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국가의 형성과정은 산업자본주의의 발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17-18세기경까지 유럽국가들은 경제영역과 중앙집권화된 규칙제정과정을 제도적으로 분리하였으며, 민족국가의 지리적 경계를 형성하였다(Giddens, 1985). 이러한 역사적 전환은 봉건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개인적 지배에서 법에 의한 지배로, 그리고 절대왕정에서 의회민주주의로의 사회적 변화와 병행해서 이루어졌다. 유럽의 근대국가들은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권력토대를 증가시키기 위해서 자본가계급과 긴밀하게 협조하였으며 자유주의적 시장의 영향력과 함께 중상주의적 전략을 통해서 국민경제에 광범위하게 개입하였다(McNeil, 1982; Hall, 1986; Mann, 1986, 1993).
1930년대 자본주의 대공황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케인즈적 관리국가(Keynesian managerial state)의 등장은 국민경제내 국가의 역할을 결정적으로 변화시켰다. 양차대전 사이 국민적 차원의 군사력 팽창과 복지기능 확대는 서구의 복지자본주의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그 이후 경제문제에 관한 새로운 형태의 국가개입과 국가, 자본가, 노동자 3자 관계를 통한 계급타협의 정치과정 등이 국가기능의 중심으로 형성되었다(Weir and Skocpol, 1985).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상당수의 제3세계 사회에서도 국가주도의 경제계획을 통하여 경제와 사회체계를 변환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이후 신우익(New Right) 정책이 시행된 이후 경제에서의 관리국가의 지도적 역할은 상당부분 약화되었다. 동시에 모든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 관리경제와 복지국가를 지지하던 정치적 합의에 균열이 발생했다(Pierson, 1991). 경제의 자유화와 지구화가 진행됨에 따라 세계경제가 재구성되고 케인즈적 관리국가가 작동하는 외적 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는 사회와 경제에서의 국민국가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 검토를 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대자본주의경제에서 새롭게 변화하는 국가의 역할은 국가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이론적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먼저 본 논문은 산업화 과정에서 효율적인 국가제도로 실질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한 동아시아 신흥공업국들(newly industrializing countries: NICs)에서의 발전국가에 관해서 분석한다. 국가와 사회 관계에 대한 논쟁을 위해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 상대적 자율성 (relative autonomy), ‘배태적 자율성(embedded autonomy)', 사회네트웍(social network)에 이르기까지 주요 사회학적 개념에 대해 비판적으로 소개한다. 이 논문은 또한 1970년대 중반이후 신자유주의에 의한 케인즈적 국가개입에 대한 공격이후 경제자유화와 지구화 과정 등에 직면한 발전국가의 변화에 대해 고찰한다. 끝으로 이 논문은 전통적인 국가주의적 설명과는 달리 1980년대 이후 동아시아 사회에서 발생한 국가-사회관계의 근본적인 변화유형에 대한 이론적 설명을 시도한다.
동아시아 발전국가의 등장
1950년대 이후 미국의 헤게모니(hegemony) 주도하에 재편된 자유무역환경은 동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의 신흥공업국들(NICs)로 하여금 국제노동분업에서의 위치를 변화시키려는 신중상주의적 정책의 추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특히 동아시아 신흥공업국들(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은 일반적으로 수출을 위한 조세 인센티브, 자본재의 무관세 수입, 임금억제, 환율인하 등을 포함한 수출주도산업화전략을 채택했다(Deyo, 1987; Gereffi and Wyman, 1991). 1960년대 이후 동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의 경제는 급속하게 발전하였으며 국부(national wealth)의 지표인 일인당 국민총생산(GNP)이 선진산업국가들을 앞서기도 하였다. 더욱이 이들은 섬유산업 등 전통적인 노동집약산업 이외에 고급기술과 첨단기술이 필요한 완제품과 부품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의 신흥공업국들의 등장은 종속이론이 부적합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1전통적인 종속이론과 신제국주의(neo-imperialism) 이론은 기록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한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신흥공업국들의 경제발전 사례에 의해서 1980년대에 이르러서 이론적 적용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상당수의 라틴아메리카 신흥공업국들은 다국적 기업과 해외직접투자에 의존하여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동아시아국가들의 급속한 경제발전에는 국제무역과 수출주도산업화가 결정적 역할을 하였으며 이들의 경제성장 역시 상당부분 외국차관에 의존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신흥공업국들이 단순하게 근대화이론을 뒷받침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로스토우(W.W. Rostow, 1960)의 근대화 발전모델 정식은 그가 제안한 것처럼 모든 국가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기보다는 특수한 사례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실제로 주요 산업화 발전은 많은 제3세계 나라들 중 소수의 신흥공업국들에서만 발생했다(UNIDO, 1992). 더욱이 신흥공업국들의 산업화과정에서 나타나는 기술의 선택, 노동조건, 노동과정 등에 관해서 많은 회의적인 문제점들이 제기되었다(Lipietz, 1987; Bello and Rosenfeld, 1990).
