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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활절입니다. 기독교에서 가장 기념하는 절기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성탄절과 부활절을 크게 기념하죠.. 그래서 성탄절에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 찬양하고, 부활절에는 “할렐루야 우리 예수 부활 승천하셨네”라며 찬양합니다.
여러분은 “성탄절과, 부활절” 중 어느 날이 더욱 기쁜 날이요, 자랑해야 할 날이라고 여겨지십니까?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를 들어 알아듣기 쉽도록 설명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 아버지는 농부라”고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을 “농부”라 하셨을까요? “땅에 씨를 뿌린”, 즉 독생자를 보내주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면 어떻게 됩니까?
마가복음 4장 28,29절을 보시겠습니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우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나라가 씨를 뿌려서 추수하는 농사와 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떠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탄”은 씨를 땅에 뿌림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 고난은 무엇이겠습니까? 씨가 싹을 내기 위하여 터지듯 하는 해산의 고통과 같고, 부활은 열매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점을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2장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리스도교신앙은 예수의 탄생, 십자가, 죽음 이 모두가 다 중요하지만 예수의 부활은 그 정점입니다. 로마서 1장 4절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의 탄생과 그 십자가 이후에 예수의 살아나심이 없었더라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를 증거하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며 따라서 그리스도교도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의 훌륭한 교훈, 그의 위대한 사랑, 그의 놀랄만한 희생봉사만을 예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예수님을 인간 성자로 한정하고 어떤 존경의 대상으로만 보려는 생각으로 신앙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기독교를 어떤 종교철학으로 한정하려는 사람들의 특징은 예수님의 부활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마저 기독교를 그렇게 보려고 한다면 그것은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우리가 새 생명, 새로운 삶이 없는 헛된 것을 쫓는 것이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2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기독교에서 가장 핵심은 바로 생명의 부활입니다. 새로운 인생, 다시 태어나는 삶이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사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부활에 대한 사상이고, 바울의 모든 서신은 생명의 부활에 역점을 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는 생명의 부활을 확인한 다음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로 순교하였고 의심많은 도마는 새로운 용기를 갖고 인도에 복음을 전했으며, 바울도 처음에는 기독교를 박해하던 사울이었지만 새 사람이 되어 세계선교에 일생을 바쳤다. 이것은 생명의 부활이 초대교회 사도들의 선교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부활이 없다고 말하면 그것은 거짓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4,15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교회가 영원히 승리한 것이고 지금도 계속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부활은 죽음에 대한 영원한 승리요, 죽음을 이긴 그리스도의 생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어느 누가 인간의 죽음을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역사에서 어느 누가 죽음을 초월하고 죽음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죽음을 이기시고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부활에 대해 분명히 말씀해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5~27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정말 이 말씀이 우리의 부활의 귀한 역사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런 귀한 부활의 신앙을 가진 우리가 오늘 본문을 통해 부활의 귀한 역사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부활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리는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늘 부활절을 맞아 우리가 받은 부활에 감사할 뿐 아니라 정말 부활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때 누리게 되는 복을 함께 누리기시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부활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기뻐하는 것을 함께 경험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4장 33절입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사도행전을 보니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니 그 증거의 결과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전도하고 복음증거하면 오히려 거부감이 들고 관계가 깨어질 것 같은 느낌으로 인해 쉽게 복음을 전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목회자인 저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고주리에 들어와서 참 사랑으로 여러 가지 일을 섬기고 선물을 나눠주고 도움이 될 만한 일들을 찾아서 관계를 여는 일들을 참 많이 했지만 정말 복음을 전하고 부활의 역사를 전하는 것에 대해서는 때를 찾기 힘들고 어떤 기회에 복음을 제시할까 정말 큰 고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참된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고 예수님의 큰 역사를 전할 때 하나님께서는 준비하신 사람을 붙여주시고 사람들에게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결국 전도의 과정에서 선포는 우리가 하는 것이지만 모든 과정과 결과는 하나님께서 행하십니다. 특히 결과는 하나님께서 책임져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결과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은혜를 충만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7장 4절입니다.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 간증할 때 가장 큰 열매로 나타난 것이 바로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충만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가운데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위로가 되어지고 우리의 삶가운데 아무리 슬픈 일이 많아도 그 속에서 기쁨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인생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것은 위로함을 얻지 못해서 항상 우울하고 기쁨을 얻지 못하고 항상 눈물만 나온다면 정말 인생이 갑갑하고 살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힘든 환경과 상황에서도 위로와 기쁨이 넘친다면 우리는 환경이 힘들고 경제적인 형편이 어려워도 살아갈 힘을 얻지 않겠습니까? 이런 일이 어떤 경우에 가능하다고요.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임하게 하실 때에 우리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을 통해 우리가 은혜가 충만해진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부활절에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경험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고 정말 은혜가 충만하고 기쁨이 가득하신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활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둘째로 한 가족으로 변화되어지고 혈연공동체를 뛰어넘는 공동체의식이 생깁니다.
