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고신 소속 한 교회의 홈페이지에 올려진 글입니다. 이 글을 읽고 저는 충격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여러 회원님들께서는 어찌 이해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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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예배드리는 곳이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영적인 힘을 얻어 세상에서 말씀을 실천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며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예배가 승리했을 때 의전 적인 예배가 가능한 것인데 생활을 제쳐놓고 의전 적인 예배만 하기 때문에 주님 앞에 나와도 드릴 것이 없다. 주님께서 주신 은혜에 대한 응답이 예배인데 드려질 내용이 빈약한 것이다. 또 한편 예배가 빈약하니 삶에 승리할 능력을 얻지 못하고 신앙과 삶에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대는 멀티미디어 시대이다. 세상은 첨단 과학화되었고 성도들도 일상생활 속에서 멀티미디어 문화혜택을 누리고 산다. 그런데 교회에 오면 18세기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면 어떻게 영적인 은혜와 능력을 받겠는가? 반복되는 지루한 기도! 느리고 힘없는 찬송! 교리 적인 꾸짖는 설교! 고루한 순서 진행에서 오는 답답함! 변화 없는 답답한 천편일률적인 예배를 통해서 얻는 것이라곤 외식된 신앙형태만 양산시킬 뿐이다. 한국교회의 예배의 가장 큰 문제는 예배의 모양과 형태는 있는데 본질이 결여되어 있는 흉내만 내고 있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예배는 주님께서 주신 은혜에 대한 응답이고, 새로운 영적인 힘을 얻는 것이고,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전도이다. 그런데 불신자가 예배에 참여해 보아도 뭐가 뭔지 모르겠고 딴 세계에 온 것 같다면 아무리 전도해서 인도한다고 해도 신앙성숙이나 교회 부흥은 기대하기가 어렵지 않겠는가?
이런 측면에서 예배는 반드시 개혁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개혁되어져야 할 것인가?
1. 뜨거운 예배로 개혁되어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신령과 진정한 예배는 성령 충만한 예배이다. 성령 충만한 예배는 뜨거운 예배라고 할 수 있다. 주님께서 주신 은혜! 구속의 은혜에 대한 감격과 삶 속에서 주님이 함께 하신 감사, 고난 속에서 승리한 감격들이 있을 때 뜨거운 예배가 될 것이다. 한국교회가 모이는 예배는 세계적이다. 그러나 몸으로 드려지는 예배에는 소흘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교인들에게 생활을 가르치지 못했다. 이것이 약점이다.
예배는 경직되고 목에 힘주는 예배가 아니라 평화롭고 구원의 축제를 즐기는 예배이기 때문에 모든 예배 순서가 축제 이여야 한다. 반복되고 지루하고 고루한 기도 때문에 마음이 상한다면 축제가 될 수 없고, 축 늘어진 어쩔 수 없이 따라 할 수밖에 없는 찬송이라면 축제가 될 수 없다. 꾸짖기만 하고 교리 적인 설교, 실생활에 반영할 수 없는 설교라면 공허한 예배가 될 뿐이다.
2.. 복음 적인 예배로 개혁되어져야 한다.
예배가 전도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메시지에는 항상 복음 적인 내용이 있어서 처음 온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요소가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찬송도 더욱 흥겨워 처음 온 사람도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기도도 마찬가지로 처음 온 사람도 공감할 수 있는 기도가 드려져야 보다 더 순수한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기도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믿는 신자들까지도 목음적인 감격과 기쁨을 마음껏 누리고 표현하는 감사와 축제의 예배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처음 오는 사람들에게 어리둥절하고 답답하고 지루해서 다음에 올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면, 젊은이들과 청소년들이 자기들의 정서와 너무 거리감이 있어 점점 교회와 멀어지게 된다면 정말 문제인 것이다. 머지않아 서구교회들 처럼 노인들만 남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을 도울 수 있는 현대적인 멀티미디어 장비도 활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O. H. P. 정도보다는 더욱 효과적인 프리젼테이션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신앙고백(사도신경)을 할 때 처음 온 사람은 무엇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때 앞 화면에 글자로 비춰진다면 공감 할 뿐 아니라 의미까지도 알 것이고, 찬송이나 성경도 스크린에서 보여진다면 그 효과는 증대될 것이다. 설교내용도 중요한 대지나 중요한 부분은 영상이나 그림, 글자로 보여 준다면 이해하고 은혜 받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3. 역동적인 예배로 개혁되어져야 한다.
