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2784]이규보(李奎報)선생시 和宿德淵院(화숙덕연원) 2 首
원문=동국이상국전집 제7권 / 고율시(古律詩)
和宿德淵院 二首- 李奎報
落日三盃醉。淸風一枕眠。
竹虛同客性。松老等僧年。
野水搖蒼石。村畦繞翠巓。
晚來山更好。詩思湧如泉。
碧湖晴瀲灎。芳草遠芊綿。
問路三千里。知名四十年。
愛凉憑水檻。眺遠上雲巓。
老衲渾多事。評茶復品泉。
덕연원(德淵院)에 자면서 화답하다 2수
지는 해에 석 잔 술로 취하고 / 落日三杯醉
맑은 바람에 외로운 베개 벗하였네 / 淸風一枕眠
속 빈 대나무 손의 성품 닮았고 / 竹虛同客性
늙은 소나무 중의 나이와 비슷해 / 松老等僧年
들 물은 푸른 돌 움직이고 / 野水搖蒼石
마을 밭은 산마루 둘렀구나 / 村畦繞翠巓
산 빛은 저물녘에 더욱 좋으니 / 晩來山更好
시 생각이 샘처럼 솟아나네 / 詩思湧如泉
잔잔한 호수 파란 물결 넘실거리고 / 碧湖晴瀲灩
꽃다운 풀은 멀리 우거졌네 / 芳草遠芊綿
삼천리 곳곳에 길을 물었고 / 問路三千里
이름 알려진 지 사십 년이 되었구나 / 知名四十年
서늘함이 좋아서 물가 난간에 기대었고 / 愛涼憑水檻
먼 데를 보려고 높은 봉우리에 오르네 / 眺遠上雲巓
늙은 중들 일도 많구나 / 老衲渾多事
차 맛도 평하고 또 샘물도 평하려니 / 評茶復品泉
ⓒ 한국고전번역원 | 이병훈 (역) | 1980
한국 문학사를 대표하는 작가 이규보(李奎報)가
'덕연원에 묵으며 지은 시'(和宿德淵院)는
가히 명품 중에 명품이라 할 만하다.
"지는 해에 석 잔 술로 취하고, 맑은 바람에 베개 베고 자네.
대나무 속 빈 것은 나그네 성질 같고, 소나무 늙은 것은 중 나이와 같네.
들 시냇물은 파란 이낏돌을 흔들고, 마을 밭둑길은 푸른 봉우릴 둘렀네.
저녁 무렵 산빛이 더욱 아리따워, 시상이 샘처럼 솟아나네.
落日三杯醉 淸風一枕眠
竹虛同客性 松老等僧年
野水搖蒼石 村畦繞翠巓
晩來山更好 詩思湧如泉"
터벅터벅 종일 걸었으니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말랐을 터,
저녁 무렵 숙소에 도착하여 막걸리 거푸 석 잔을 들이켠다
. 피곤한데다 취기가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한숨 자고 일어나니 마음이 절로 맑아진다.
속이 빈 대나무처럼 세상사에 대한 욕심도 사라진다.
소나무처럼 오랜 세월을 겪은 스님과 세상 바깥 이야기를 나눈다.
들판의 개울물은 졸졸 흘러 파랗게 이끼가 낀 돌이 구르는 것처럼 보인다.
밭두둑으로 난 길은 사방으로 푸른 산빛을 두르고 있다.
이런 풍경을 보노라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이런 시를 읽노라면 바람이 차지만 들녘으로 나가보고 싶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 한시의 멋이다.
이규보는 문학이 새로운 뜻 신의(新意)를 담아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주장을 내세워 참신한 표현을 즐겨 만들어내었기에
그의 시는 기발한 '시인의 시'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