사도행전 4장 34절입니다.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오늘 말씀속에서 부활의 증거를 듣고 은혜받은 사람들은 이제 한 가족이 되어지고 가난한 사람이 없이 서로 경제적인 도움을 주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기록들과 여러 초대교회의 역사를 기록한 기록들속에서 정말 신앙공동체는 서로의 어려움을 돕고 섬기는 가족공동체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배우면서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라고 말을 할 때 그것은 바로 신앙공동체의 회복이고 믿음으로 서로를 돕는 협력공동체의 회복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즉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회복입니다. 구약성경 신명기에 보면 이런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에 대해 기록된 말씀이 있습니다.
신명기 15장 5,6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통치할지라도 너는 통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가난한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칙에서는 믿음의 공동체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서로 지고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44,45절을 보시겠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정말 신앙의 회복이 일어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우리가 우리의 재산에 대해 소유권이 아닌 청지기의식이 나타나게 되고 주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써야할 곳을 알고 제대로 쓰게 됩니다. 부활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소유의식속에서 모으는 능력을 강하고 부활을 경험한 사람은 청지기의식이 생겨서 나눔이 풍성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참 부활의 역사를 경험하며 청지기의식이 생겨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부활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마지막 셋째로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관심을 두고 도움과 나눔의 삶으로 변화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4장 35절입니다.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본문을 보니 참 사랑으로 나눠주고 섬겨주는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정말 부활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들은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변화된 사람들은 자신의 삶보다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참 감사한 것이 사모가 사모다운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며칠 전에 목사님들과 독서모임을 마치고 차를 마시며 몇 몇 목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 목사님이 사모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결혼해서 지금껏 설거지 한 번, 청소 한 번 안 해보고 가정사역은 오로지 사모가 담당한다고 생각하며 자녀양육과 가정일은 사모가 담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만 하면서 교회일에 대해 전혀 신경을 안쓰니 사모역할을 안한다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사모역할이 뭐냐라고 제게 묻기에 사모가 목사옆에만 있어줘도 사모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니겠냐? 일반목회에서 사모가 있어줘서 가정일 신경 쓸 일이 줄어들고 사모가 있어줘서 교회일 의논만 할 수 있어도 사모는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사모는 그 역할을 뛰어넘어서 최소한 신앙가치관에 있어 섬김과 나눔과 대접을 잘 하고 형편이 부족해도 선교사들을 돕는 일,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을 섬기고 돕는 일을 잘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정말 사모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목사님들 독서모임에서 어느 목사님 사모님이 최근 암이 발병되었는데 자녀들이 불치병이 있어 치료비가 들어가고 자신이 암치료받아야하는데 돈이 들어갈 것이 걱정되니 며칠 전에 목사님께 한 마디 했답니다. 지금 하는 목회는 돈이 안되는 상황이니 이제 나가서 돈 좀 벌어오라고 아내가 아파서 치료받을 돈도 없는데 일 안하고 뭐하냐고...
