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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면담자 |
내용 |
무속협회인 |
기독교 등 현대종교에서는 무가 체계화된 정리가 없고 미신이라는 이유로 종 교성을 부인한다. 무속은 한가지 신이 아니라 만신을 모시는 하나의 종교이 다. 정부차원에서의 인정이 필요하다. |
목사 |
무교는 절대자라는 숭배대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종교성이 부정된다. |
신부 |
⸁ 신을 모시기 때문에 종교이다. ⸂ 사람들이 무속을 믿는 마음이 있고, 실제 무는 종교로서의 영향력을 발휘. |
종교학자 |
종교학계에서는 종교를 광의로 이해하여 세 가지 구성요소를 갖춘 무도 종교로 본다. 종교집단, 종교행위, 우주관과 신관 그리고 인간관 같은 교리적 측면을 무 는갖추고있다고본다. |
(3) 소결
이처럼 피면담자는 자신들의 종교적 입장에 따라 무에 대한 종교성을 인정(무관계인, 신부)하기도 부정(목사)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한 종교학계의 통설은 세 가지 구성요소를 갖추는 무에 대해 일단 종교성을 긍정한다고 한다. '최고조'는 객관성을 가진 종교학계의 일반적인 입장과 같이 무의 종교성을 일단 인정하면서 글을 진행한다.
<무교의 종교성 인정에 대해>
민호 & 인정(두사람은 다소 anti개신교) : 㰂 ⃡ 㰃흥~ : 우성(개신교)
피면담자처럼 발표자 간에도 대립구도
2. 무가 기독교에 미친 영향
(1) 기존문헌의 조사
여기서는 기존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기독교 속의 무적 영향들을 대표적인 몇 가지로 정리한다. 필자가 그 영향들에 대해 개별적으로 긍정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한다. 각 주장과 그에 대한 논거를 수용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기회는 잠시 뒤로 미룬다, 기존 문헌의 조사 단계에서는 일반적으로 무의 영향이라고 생각하는 모습들을 소개해 본다.
① 기독교 속의 현세구복적이고 가족 중심적인 무속적 성향(김인회)
기독교의 찬송 내용이나 그것을 부르는 방식, 신도들에게 되도록 많은 헌금을 요구하는 경향 등을 무의 영향으로 들고 있다. 그 밖에 기독교의 교파 분열과 기독교계 내의 지방색, 일부 기족교 지도자들의 사대주의적 정치경향 등도 무속의 역기능적인 요소들과 닮은 것으로 서술한다. 특히 기독교 신도들의 헌금 동기나 목적 속에 기독교적이 아닌 무속적 성향이 숨겨져 있다고 보고 있다.
② 성령운동·기독교 집회의 종교적 의미와 풀이굿(정진홍)
그는 급성장한 대형교회의 현상과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순복음중앙교회의 예배와 금식 기도원 예배를 참여 관찰하고 그것을 종교학적으로 접근하였다. 이 연구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온 사람들인데 저렇게 풀지도 못하면 그 한을 어디가서 풀겠느냐'는 기도원 책임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집회의 종교적 의미는 우리의 전통적인 '구원론(soteriology)'에 의한 '풀이굿'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종교의 제의도 '풀이굿' 아닌 것이 없다고 판단하면서 이런 유형의 기도회가 그것 자체로 비난받을 까닭은 없다고 한다.
③ 샤머니즘화된 기독교적 치병현상(김광일)
김광일은 성령운동의 기독교적 치병현상에 초점을 맞추어 조사연구를 진행하였다. 그는 기독교적 치병법의 원리가 대부분 샤머니즘의 그것과 동일하다고 본다. 심지어 목사나 전도사의 예언이 무의 이른바 신점에 해당된다고 보고 있다. 문화정신의학적으로 접근하여 치병이나 방언 현상을 샤머니즘과 기독교의 복합체적 현상으로 파악한다. 초기 고린토교회에 성행하던 방언, 축사의 이교도들에 의한 유입을 참작한 것이다.
샤머니즘화된 기독교적 치병현상의 원인을 두 가지로 파악해 놓고 있다. 하나는 현대의료가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의료적 문화접변이다. - 한 장소에서 신앙치료, 무당굿, 한방, 현대의료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환자. 다른 한 요인은 기독교가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기독교와 샤머니즘의 혼합현상의 일종이 기독교적 치병현상의 샤머니즘화라는 것이다.
