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랑은 미국인이다.
이민을 와서 미국 시민권을 딴 미국인이 아니고 미국에서 태어난
토종 미국인으로서 아버지는 일본인, 어머니는 매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난 백인이다.
일본계 혼혈아인데 토종 미국인이라는 말을 하니까 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신랑을 비롯해 신랑의 아버지와 할머니까지 미국에서 태어났고
아버지 쪽 친척들 중에 일본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기
때문에 문화적으로는 미국인에 가깝다.
그래도 신랑에겐 동양적인 면이 생각보다 많아서 가끔 나를 놀라게
하는데 아마도 신랑과 그 집 식구들이 모두 하와이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하와이에서 3년 가까이 살아봤는데 혹시 미국의 다른 지역은
가보지 못하고 신혼 여행 같은 걸로 하와이에만 와 본 사람들이
있다면 절대 그것만으로 미국을 봤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
하와이는 굉장히 미국화 된 동양의 어느 도시라고 하는 편이 더 맞다.
동양인에 대한 차별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백인이 차별을 받을 수
있는 곳이 하와이이다.
내가 하와이에 살던 98년부터 올 여름까지도 하와이 주지사는
필리핀 사람, 주 대법원장은 한국 사람, 그리고 연방 상원 및
하원 의원의 대다수가 동양계였다.
2000년 3월에 신랑과 결혼을 했다.
신랑은 대학을 나와 같이 워싱턴주에서 다녔을 뿐 외국은커녕 미국
여행도 나보다 적게 한 사람이었다.
나는 미국에 온 지 10년 동안 한번도 나가보지 못한 한국에 가보고
싶기도 하고 또 결혼을 했으니 친지들께 인사도 해야할 것 같아서
신혼여행을 한국으로 가자고 꼬셨다.
사실 한국으로 신혼 여행을 가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결혼 앨범
을 만드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결혼 앨범 만들어 가지고 오는 신
혼 부부들 보면서 얼마나 부러워했던지...
미국에서 그 정도 크기의 앨범에, 액자, 드레스, 메이크업까지 하려
면 한국 왕복 비행기표를 빼고도 남을 것이다. 물론 해주는 곳도
없지만... (한국 사람이 많이 사는 LA에는 있는 것 같다)
신혼 여행 기간은 10일.
결혼 앨범을 해주는 스튜디오에 물어보니 촬영하고 앨범이 나올 때까지
15일에서 한달 정도는 걸린다는데 외국에서 왔다니까 최대한 빨리
해주겠다고 해서 예약을 했다.
결혼식 다음날 호놀룰루 국제 공항에서 대한 항공을 탔다.
10년 전 미국에 올 때 빼고는 처음으로 타보는 국제선이다.
신랑은 비행기가 출발하자마자 잠이 들어서 세상 모르고 자기
시작했다.
중간에 식사가 나왔는데 신랑은 비빔밥을 먹어보더니 여태까지 먹어
본 기내식 중에서 제일 맛있다고 좋아했다.
기내에서 나누어 준 조그만 메뉴표에는 대한항공 기내식이 맛있는 걸로
1위에 뽑혔다던가 하는 말도 적혀 있었는데 그 말이 맞다면서 칭찬을
하는 것이다.
입맛 까다로운 신랑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불고기와 비빔밥이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밥을 먹고 신랑은 다시 잠이 들었고 (신혼 부부들은 신혼 여행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무지 닭살이라던데 우린 왜 이런지 몰라...)나는
잡지를 보다가 시작한 지 한참이 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이어폰을 끼고 듣는데 영어와 한국어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미국 영화였으므로 영어를 선택해서 보고 있었다.
어느 틈에 깼는지 신랑은 내가 영화를 보고 있자 자기도 이어폰을
끼고 옆에서 영화를 보기 시작한다.
디즈니에서 심심하면 만들어서 내 놓는 동물 사랑의 주제로 만든
영화였다.
어린 아이가 곰과 친구가 되는 내용이었는데 중간에
어른들이 아이와 곰을 떼어놓는 장면이었다.