초대교회 예배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미 행하신 일들에 대한 감사를 드리는 극적인 예배였다. 구약에서도 시편102:2,4에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얼마나 감격적인 축제인가?
오늘날 예배는 반드시 개혁되어져야 한다. 신학적인 것은 뒤로 미루고도 고루하고 지루하고 답답한 부분은 개혁되어져야 할 부분이다. 일부지만 예배는 너무 냉랭하고, 기도는 상투적이고 찬송은 너무 느리고 힘없이 억지로 하는 것 같고 교제도 부자연스럽고 꾸밈이 있고 분명 초대교회와는 달리 뜨거움도 기쁨도 없는 답답한 부분들이다.
예배는 기쁨과 감사와 감격의 절정이 되어야 한다.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고백과 기도와 감사로 찬양하고, 나의 입술로 진지하게 하나님께 고백하고 말씀이 생활로 연결되어지는 힘있는 설교는 살아있는 생동감 있는 역동적인 예배가 되는 것이다.
4.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예배
시대는 많이 바뀌었다. 컴퓨터는 전 인류의 생각과 삶을 바꾸어 놓았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장막에서 드린 제사', 바벨론 포로이전 ‘성전에서 드린 제사', 그 이후 ‘회당에서의 제사' 그리고 초대교회의 예배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졌다.
루이스 홀본(Louise Holbom)은 “종교개혁은 인쇄출판의 도움을 받은 최초의 종교운동”이라고 하면서 루터는 “하나님이 주신 최상의 은총행위” “세상이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불꽃”이기에 “이로서 복음사역을 전진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그에게 가득차 있었다고 말했다.
종교개혁자들에게 인쇄 미디어는 무엇보다도 교황제도에 대한 저항 행위를 가속화시킬 수 있었고, 정통으로 받아들여지니 신조와 예배형식 및 기구를 변혁시키는 매체가 되기에 충분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인쇄” 미디어로 부터 개방성, 명확성, 개별 신앙의 존엄성을 가능케 해 주는 메시지를 읽어 내었다. 그에 따라 종교개혁자들은 뉴미디어가 지닌 적극적인 가능성으로 교회의 변혁을 위하여 최대한으로 활용하였다. 즉 로마 카톨릭의 제도적 권위주의와 성직계급, 우월주의, 배타주의 장벽을 허무는데 인쇄의 기술은 적시에 주어진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로 이해 될 수 있었다.
멀티미디어의 특징은 영상, 문자, 음악 및 음성등 다양한 정보 형태를 복합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집중도는 컴퓨터 게임을 하는 이를 보면 시간관념을 상실해 버릴 정도이며 자신과의 일체감을 통하여 친숙한 상호교감을 갖게 된다. 마찬가지로 신학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잘 활용하면 엄청난 예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일반적으로 예배는 개혁되어져야 되는 당위성을 살펴보았다. 이제는 실제로 우리 큰빛교회에서 영상 프리젼테이션을 활용하는 예배를 소개해 보기를 원한다.
울산 빛교회의 예배
1. 찬송이 빠르고 힘차고 은혜롭다.
화면에 찬양의 가사를 확실하게 띄어 줌으로 자유롭게 가사의 뜻을 생각하면서 부담 없이 찬송할 수 있다. 여러 곡을 이어서 반복도 하며 손뼉도 치며 찬송에 흠뻑 빠져들고 행동과 표현이 자연스럽고 감격적이다. 할 수 있는 대로 빠르게 모든 악기 동원하여 연주하며 찬송함으로 찬양에 힘이 있고 생동감이 넘친다. 찬양 리더들의 역할도 한몫 한다.
2. 기도는 자신이 고백한다.
시작 기도는 간단히, 주일 낮 예배는 장로의 대표기도가 없는 반면 성도들이 각기 작고 진지하게 죄를 고백하고 간구하는 통성기도의 시간을 가진다. 이 시간에 작은 흐느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대표기도를 하는 중에는 찾아 볼 수 없는 소리이다. 시작 기도와 대표기도의 중복됨과 고루함 지루함, 예배의 맥을 끊는 역할, 처음 온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는 상투적인 내용, 개인적인 내용. 인기 위한 표현, 변명 어린, 준비 없는 기도, 예배를 위한 기도인데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내용,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지루하여 예배 참여자들의 마음이 상하는, 그리고 졸게 만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새해부터는 평일예배에는 예배를 위한 대표기도 기안용지를 만들어 시간도 내용도 준비케하여 모두가 공감하고 은혜 받는 대표 기도를 드리게 하고 있다.