④ 몰아지경에 대한 동경. 신비주의, 종교적 영적 체험 선호
어떤 학자들은 기독교 집회에서의 시끌벅적한 모습에서 무교의 영향을 찾으려 한다. 마치 굿판과 같다는 것이다. 노래를 오랫동안 크게 부르고 기도를 크게 하는 것이 우리 나라 기독교집회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흑인교회를 보면 우리에 버금가는 정도로 소란하게 예배를 본다. 여기까지는 비슷하다고 해도 방언을 하며 집단적으로 몰아지경에 빠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런 관점에서 무교의 신내림 현상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있다.
(2) 면담내용 요약 - 무가 기독교에 미친 영향
피면담자 |
내용 |
무교협회인 |
성령의 혼을 받은 목사의 안수기도와 무속인이 기를 받아서 치료하 는 것은 같은 이치이다. 병명이 나오지 않는 환자는 강신의 단계에 있 고 신병이 있다. 기독교인들도 답답하면 굿을 한다. |
목사 |
한국기독교에서 현세기복적인 면이 두드러진다는 면에서 무의 영향 을 완전히 배제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 기독교가 역할을 다하지 못 한데도 원인이 있다. |
신부 |
⸁ 미국보다는 이상하고 특수한 체험을 기대하고 기적에 관심이 많다. ⸂ 민족성에 무교적인 것이 깔려 있어 점을 보러다니기도 한다. 그것이 종교교육을 통해서도 지워지지 않는다. 자신의 신앙을 견고히 하는데 기적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 |
종교학자 |
교리적인 입장에서 기독교는 무교와 조화될 수 없는 선언적인 입장 을 취하지만 실제 한국의 기독교에서 현실적이며 즉각적인 것에 치우친 신행이 비중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무교의 영향이거나 무교를 통해 표출되어 온 현실적인 종교적 관심이 기독교에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3) 소결
앞서, 무의 기독교에 대한 현세기복적인 영향을 언급했다. 이에 대한 '최고조'의 견해차이를 소결론의 주요 쟁점으로 삼았다.
민호와 우성의 생각 : 모든종교가 현세기복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독교는 외국에 비해 종교생활의 여러 '양태'에서 차이가 있다(면담의 사례를 통해서도 확인되듯). 그런 표면적인 양태의 차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외국과 다른 우리나라 기독교인의 행태차이는 겉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행위자의 '의도와 동기'가 숨겨져 있다. 한국인 혹은 한국 기독교인들이 더 현세기복적이라는 사실이 '의도와 동기'로 작용한다고 본다. 즉 외국보다 기복적인 한국인의 심성이 외래종교인 기독교에 유입되면서 기독교 생활의 양태에도 영향을 미치고, 그 양태를 관찰한 사람들이 한국 기독교의 현세기복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럼 왜 본래 한국인이 더 현세기복적인가? 이점에 대해서는 무의 영향이라고 본다. 기독교 유입이전에 생활종교로서의 무(기독교보다 더 현세기복적이라는 점 전제)가 한국인의 심성 형성에 근본적 영향을 미쳐서, 기독교 전래 후에도 기독교 신자들이 외국보다 정신적으로나 행동 양태로나 기복적인 성향을 보여준다고 본다.
인정이 생각 : 현세기복적인 성격은 어느 종교에서나 관찰되는 보편적인 것이다. 때문에 이를 무의 영향이라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유독 이점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기복양태에 있어 외국과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예컨데 기도만으로는 부족하고 좀 더 열성적인 모습을 보여야 정성이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헌금을 내는 동기에 있어서도 소원을 비는 마음을 物化시켜 자기가 낸 액수만큼의 복을 기대한다든지, 기적이나 영적 체험 등을 통해 자신이 직접 경험함으로써만 하느님의 은총을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巫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기복의 수단을, 종교적 가르침에 따른 자신의 도덕적 실천이 아니라 즉물적인 것을 통해 혹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신앙행위(예배참석,헌금,종교집회에의 열성적 참여 등등)로 삼는 것은 巫의 영향력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같은점 : 모든 종교의 현세기복적 성격 인정
한국인의 종교생활양태에서 드러나는 외국인과의 차이 인정.
