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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재 목사
오늘은 대림절 넷째 주일입니다. 우리가 대림절을 통하여 주님 오시기를 기다리는 것은 현실에 대하여 염증을 느끼면서 변화를 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원하기 때문에, 억압된 삶에서 자유를 원하기 때문에, 삭막한 사회에서 사랑을 원하기 때문에, 부정과 불의한 세계에서 정의와 평화를 갈망하기 때문에 주님 오시기를 기다리게 됩니다.
우리는 일제의 35년간의 식민지 통치 하에서 해방되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습니까? 뜻밖에 찾아온 해방은 그래서 놀라운 은총이었습니다. 그러나 해방 후 분단과 전쟁을 통해 다시 고난 당하면서 우리는 간절하게 평화를 갈망하였습니다. 그러다 군사정권 아래서 신음하며 우리는 민주화된 나라를 열기 위하여 피나는 투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열린 새로운 역사이지만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낡은 정치의 틀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하게 염원하였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치른 선거에서 어느 정도 이런 바램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점진적으로 변화를 이룩하면서 발전하여 왔습니다. 이런 변화의 역사를 경험하면서 뒤를 돌아보면 그 때마다 하느님께서 역사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셨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민족을 결코 외면하시지 않고 고난 당할 때마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셨고, 우리 앞에 변화의 역사를 이룩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매우 천천히 그리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단번에 우리가 기대한 대로 완전하게 자유나 사랑이나 평화나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주님 오시기를 기다리게 되며, 하나의 변화를 거치면서 또 다른 변화를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는 작은 변화를 거치면서 마침내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 완성에 이르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 우리가 사는 동안 변화를 거치면서 성장함 없이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은 악하니까 그냥 되는 대로 살다가 이 다음에 천국에 들어가겠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오늘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나 자신과 세계의 변화와 성장을 위해 노력함 없이 저절로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거듭남과 사회의 개혁을 위해 노력할 때 영원한 생명에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나는 변화
오늘 읽어 드린 이사야서 예언은 야훼 하느님께서 오시므로 이룩될 변화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 즐거워 할 것이다”. 1절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연못이 되고, 메마른 땅은 물이 쏟아져 나오는 샘이 될 것이다. 승냥이 떼가 뒹굴며 살던 곳에는, 풀 대신에 갈대와 왕골이 날 것이다.” 7절
사막이 변하여 강물이 흐르는 기름진 평야가 된다는 것은 환경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죽음이 지배하던 땅이 생명의 땅으로 변함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단순한 자연환경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둘째는 사람에게서 일어날 변화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눈먼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 귀먹은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다. 그 때에 다리를 절던 사람이 사슴처럼 뛰고, 말을 못하던 혀가 노래를 부를 것이다.” 5-6절
눈과 귀가 멀고 말을 못하던 사람들이 보고 듣고 노래하게 될 것이며 다리를 절던 사람이 뛰게 될 것이라고 한 것은, 인간의 온전치 못함이 극복되어 온전하게 될 것을 뜻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퇴화되었던 영적인 감각이 회복되어 하느님을 뵈오며 그 음성을 듣고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됨을 뜻합니다.