3. 예배는 공백시간이 없이 물 흐르듯이 계속 진행한다.
처음 온 사람도 어색할 게 없다. 영상화면을 보면서 부담 없이 참여하면 된다. 딴 생각을 할 공백시간이나 마음에 답답함을 주는 잔소리는 하지 않는다. 영상화면에 신앙고백도 나오고 찬송 가사와 순서가 나오기 때문이고 성경 본문까지도 화면에 띄어지기 때문이다.
4. 설교내용을 정리,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설교 시간에 프리젠데이션을 이용해 제목과 관계된 그림이나 사진 등과 함께 제목이 보여지고 중요한 대지부분을 사진이나 그림 혹은 동영상으로 연결하여 보여줌으로 말로 정리해 주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기억도 확실히 될 뿐만 아니라 실생활에 적용하는 일도 더욱 효과적이다. 설교를 마무리 할 때는 설교 전체를 온 성도가 한눈으로 정리할 수가 있기에 설교를 이해하는 데 효과는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설교시간에 설교자의 열 굴을 확대하여 보여줌으로 멀리 않은 성도도 가까이에 앉은 성도와 마찬가지로 표정까지 읽을 수 있어 효과를 더할 수 있다.
5. 등록신자 환영시간도 효율적이다.
설교와 기도 찬송 후 등록신자 초청 시간에 앞으로 나오게 하고 성도들은 환영 송을 하고 목사는 아래로 내려와 환영인사와 기도 후 사진을 촬영한다. 그때 새신자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여 보여주며 얼굴을 익히게 하고 사진은 교회에 보관함과 동시 새신자에게도 주는데 이런 작은 효율성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6. 광고의 효과
일반적으로 주보에 나오는 광고를 읽고 마는데 우리교회는 광고시간에 그 광고에 맞는 재미있는 화면을 만들어 설명하면 재미있어하고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 예배를 마치고 지루한 시간이지만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참여할 수가 있다. 그리고 목회계획이라든지 다른 특별한 보고나 알릴 필요가 있는 부분은 영상 프리젠테이션을 활용할 때 효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7. 순서에 얽매이지 않는다.
순서에 얽매이지 않고 그 시간의 은혜 받는 감도에 따라 예배를 진행한다. 우리 주보에는 총12쪽이지만 에배순서란에는 설교, 성경, 찬송, 찬양으로 반쪽의 4줄밖에 없다.
그 외에 더욱 중요한 것은 개척 당시부터 제자훈련을 꾸준히 해온 결과로 좋은 교회로 좋은 일꾼들로 구성되어진 교회라 할 수 있다. 특별히 젊은이가 많은 생동감 있는 교회라고 할 수 있다. 30대가 대략 70%이상 젊은 일군다운 일군으로 성장해 가는 교회이다. 우리교회는 장로님들로부터 중직 자들 평신도들까지 너무 아름답고 헌신적인 일꾼들로 기쁨으로 예배시간마다 풍성한 은혜생활을 하고 있다. 가끔 다른 지방이나 교회에 예배 참석 후에는 모두 한입으로 우리교회가 은혜스럽다고 고백하고 있다.
예배가 개혁될 때 성도들의 삶이 변화되고 힘있고 승리는 사회에서도 모범생이 되는 것이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직장에서도 다른 교회 성도들로부터 놀랍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저들이 직장에서 사회에서 모범적인 크리스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큰빛교회는 “말씀이 풍성한 교회, 사랑이 풍성한 교회, 비젼이 있는 교회” 라는 표제로 이웃과 사회를 위한 봉사와 구제, 지구촌을 향한 선교의 비젼을 가지고 설립하여 사회복지 단지를 이루어 고아원 양로원 직장인학교 기독교학교 설립과 공원교회의 꿈을 가지고 온 성도들이 헌신하고 있다. 예배 개혁에도 기쁘게 동참하고 있다.
예배의 개혁을 이루어 우리의 교회가 새로운 영적인 힘을 얻으며 성령 충만한, 능력 있는 교회로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그것을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해 세상을 정복하는 교회들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올린다.