1980년대 이후에는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이 이끄는 사회과학자들이 프랑크(A.G. Frank)의 자본주의와 메트로폴리스-위성 구조의 개념을 급진적으로 적용하여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구조적 요인과 분석단위로서의 자본주의적 ‘세계체계(World-Systems)'의 역사적 과정에 관한 설명을 시도하였다(Wallerstein, 1979; Frobel, 1980). 프랑스 조절학파(Regulation School)도 신흥공업국들과 세계경제와의 연계를 형성하는데 발생하는 주요한 차이들을 분석하였다(Lipietz, 1987). 이들은 ‘준주변부(semi-periphery)', ‘국제노동분업(international division of labor)', ‘주변부 포디즘(peripheral Fordism)' 등의 개념들을 통해 신흥공업국들이 등장하게 된 구조적 조건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왜 소수의 아시아 국가들이 다른 선진자본주의국가들과 개발도상국가들보다 더욱 급속하게 발전하였는가에 관한 설명은 충분히 제공하지 못했다(Amsden, 1990).
반면에 문화적 분석가들은 ‘유교적 윤리’, ‘신유교주의(neo-Confucianism)’, 또는 ‘탈유교주의(post-Confucianism)' 등의 개념을 이용하여 동아시아의 경제발전을 설명하였다(Kahn, 1979; Calder and Hofheinz, 1982). 베버(Max Weber)의 중국 유교에 대한 테제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오랫동안 유교문화는 경제발전의 주요장애로 간주되었으나 현대의 일부 학자들은 문화를 동아시아 경제성공의 주요원인으로 보았다(Pye, 1985; Berger and Hsiao, 1988). 이러한 문화적 설명은 이론적으로 볼 때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2 문화적 설명은 동아시아 사회에서 유교적 원칙이 어떻게 효율적인 사회통제와 질서, 신뢰를 형성할 수 있도록 했는지에 대한 조사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반면에 문화적 요소가 어떻게 시장, 국가, 정치적 동학과 연관되는가에 대한 설명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1980년대 이후 많은 학자들은 문화적 설명과 함께 경제성장에서의 국가와 시장의 역할에 대해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80년대 이후 동아시아 신흥공업국의 등장에 관한 설명을 시도하는 사회과학자들은 시장기제 또는 국가를 급속한 경제성장의 주요원인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신고전파경제학 전통의 자유시장주의자들은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은 ‘국가지도(state guidance)’와 함께 사적부문(private sector)에 의해서 주도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정통’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동아시아 경제발전을 자유시장 원칙의 확증으로서 간주하였다(Balassa, 1981; Lal, 1983). 예를 들어 발라사(B. Balassa)는 동아시아 경제가 1960년대 초기부터 수출산업을 중심으로 ‘자유무역체제(free trade regime)’를 발전시켰다고 주장한다(1981; 16-17). 근대화이론의 한 형태인 발라사의 논쟁은 수출주도 발전전략을 적용하는 국가들이 수입대체산업화 전략을 택한 국가들보다 수출, 경제성장, 고용에서 우월한 성과를 이루면서, 제1세계의 발전경로를 따른다고 본다. 그리하여, 케인즈적 관리국가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공격과 연결된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정부의 개입과 높은 보호관세는 사적 기업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 제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동시에 초국적기업(transnational corporation)들의 성장과 해외직접투자의 증가에 따라 국민국가들의 경제개입이 점차 약화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동아시아국가의 산업적 전환을 성취하기 위해서 국가의 개입이 필수적이었으며,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제한적이고 현상적인 관찰에 오류가 있었음이 광범위하게 인정되고 있다(World Bank, 1993). 특히 미국의 정치학자 찰머스 존슨(Chalmers Johnson, 1982)의 『통산성과 일본의 기적 (MITI and the Japanese Miracle)』은 일본 정부관료에 대한 제도적 분석에서 ‘자본주의 발전국가(capitalist developmental state)’의 개념을 발전시키면서 일본정치경제학의 기제를 자세하게 보여준다. 존슨에 따르면, 발전국가의 최고목표는 성장과 생산성, 경쟁력을 기준으로 한 경제발전이다. 발전국가는 사유재산과 경쟁을 주창하는 동시에 엘리트 경제관료를 통해서 계속적으로 시장을 지도(guide)한다. 또한 발전국가는 사적 기업부문과 자문과 조절을 위한 다양한 제도에 참여하고, 이러한 정책자문은 정책형성과 실행과정의 통합적인 부분이 된다. 존슨은 “일본의 국가관료는 지배(rule)하고, 정치인은 통치(reign)한다”고 주장한다.3 존슨은 일본과 한국, 대만에서 시장경제 내 국가가 개입주의적(interventionist) 역할을 수행하는 발전국가의 성격을 유지한다고 논쟁한다. 이후 앰스덴(Alice Amsden, 1989)과 웨이드(Robert Wade, 1990) 역시 한국과 대만의 국가의 역할에 관한 경험적 연구에서 이러한 논쟁을 더욱 발전시켰다.