입장차이 - 인정이는 기복수단상의 차이만을 무의 영향이라 보았다. 현세기복적인 심성 자체가 무의 영향이라기 보다 이를 즉물적이고 가시적인 것과 연결시키려는 성향이 무의 영향 받았는 것이다. 이에비해 민호와 우성이는 종교적 의례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한국인의 현세기복적 심성에 무목한다. 즉 무의 영향을 받아 한국인의 심성이 더욱 현세기복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다는 것이다.
추가로 면담 내용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무의 영향을 언급하면서 한국인의 심성이 자주 언급된다는 것이다. 민족성에 무교적인 것이 깔려 있다거나 무를 통해서 표출된 한국인의 심성이 기독교에 영향을 미쳤다는 말을 피면담자들은 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추론해 볼 수 있었던 것은 무의 영향이 가시적이면 직접적이지 않고 보이지 않게 간접적으로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무가 한국기독교에 미친 영향이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릴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의식적으로 면면이 이어져 온 무의 끊임없는 영향력 ,즉 한민족이 존재하는 한 언제까지나 지속될 무를 볼 수도 있다.
3. 개신교와 천주교의 무에 대한 입장의 차이
(1) 앞선 주제들에 대한 기존의 문헌을 살펴보고, 어느 정도 면담의 과정을 겪으면서 천주교와 개신교의 입장 차이를 많이 보아 왔다. 기독교를 천주교와 개신교로 나누어서 무와의 관계를 설명해 보는 것도 중요한 쟁점이라 보았다.
무에 관한 주제를 다루면서 천주교나 개신교의 차이를 염두에 두고 서술한 책은 있다. 하지만 천주교와 개신교의 근본적인 차이점, 우리 나라 전래과정에서 보인 차이점, 무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점 등을 모두 충족하는 체계적인 책이 없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분의 면담결과를 토대로 이번 발표와 관련 있다고 생각하는 두 종교간의 상이점을 정리했다.
(2) 면담요약 - 무에 대한 입장 차이
피면담자 |
면담내용 |
무속협회인 |
불교나 천주교는 무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연하다. 천주교는 무의 생활 패턴에 긍정적이지만 유독 기독교는 미신으로 여기며 배타적이다. |
목사 |
천주교와 기독교의 무에 대한 태도의 차이는 기독교 우상숭배 금지라는 교리의 해석과 적용을 엄격하게 하는 반면 천주교는 다소 느슨하게 하기 때문이다. |
신부 |
⸁ 무교를 배척하는 것은 좋지 않다. 자기의 믿음을 유지 하면서 다른 사람의 믿음도 인정해야 한다. ⸂ 무교에 미신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교를 통해 얻어지는 좋은 전통들, 이를테면 절대자 앞에 순응하려는 모습 등은 카톨릭안에서도 좋 게자리할 수 있다. |
종교학자 |
衁. 카톨릭은 전통토착문화에서 표출되는 한국인의 심성이나 문화적 취향을 카톨릭이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를 문제로 삼으면서 토착신앙에 가치를 부여하고 긍정적으로 접근하려 한다. 반면 개신교는 어떻게 한국의 토착적인 문화와 심성들을 극복하고 척결할 것인가에 많은 신경을 쓰면서 개신교의 한국 토착화에 대해 카톨 릭만큼 적극적이지 않다.(무에 대한 양자의 태도) 遁. 카톨릭은 교회라는 기구가 전 교단의 신앙과 교리를 궁극적으로 결정한다. 이는 곧 시대와 장소에 따라 교회가 지침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개신교는 교회제도보다 개개인의 신앙을 중시하는 개교회주의적 성격으로 인해 현재 개신교가 기구화, 제도화 되면서 오히려 자기변화의 가능성을 좁게 만들었다.(태도차의 원인) |
(3) 소결
천주교와 개신교는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율을 우선으로 하고 성서를 기본으로 하는 점에서 교리상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위와 같은 입장 차를 보이는 것은, 교회 기구의 운영상 차이가 있기 飁문이고(종교학자의 견해) 교리 해석을 하는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목사). 아울러 한국에 전래된 과정에서의 차이도 한 원인이 된다. 가톨릭은 1784년에 개신교는 1876년에 전래되었다. 각 시기마다 구조적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카톨릭이 전래될 당시 조선조의 유교적 체계는 엄연하였고, 서학 수용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은 대략 실학파의 인물이었다. 카톨릭은 이들 비교적 상류층에 속한 특수 계층인들에 의해 180년간의 진지한 검토와 인내를 거쳐 자생적 신앙공동체로서 탄생한다.