첫댓글이 교회가 고신교단에서는 잘 나가는 교회인 모양입니다. 그 교회 담임목사가 제가 속한 명덕교회에서 한달동안 매 주 수요일마다 수련회를 인도한다고 합니다. 그중 예배철학을 읽어 보니 보통 문제가 아닌데 말입니다. 조만간 저도 교회에 대해 심각히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미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인위적인 분위기 띄우기를 부흥으로 착각하는 것에 대하여 크게 경계하였습니다. 오늘날 목회자의 수준이 신학적으로는 특히 인간의 타락에 대한 성경적 견해에 대하여 500년전의 칼빈만큼도 깊이 천착하지 못하고 그때 이미 발견하고 확립된 위대한 성경적 가치, 진리 진술들을 전혀 습득하지 못한 상태가 아닐까요? 첫째는 신학 교육의 부실에서 큰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울산 '큰빛교회' 로군요. 제가 90년대에 울산 동구에있는 고신측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해서 조금 알고 있는데요. 큰빛교회는 그 때에도 별나고 새로운 것을 추구 했습니다. 주위의 교회들은 부러워하고 교단차원에서는 '교회 탐방' 이라는 것도 하고, ..........시체에다가 잔뜩 화장을 해 놓고 생명력이 넘쳐 보이니 예뻐 보이니 하는 꼴 들을 보고 있자니 참 더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신학교수들이나 목사들이나....,
또 목회자의 믿음의 실종도 근본문제인데, 영성이 각성되지 못하였으니 희생이 두렵고, 헌신이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인본주의, 합리주의, 세속주의도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크게 무너뜨리는데, 이런 점에서 서구 개혁파 교회의 영성도 성경적으로 깊이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윗글의 문제점은 첫번째 항목부터 드러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라면서 '몸으로 드리는 예배"를 강조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몸이 뜨거워지는 예배는 마음을 변질시켜버리지요. 마음이 뜨거워지면 머리가 냉정해 져야 합니다. 머리는 냉정하고 마음이 뜨거지는 것, 그것이 바로 "worship in Truth and Spirit"인데 말이지요.
"예배철학"이란 명제하에 찬송/기도/설교 등의 요소와, 최첨단의 멀티미디아와 각종 악기까지 동원한 예배분위기와, 교역자/성도/새신자 간의 격이 없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무조건 나쁘다고는 단정 짓기는 조심스러우나, 이러한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전적으로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의 눈이나 귀를 즐겁게 하는 행위가 겨자씨 만큼이라도 가미되었다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이 교회에서 오랬동안 적을 두면서 느낀 경험치에 의하면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도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한마디로 "표리부동(表裏不同 : 겉과 속이 다른 것)" 한 곳이라 평하고 싶습니다. 말씀/사랑/비젼으로 이웃과 함께 한다 하나???
이 교회 문을 나선지가 5년째가 되는군요... 지금까지 아쉬움으로 남는 것 한가지는, 모든 허물을 다 덮는다는 "사랑"을 떠나는 순간까지 온전히 주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지금 고신교회에 머물고 있지는 않지만 "개혁신앙"으로 출발한 고신정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지금도 변함 없습니다. 교회가 진정 개혁해야 할 것은, 주님이 피로 사신교회를 "카리스마적" 교회정치를 통해 양적.물적인 성장만을 지향 할 것이 아니라, 우리안에 있는 양들이 정녕 주안에서 평안한지?, 영육간에 실족하는 자가 없는지? 조심스레 살피는 일이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이라 생각됩니다. 언젠가?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남기고 싶네요.
첫댓글 이 교회가 고신교단에서는 잘 나가는 교회인 모양입니다. 그 교회 담임목사가 제가 속한 명덕교회에서 한달동안 매 주 수요일마다 수련회를 인도한다고 합니다. 그중 예배철학을 읽어 보니 보통 문제가 아닌데 말입니다. 조만간 저도 교회에 대해 심각히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명덕교회가 이런 교회와 예배를 지향하려 하니 말입니다....