엘리스 앰스덴(1989)은 한국경제를 네 가지 성격으로 정식화한다: (1) 시장에서의 국가개입의 중심적 역할; (2) 효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사적기업에의 정부 규율(discipline)의 중요성; (3) 대규모, 다각화된 기업집단(business group)의 산업역량; (4) 후발산업국가를 위한 기술 학습(technological learning). 한국의 국가는 기업가, 은행가, 산업구조의 설계사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의 국민경제내 해외직접투자 비율은 다른 신흥공업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고 국가는 적극적으로 초국적기업과 외국차관을 효과적으로 통제하였다. 특히 경제관료는 외국자본과 국내자본에 대한 효과적인 금융통제를 통해서 국내 산업정책을 주도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의 국가는 계획자 또는 ‘상위파트너(senior partner)’로, 한국의 경제체계는 ‘국가주도 자본주의(state-led capitalism)’ 또는 ‘한국주식회사(Korea Inc.)'로 불리우기도 하였다.
로버트 웨이드는 발전국가의 개념과 전통적인 발전경제학을 기반으로 하여, ‘통제시장이론(governed market theory)'을 제시한다. 웨이드에 따르면 동아시아의 경제성공은 여러가지 요소의 결합에 의한 결과이다: (1) 우선적 산업부문에의 차등적인 높은 투자배분; (2) 전략산업부문에서의 후원, 규율, 지도 등 광범한 정부의 행동; (3) 해외시장에서의 국내산업의 국제적 경쟁. 이러한 정책들은 자유시장(free market) 혹은 ‘가상적 자유시장(simulated free market)' 정책과는 구별되며, 생산과 투자의 결과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자원배분의 시장과정을 지도하고 통제한다. 이러한 정부의 적극적인 경제개입이야말로 동아시아 산업화의 성공을 위한 핵심적인 전제조건이다.
일반적으로 발전국가는 일종의 계획 또는 전략적 목표에 따른 제도적 배치를 통해서 경제발전을 위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며 국민적 발전(national development)을 추진하는 국가이다. 역사적으로 발전국가는 후기자본주의 산업화과정 중, 특히 2차대전 이후 탈식민지주의 시대의 발전개념에 관련하여 형성된 국가의 특수한 모형을 말한다(White, 1988). 대부분의 발전국가들은 시장기제에 대한 자유방임의 태도보다는 국가의 개입과 조절을 옹호한다. 물론 시장이 일정정도의 불안정성을 항상 만들고 사회적 생활의 기반자체를 위협한다는 주장은 맑스(Karl Marx)와 폴래니(Karl Polanyi)의 고전적인 저작에서도 잘 나타난다. 특히 폴래니는 최초로 국가를 시장 활동을 변화시키는 기능을 하는 일종의 제도로서 분석하였다(Polanyi, 1975). 막스 베버 역시 관료제가 국가에게 시장을 형성하고 성장을 추진할 수 있는 역량을 준다는 중요한 명제를 제시한 바 있다(Weber, 1966).
폴래니와 베버의 전통을 따르는 많은 현대 학자들은 국가가 후기발전사회의 경제발전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행위자라고 보았다. 초기의 발전이론 가운데 거센크론(Gerschenkron, 1962)은 ‘후기발전(late development)'이 항상 고도의 국가개입과 관련되어 왔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그는 19세기의 독일과 러시아와 같은 후발산업국가들이 영국과 같은 선발국가를 ‘따라 잡기(catch up)' 위해서 강력한 국가개입이 필요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의 경제개입은 얼마나 경제가 후진적인가와 관련이 있으며, 후진국일수록 더욱 국가의 개입이 컸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는 현대 사회과학계의 ‘상대적 자율적 국가(relatively autonomous state)'에 관한 논쟁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국가중심 (state-centered) 접근법의 강점과 한계
1970년대 후반이래 최근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회과학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중앙집권화된 국가권력에 관심을 가졌다(Skocpol, 1979; Nordlinger, 1981). 이들은 고전적인 엘리트이론과 함께 네오맑스주의 이론이 주장하는 자본주의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relative autonomy)' 개념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스카치폴은 국가와 지배계급이 지배적 생산양식(dominant mode of production)을 유지하기 위해서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나 국가는 자본가 계급과 생산양식의 이해로부터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막스 베버와 오토 힌즈(Otto Hintze, 1975)의 독일전통의 영향을 받아서, 스카치폴(1979: 27, 29-30)은 국가를 “행정당국과. . . 자체적인 이해와 논리를 가진 자율적 구조에 의해서 조절되는 행정과 경찰, 군사조직의 복합체”로 정의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가는 사회로부터 분리되고 제한된 수의 독립적인 국가엘리트가 국가를 통제한다고 본다.