아이는 어른에게 업혀 끌려가면서 "No! No! No!"를 외치고 있었다.
갑자기 신랑이 내 이어폰을 내리더니 귀에 대고 한국말을 한다.
신랑: 시로, 시로
싫어‚라는 말은 신랑이 알아듣는 몇 안 되는 한국말 중에 하나이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신랑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신랑은 더 신이 났는지 시로,시로를 한번 더 하는 것이었다.
신랑이 꿈을 잘못 꾼 게로군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스크린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런 내 생각을 모르는지 신랑은 내 어깨를 톡톡 치더니 한번 더
시범을 보인다.
신랑: I know 시로, 시로, 시로
자기가 싫어 라는 말을 안다는 게 새삼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그러더니 내가 끼고 있던 이어폰을 자기 귀에 대보고는 갑자기
놀라는 표정이다.
신랑: 왜 니 이어폰에서는 영어가 나와?
니나: 뭐? 그럼 여태 뭐 들었어?
신랑 이어폰을 대보니 한국말이 나오고 있었다.
니나: 왜 한국말로 듣고 있어? 채널을 2번에선 영어가 나오는데.
신랑은 영어 채널이 있는 줄은 모르고 대한항공이니까 한국말만
나온다고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못 알아듣는 한국말이지만 귀에 꽂고 영화를 보는데
싫어, 싫어, 하고 알아듣는 말이 나오니까 신이 나서 내게 자랑을
했나보다
시로, 시로 때문에 웃다가 영화를 마저 보고 나서 신랑은 다시
잠이 들었다. (우리 신혼부부 맞냐?)
열 한 시간 정도 비행기를 탔는데 타자마자 식사를 한번 주고는
내리기 직전까지 식사가 나오지 않아서 너무 배고팠다.
곯아 떨어졌던 신랑은 배가 고파서 잠이 깼을 정도였다. (너무하는군)
두 번째로 나온 기내식은 배가 무지 고픈 상태에서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맛이 없었다.
신랑이 아까 최고라고 했던 말을 취소했다. (-_-)
김포 공항이 가까워오자 비행기는 점점 낮게 날기 시작해 아파트
단지들과 도로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신랑은 벌써 질린 표정이다.
어떻게 된 도시가 끝도 없냐고 했다.
미국은 땅이 넓어서 그렇겠지만 LA같은 큰 도시도 조금만 운전하면
허허벌판이 나와서 도시의 끝임을 알게 되는데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서울은 정말이지 끝이 안보이게 빽빽했다.
하와이 좁은 섬에서만 살았던 신랑 눈에는 더욱 서울이 크게 느껴졌
을 것이다.
사실 하와이 섬 중에서 우리가 살던 호놀룰루가 있는 오아후 섬은
마우이나 빅 아일랜드 보다도 작다.
호놀룰루를 제외한 동네는 인구도 적다.
우리 시댁에서 내가 일하던 직장까지 운전하면 15분 정도 걸리고
백화점까지는 3분, 우체국 3분, 바닷가 10분, 공원 10분, 공항 20분,
와이키키 10분 정도가 걸린다.
차에 기름을 꽉 채우면 한 열흘에서 2주일 정도는 쓰는 것 같았다.
공항에 내리자 걱정했던 것만큼 춥지 않아서 우선 다행이었다.
마중 나오신 작은 아버지, 어머니 말씀이 어제까지만 해도 무척
추웠는데 오늘은 날이 풀렸다고 했다.
딱 알맞은 만큼 싸늘한 바람이 상쾌하고 좋았다.
내게는 10년 만에 오는 한국, 그리고 신랑한테는 처음 오는 한국.
앞으로 열흘 남짓 신혼여행도 딱 이정도로만 상쾌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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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두서없이 횡설수설 할까봐 되도록 간결하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제 막 한국에 도착했으니 진짜 신혼 여행은 다음편부터겠네요.
기대해 주시길...
카페 게시글
역학동-자료실
[펌]외국인 남편 한국어 레슨[신혼여행 일지(1) - 호놀룰루 출발]
제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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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1.10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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