그로부터 100년 뒤, 기독교가 성립되던 때에 조선은 대외적으로 몰려오는 서양제국주의 열강과 서양문명에 의한 충격에 직면하였고 내부적으로는 유교가 더 이상 지배적 가치관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혼란 속에 특히 미국의 세력을 등에 업은 개신교는 새로운 가치관 및 근대화를 열망하는 한국사회에 쉽사리 발을 디딜 수 있었던 것이다. 개신교는, 무를 저속한 미신이자 타파의 대상으로 보는 서양의 종교진화론과 유럽중심주의 (Eurocentrism) 적 사고의 공간이 될 수 있던 것이다.
개신교가 무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무의 영향을 받은 신종교는 오히려 개신교 계통에서 많이 나오는 아이러니컬한 현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는 위에서 말한 기구의 운영상 차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천주교의 경우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제를 받기 때문에 전례의 형식이나 성서의 해석을 임의로 바꿀 수 없는 데 비해, 개신교의 경우 워낙 다양한 종파를 가지고 있으며, 교회 운영에 있어서 목사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고 있기 飁문에 신종교가 등장할 수 있는 보다 용이한 배경이 되고 있다.
V. 결론- 같이 생각해 봅시다.㟉
1. 무와 관련된 시사적인 종교현상에 대해........
전체 한국 인구 중에 종교인, 무종교인이 반반인데 확고한 종교적 혹은 무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급격한 근대화의 과정을 밟아 온 한국 사회는 아직 확고히 정립된 가치기준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에 사람들은 당장의 운명과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무교와 같은 기능신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고 한편으로는 자기 스스로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고 싶어한다. 요즘 기(氣)나 단전호흡등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도 어찌 보면 이와 같은 정신수련과 같은 가시적인 것을 통해 주체성을 획득하려는 심리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고전종교의 입장에서 볼 때 즉물적이고 가시적인 신통력은 고결한 종교적 진리로 나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위험한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고전종교에서 말하는 고결한 이상까지 다다르기가 힘들고 즉각적인 해결책을 얻어내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일간지의 오늘의 운세나 신종교 운동과 같은 당장의 가시적이며 즉각적인 의지 대상을 찾는 것이다. 이는 특별한 체험을 가졌거나 병을 고치는 능력을 통해 카리스마를 얻은 인물에 의지하고 싶어하는 성향과 관련이 있다. 한국에서 신자들간의 수평적 관계보다 성직자와 신자의 관계가 중심을 이루는 신앙형태를 많이 띠는 것도 이에 기인한다. 이는, 무당을 찾아가는 사람들간의 관계는 없고 무당과 손님과의 관계만 존재하는 무교와 비슷한 모습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2. 교리 차원을 넘어선 종교간의 현실적 타협의 모습에 대해서......
각 종교는 나름의 교리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타종교와 쉽게 조화되기 어렵다. 그러나 여러 종교가 공존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각 종교간의 조화와 타협은 필요하다. 종교를 사회체계 하위현상의 하나로 볼 때, 종교간의 교리적인 수준을 넘는 협력이 이루어져야 사회갈등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무속협회인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종교단체들이 사회운동의 영역(무협회의 환경운동)에까지 현실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도 서로 간의 협력을 필요로 할 것인바, 인터뷰과정의 몇 가지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단순한 교리적 차원의 이견을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이 아쉽다. -- 특히 개신교단체와 무교단체. 무협회와 천주교단체와의 교류는 존재.
3. 앞으로 무는 어떤 모습일까?
한국의 자연발생적인 '전통적 무'는 현대에 다소 변질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여 무에 대한 왜곡된 이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무는 우리 나라 역사와 함께 계속되어 왔으며 한국인의 심성에 아직까지 뿌리가 되고 있다는 것을 조사과정에서 느꼈다. 이런 무가 앞으로도 어떤 형태로든 존속할 것으로 보는데, 그것은 무의 종교적 제도화와는 그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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