유사한 맥락에서 에반스, 스카치폴, 루쉬메이어 등(Evans, Skocpol and Rueschmeyer, 1985)은 국가를 자본주의 발전 연구의 중요한 주제로 본다. 이들은 자본주의체계가 국가에 일정한 한계를 부여함에도 불구하고 국가엘리트들이 일정한 자율성을 보유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더욱 적극적이고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국가가 종속국가의 발전을 성취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논쟁한다. 이들은 본질적으로 국가에 의해 주도된 국민경제 발전에 초점을 맞추면서, 성공적인 경제성장에 대한 설명을 시도한다: 이를 이하에서 ‘국가자율성이론’ 이라고 지칭한다. 이들은 위의 엠스덴과 웨이드의 논쟁에서와 같이, 후기발전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강도높은 국가개입이 경제발전의 주요 요소라고 주장한다.
한국의 사례연구에서 국가자율성 이론들은 1960년대 박정희 정권하의 대규모복합기업의 형성에 국가가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음에 강조한다(Amsden, 1989; Wade, 1990; Haggard, 1990). 이러한 국가주의(statist) 분석가들은 한국이 결코 자본주의산업화를 통한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의 확인시켜주는 증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경제발전목표를 수행하기 위해서 사적경제부문과 상호작용하는 중앙집권화된 국가에 대한 설명이 동아시아 경제성장에 관한 ‘발전국가이론’과 일치한다고 본다. 그들은 또한 한국의 복합 대기업의 성장을 자유시장이 확장하는 가운데 발생한 산물로 해석하는 것은 오류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한국의 국가관료가 사적기업을 후원하고 우선적 산업에 투자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기업역량을 증가시켰다고 설명한다. 한국의 대기업은 국가에 의해서 창조, 관리, 조절되며, 제한적 자율성을 가진 존재로 묘사된다. 그리하여 일반적으로 국가주의적 분석가들은 개발도상국가들이 그들의 경제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전세계적인 독점이윤을 추구하는 초국적 자본과 적극적인 협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4 이러한 국가자율성 이론들은 국가의 경제개입 강화와 경제민족주의를 위한 정치적 논리와 밀접하게 연결된다(Weiss and Hobson, 1995).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국가주의 테제는 심각한 비판에 직면한다. 무엇보다도 국가자율성 이론은 막스 베버적 견지에서 국가를 내부적으로 통합적이고 단일한 행위자로 성격지움으로써 국가내부의 제도적 다양성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개인을 다루는 접근법과 같이 국가주의자들은 국가를 불가분의 분석단위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강한 국가는 권위주의적 정치체제에서조차 국가관료제를 상호갈등하는 사회계급으로부터 완전하게 분리시킬 수는 없다. 국가관료들은 항상 자율적인 행위자라기보다는 전형적으로 지배계급의 이해에 또는 때때로 저항적인 하층계급의 요구에 다양한 형태로 반응한다. 국가와 사회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권력을 상호분점하고 ‘상호변환(mutually transforming)'시킨다(Migdal et al., 1994: 293). 그러나 세계적으로 일반화시킬 수 있는 국가와 사회의 관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와 사회관계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한다고 보는 것이 더욱 설득력이 있는 주장으로 보인다(Weiss and Hobson, 1995; Maxfield and Schneider, 1997).
