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2. 26.
해방 직후 1946년 대구에 콜레라가 들끓었다. 귀국 동포를 따라온 콜레라균이 그해 5월 경북 청도군에서 첫 환자를 냈다. 이어 대구에서만 환자 2500명이 생겨 1700명 넘게 숨졌다. 전국 최고 사망률이었다. 화장터로 안 돼 공동묘지에 장작을 쌓고 그대로 태우는 광경도 있었다. 다급해진 미 군정은 대구 출입을 봉쇄했다. 식량 공급이 끊겨 아사 위기에 몰린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왔고 좌익 세력까지 준동했다.
▶ 대구·경북 어르신들은 이번 우한 코로나 사태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그때 비극을 이구동성 입에 올린다. 지금 대구는 '유령도시'처럼 변했다. 일상은 무너진 지 오래다. 인적마저 끊기고 시민들은 패닉에 빠졌다. 마스크를 사려고 줄 서 기다리는 시민들 표정에는 불안과 공포감이 서려 있다. 500년 된 서문시장이 처음으로 문을 닫았다. 국채보상운동 기념일인 지난 21일부터 2·28 민주운동 기념일까지 예정됐던 시민 주간 행사도 취소됐다.
▶ '대구 봉쇄' 얘기가 74년 만에 다시 나왔다. 방역 당국이 '대구 코로나'라는 표현을 썼다가 사과하더니, 25일엔 청와대·정부·여당이 모인 회의가 끝나고 "대구 봉쇄" 운운하는 발표가 나왔다. 시민들이 느꼈을 공포와 분노가 쉽게 짐작이 간다. 지금 인터넷에는 실시간 검색어로 '대구 코로나' '대구 신천지'라는 단어가 동시에 뜬다. 악성 비아냥도 더러 보인다.
▶ 그러나 대구·경북 주민들은 '봉쇄' 운운이 나오기 전에 이미 스스로 외부와 격리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음식점은 물론 상가도 솔선해 문을 닫았다. 성당·교회·사찰은 종교 행사를 멈췄고 외부인 출입도 막고 있다. 이웃을 배려하는 모습이다. 서문시장의 어떤 건물주는 월세를 아예 받지 않기로 했다. 무료 방역에 나선 업체도 있다. 대구 학생들은 우한 코로나 관련 정보를 담은 인터넷 홈페이지와 앱을 만들어 운영한다. '#대구 힘내라' '#대구 파이팅!' 같은 해시태그가 숱하게 올라왔고, 연예인들 기부도 잇따르고 있다.
▶ 대구·경북은 코로나 방역의 마지노선이다. 여기서 못 막으면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대구·경북은 위기에서 빛이 났다. 일제강점기 국채보상운동의 깃발을 올릴 때도, 6·25전쟁 당시 낙동강 마지노선을 사수(死守)할 때도 그랬다. 어린 소년·소녀들까지 총을 잡고 전선으로 나갔다. 대구·경북은 이번에도 꿋꿋하게 버티고 이겨낼 것이다.
정권현 논설위원 khjung@chosun.com
조선일보