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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감사
(신 8:11-18)
세르비아 출신의 목회자인 아버지 보리스와 어머니 두쉬카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8세 이후 장애를 비관하여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과 사랑아래 양육을 받으며 성장하게 됩니다. 팔도 다리도 없는 아이가 부모의 교육철학으로 정상인이 다니는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학생회장을 지냈고, 호주 로건 그리피스 대학에서 회계와 경영을 전공했습니다. 그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서핑을 하고, 드럼을 연주하고, 골프공을 치고, 컴퓨터를 합니다. 그는 바로 허그(Hug)라는 책을 쓴 닉 부이치치(Nick Vujicic)입니다. 허그(Hug)란 포옹을 의미합니다. 죽음만 생각하던 그는 자신의 한계를 있는 그대로 껴안고 나아가 세상을 허그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팔도 없고 다리도 없습니다. 또한 걱정도 없습니다.” (No Arms, No Legs, No Worries) “내 삶에 더 이상 한계는 없습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넘어져도 좋습니다!” 얼굴과 몸통만 덩그러니 있지만 언제나 싱글벙글 하는 그를 바라보며 갖는 궁금함이 있습니다. 인생을 감사의 눈으로 보기 시작하자, 몸뚱아리 밑에 꽁지 같은 작은 발과 거기 붙은 발가락 두 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닉 부이치치는 세상 누구보다 커다란 장애를 갖고 태어났지만 발가락 두 개로 지금 세상 누구보다 멋진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닉, 왜 그렇게 행복하세요?” 라고 묻는 이가 있을 때마다 그는 솔직하게 대답합니다. 그런 자신에게도 한없이 절망했던 때가 있었다고. 태어날 때부터 외모 때문에 아이들로부터 괴물이나 외계인같다는 놀림으로 자살을 시도했었다고요. 그는 땅을 치며 슬퍼했고 끝없이 우울했습니다. 늘 마음이 아팠고 부정적인 생각에 짓눌렸습니다. 어디를 봐도 출구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마침내 절망 가운데 행복으로 통하는 문을 찾았습니다. 그 후 그는 달라졌습니다. 자신의 삶을 희망으로 가득 채우고 싶었습니다. 숨이 막히도록 멋진 삶을 맛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의 하루는 감사로 시작해서 감사로 마쳐집니다. 내가 이토록 눈물겹게 감사할 수 있다면 세상사람 누구나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십시요.” 진정한 감사란 무엇입니까?
본문 신명기 8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가 엄청난 풍요를 누리게 될 때 광야 생활을 잊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광야의 시련과 훈련을 절대로 잊어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믿고 의지했던 애굽의 생활 습관을 버리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감사하라고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하나님만 의지하고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예전에 비하면 얼마나 잘 살게 되었습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불만스러운 것은 감사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끊어진 감사의 줄을 찾아 진정한 감사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감사가 되려면,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
어릴 때 목동이었던 아이가 자라서 나중에 나라 일을 크게 하는 후작이 되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부러워하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늘 자기가 어릴 때 양을 치던 곳을 자주 찾곤 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에 목동의 방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양을 치던 곳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양을 치면서 입었던 옷과 지팡이나 옛날 물건들을 진열하여 놓았습니다. 집을 방문하였던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보고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냄새나고 더러운 것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까? 불우하였던 과거는 아예 잊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이 말을 듣고 그는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지금 후작이네. 내가 이런 것들을 자주 생각하지 않으면 교만하여 진다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내가 어떻게 후작이 될 수가 있겠는가?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드리고 싶어서 늘 이런 것들을 보고 있다네”
본문 11절입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감사란 늘 풍족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한 가운데서도 감사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기억해야 진정한 감사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게 되고 소와 양이 번성하고 은금이 증식되고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하나님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본문의 내용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좋을 때도 하나님을 기억해야 하지만 고통스러울 때도 그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억압에서 풀어 자유하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새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부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언제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한 순간도 하나님을 잊지 말고 진정한 감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인도를 깨달으라
네비게이토 선교회에서 국제선교를 담당하는 리로이 아임스(LeRoy Eims) 목사가 시카고에서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 토론토로 가게 되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출발 시간이 5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탑승구가 저 멀리 있습니다. 또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고 있는데 승무원 복을 입은 한 사람이 다가와 말합니다. “ 생님!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임스가 말합니다. “예, 비행기 출발 시간이 5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제 손을 잡으세요. 안내해 드릴께요” 라며 그를 인도하였습니다. 아임스는 너무나 고마워 “누구십니까?” 라고 물었더니 그가 대답합니다. “저는 선생님이 가시고자 하는 토론토까지 비행기를 몰고 갈 기장입니다.” 그때서야 마음에 안도감이 생겼습니다. 조종사와 함께 있으니 비행기가 떠날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 순간 아임스 목사는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으며,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곁에 안 계신 것 같지만 하나님은 가까이서 우리를 항상 인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이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는다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대신 감사가 나오게 될 것입니다.