국민국가가 사회집단 위에 자율적 권력을 갖고 있다는 국가자율성 이론의 극단적 주장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이론적 시도들이 있었다. 첫째, 내부조직(internal organization)이론은 국가와 대기업사이의 행정과정 중 거래(transaction)를 관리하는 위계적인 내부조직의 형성을 주목한다(Williamson, 1985). 예를 들면 한국과 동아시아 발전국가들의 정부관료와 기업엘리트들은 ‘중간조직(intermediate organization)'을 통해서 그들의 견해와 이해관계를 조절한다(Lee, 1992). 둘째, 사회네트웍(social network) 이론은 국가와 사회사이에 있는 공식적, 비공식적, 유기적(가족, 친족, 지연) 네트웍 등 구체적인 사회적 연계(social tie)의 존재를 제기한다. 그리하여 국가기구는 국가를 사회에 연결하고, 목표와 정책을 위한 계속적인 협상과 재협상을 위한 제도적 통로를 제공하는 구체적인 사회적 연계 속에서 배태된다(Evans, 1995). 이러한 모형에서 국가와 기업의 관계는 공적, 사적네트웍을 통해 형성된 수평적 연계에 의해서 보완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국가주의적 분석을 재정식화한 마이클 만(Michael Mann, 1986)은 사회로 침투하여 주요결정을 수행하는 국가의 ‘하부구조적(下部構造的) 권력(infrastructural power)'이 ‘국가역량(state capability)'의 핵심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국가와 사적경제를 종합하려는 이론적 노력을 시도됐다: 이하 이를 ‘국가역량이론’이라 한다. 존 홀(John Hall, 1986)은 자본주의 사회를 운영하기 위한 국민국가의 능력이 국내 자본가와 협조하는 능력과 교육적 훈련의 사회 하부구조를 제공하는 역량, 변화하는 국제경제 관계에 직면하여 유연성을 제고하는 계급타협의 조건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많은 동아시아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그리고 점증적으로, “전제적(專制的)으로는 약하지만 하부구조적으로 매우 강력하다(despotically weak but infrastructurally strong)"고 주장한다(Hall, 1986: 154-76). 이러한 국가역량이론은 국가자율성이론과 분석적으로는 구분되지만 많은 경우 비슷한 사례에서 적용된다. 두 이론 모두 발전국가가 베버의 관료제의 이념형에 가깝다고 본다. 발전국가의 중앙관료제는 “임무와 통합적 일관성을 만들기 위해서 매우 선택적인 능력주의 선발과 장기간 경력보상” 체계를 갖는다(Evans, 1995: 30). 그러나 국가역량이론은 막스 베버가 관료제가 항상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보다는 덜 독립적인 국가를 제시하며 국가와 사회가 집단행동(collective action)을 해결할 수 있도록 사회적 연계를 통해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일본 혹은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성격을 규정짓는 국가와 사회의 특수한 결합에 관한 논쟁이 지난 수십 년간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이제 일본의 발전국가가 대규모 기업의 활동을 직접적으로 지원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국가지도와 지원이 이루어지는지에 관한 세밀한 조사는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Samuels, 1987; Friedman, 1988; Okimoto, 1989). 많은 연구들은 일본의 국가가 사적기업을 지도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졌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특히 사무엘즈는 일본의 국가가 제한적인 통제력을 갖고 있으며 일본의 기업들이 상당한 자율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Samuels, 1987). 일본의 국가는 제조업분야 수출기업에게 계속적으로 국제시장의 변화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에 따른 적응을 위한 방법을 지도하였다. 국가는 항상 일방적으로 지도하기보다는 ‘계속적인 자문(endless consultation)’을 통해서 지도과정 중 기업이익을 위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러한 ‘상호동의(reciprocal consent)’의 정치는 국가가 사회내의 주요 이익집단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협조적인 이익집단과 공통의 목표를 위해 활동하는 것에 대한 정치적 동의를 만들 때 발전국가의 힘이 증대된다는 사례를 보여준다.
이러한 측면에서 에반스는 사회적 연계의 존재를 주장하면서 행위자와 제도에 초점을 맞추는 그라노베터(Mark Granovetter, 1985)의 ‘배태성(胚胎性: embeddedness)’의 개념을 국가이론에서 더욱 발전시켰다. 그리하여 연관성과 자율성의 결합 - 배태적 자율성(embedded autonomy) - 만이 국가를 ‘발전국가’로 만든다고 주장한다(Evans, 1995: 12). 에반스는 또한 국가개입의 여러 모형에 대한 이해를 위해 중대한 이론적 공헌을 했다. 그는 강한 국가(strong state) 라는 개념을 정교화를 시도하여 개발도상국가들에서 “얼마만큼의(how much)" 국가개입이 이루어졌는가보다는 “어떤 종류의(what kind)" 국가인가와 그에 따른 경제발전 효과에 관한 질문을 제기했다. 그리하여 에반스는 국가를 세 가지 이념형으로 분류했다: 발전국가 (일본, 한국, 대만); 약탈국가(predatory state: 자이레); 중간국가(intermediate state: 브라질, 인도). 약탈국가는 산업적 전환을 추진하기 위해서 아무 것도 제공하지 않는 가운데 투자할 수 있는 잉여만 추출한다. 반면에 발전국가는 사적기업이 산업적 투자에 참여하도록 동기(incentive)를 확대시키고 장기적인, 기업가적 계획을 제공한다.