이런 모든 변화는 하느님이 우리 가운데 오실 때 일어나는 '기적'입니다. 이 기적 가운데서 우리는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대로 사막이 변하여 기름진 평야가 된다는 것은 극에서 극으로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변화가 아닙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하면 순간적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지만,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를 우리 인간들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서 우리가 비로소 거기에 적응할 수 있기에 하느님은 마침내는 사막이 기름진 평야가 되게 하시겠지만, 우리와 더불어 천천히 기적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변화의 방향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사막과 같은 환경을 그대로 두시지 않고 기름진 땅으로 변화를 시키신다는 사실입니다. 죽음이 지배하는 땅을 방치하지 아니하시고 생명의 땅으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우리 인간의 삶은 낡아지는 삶이며 소비하고 파괴하는 삶인데 반하여 하느님은 우리가 망가뜨린 세계를 새롭게 하시며 온전케 하십니다. 우리는 기름진 땅을 사막으로 만들어 가는데 반하여 하느님께서는 사막을 기름진 땅으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삶은 환경을 사막화시킬 뿐 아니라 우리의 정신세계나 영의 세계까지도 사막화시킨다는 데 문제의 심각함이 있습니다. 도덕적 황폐함은 세계를 거짓과 불의로 가득 채우며, 무자비한 전쟁을 통하여 살육(殺戮)을 밥먹듯 저지르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飢餓)로 죽어가고 있는데도 그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려 하지 않을 만큼 우리 세계는 정신적으로 황폐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욕망으로 점점 더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서 하느님의 계시를 보지 못하며 그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셨지만,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고, 그의 말씀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눈이 멀고 귀가 어두웠기 때문입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어 달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눈 먼 자들과 귀 먹고 말 못하는 사람들을 고쳐 주시며, 귀신 들린 자들을 고쳐 주신 것은 이사야의 예언이 한낱 말장난에 그치는 약속이 아님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병 고치는 기적은 하느님이 마지막 때 이루실 미래의 큰 역사를 조금 보여주신 맛보기에 불과합니다. 예수님 오실 당시 유대 땅에 살던 몇몇 병자만 고쳐주시기 위해서 그가 오신 것이 아니라 영적 감각이 퇴화된 인간들을 모두 고쳐 주시고자 오셨습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이 그 눈과 귀가 멀어 이 역사를 올바로 분별하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과 욕망을 좇아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므로 그 정치적 생명이 끝난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하느님의 역사를 분별할 줄 아는 눈과 귀라고 할 수 있는 '원칙'과 '신념'은 없고, 오로지 눈앞의 이익만을 좇았기 때문에 파멸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 시대의 변화를 원한다면 주님의 말씀을 따라 원칙이 준비되고 원칙을 끝까지 지켜갈 신념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이 역사를 반전시켜 새롭게 하시며, 오늘의 어둠을 걷어내시고 빛을 주시고, 낡은 것들을 청산하고 새로운 것들을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그의 뜻을 받들어 변화를 간구하며 기다리면 사막화된 역사를 조금씩 변화시켜서 백합화가 피는 동산, 강물이 흐르는 기름진 평야가 되게 하십니다. 비록 더디고 힘들더라도 인내로 기다리면 마침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세계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거룩한 길
하느님께서 사막과 같은 이 땅에 임재하시면 그것이 변하여 꽃동산이 될 뿐 아니라 거기에 '거룩한 길'이 생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거기에는 큰 길이 생길 것이니, 그것을 "거룩한 길"이라고 부를 것이다. 깨끗하지 못한 자는 그리로 다닐 수 없다. 그 길은 오직 그리로 다닐 수 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악한 사람은 그 길로 다닐 수 없고, 어리석은 사람은 그 길에서 서성거리지 못할 것이다. 8절
'거룩한 길'이란 결국 거룩하신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뜻합니다. 깨끗하지 못한 자나 악한 자들은 그 길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은 그 길이 결국 하느님께 이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변화의 역사를 이루신 궁극적인 목적은 이 세계를 모두 그에게로 이끌어 그의 창조를 완성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길'을 만드시고 그 길로 만물들이 그에게로 나오도록 이끌고 계십니다.