본문 15절입니다.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당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삶이 힘들고 어려우십니까? 그럴수록 자신을 의지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지나간 날들을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시고, 지금까지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셨다는 사실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의 손을 붙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의 손을 붙들어 여기까지 인도해 주심을 깨닫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달을 때 비로소 진정한 감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능력을 고백하라
웜즈의 회의(Diet of Worms)로 알려진 역사적 순간에 로마 교회 앞에서 자기의 뜻을 밝혔던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서 있던 자리가 있습니다. ‘Here I Stand!’ 그곳에 가장 중요한 종교 지도자들이 모여서 독일의 한 수도사가 선포하는 ‘은혜로만 구원받는다’ 는 교리를 들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루터는 홀로 일어섰습니다. 두려움이 없는 단호한 모습이었습니다. 루터가 교황, 고위 성직자, 추기경, 황제가 듣는 자리에서 말을 하기 직전에, 한 친구가 루터에게 물어왔습니다. '형제 루터여, 두렵습니까?' 그러자 루터는 이렇게 놀라운 대답을 하였습니다. “아닙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교황과 추기경 보다 더욱 대단하고 큰 교황인 내 자아입니다.” 정말 두려운 것은 교만해지려는 자아입니다. 자아를 겸손히 간수할 수 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들어 쓰십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 힘으로 내 능으로 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힘 주시고 능을 주셨기에 가능했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감사는 내 능력과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능력을 주셨기에 가능했음을 고백할 때 이루어집니다.
본문 17절입니다.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즉 내 힘이 아니고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힘과 능력을 주셨음을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내가 아니라 주님이 하셨다는 깨달음으로 살아갈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습니다” 라며 하나님이 능력이심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비로소 진정한 감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빙점’ 의 작가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는 은혜에 익숙한 것이 가장 무서운 것이라며 자신의 기도를 소개합니다. “하나님! 은혜에 익숙해지지 않도록 인도해주세요.” 그녀는 중병에 걸렸을 때 한 청년을 만나 전도를 받았습니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그 청년과 결혼을 했습니다. 병든 자신과 결혼을 해 준 그가 너무도 감사하여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몇 년을 같이 살다보니 별로 고맙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저 그랬습니다. 당연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남편에게 신경질도 내고, 화를 내고, 미워하기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회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은혜, 죄 가운데 나를 구원하신 은혜에 너무나 익숙하여 감사하지 못하고 있는 신앙이 아닙니까? 찬송을 들어도 기쁨이 없으며 기도를 해도 감격이 없는 신앙은 아닙니까? 짜릿한 것을 바라지만 얻지 못하여 불평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예배의 타성에 젖어 열정을 상실한 채 시큰둥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닙니까? 이 모든 것이 은혜에 익숙한 나머지 감사를 놓치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들입니다.
부디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진정한 감사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이 되었음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감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신명기 8:11-18)
설교 : 문성욱 목사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항상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속히 잊어버려야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거꾸로 기억해야 하는 것들은 곧잘 잊어버리고, 속히 잊어버려야 하는 것들은 기억 속에서 지우지 못하여 평생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억해야할 것을 기억하지 못하면 나도 모든 사이에 어려움과 슬픔이 다가옵니다.
열왕기상 2장에 보면 베냐민 지파의 시므이는 다윗 왕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할 때 저주했다가 다윗 왕이 왕권을 회복하여 돌아올 때 용서해 받았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왕 때에 “네 생전에 예루살렘을 떠나면 죽이겠다”는 명령을 잊어버리고, 도망간 두 종을 찾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났다가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시므이는 죽을 위험에서 솔로몬 왕의 긍휼로 살았으면 예루살렘 안에서만 살면 죽이지 않겠다는 명령을 기억하고 지켜야만 했는데, 잊어서는 안 될 명령을 잊고 예루살렘을 떠났다가 그만 죽임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이처럼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 주시기 위해서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18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어떤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까?