그러나 에반스는 그 자신이 추구하는 폴래니의 역사사회학적 설명과는 달리 자본주의 발전의 복잡한 거시구조적 토대에 관한 이론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에반스의 분석에서는 어떻게 사회적 연계가 생성되고, 정착되고, 유지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발견할 수 없다. 또한 그는 국가엘리트와 사회집단사이의 배태적 자율성을 형성하는 복잡한 정치동학에 대한 분석도 제공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국가자율성이론은 왜 1980년대 이후 경제 자유화와 사영화(私營化, privatization) 과정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었으며, 이로 인해 어떻게 전통적인 의미의 발전국가가 쇠퇴하고 있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Mann, 1990; Dunn, 1995; Strange, 1996).
지구화와 국민국가
1970년대 중반이후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지속적인 경제위기가 증가되면서 전후 관리경제와 복지국가를 지지하던 정치적 합의의 균열이 시작됐다. 이전의 복지국가를 지지하던 사회집단의 코포라티스트 대표체계는 축소되거나 지방화되었다(localize). 특히 노동조합운동은 급격하게 위축되고 전통적인 사회운동은 지역적 이익집단과 신사회운동에 의해 대체되었다. 더욱 중요한 점은 국가개입과 사회복지는 감소되면서 시장역량의 규모와 범위는 급속하게 팽창한다는 사실이다. 많은 국가소유 산업이 사적기업 부문으로 환원되었고 국민경제의 주요한 부분이 국제시장의 논리에 종속되고 있다. 국가의 전반적 위기와 그에 따른 국가개입의 약화는 자본주의 국가의 형태와 기능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면서, 국가주의(statist)와 지구주의(globalist)간의 심각한 이론적 논쟁을 일으켰다.5
먼저 국가주의적 이론들은 일반적으로 이중적인 견지에서 변화하는 국가의 역할을 이론화한다. 국가주의자들은 세계가 경제적 차원에서 지구화하는 반면에 국민국가와 문화는 주권(sovereignty)과 정책형성을 위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Krasner, 1978; Calleo, 1982). 국제관계이론의 현실주의(realist) 이론가들은 국민국가의 영토적 주권과 국민적 시민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국민국가가 국제적 장(international agenda)에서 공공정책의 기본적 조건을 형성한다고 본다(Keohane and Nye, 1977).6 비슷한 맥락에서 사회학자 마이클 만(1986, 1993)은 영토적 국가가 현시대의 가장 강력한 사회적 행위자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제영역에서는 국민국가가 쇠퇴하고, 동시에 국제관계에서는 주권의 궁극적인 기원으로서의 국민국가를 제시하는 것은 다소 모순적인 주장으로 보인다.
케인즈 경제학과 정치경제학 전통의 경제학자들도 경제적 지구화에 대응하는 국민국가들의 경제적 역할을 강조하였다 (Boyer and Drache, 1996). 최근에 허스트와 톰슨(Hirst and Thompson, 1996) 등 ‘지구화 회의론자들(globalization skeptics: Anthony Giddens의 용어)’은 진정한 ‘지구적 경제(global economy)'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지구화라는 개념자체가 신화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상당정도의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는 전개되었으나 세계경제의 통합이라는 사고는 그 범위가 과장되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국민국가의 독립적인 경제정책의 가능성이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도 일정정도 최근의 행정적, 정책결정기구로서의 국민국가의 권력이 심각하게 쇠퇴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국민국가가 전통적인 의미의 주권적인 경제관리자는 아닐지라도 기본적 합법성의 토대와 국민국가단위 상하사이의 - 국제기구와 지방정부들 - 권력의 대표로서 지속하는 국민국가의 중요성은 강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Hirst and Thompson, 1996: 143-49).