하느님은 그의 아들을 통하여 이 '거룩한 길'을 만드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생명의 길을 놓으셨습니다. 하느님과 피조물 사이에 막혔던 것들을 모두 없애고 거기에 거룩한 길을 뚫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 요 14:6
예수께서 만드신 거룩한 길이란 생명의 길, 진리의 길, 사랑의 길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진리가 있는 곳에 길이 열리며, 사랑이 있는 곳에 길이 생겨난다는 말입니다. 정의가 실현되는 곳에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만들어집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곳곳에 묻혀 있는 지뢰와 같은 모든 죄악들을 제거하시고 거기에 길을 만드셨습니다. 증오와 불의와 분노와 같은 지뢰가 제거될 때 거기에 사랑의 길, 평화의 길, 정의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도 그리로 지나다니지 않을 것이다. 그 길에는 그런 짐승들이 없을 것이다. 오직 구원받은 사람만이 그 길을 따라 고향으로 갈 것이다.” 9절
거룩한 길에는 사자나 사나운 짐승들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사나운 짐승들은 곧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미움과 시기와 질투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들이 발동되면 우리는 정말 사나운 짐승처럼 돌변해 버립니다.
그렇다면 증오와 적개심, 불의와 거짓, 시기와 질투 같은 것들이 묻혀 있는 우리의 마음이 언제나 문제임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거듭나지 않으면 거룩한 길은 생겨나지 않을 것입니다. 거룩한 길은 바로 내 마음 속에 만들어지는 길임을 알게 됩니다. 내가 적개심을 버리고 사랑을 품으면 너와 나 사이에 막혔던 길이 열리게 됩니다. 내가 불의한 마음을 버리고 정직함을 품으면 거기에 거룩한 길이 생겨나고 그 길로 우리는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깨끗하지 못한 자나 악한 자나 어리석은 자가 그 거룩한 길로 다닐 수 없는 것은 그들 속에 죄의 지뢰가 묻혀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거듭남으로 그 속에 있는 모든 불의와 죄악을 없애버릴 때 비로소 사막은 점차 꽃동산으로 변하고 거기에 사랑과 정의, 진리와 평화가 자리 잡으면서 거룩한 길이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는 곳곳에 무서운 증오와 불신의 지뢰가 깔려있다는 사실입니다. 지역 갈등을 부추기고 그것을 기반으로 자기 정치적 입지를 세우려는 정치인들 때문에 이 조그만 땅이 동서로 나뉘어 서로 불신하고 증오하였습니다. 이런 낡은 정치가 없어지기를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까? 이번 대선을 계기로 그런 가능성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지역을 중심한 정당들이 해체되고, 동서를 아우르는 전국적인 정당들이 만들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정당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정당을 따라 모든 국민이 나뉘어 졌기 때문에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쓸데없이 지역 감정을 따라 서로 얼굴을 붉힐 것이 아니라 진리와 정의, 그리고 원칙을 따라 정책의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할 것입니다.
남북 간의 문제도 불신과 대결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풀어갈 수 없습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서로 조금씩 신뢰를 쌓아갈 때 비로소 거기에 길이 열리고 새로운 역사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 속에 있는 증오와 적개심을 털어 내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사랑과 그 진리를 간직할 때, 남북 간의 '거룩한 길'이 열려 서로 오고 가면서 마침내 통일의 그 날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동서간에도 화합의 고속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정치,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 즐거워하며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보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체화되었고, 성령께서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다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이유도 이 말씀대로 역사가 발전하며 변화될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말씀에 "그리스도께서는 신적 권능으로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죽음에서 벗어나 생명과 경건에 이를 수 있는 능력을 통하여 생명의 역사를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밝아진 눈과 귀로 이 역사의 진행을 올바로 분별하면서 사막을 꽃이 피는 동산으로 변화시켜 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월드컵 4강에 들면서 붉은 악마의 거대한 물결이 요동치는 경험을 하였고, 여중생 사망 사건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촛불 시위를 경험하면서 정의와 평화를 향한 열망을 우리 속에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대선을 치르면서 우리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고비마다 우리와 함께 하시어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내시면서 우리로 희망을 갖고 나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변화의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그의 역사에 대한 더욱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희망의 역사를 일구어 가야 하겠습니다.
이제 이번 성탄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므로 그가 이루시는 놀라운 변화의 은총과 기쁨을 맛보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