고 있는 러너들.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러너들. 동호회 회원들끼리 줄을 맞추어 달리는
러너들. 언뜻 보기에는 한가로운 듯 하면서도 긴장감이 맴도는 그런 분위기의
모습이랄까.
출발시간이 가까워 오면서 주최 측에서 선수들에게 집결하라는 방송이 나온다.
나의 배번호는 F그룹이다. 쭉 늘어선 대열. 도로를 다 채우고도 부족해서
인도까지 사람들이 가득차 있다. 참가선수만 족히 2만 명은 넘어 보였다.
9시 정각이 되어 드디어 출발신호가 울렸다. 총알같이 튀어나가는 등록선수들.
그리고 뒤를 이어 달리는 기록이 빠른 선수들. 그리고 연이어 달리는 수많은
러너들........ 나의 그룹은 거의 30분이 다 되어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출발 스타트 라인을 통과하는데 관중들의 박수소리와 음악소리가 기분을 업시켜
주었고 42km를 달리고 다시 이 곳 피니쉬 라인에 들어올 나의 모습을 생각하니
자꾸 흥분이 되었다. 인도에서 미래가 나에게 손을 흔들며 뭐라고 큰소리로
외쳐댄다.
“오빠! 꼭 완주해야 돼~” 하는 소리인 것 같다. “그럼 완주 해야지.”
천천히 달리기로 했다. 그러나 몸은 너무 가벼웠고 날아갈 것 같았다. 그래도 억제를
했다. 후반을 생각해서 천천히 달리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출발점을 빠져나와
500미터를 달리고 멀리 앞쪽을 보니 끝이 없이 길게 늘어진 러너들의 모습이
거리를 꽉 메우고 있었다. 하나의 물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런 모습은 강물이 힘차게 흘러가는 그런 광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물결~ 그 물 결속에 내가 있고 그렇게 하나가 되어 우리는 달려간다.
장장 42.195km를. 언덕길을 힘차게 올라 우측 길로 접어들어 조금 지나니
내리막 길이 나온다. 내리막길에선 천천히 달려 내려갔다.
“자네 말이야. 마라톤을 성공적으로 완주하기 위한 비법을 하나 가르쳐 주지.
그건 말이야 내리막길에서 빨리 달리지 않는 거야. 대부분 러너들이 오르막길에선
힘을 비축하기 위해 천천히 달린다는 것을 알지만 내리막길에서는 오르막에서
손실한 시간들을 만회하기 위해 빨리 달리지.
그러나 내리막에서 빨리 달리면 평지에 도달했을 때 빨리 달릴 수가 없고 후반에는
오르막에서 약해진 근육으로 인해 내리막에서 빨리 달리게 되면 평지에 이르렀을 때
근육이 경직되어 쥐가 난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그래서 절대 내리막에서 빨리 달리지 말고 대신 허리를 들어주고 발 뒤꿈치로
용수철을 밟는다는 느낌으로 몸을 추진시켜 주면서,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가빠졌던
호흡과 근육을 회복시킨다는 생각으로 달리는 게 좋을 거야. “
아버님 말씀대로 가벼운 마음으로 자세를 올바르게 하여 일정한 속도로 달려가는데
많은 주자들이 나를 추월을 해 갔다. 그러나 평지 길에 이르자 나를 앞서갔던
주자들이 또다시 나와 합류가 되었다.
이때 앞에서부터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와~ 하는 함성소리는 앞 주자들로부터
시작되어 뒤로 계속 전달이 되었고 그 함성소리는 파도처럼 그렇게 마라토너들의
물결을 타고 뒤로~ 뒤로 메아리쳤다.
10km쯤 달렸을까. 몸에 부하가 느껴졌으나 아직은 달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수대에서 물을 한 모금 먹고 또 앞으로 달려갔다. 시계를 보니 1시간이 채 안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