반면에 지구주의적(globalist) 접근은 국민국가가 지구화의 영향을 받으며 국민국가의 활동이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된다고 주장한다(Dicken, 1992; Spybey, 1995).7 1960년대 후반 미국의 경제학자 킨들버거(Kindleberger, 1969)는 국민국가가 단지 하나의 경제단위로 간주되고 있다고 예언한 바 있다. 지리학자 디켄(Dicken, 1992) 역시 국가권력의 쇠퇴는 지구적 경제의 등장과 연관이 있다고 본다. 1960년대 후반이후 전개된 세계경제의 생산과 분배, 금융의 지구화 과정은 세계경제에서의 국민국가의 역할을 심각하게 변화시켰다. 운송과 통신에서의 기술적 발전 또한 초국적기업(transnational corporation)들이 국민적 경제정책의 필요조건인 국민적 시장들 사이의 영토적 경계를 초월하도록 만들었다(Carnoy, 1993). 결과적으로 경제정책을 지도하고 조절하는 국민국가의 활동과 가능성은 심각하게 약화된 반면, 초국적기업의 생산, 관리시설의 위치결정이 종종 개별국가의 고용과 투자의 상당부분을 지배하기도 한다(Held, 1995; Strange, 1996). 그리하여 점증적으로 개별 국민국가들의 금융과 재정정책은 국제경제기구와 국제금융시장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스클레어(Sklair, 1995)는 지구적 자본주의 사회제도와 실천으로 이끄는 생산과 교환의 초국적 조직의 등장을 지적한다. 이러한 ‘지구적 자본주의체계(global capitalist system)’는 기본적인 자본주의 동학이 국민적 차원에 대립하여 초국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생산의 사회적 관계는 더 이상 국민적 영토경계에 제한되지 않는 경제체계로 등장한다.
정치적 지구화에 관심을 가지는 헬드(Held, 1995)는 비정치적이고 다양한 국민사회들간의 연결을 통해서 국제정치적 차원에서 국민국가의 약화를 야기시키는 일련의 단계가 있다고 논쟁한다. 그에 따르면 국민국가체계의 균열은 인권, 환경, 핵에너지, 발전과 불평등, 법과 질서, 테러리즘, 이민 등 전지구적 문제를 해결을 위한 정치적 지구화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그리하여 최근에는 국제사회에서 지구적 통치(global governance)라는 개념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지구적 공공재(global public goods)'를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한 국제적 또는 초국적 실천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많은 학자들이 국민국가의 역할감소와 함께 세계경제의 차원에서 증가하는 지구화 현상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McGrew and Lewis, 1992).
특히 새롭게 형성되는 지구적 경제 안에서의 전통적인 국민국가들의 경제적 역할은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많은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전통적인 케인즈적, 거시경제적 정책개입의 범위와 가능성은 상당부분 축소되었다. 최근의 일본도 국가의 ‘행정적 지도(administrative guidance)'를 감소시키면서, 발전국가에서 ‘탈발전국가(post-developmental state)'로 전환하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Weiss and Hobson, 1995). 다른 동아시아 나라에서도 점차적으로 관료적 지배대신 정부와 기업 사이의 조절과 협조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다(MacIntyere, 1994; Maxfield and Schneider, 1997; Kim, forthcoming). 경제자유화와 지구화 과정은 발전국가 내부의 실패 혹은 국제경제기구로터의 외부적 압력에서 기인하였으며 결과적으로 국민국가의 역할과 역량에 심각한 약화를 초래했다. 이에 오마에(Kenichi Ohmae, 1995)와 같은 극단적인 지구화론자는 궁극적으로 기업경제와 지역경제가 국민국가를 대체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좀 더 주의깊은 관찰을 하면 지구화 과정 그 자체가 상당부분 사적기업을 지도, 자극, 지원하는 국민국가의 성취물이라고 할 수 있다. 헬라이너(Helleiner, 1994)는 금융의 국제화 과정이 각국의 국민국가가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추진되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197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의 금융시장 ‘빅뱅(big bang)'이 있은 이후 영국과 유럽, 일본의 대응과정을 국민국가들의 경쟁과정으로 설명한다. 폴 케네디(Paul Kennedy, 1993)는 국민국가의 장기적 계획, 정치적 지도력, 교육과 기술정책들이 국제경쟁의 영역에서 중요 요소가 될 것이라고 논쟁한다. 실제로 독일과 프랑스의 기업들은 아직도 국가와 밀접하게 협조하고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도 국제자본의 이동과 이자율에 대한 국민국가의 통제가 감소되고 있음에도불구하고 국민경제의 경쟁성을 제고하기 위해서 국민국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상당부분 존재한다(The Economist, September 20, 1997). 특히 일본과 동아시아 국가는 국민경제의 발전과 확장을 위해서 국가계획대신 국민경제를 위한 국가의 지도와 지원 등을 통해 경제정책을 추진하고 있다(Berger and Dore, 1996). 이러한 점에서 홀과 이켄베리(Hall and Ikenberry, 1989: 96-97)는 국민국가의 역량이 산업정책을 형성하거나 개입하는데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국가개입을 후퇴하거나 포기하는 것에도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이를 ‘국가역량의 아이러니(irony)'라고 부른다. 그들은 선진자본주의 국가들과 개발도상국가들의 사영화와 공공부문의 개혁도 국가역량을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본다.