첫째로,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14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00년 동안이나 종살이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셔서 약속하신 축복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감사의 이유는 출애굽의 은혜였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었을 때는 사탄의 권세에 얽매여 사는 죄의 종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우리를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죄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서 장차 하나님 나라의 자녀들이 되어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모든 영광을 영원히 누리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구원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찬송가 305장을 보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1절),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네(3절)’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것도,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장차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는 절로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 감사가 식었습니까? 구원의 기쁨,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다시 한 번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뜨겁게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는 형통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12-14상)
사람이 배가 고프면 코가 예민해집니다. 그러나 배가 부르면 자동적으로 코가 무디어지기 마련입니다. 영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절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형통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축하한다는 인사를 받을 때, 별것도 아니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러한 말이 마치 겸손한 것처럼 착각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것을 겸손이라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교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될 때, 형통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감사하지 않는 것을 바로 교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축하합니다.”라고 인사한다면,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형통할 때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의 왕좌에 올라 백향목 궁에 평안히 거하면서도 하나님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궁전보다 훨씬 더 좋은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서 그 속에 하나님의 궤를 보관하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마음을 보신 하나님은 너무너무 기뻐하셨습니다.
다윗은 형통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짓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을 아름답게 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그의 이름을 존귀하게 하시고, 그와 그의 자손 대대로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형통할 때에, 평안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중에 아무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하다못해 숨을 쉬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가 없었으면 우리는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처럼 형통할 때에, 평안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는 곤고할 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15-16절)
우리는 형통할 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해야 되지만, 곤고할 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범사에 감사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곳은 불뱀과 전갈이 있는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물이 없는 건조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농사도 목축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는 선하신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광야에서도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 전체를 책임지시고 돌보아 주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 윌리엄 캐리 > 영국에서 구두 수선을 하던 그는 하나님께 헌신하여 25세에 목사가 되고 31살에 인도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인도에 도착한 후 그는 깊은 감격 속에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인도에 도착한지 1년 만에 5살짜리 아들을 잃었고, 그 충격으로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던 아내도 죽었습니다. 그는 7년 동안 한 사람도 제자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인도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끊임없이 주셔서 인도에 도착한 지 20년 만에 인도 사람을 위한 뱅갈어 성경번역을 마쳤습니다. 선교부에서 보내준 종이와 잉크와 인쇄기로 성경인쇄작업을 하던 중 인쇄공의 실수로 20년의 수고가 물거품처럼 날아가 버렸습니다. 번역한 원본과 그가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었던 뱅갈어 문법책과 사전이 타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그는 잿더미 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의 20년 수고를 거두어 가셨군요. 그래도 제가 다실 할 수 있는 믿음을 거두어가지 않으셨으니 감사합니다.” 그 뒤 그는 더욱 훌륭한 뱅갈어 성경을 이전보다 빠르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역사는 언제나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 편에 섰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면 걸림돌은 반드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희생과 헌신은 반드시 열매 맺는 날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불행과 고통을 행복과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한 단어! 그것은 바로 감사라는 단어입니다. 감사하면 행복하고 곧 축복이 따라옵니다. 기복주의는 기원은 있으나 감사가 없고 축복은 바라지만 희생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감사는 바른 신앙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지금까지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걸어왔습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무사히 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에벤에셀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지시고 보살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해서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때로는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그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은 마침내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감사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감사로 말미암아 더 많은 것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를 받아들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실 때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날 것처럼, 감사가 기적을 낳습니다. 감사가 하나님을 움직입니다. 감사는 고백할 때 능력을 발휘합니다. 감사를 마음에만 담아두고 있으면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감사는 넘치는 하나님을 우리 삶 속에서 만나게 하는 촉매의 역할을 해 줍니다.
금번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여 우리 모두가 구원의 기쁨과 구원의 감격을 다시 한 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형통할 때도 감사하지만, 곤고할 때도 변함없이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주님께 인정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갑천뉴스타트 자연치유원 글쓴이: 엘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