이미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인위적인 분위기 띄우기를 부흥으로 착각하는 것에 대하여 크게 경계하였습니다. 오늘날 목회자의 수준이 신학적으로는 특히 인간의 타락에 대한 성경적 견해에 대하여 500년전의 칼빈만큼도 깊이 천착하지 못하고 그때 이미 발견하고 확립된 위대한 성경적 가치, 진리 진술들을 전혀 습득하지 못한 상태가 아닐까요? 첫째는 신학 교육의 부실에서 큰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신학의 부실은 교회개혁이나 부흥의 전망에 대한 성경적 견해를 전혀 수립하지 못하게 하고, 단지 그때 그때의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한 실용적 처세술을 추종하는 결과를 낳게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울산 '큰빛교회' 로군요. 제가 90년대에 울산 동구에있는 고신측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해서 조금 알고 있는데요. 큰빛교회는 그 때에도 별나고 새로운 것을 추구 했습니다. 주위의 교회들은 부러워하고 교단차원에서는 '교회 탐방' 이라는 것도 하고, ..........시체에다가 잔뜩 화장을 해 놓고 생명력이 넘쳐 보이니 예뻐 보이니 하는 꼴 들을 보고 있자니 참 더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신학교수들이나 목사들이나....,
또 목회자의 믿음의 실종도 근본문제인데, 영성이 각성되지 못하였으니 희생이 두렵고, 헌신이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인본주의, 합리주의, 세속주의도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크게 무너뜨리는데, 이런 점에서 서구 개혁파 교회의 영성도 성경적으로 깊이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최재호님, 윗글 아마도 제목을 글 안에 붙여서 다시 올리셔야 할 듯 싶습니다. 저는 이 글을 최재호님이 직접 쓰신 글인가 하고 깜짝 놀랬습니다. 아마도 이대로 스크랩해가거나 퍼가서 "최재호님"이 썼다고 하면 최재호님을 모르는 이들은 꼼짝없이 그대로 그런 줄 알겠습니다~
윗글의 문제점은 첫번째 항목부터 드러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라면서 '몸으로 드리는 예배"를 강조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몸이 뜨거워지는 예배는 마음을 변질시켜버리지요. 마음이 뜨거워지면 머리가 냉정해 져야 합니다. 머리는 냉정하고 마음이 뜨거지는 것, 그것이 바로 "worship in Truth and Spirit"인데 말이지요.
몸이 뜨거워지는 것이 머리가 뜨거워지는 건가요? head 와 body 가 같이 뜨거워지는 사람이라면 좀 곤란한데 .....
저도 최재호님의 글인줄 알았습니다. 어휴..... 고신 교회들!
나는 최재호님 글 아닌 줄 알았는데....ㅎㅎ
이래서 과연 울산의 큰 빛이 되겠나......ㅠㅠ
수정했습니다. 오해를 끼쳐 죄송합니다.^^
최기자님 한 동네 사니까 자주 뵙게 되어서 기쁘네요. 위의 내용은 한국교회의 문제점의 다른 일면일 따름인 것 같습니다. 위의 기사내용처럼 말하는 형제들에게 송영찬목사님의 '교회와 사명' 일독을 꼭 권하고 싶습니다. 최기자님 언제 차 한 잔 합시다.
"예배철학"이란 명제하에 찬송/기도/설교 등의 요소와, 최첨단의 멀티미디아와 각종 악기까지 동원한 예배분위기와, 교역자/성도/새신자 간의 격이 없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무조건 나쁘다고는 단정 짓기는 조심스러우나, 이러한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전적으로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의 눈이나 귀를 즐겁게 하는 행위가 겨자씨 만큼이라도 가미되었다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이 교회에서 오랬동안 적을 두면서 느낀 경험치에 의하면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도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한마디로 "표리부동(表裏不同 : 겉과 속이 다른 것)" 한 곳이라 평하고 싶습니다. 말씀/사랑/비젼으로 이웃과 함께 한다 하나???
이 교회 문을 나선지가 5년째가 되는군요... 지금까지 아쉬움으로 남는 것 한가지는, 모든 허물을 다 덮는다는 "사랑"을 떠나는 순간까지 온전히 주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지금 고신교회에 머물고 있지는 않지만 "개혁신앙"으로 출발한 고신정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지금도 변함 없습니다. 교회가 진정 개혁해야 할 것은, 주님이 피로 사신교회를 "카리스마적" 교회정치를 통해 양적.물적인 성장만을 지향 할 것이 아니라, 우리안에 있는 양들이 정녕 주안에서 평안한지?, 영육간에 실족하는 자가 없는지? 조심스레 살피는 일이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이라 생각됩니다. 언젠가?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남기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