지구화 과정에 관한 중요한 질문은 국민국가가 시장을 위해서 작용하는가, 아니면 반대해서 작용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국가가 지구화 과정에서 해외자본과 국내자본을 어떻게 자극하고 지원하는 문제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과 대만 등 동아시아의 국가들은 지구화 과정에 직면하여 국가기구의 ‘적응성(adaptability)'을 발전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다(Weiss, 1997). 이들 국가는 지구화 과정과 대립하기보다는 적응을 시도하며, 지구화 자체를 국민경제의 발전전략으로 선택하기도 한다. 일본정부는 생산 네트웍의 지역적 재조정과 국가역량의 국제화를 추진하면서 일본기업이 해외시장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Wade, 1995). 대만정부도 미국의 첨단기술산업을 인수 합병하는 대만기업을 다양한 방법으로 금융지원하고 있다(Chu, 1995). 한국정부는 1997년 후반 외환위기 이후 한국 기업의 국제적 금융기관을 통한 직접융자와 외국기업의 한국 금융시장의 직접투자를 적극 장려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적응성은 국민국가들이 1960년대 후반 이후 점차 지구적 차원으로 확대하는 사기업과 협력하는 새로운 방법과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경제적 지구화 과정은 국내자본을 국민경제의 주도권을 갖고 있는 국민국가들의 영향력으로부터 상당정도 벗어나게 한다. 일단 국내기업이 지구적 기업으로 발전하게 되면, 그들은 더 이상 국민국가들의 단순한 ‘하위 파트너’(junior partner)가 아니다. 오히려 경제활동이 지구적 차원으로 확대될수록 국민국가는 교육과 사회간접시설 제공 등을 통해 사적자본에 대하여 ‘지원적인(supportive)' 관계로 변환한다. 이러한 경제지구화의 효과는 신자유주의 경제관료의 등장과 함께 발전국가의 전환적 역할에 중대한 조건을 형성한다. 새로운 유형의 국가와 자본간의 상호의존성은 그 동안 경제발전을 주도해왔던 전통적인 국가행동을 불가능하게 만든다(Evans, 1995: 205-6). 비록 국민국가가 사회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할지라도, 국가권력과 역량은 지구화 과정을 통해 전통적인 발전국가와는 상당히 다르게 되고 있다. 이제 국민국가는 이전 시대처럼 산업정책과 무역정책을 직접적으로 관리하거나, 국제경쟁으로부터 국내자본을 완전하게 보호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그리하여 많은 국민국가들은 지구화 과정과 직접적으로 갈등하기보다는 현실적인 조건에 적응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결국 지구화 과정은 단순한 경제통합을 넘어서 국가와 자본간에 상호의존적이고 협조적인 동맹을 형성하는 복잡한 정치적 과정이 되고 있다.
결론
자본주의 발전국가는 급속한 산업화과정에서 행정적 지도를 통해 사회집단을 지도하고 국민경제의 발전목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이후 경제자유화와 사영화가 시작된 이래 사회 내 다양한 이익집단에 대한 발전국가의 관료적 지배는 점차 약화되고 있다. 이에 국민국가의 지속적인 경제개입의 역할을 강조하는 국가주의와 신중상주의적 입장과는 달리 신자유주의는 국가개입을 배제와 시장경제의 자율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지구화 과정에서 발전국가와 사회집단간의 상호작용은 국가와 사회집단이 서로 변환시킨다는 사실에 의해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가와 사회집단간 관계의 전환은 사회구조와 정치적 동학의 영향을 받으며 때로는 갈등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회집단은 관료적 국가의 역할변화를 요구하기도 하고 동시에 국가 관료제는 사회집단의 조직적 구조를 보강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호관계는 국가와 사회집단간의 역할에 중요한 변화를 야기시키며 국가는 점차로 지구화하는 세계경제의 새로운 환경에 그 자체를 적응시키고 있다.
현대사회의 국가와 사회집단간의 상호연결구조의 전환은 국가관료들로 하여금 베버적 의미에서의 독립적이고 일관성있는 국가기구를 유지하기 어렵게 한다. 그러나 국가관료의 약화가 반드시 조직화된 사회집단들이 관료적 국가를 지배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구화 과정과 국민국가는 권력의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으로서 파악되기보다는 서로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갈등과 협조가 동시적으로 전개되는 매우 복잡한 상호관계로서 파악되어야 한다. 국가와 사회의 관계의 전환은 단순한 정책결정과정의 위치변경이라기 보다는 더욱 복잡한 사회, 정치적 상호연결성을 제시한다. 그리하여 국가와 기업집단사이에 광범위한 협조적, 제도적 사회관계가 발전하고 기업엘리트와 국가엘리트사이에 사회연합(social coalition)을 형성함에 따라 국가와 기업관계는 정치와 경제행위자들 사이의 전략적 협조의 기능으로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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