그 말을 들으니 정말 제가 더 사모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구요. 정말 목회자의 사모중에도 돈! 돈! 돈! 하는 사람도 많은데 오히려 더 모으려고 애쓰기도 힘든 형편에 어떻게든 어려운 분들 나눔과 섬김과 도울 것이 없는 지 생각하며 사역하는 사모야말로 진짜 사모구나라는 생각을 독서모임을 하면서 느꼈습니다. 물론 그 앞에서 강하게 표현하면 팔불출될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사모님들을 평가하는 것 같기도 할까봐... 아무 말도 못했지만 저는 정말 ‘은혜체험한 사모와 살고 있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사모가 그래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정말 은혜를 체험하면 정말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삶을 돌보시고 채우시는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섬김과 사랑은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오늘 오후에 마을회관에서 마을주민들을 초대해서 복음을 전하며 구원초청을 하고 영접기도도 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함께 기뻐하며 부활잔치를 엽니다.
사실 오늘 행사의 대부분은 와~우리교회 4교구에서 프로그램진행과 물품과 재정을 다 준비해서 오셔서 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마을주민을 초대하고 홍보하는 것이 우리 교회에 맡겨진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수막을 달고 이장님, 부녀회장, 노인회장님 등을 뵙고 홍보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이 그냥 사람들을 모는 것이 쉽지 않을 듯해서 제가 든 생각이 부녀회장과 부녀회분들이 포함된 팔탄면 자치기관 무용공연단을 섭외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일정이 맞아 떨어져서 오시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그 분들은 그냥 오시는 것이 아니라 식사비라고 찬조를 받고 공연을 하시는 분들입니다. 와~우리교회에 알려드렸더니 재정적인 부담이 또 생기는 것이기고 하고 교회이미지적인 것이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난색을 표했습니다. 일단 재정문제는 와~우리교회 상관없이 우리교회가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미지문제는 제일 첫 부분에 공연하게되면 분위기 별로 상관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서 사실 이장님, 부녀회장님 등은 팔탄면의 기관공연팀이 오기에 그리고 부녀회원들이 많이 소속되어 있기에 자신들의 공연에 마을분을 초대하는 분위기가 생겨났습니다. 인원동원에 함께 부담감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부녀회원분들이 더 적극적으로 행사알리는 현상을 지난 주에 보았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 제가 교회 재정으로라도 부담하겠다고 했던 금액을 지난 금요일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분에게서 찬조를 받았습니다. 최근 계속 기도하러만 가면 제 생각이 나더라면서 제 모교회 동기인 여집사님이 조그마한 금액이라고 보내고 싶다고 계좌번호 하나만 보내달라더니 보내온 금액이 딱 공연팀에게 주기로 한 금액과 일치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채우심을 경험하며 믿음으로 살아가기 위해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합니다.
오늘 오후에 우리 고주리교회는 마을회관에서 전도잔치를 열며 전혀 신앙이 뭔지 모르는 불신자들에게 구원의 역사를 알려주고 초대할 것입니다. 얼마나 영접하고 얼마나 이제 변화된 신앙인이 생겨날 지 알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참 많은 섬김과 봉사를 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간접적으로는 알려주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간증하며 복음을 전하고 구원초대하는 것은 고주리에 들어와서 거의 10년에 처음일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 진정 구원받고 신앙이 생겨나는 사람들이 생겨서 고주리에 예수공동체가 생겨나고 부활의 증거의 열매가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그럴 때 오늘 말씀처럼 고주리마을은 참 사랑과 은혜가 충만한 땅이 되어지고 가난하거나 소외되거나 아픈 사람이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의 어려움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어주며 진정 하나되는 예수가족, 신앙공동체로 거듭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오늘 부활절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가 먼저 참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며 참 사랑으로 서로 섬기며 기쁨이 충만하고 어려움이 주님의 이름으로 해결되어지는 그리스도의 가족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