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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 서로 사랑하라 말씀/ 요한복음 13:31-35 요절/ 요한복음 13:34 | 2023. 4. 23 | |
봄학기 특강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우리가 일상생활에게 가장 많이 쓰고 있는 단어 중 하나는 ‘사랑’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단어 중의 하나는 ‘사랑’입니다. 가장 하고 싶거나 듣고 싶은 단어 중 하나는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도 ‘사랑’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사랑’으로 이름을 짓습니다. 성경에는 고린도전서 13장과 같은 ‘사랑장’이 있습니다.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도 많고, 노래도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주제를 ‘사랑’으로 정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새 계명으로 주신 ‘서로 사랑하라’ 에 관한 말씀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아주 짧고, 단순하지만, 은혜로운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 시간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고, 말씀을 실천함으로 아름다운 춘천UBF교회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저는 2022년에 2가지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았습니다. 첫 번째는 누가복음 8:25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말씀이고, 두 번째는 요한복음 13:34 ‘서로 사랑하라’ 말씀입니다. 이 시간에는 요한복음 13:34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공부를 통해 사랑의 중요성을 깨닫고 예수님의 사랑이 가장 잘 나타난 사랑의 복음서 요한복음에 사랑이란 단어를 찾아보았습니다. ‘사랑’ 찾기를 하면서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마음 속에 들려왔고,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 깨닫게 되어 감사가 되었습니다.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익숙하고, 이미 알고 있는 말씀인데, 다시 한 번 우리 마음에 깊이 새김으로 우리의 삶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순식간에 식사 분위기는 화기애애졌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식사 분위기는 싸~해 졌습니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때 가룟 유다가 떡 한 조각을 받고는 식사 자리를 박차고 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가룟 유다를 제지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하시며 제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영광’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제 그 뜻이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요, 예수님께도 영광이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33)고 하시며, 곧 제자들을 떠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근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몇 사람은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유언적인 말씀을 주십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새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새 계명에는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 담겨 있고 그들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시겠다고 했을 때, 제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예수님께서 드디어 이스라엘의 독립 선언을 선포하고, 이스라엘을 회복되면 자신들도 신분 상승이 되겠구나 기대했을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제자들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새 계명의 말씀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새 계명’에서 ‘새’의 원어적인 의미는 “본질적인 면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새 계명’은 옛날에도 있었지만, 이제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옛날에 있었던 계명은 무엇일까요? 옛 계명(십계명)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옛 계명은 하나님과 나, 이웃과 나와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새 계명은 제자들간, 동역자간의 사랑으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도록 가르쳐 줍니다.
현재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일 수 있습니다. 장래가 보장되는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나 정치·사회적으로 유명한 지도자가 되는 것 일 수 있습니다. 빼어난 말씀의 종이요, 제자양성가가 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으로 보셨습니다. 왜 사랑일까요? 조금 있으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나십니다. 그냥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조롱과 멸시를 당하시고 죽으심으로 떠나십니다.
이때 세상에 남겨진 제자들의 심정은 어떠할까요? 예수님을 지켜드리지 못한 죄책감과 무력감 등으로 정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완전히 무너지고, 믿음도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장래에 대한 두려움과 현실문제에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은 스승을 잃고 방황할 것이며, 그 충격으로 제자 공동체가 무너지고, 해체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런 위기를 극복하는 힘은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위기와 고난을 극복하고 뛰어 넘을 수 있는 힘은 서로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나라 공동체를 세우는 능력이 서로 사랑함으로 나타납니다.
십자가 사건 이후 제자 공동체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다락방에 모여 방문을 걸어 잠그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만약 제자들 가운데 누구 한 사람이 일어나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를 비난하거나 수제자 그룹에 대한 불평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순간 공동체는 무너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침묵하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랬을 때, 서로를 돌아보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고, 제자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우리 춘천UBF교회도 서로를 격려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사랑의 공동체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에는 ‘다른 사람을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사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랑은 추상적인 개념이라 꼭~집어서 ‘사랑이란 **이다’ 라고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조금 어려운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은 ~하며’ ‘사랑은 ~하지 아니하며’ 긍정적인 특성과 부정적인 특성을 혼용하며 매우 간결하고 명쾌하게 사랑을 소개했습니다. 15가지 사랑의 다양한 특성을 보면, 사랑이 결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인 실천 항목임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말 대신 우리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말하면 한 층 실감 있게 사랑의 삶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000은(는) 오래참고, 000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000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이하생략-) 우리가 이런 사랑의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러면,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사랑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물질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역자에게 물질을 지원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아픈 동역자를 찾아가 병문안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역자를 찾아가 도와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절망과 좌절, 실패 가운데 있는 동역자를 찾아가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때로는 한 끼 식사를 하며 교제 나누는 것이 사랑입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 믿음의 식구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관심을 갖고 돌아보는 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사랑하라고 하십니까?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아주 쉽고, 명확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사랑도 서로 사랑해야 사랑의 열매를 맺습니다.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연약할 때,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가장 귀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전혀 사랑받을만한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살려내셨습니다. 이 사랑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천명이나 되는 큰 무리가 따라 왔을 때, 그들을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으시고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영접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오병이어 기적을 통해 선한 목자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제자 중에 ‘누가 크냐’하는 변론이 일어났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자가 큰 자니라’ 하시며, 겸손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인을 끌고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했을 때,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심으로 죄인을 정죄하기 보다는 용서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서로 섬김을 받고자 눈치를 보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발을 씻어 주심으로 섬김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찾아가시는 사랑을 보여 주셨고, 찾아오는 자를 맞아주는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영접하시고, 그들을 이해하시고, 용서하시고, 공감하시는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 춘천UBF 동역자님들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을 힘써 실천함으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35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세상 사람들로부터 예수님의 제자로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공동체의 지체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제자의 표식이 됩니다. 제자 됨의 기준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고 복음전파와 영혼구원을 힘있게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이 시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짧고, 간략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어떤 사랑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숙제로 주십니다. 정답은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하고,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랑이 많은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나 만큼만 사랑하면, 세상은 Beautiful 하고, joyful 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묵상하면 할수록 제가 사랑이 부족한 자임을 보게 되었습니다. 동역자가 하루 10분 대화를 하자고 했었는데, 어느 순간에 5분 대화로 바뀌었고, 또 어느 순간에 이것도 잘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역자님들에게 먼저 다가가 섬기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마음만 앞섰고, 오히려 제가 섬김을 받을 때가 많았습니다. 지난 2년간 학생회 회장 직분을 맡으면서도 섬김과 사랑이 부족하여 ‘소통과 공감하는 학사회’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자기 일과 직장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하나님의 역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동역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하고자 ‘10개 가정과 식사 교제’ 하는 것을 기도제목 중 하나로 잡았습니다. 주어지는 십자가들을 거절하지 않고 사랑으로 영접하고 감당하고자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데서 성장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 시간 예수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자기중심적이고 허물 많은 우리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와 근거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새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유언적 말씀으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이 부담스럽고 힘들지라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순종해야 합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사랑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사랑해야 합니다. 부모 자녀간에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지체들이 서로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과거의 상처와 허물을 용서하고 목자님과 학사목자님들이 서로 사랑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학사목자님들과 청년학생들이 서로 사랑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